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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박근혜 대통령과 펑유란

by 연송 김환수 2013. 7. 23.

박근혜 대통령과 펑유란

 

펑유란(馮友蘭)1934년 완성한 중국철학사는 중국인이 쓴  최초의 중국 철학사다.

 

그는 1948년 미국 대학의 방문교수로 있으면서 강의 교재로 쓰기 위해 영어로 된 ‘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라는 책을 새로 펴냈다.

 

↑ 90세 때의 펑유란. 청력과 시력에 장애가 나타났어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중국철학사1983년 영어로 완역돼 중국 철학사의 표준서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5월간에세이에 기고한

내 삶의 등대가 되었던 동양철학과의 만남이라는 글에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던 시절 내 삶의 한 구석에 들어와

인생의 큰 스승으로 남은 것이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라며

 

논리와 논증을 중시하는 서양철학과는 달리 동양철학에는

바르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와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 나갈 지혜의

가르침이 녹아 있었다고 썼다.

 

박 대통령의 방중에 앞서 중국에서 출판된 책 박근혜 일기에  

이런 내용이 실리면서 중국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장즈쥔(張志君)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이 올 1월 박 대통령 당선 축하 특사로 왔을 때 꺼낸 첫말이 펑유란은 제 스승입니다였다. 장 주임이 베이징(北京)대학을 다닌 1970년대 펑유란은 교수로 있었다.

 

펑유란은 1949년 장제스(蔣介石)가 대만으로 가면서 함께 가자고  

요청했지만 뿌리쳤다. 그 대신 마오쩌둥(毛澤東)에게 과거 봉건철학을 강의하고 국민당을 도왔다. 현재 나는 사상을 개조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는 편지를 썼다. 마오쩌둥은 그를 베이징대에 복귀시켰다.

 

박 대통령은 수첩공주란 별명답게 중국철학사에서 맘에 드는

글귀들도 기록해뒀던 모양이다. 그는 얼마 전 기자 간담회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보니 이거 내가 실천하고 있는 거잖아라고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 글귀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깊은 방안에 앉아 있더라도 마음은 네거리를 다니듯 조심하고,

작은 뜻을 베풀더라도 여섯 필의 말을 부리듯 조심하면 모든 허물을 면할 수 있다.”

 

   

馮友蘭(펑유란)이 직접쓴 족자를 박대통령에게 선물하였다.

 

이 족자는 펑유란의 외손녀가 보관해 온 것으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이를 선물하면서 "박 대통령이 외할아버지의 책을 보신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 선물하는 것"이라며 "만약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를 박 대통령께 드리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족자가 대단한 이유는 중국의 문화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청 격인 국가문물국에 등록돼 있는 '문물(文物)'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전 문물국의 허가를 얻었다고 합니다.

 

청와대는 "이 작품은 문물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과정 때문에

우리 측에 사전에 통보가 없이 칭화대 연설 직후 전달된 '깜짝 선물'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재라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족자에 담긴 내용입니다. 펑유란은 만 89살이던 1984년에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왕창령(王昌齡·698756)'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을 붓글씨로 썼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寒雨連江夜入吳(한우연강야입오)

차가운 밤비 강물을 따라 오나라 땅으로 흐르는데.

 

平明送客楚山孤(평명송객초산고)

이른 아침 친구 떠나 보내니 초나라산이 외롭게 보이는구나.

 

洛陽親友如相問(낙양친우여상문)

낙양의 벗들이 내 소식을 묻거들랑.

 

一片氷心在玉壺(일편빙심재옥호)

한 조각 얼음같은 마음 옥 항아리에 담겨 있다 하게.

 

 

부용루는 중국 강소성 진강에 있는 누각입니다.

이 장소는 처음에 오나라 땅이었다가 나중에 초나라 땅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지역을 뜻합니다.

 

이 시는 왕창령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신점을 낙양으로 떠나 보내기 직전에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절창(絶唱)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족자를 받은 날은 공교롭게도 베이징 방문을 마치고 시안으로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이 시를 놓고 비유하자면 중국은 저자인 왕창령이고 그의 친구인 신점은 박근혜 대통령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일편빙심'(一片氷心)은 아주 맑고 깨끗한 마음을 뜻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으로 귀국한 뒤 사람들이 중국이 어떠했느냐?물으면 박대통령과 한국을 향한 중국의 마음은 한 조각 얼음처럼 순수했다"답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인 듯 합니다.

