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박근혜, 첫 여성 대통령, 가계도

by 연송 김환수 2012. 12. 20.

 

2012.12.20. 05:30분 최종 투표결과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577만3128표를 얻어 과반이 넘는 득표율 51.55%를 기록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1469만2632표를 얻어 득표율은 48.02%로 집계됐다.

 

박근혜 후보가 108만 496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

 

박근혜, 첫 여성 대통령·첫 父女 대통령

투표율 75.8%… 97년이후 최고

 

1시15분 현재 108만표差… 51.6%로 41년만에 '과반 대통령'

朴 당선인 "실천하는 민생 대통령 돼 국민 행복시대 열 것"

 

 

조선일보 | 권대열 기자 | 입력 2012.12.20 03:09 | 수정 2012.12.20 03:45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박근혜 (朴槿惠)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19일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인 박 당선인의 당선으로, 국내 첫 '부녀(父女) 대통령' '2대(代) 대통령'의 기록도 나왔다.

 

박 당선인은 95.9% 개표가 진행된 20일 1시 15분 현재, 유효 투표의 51.6%인 1514만4924표를 얻어 47.9%(1406만292표)를 얻은 문재인 (文在寅) 민주통합당 후보를 108만4632표 차로 앞섰다. 박 당선인은 선친인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971년 7대 대선 때 김대중 후보와 대결해 득표율 53.2%로 당선된 이후 41년 만에 '과반 득표 대통령'이 됐다. 또 1987년 이후 보수 진영 후보로는 처음으로 호남에서 두 자릿수(10.4%) 득표를 했다.

 

↑ [조선일보]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저녁‘당선 확실’예측이 나온 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 나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오종찬 기자

 

박 당선인은 당선 확정 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진 당선 축하 행사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열망이 가져온 국민 마음의 승리라고 생각한다"며 "실천하는 민생 대통령이 돼서 기대하시던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청와대 경호처는 19일 밤부터 박 당선인에 대해 현직 대통령에 준하는 경호에 들어갔다.

 

박 당선인은 지난 2007년 대선 이후 5년 내내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켜왔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 '바람'이 불면서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대세론을 지키며 대선에서 승리했다. 특히 선거 1~3일 전에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에게 역전을 허용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40대와 수도권을 집중 공략하면서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박 당선인은 열세가 예상됐던 수도권에서 선전하고, 충청 지역에서 문 후보를 크게 따돌렸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인기가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승리함으로써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쥔 '10년 정권'을 만들어냈다.

 

민주당은 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시도했지만 '박근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과 좌파·진보 진영에선 전체적으로 새로운 판 짜기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 당선인은 19일 오후 6시 투표 마감 이후 시작된 개표에서 처음부터 문 후보를 계속 앞섰고, 8시 40분쯤 '당선 유력' 전망이 나왔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75.8%로 97년 대선(80.7%) 이후 치러진 전국 규모 선거 중 가장 높았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朴 당선인 "약속 실천하는 민생대통령 되겠다"(종합)

 

기사입력 2012-12-20 00:17

 

 

<2012대선>박근혜 당선인 미소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뒤 미소짓고 있다. 2012.12.19 zjin@yna.co.kr

 

"국민의 승리..격려ㆍ응원하던 분들 다시 뵙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김화영 기자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9일 "국민께 드린 약속을 반드시 실천하는 민생대통령이 돼 국민 여러분이 기대하던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은 18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이번 선거는 국민 여러분의 승리다.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열망이 가져온 국민 마음의 승리"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당선인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제가 선거기간 중 가는 곳마다 저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신 그 뜻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제가 선거 중 민생 대통령, 약속 대통령, 대통합대통령 등 크게 세가지 를 약속했다.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새로운 시대를 여러분께서 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라면서 "보내주신 신뢰, 제가 그 뜻을 깊이 마음에 새기면서 국민 여러분 모두가 꿈을 이룰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순간 가장 보고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박 당선인은 " "선거 기간 만나뵙던 많은 국민 여러분, 저의 주먹만한 알밤을 들고와 제 손에 쥐어주거나 격려하고 응원하던 분들의 모습이 많이 생각난다"면서 "다시 뵙고 싶고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또 "여러 군데 다니면서 힘든 일이 있었지만 시장에서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던 분들, 추운 날씨에도 오랜 시간 기다리며 저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던 분들을 다시 한번 뵙고 싶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프로필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19일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jin34@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물음에는 유세 지원 중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이춘상 보좌관과 고 김우동 선대위 홍보팀장을 거론, "선거하던 중 큰 사고가 나서 저를 돕던 소중한 분들을 떠나보내게 됐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shin@yna.co.kr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가계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

