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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김씨 세계

고려, 안산, 그리고 안산 김씨(安山金氏)

by 연송 김환수 2013. 4. 24.

 

 

김씨의 시조 계림대보공(김알지) 위패

 

 

고려, 안산, 그리고 안산 김씨(安山金氏)

신대광

(안산향토사연구소, 원일중학교)

때는 서기 1010년.

한반도 북방의 만주 벌판에 희뿌연 먼지가 끝없이 날리고 있다. 거란의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쳐들어 온 것이다. 소위 ‘강조의 정변’이라 불리는 고려 조정의 사건을 구실로 거란이 고려를 침략해 온 것이다. 물론, 거란의 최종 목적은 고려 정벌이 아니다. 거란은 중국 본토의 송(宋)나라를 치기 전에 먼저 후방을 안정시키고 송과 고려의 연합을 사전 차단할 목적으로 고려를 치는 것이다.

 

여기에 맞서 고려는 강조가 나서 흥화진에서 잘 싸웠으나 결국 패배하고 만다. 그 후 개경이 함락되자 당시 국왕이었던 현종(1009∼1031)은 어쩔 수 없이 전라도 나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고, 몽진 도중 공주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현종은 고달프고 힘든 피난(避難)의 노정(路程)에서 당시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였던 김은부(金殷傅)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된다.

 

김은부(金殷傅).

 

전란의 와중에 국운과 가문의 이 놀랍고도 극적인 반전을 일구어낸 그는 과연 누구인가?

 

조선 초기 1530년에 발행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안산군조에 보면 안산을 본군(本郡)으로 삼는 성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안산 김씨가 바로 김은부의 집안이다.

 

안산 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인 김긍필(金肯弼)로 알려져 있다. 김긍필이 1024년(현종 15년) 식읍(食邑)을 하사받고 그의 후손들이 안산에 세거(世居)하면서 안산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된 것이다. 안산 김씨가 고려 초기 문벌의 반열에 오른 것은 김긍필의 아들, 바로 김은부(金殷傅) 때이다.

 

나주로 피난길에 오른 현종을 바로 이 김은부가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 임금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심지어는 그의 큰 딸에게 어의(御衣)까지 지어 바치게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중에 그 딸이 왕비(王妃)가 되니, 그녀가 바로 원성왕후이다. 그녀는 훗날 덕종(제9대)과 정종(제10대)을 낳게 된다. 또한 그의 두 딸들 역시 현종의 비(妃가) 되어 원혜왕후, 원평왕후가 된다. 그리고 원혜왕후는 문종(제11대)을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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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군(蓮城君) 김정경(金定卿)

 

신 대 광

(원일중학교, 안산향토사연구소)

 

조선 건국 벽두.

 

나라는 건국되었지만 그 기틀이 다져지기까지 혼란한 세월이 이어진다. 고려의 풍속 역시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여러 차례 궁중의 암투도 벌어진다. 이런 혼란과 변혁의 시기에 나라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안산의 인물로 김정경(金定卿)이 있다. 우리는 그의 일생을 통하여 건국 초, 생생한 역사 개벽의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볼 수 있다.

 

김정경은 안산 김씨로, 현재의 수암동에서 나고 자랐다.

 

김정경은 고려 말에 군부사총랑(軍簿司摠郞)을 역임했는데 이는 병부의 4품 벼슬이다. 그는 고려 말에서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혼란기에 이성계를 도와 대업을 이루게 되는데, 무장이었던 그가 자연스럽게 이성계의 측근에서 지지 세력이 되었을 것임을 짐작키는 어렵지 않다. 그리하여 조선건국에 일조(一助) 함으로 왕조 개창 후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봉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원종공신이란 누구를 이름인가? 조선시대에 공신 책봉에서 제외된 무수한 유공자들을 포상하는 것이 이른바 원종공신제도 인데, 이는 보다 직접적으로 큰 공훈을 세워 임명된 ‘정공신’ 다음 급에 해당하는, 이른바 ‘부공신’에 해당되는 모든 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포상한 제도로,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씩 책봉하곤 하였다. 조선 개국 공신을 책봉하였을 때의 원종공신은 1천 6백 명이 넘었으며, 임진왜란 후 책봉된 원종공신인 선무공신의 경우에는 9천여 명이 양산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원종공신은 모두 얼마나 될까?