 

아무튼 펑유란의 이 서예 족자는 중국이 엄청나게 고심한 끝에

선정한'맞춤형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박대통령이 잘 아는 펑유란과 관계 되는 것 중에서도 중국인의 마음을 담은 것을 고르다보니 국가 문화재를 아낌없이 내주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중국의 '박근혜 사랑'이 중국통인 박대통령에 대한 보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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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국 대통령, 칭화대학교서 연설

2013062913:56 

 

칭화대학교 측은 박 대통령에게 칭화대학교 모형과 펑유란(馮友蘭) 선생의

필적을 선물로 증정했다.

 

下一页 [인민망(人民網)] 중국에 대한 국빈방문을 진행 중인 박근혜 한국 대통령이 29일 오전 1030분 칭화(清華)대학교에서 새로운 20년을 여는 한중 신뢰의 여정'이란 주제로 연설을 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의 시작과 끝을 또렷한 발음으로 중국어를 사용해 참석한 학생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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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상들이 한국 박근혜 대통령을 부러워하는 이유 ?

 

중국에서 국빈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아 세계정상들이 부러워하고 언론이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우연이 아니요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훌륭한 존경스러운 준비된 품격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혼자 독학으로 중국어를 연마하고 중국을 공부하며 5개국어를 하니..

 

중국주석이 계단밑까지 마중하고 주석이 조하하며 내외 만찬 등 7시간을 독대했다

 

중국이 좋아하며 최고의 대우를 한 이유중 한 예를 아래에 전하니

 

국민이 대통령을 존경하고 국민이 대통령을 본 받고 세계 1등 국민으로 변하도록 자녀들을 가르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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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에 공격받던 '반동 학문'의 주동자지금은 그들에게 칭송받는 철학의 大家

 

박성규·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강사

 

[불멸의 저자들] 펑유란

 

새로운 철학으로 중국 건설 꿈꿨지만 마오쩌둥이 사상 개조 강요하며 짓밟아 30년 고초 이겨낸 뒤 양심의 글쓰기 재개

 

    

펑유란 사진

 

미국 박사 펑유란(馮友蘭·1895~1990)1934'중국철학사' ·하권을 발간하자 중국은 작은 흥분에 휩싸였다. 당시 중국은 모든 면이 서양에 뒤떨어진 믿기 힘든 현실을 직면하고, 생존을 위해 서양을 배우는 분투 중이었다.

 

과학기술은 서양에 뒤졌지만 철학 사상은 중국에도 뭔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그 책이 증명해준 것이다. '철학적 언어 운용의 대가'다운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복잡한 철학 주장을 해설한 신기한 글솜씨('大手筆')가 감동을 배가했다.

 

일약 유명해진 펑유란은 일본의 침략과 국공 내전으로 온 나라가 화염에 휩싸인 가운데 전장에 임하는 군인 같은 자세로 학생을 가르치며 책을 썼다. '신리학' '신원도' 등의 '정원육서(貞元六書)'가 그렇게 탄생했다.

 

중국은 과학이 없으므로 근세도 없다는 인식 아래 '중국철학사'를 고대의 자학(子學) 시대와 중세의 경학(經學) 시대로 구분했고, 이제 자기들이 내놓는 새로운 철학을 기반으로 신중국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반영한 책이다.

 

그러나 펑유란의 치열한 학문 정신은 그의 나이 55세 때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참담하게 무너져갔다. 공산 정권이 사상 개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반동 학문의 권위자' 펑유란은 최우선 표적이 됐다.

 

이후 30년간 그는 '살아남기' 위해 글을 썼다. 문혁 기간 중 '치욕'을 견디지 못한 동료들은 잇따라 자결을 선택했으나, 펑은 과거 자신을 성토하는 자아 비판 글을 쓰고, 당이 요구하는 새 글도 썼다. 쓴 글은 다시 거센 비판을 받았고, 쓰면 쓰는 대로 안 쓰면 안 쓴다는 비판이 늘 살기등등 기세였다.