 

2012.12.19일 치러진 제 18대 대통령선거의 개표가 20일 오전 5시30분께 최종 완료됐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총 선거인수는 4050만7842명이며 이중 75.8%가 투표에 참여해 투표자수는 3071만1459명으로 집계됐다.

 

후보자별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577만3128표를 얻어 과반이 넘는 득표율 51.55%를 기록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1469만2632표를 얻어 득표율은 48.02%로 집계됐다.

 

이어 기호순대로 무소속 박종선 후보(1만2854표, 0.04%), 김소연 후보(1만6687표, 0.05%), 강지원 후보(5만3303표, 0.17%), 김순자 후보(4만6017표, 0.15%)로 나타났다.

 

이로써 전체적으로 박 당선인은 과반 득표를 달성했다. 지난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과반 득표 대통령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역 시ㆍ도별로는 박 당선인이 서울과 광주ㆍ전남ㆍ전북 등 호남을 제외한 전국 모든 곳에서 문 후보에 앞섰다. 서울에서는 박 당선인 48.2%, 문 후보 51.4%로 박 당선인이 근소한 차로 뒤졌고, 호남에서는 문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앞섰지만 박 당선인은 10.5%(광주 7.8%, 전남 10.0%, 전북 13.2%)를 얻어 의미있는 두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박 당선인은 격전지로 꼽혔던 부산ㆍ경남에서도 각각 59.9%, 63.3%의 득표율을 얻었다. 문 후보는 이 지역에서 각각 39.8%, 36.2%을 얻어 나름대로 선전했다.

 

이날 투표에는 총 선거인수 4천50만7천842명 가운데 3천72만2천912명이 참여해 75.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1997년 제15대 대선 때의 80.7%보다 4.9%포인트 못 미치는 수치이지만 2002년 제16대 70.8%, 2007년 제17대 63.0%보다 각각 5.0%포인트, 12.8%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16개 시도별 투표율과 득표율을 보면 박근혜 당선인이 서울과 호남(광주, 전북,전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를 앞섰다. 서울(투표율 75.2%)은 박 당선인이 302만4572표(48.18%), 문 후보가 322만7639표(51.42%)로 문 후보가 앞섰다.

 

이어 ▲부산(76.2%) 박근혜(132만4159표, 59.82%), 문재인(88만2511표, 39.87%) ▲대구(79.7%) 박근혜(126만7789표 , 80.14%), 문재인(30만9034표, 19.53%) ▲인천(74.0%) 박근혜(85만2600표, 51.58%), 문재인(79만4213표, 48.04%)▲광주(80.4%) 박근혜(6만9574표, 7.76%) 문재인(82만3737표, 91.97%) ▲대전(76.5%) 박근혜(45만576표, 49.95%) 문재인(44만8310표, 49.70%) ▲울산(78.5%) 박근혜(41만3977표, 59.78%) 문재인(27만5451표, 39.78%), ▲세종특별자치시(74.1%) 박근혜 (3만3587표, 51.91%) 문재인(3만787표, 47.58%) 등을 기록했다.

 

이어서 ▲경기도(74.9%) 박근혜(352만8915표, 50.43%) 문재인(344만2084표, 49.19%) ▲강원도(73.8%) 박근혜(56만2876표, 61.97%) 문재인(34만870표, 37.53%) ▲충북 (75.0%) 박근혜(51만8442표, 56.22%) 문재인(39만8907표, 43.26%) ▲충남(72.9%) 박근혜 65만8928표, 56.66%) 문재인(49만7630표, 42.79%) ▲전북(77.0%) 박근혜(15만315표, 13.22%) 문재인(98만322표, 86.25%) ▲전남(76.6%) 박근혜(11만6296표, 10.00%) 문재인(103만8347표, 89.28%) ▲경북 (78.2%) 박근혜(137만5164표, 80.82%) 문재인(31만6659표, 18.61%) ▲경남(77.0%) 박근혜(125만9174표, 63.12%) 문재인(72만4896표, 36.33%) ▲제주(73.3%) 박근혜(16만6184표, 50.46%) 문재인(16만1235표, 48.95%) 등으로 집계됐다.

 

 

한편 이날 대선과 함께 실시된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에서는 보수성향의 문용린 후보가, 경남지사 보선에서는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가 각각 당선됐다.

 

이경호 기자 gungho@

<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

 

고령박씨(高靈朴氏)

 

[정의]

고령 박씨(高靈 朴氏)는 신라 경명왕의 차남인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朴彦成)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 성씨이다.

 

[연원]

고령박씨(高靈朴氏)의 시조는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이다.

 

후대에 어사공(御史公) 박섬(朴暹), 부창정공(副創正公) 박환(朴還), 주부공(主簿公) 박연(朴連)을 중시조로 하는 3파가 형성되었고, 여기에서 다시 교수공파(敎授公派), 영참판공파(嶺參判公派), 직강공파(直講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경참판공파(京參判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읍취헌공파(挹翠軒公派), 사정공파(司正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 무숙공파(武肅公派), 감사공파(監司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판관공판(判官公派), 소윤공파(少尹公派), 우윤공파(右尹公派)로 나뉘었다.

 

고령박씨는 조선시대에 56명의 문과 급제자, 1명의 상신, 4명의 청백리를 배출했는데, 어사공파의 대표적 인물은 박은(朴誾)·박장원(朴長遠)·박문수(朴文秀)·박상신(朴相臣)·박영원(朴永元) 등이고, 부창정공파의 대표적 인물은 박광순(朴光純)·박광우(朴光佑)·박우생(朴雨生)·박임종(朴林宗)·박만(朴蔓)·박처륜(朴處綸)·박영준(朴永俊)·박난영(朴蘭英)·박정번(朴廷璠) 등이다. 현대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다.

 

[현황]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이 주요 세거지이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고령박씨는 전국 12,301가구, 총 39,23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관련유적]

우곡면 도진리에 학암(鶴巖) 박정번의 강학지소로 건립하여 죽연(竹淵) 박윤(朴潤), 낙락당(樂樂堂) 박택(朴澤), 박정번, 매헌(梅軒) 최여설(崔汝楔) 등 5현을 향사(享祀)했던 문연서원이 있었으나 1868년(고종 5) 훼철된 후 그 업적을 기록한 문연서원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이외에도 박윤의 죽연정사(竹淵精舎)와 박택의 낙락당(樂樂堂)이 있다.

 

[참고문헌]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보고서』(통계청, 2003)

 

================================================

 

제18대 대통령 당선자 박근혜는 

조선 영조 때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직계 선대

고령박씨 인구는 적지만 8박(朴)으로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 박재홍. 박태완 등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후보는 고령박씨(高靈朴氏) 후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박 후보의 직계 선대는 가깝게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고, 그 위로는 조선 영조 때의 암행어사 박문수가 있다.

 

어사 박문수를 비롯 박정희와 박근혜 후보는 모두 고령박씨 사인공파(舍人公派) 직계 후손들인 셈이다.

 

우리나라 박씨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밀양박씨는 2000년 현재 3백3만1,478명이다.

 

반면 박 후보의 고령박씨는 3만9,239명에 불과하다.