 

그는 젊은 날 중국철학이 서양인에게 마치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여겨지는 치욕스러운 현실에 통분한 이후 중국 고전 철학에서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을 인류 보편의 현대 언어로 설명해냄으로써 인류의 정신 가치를 승격시키고 중화민족 중흥의 저력을 구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권력욕이 앞선 마오쩌둥은 위대한 철학자의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쓰는) 소박한 꿈을 30년간 짓밟으며 오직 '반성' '자아 비판' '아부' '영혼 포기의 문장'만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절대 권력이 사망하자 마침내 펑유란은 아흔을 바라보면서 필생의 과업인 '중국철학사 신편' 집필을 구체화한다. 1949년에 집필한 영어 저작 '중국철학 간사'1985년에야 비로소 중국어로 번역됐다.

 

과거 오랜 세월 뜬금없는 공격에 수시로 혼비백산했던 '겁 많은' 펑유란은 새 시대 해금의 분위기가 역력했음에도 여전히 매우 '주눅'이 든 상태에서 뜻있는 독자라면 자기의 말과 유물론·유심론 도식의 사족을 구별해줄 것을 속으로 희망하며, 언필칭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중국철학사를 써내려갔다. 점차 용기를 얻었는지 전체 7권 중 뒤로 갈수록 유심·유물의 구도는 사라져갔다.

 

그는 거의 눈멀고 귀먹은 상태에서 응급실에 실려 가길 반복하면서 죽기 직전 마지막 권을 완성한다. 거기에 너무도 공포스러웠던 마오에 대한 글을 남겼다. '역사상 그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막대한 권력을 일신에 틀어쥐고, 그 누구도 저지른 적 없는 최대 과오를 저질렀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통치 대리인'이란 것은 순전한 허울에 불과하고, 마르크시즘에서 철저히 비판한 저 봉건 노예제 시대의 황제 진시황보다 더 큰 권력을 장악하고 진시황보다 더 큰 사상 탄압의 죄악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이 책은 대륙에서 출판되지 못했고, 6년 후 홍콩에서 겨우 빛을 봤다. 그런데 그가 타계한 후 20년이 채 안 돼 세상은 다시 한 번 급변했다. 위대한 철학자를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며 시비를 걸었던 자기들의 과거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재 중국 공산당은 펑유란의 '불변의 애국 충정과 자강불식의 분투 정신'을 기리는 추모 열기가 한창이다.

 

펑유란을 '추숭'한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이런 분위기는 절정에 달해 언론 방송은 연일 펑유란을 대서특필했다. 고향에는 펑유란기념관, 유란공원을 건설하고, 펑유란선생기념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유란중학교·유란대로를 명명하고, '일대 철인 펑유란' 기록영화를 촬영하고, 중화서국은 대대적으로 펑유란의 숨은 원고 모집 광고를 내며 '전집' 3판을 준비 중이다.

 

사위 차이중더(蔡仲德)는 고난의 연속이었던 장인의 삶을 상세한 연보로 남겼다. 거대 권력 앞에서 맘에 없이 쓴 글은 전집의 '윤편(閏編·정통이 아닌 글을 엮은 것)'으로 따로 분류하였다. 윤편이 아닌 글도 '펑이 쓴' 글이 아닌 것이 많다. 다만 '한어(漢語)의 오점'이요 역사상 다시 있어서는 안 될 피해의 흔적이다.

   

                                  '중국철학사' 표지 사진

 

[펑유란, 더 알고 싶다면]

 

한국에서도 널리 퍼진 '중국철학사'

공산주의 관련 내용은 가려 읽어야

 

'간명한 중국철학사'(2007·형설출판사)는 펑유란의 1949년 영어 저작(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을 번역한 것이다.

 

한글로 1976년 처음 출간돼 사랑받은 세계적으로 10여개국 언어로 번역된 중국철학 입문서다. 1934년 중국어로 저작된 펑유란의 대표작 '중국철학사'(·하권·사진)'타임' 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에 포함됐다.

 

이 책의 한글 번역은 1999년 까치글방에서 출간했고, 한국은 펑유란의 대표작을 대중적 언어로 읽는 나라가 됐다.

 

'펑유란 자서전'(2011·웅진)은 격동의 중국 현대사 한가운데서 영광과 좌절의 삶을 살아온 저자의 담담한 고백을 감동적으로 접할 수 있다.

 

역시 검열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어서 공산주의와 관련된 내용은 액면 그대로 믿을 필요가 없다.

 

1976년 최초 출간 후 지속 판매하고 있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간명한 중국철학사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수준을 반영합니다.

속에 담은 말들은 글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