 

고령박씨는 비록 수는 많지 않아도 64본의 박씨 가운데서 주축을 이루는 밀양, 반남, 고령, 함양, 죽산, 충주, 순천, 무안 등 소위‘8박’의 하나로 꼽힌다.

 

고령박씨는 조선조에 58명의 문과 급제자를 냈고, 그 중에 정승 1명(철종조 좌의정 박영원), 청백리 4명(박처륜, 박영준, 박장원, 박선)을 내는 등 밀양, 반남에 버금가는 세력을 누렸다.

 

역사상 고령박씨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무래도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1691~1756)와 박근혜 후보 아버지인 제3공화국 18년의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일 것이다.

 

박문수는 훗날 도승지, 어영대장, 병조판서 등 문무의 높은 벼슬을 두루 역임했지만 으레‘암행어사 박문수’로 통용될 만큼 많은 일화를 남긴 한 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조선 숙종 17년(1691년) 현재의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이조판서를 지낸 구당 박장원이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모두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명문 출신이다.

 

박문수는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활달한데다 기지와 유머가 풍부했다.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한 박문수는 워낙 강직한 성격으로 바른말을 잘해 대중의 절대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벼슬길에서는 기복이 많았다.

끝내 정승에 오르지 못한 것도 너무 흑백이 분명하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 탓이었다.

 

그가 죽자 영조는 시호를 내리도록 했다.

조정에서는 그의 바른 말에 얼마나 넌더리가 났던지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해‘직간공(直諫公)’으로 지어 올렸다.

그를 아꼈던 영조가 이를 보고 껄껄 웃으며‘충헌(忠憲)’으로 고쳤다.

박문수는 암행어사 때 탐관오리를 내려치고 민생을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함경도에 홍수로 흉년이 들었을 때는 경상도의 양곡을 실어다 이재민을 구호했다.

당시 그는 조정의 허락이 내려지기 전에 혼자의 결정으로 양곡을 풀었다.

주위에서는 나중에 말썽이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그러나 그의 과단성 있는 결정이 없었다면 이재민 구호는 제 때 할 수가 없었다.

 

이처럼 소신이 남달랐던 그는 재정에 밝아 이 분야에서도 공적을 남긴다.

호조판서로 있을 당시 그 때까지 원칙도 없이 필요할 때 마음대로 쓰던 궁중의 경비를 일정한 원칙에 따라 지출토록 제도를 만들었다.

 

평소 박문수의 거리낌 없는 바른말을 좋아했던 영조는 박문수가 책정해 온 항목별 궁중 예산을 보고 더 줄이라고 격려했다.

 

국가 재정과 왕실 가계가 엄밀히 구분되지 않고 운영되던 당시 그가 만든 제도는 예산회계 제도의 효시가 된다.

 

영조는 왕위에 있는 동안 박문수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박문수의 고집과 강한 개성 때문에 벌어진 마찰을 감싸주고 그의 재주와 능력을 펴도록 해준 것이다.

박문수는 조정에서 임금 앞에서 허리만 굽힐 뿐 고개를 쳐들고 임금을 쳐다보았다.

다른 대신들이 박문수의 이 같은 행동이 불손하다고 탄핵했다.

 

그러나 영조는“영성군(박문수)의 말이 옳으오. 군신 간에 너무 어려운 듯이 부복하는 것은 좋지 못하니 앞으로는 고개를 들고 임금을 바라보도록 하시오”하고 박문수 편을 들었다.

 

살얼음판 같은 벼슬길에서 박문수가 그 재능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영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문수는 군정(軍政)과 세정(稅政)에 밝았다.

저서로‘탁지정례(度支定例)’와‘국혼정례(國婚定例)’가 있다.

글씨는‘오명항토적송공비(吳命恒討賊頌功碑)’가 있다.

 

충남 천안시 북면 은지리 고령박씨종중재실(高靈朴氏宗中齋室)에서는 해마다 박문수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재실 안에는 박문수가 사용한 유품과 영정이 있다.

박문수의 손자인 박영보가 쓴‘수부정기 ’와‘박문수 일대기’등의 전적도 보관하고 있다.

 

박문수의 묘소는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은적산에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는 고령박씨 사인공파(舍人公派) 중 향파(鄕派)의 셋째집인 직강공파(直講公派)의 후예이다.

 

고령박씨 후손들은 흔히 자신들의 집안을 두고“안분지족(安分知足)의 보수적 기질이 강한 집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 그것은 전통에 대한 반작용인지 조금 엉뚱한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박 어사도 그렇고, 어쩌면 박 대통령도 그런 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1959년 고령박씨 종친회가 처음 결성되었을 때부터 고문으로 추대돼 사망할 때까지 종친회 고문으로 돼 있었다.

 

당시 육군 소령이던 그는 종친회에서 기금출연 등을 요청하면“군인이 무슨 돈이 있느냐”고 약간씩을 내놓았을 뿐 종친회 행사나 사업 등에는 거의 간여하지 않았다.

 

1961년 5.16으로 국권을 쥔 뒤에도 문중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문중에서는 너무한다는 원망도 없지 않았다는 애기다.

 

대통령 덕에 출세한 종친도 별로 없다.

 

큰 조카인 박재홍씨 정도가 유일한 예외로써 동양철관을 경영하다 11대 국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신라 55대 경애왕 이래 천년 만에 국권을 다시 쥐었다고 해서 박씨, 특히 고령박씨들은 가문의 영예로 삼았다.

 

고령박씨의 현대 인물은 박홍구(회상사대표), 박재윤(경제학박사, 서울대교수), 박붕배(문학박사, 서울교대교수), 박재우(원주상지대교수), 박재홍(국회의원), 박준희(영천전문대교수), 박완빈(부산산업대표), 박진하(정형외과원장), 박원창(충남대법대학장), 박태완(의학박사), 박병기(의학박사,재미), 박석희(대구가톨릭대교수), 박은용(효성여대문리대학장), 박조열(부산대부속병원장), 박성구(서예가), 박병균(변호사), 박성대(육군소장), 박신웅(인하대교수), 박관호(동국대교수), 박재종(육군소장), 박재호(공군준장), 박재걸(부산대교수), 박지상(소설가), 박병학(KBS아나운서), 박기하(교수), 박병천(교수), 박홍직(부산성애내과원장), 박성만(흥신통상사장), 박성달(내무부차관보), 박용승(건설부기술개발관), 박길호(경제기획원서기관), 박용일(산부인과원장), 박규하(숭전대교수), 박태화(경북대교수), 박재인(산림청연구관), 박원택(항공학박사), 박인규(교수), 박웅진(교수), 박항구(공학박사, 박암하(교수), 박용식(변호사), 박성천(법무관), 박연호(대우이사), 박병진(언론인), 박우태(현대환경대표), 박용하(인천세관장), 박남구(한국어선협회회장), 박용일(증권회사대표), 박완희(군수), 박준하(이학박사)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1930년 당시 경기도 양주군,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경기도 이천군, 경기도 평택군, 경기도 화성군,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충남 부여군 양화면, 전남 승주군 별량면, 경북 안동군, 경북 고령군, 경북 성주군, 경남 의령군 궁류면, 경남 울주군 범서면, 황해도 금천군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213명이 있다.

문과 57명, 무과 9명, 사마시 147명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39,239명이다.

 

----------------------------------------------------

 

본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자료 입니다. 참고로 보시기 바랍니다.

 

박문수는 암행어사가 아닌 별견어사 입니다.

http://blog.daum.net/yescheers/8598158

 

박정희 대통령 도자기, 희귀사진

http://blog.daum.net/yescheers/8598161

 

박정희 대통령 1978년 신년휘호 天下雖安 忘戰必危

http://blog.daum.net/yescheers/8598152

 

제9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기념 메달

http://blog.daum.net/yescheers/8598029

 

1960년대 국무총리 표창장 재질

http://blog.daum.net/yescheers/8598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