 

조선시대 원종공신의 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두 합해 몇 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처럼 수많은 원종공신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나 불안 정국에서 국가와 왕실에 조금의 공이라도 있는 모든 유공자들을 포상함으로써 국가와 왕실을 안정시키고 위상을 드높이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1400년(정종 2년)에 방간의 난(일명 ‘박포의 난’ 또는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한성부윤이었던 김정경은 난을 진압하고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된다. 좌명공신(佐命功臣)은 형제들의 왕권 쟁탈 싸움에서 방원이 형 방간을 몰아내고 사실상 왕으로 등극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그를 도운 신하들에게 내린 공훈이다.

 

또한 김정경은 1410년(태종 10년), 성절사(聖節使) 명나라 황제나 황후 생일에 파견하는 축하 사절 로 명나라에 직접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 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김정경은 고향인 안산에서 여생을 마치게 된다. 현재 그의 묘는 하남시 감북동에 있다.

 

안산에 거처하면서 그가 지었다는 정자가 있는데, ‘망해정(望海停)’이라 불린다. 옛날에는 해수가 내륙 쪽으로 들어오는 지형이었으므로 현재의 수암동 일대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김정경은 그 바다를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며 말년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 당시에 심었다는 은행나무 세 그루 중 한 그루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는 세종 즉위 1년인 1419년에 75세의 긴 삶을 마감하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장수한 셈이다. 그는 왕조가 바뀌는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서 함께하였고, 공신으로 책봉되어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졌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안산 수리산(修理山) 자락에서 여생을 보내었다.

 

장구(長久)한 역사 속 급변하는 왕조 교체기에서 자신의 삶을 고뇌하고, 사랑하며, 치열하게 살다간 인간 김정경의 길고도 짧은 생을 통해 굽이굽이 흘러 온 안산 역사의 한 자락을 조용히 되짚어 본다.

뿐만아니라 그의 큰 아들인 김충찬(金忠贊) 역시 현종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使, 어사대의 정6품 벼슬)가 되고, 덕종 때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중추원의 종2품 벼슬), 정종 1년(1035년)에는 병부상서(兵部尙書, 오늘날의 국방부장관)를 지내는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둘째 아들 김난원(金欄圓)은 출가(出家)하여 문종 때 개경의 영통사에 있었으며 화엄종 도승통(都僧統)이 되었다. 훗날 문종은 왕명으로 넷째 왕자 후(煦, 대각국사 의천)를 출가시켜 승려가 되게 하는데, 김난원이 바로 그 왕자의 스승이 되어 화엄교관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후에 김난원은 ‘경덕국사(景德國師)’라는 시호를 받게 된다.

 

이렇게 하여 김은부는 국구(國舅, 왕의 장인)가 되고 외손자들이 왕이 되니 가히 당대 최고의 집안이라 할 수 있겠다. 이로써 안산 김씨는 고려 현종에서 문종대에 이르는 장장 4대 50여 년의 세월을 권력의 중심부에 있게 된다.

 

안산 김씨 가문의 흥성을 통해 우리는 이곳 안산이라는 공간과 고려 초라는 시대가 씨줄과 날줄로 만나는 역사의 궤적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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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상지종[宰相之宗] :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공신•재상의 가문

** 권문세족[權門勢族] : 벼슬이 높고 권세가 있는 집안

 

고려(高麗)충선왕(忠宣王) 즉위교서(卽位敎書)

- 왕실종친과 혼인관계를 맺을수있는 15성의 재상지종 -

 

(1) 신라왕손(新羅王孫),

     김혼일가(金琿一家) 赤爲敬順太后 叔伯之宗

(2) 언양김씨일종(彦陽金氏一種)

(3) 정안임씨(定安任氏)

(4) 경원이태후(慶源李太后)

(5) 안산김태후(安山金太后)

(6) 철원최씨(鐵原崔氏)

(7) 해주최씨(海州崔氏)

(8) 공암허씨(孔巖許氏)

(9) 평강채씨(平康蔡氏)

(10) 청주이씨(淸州이씨)

(11) 당성홍씨(唐城洪氏)

(12) 황려민씨(黃驪閔氏)

(13) 횡천조씨(橫川趙氏)

(14) 파평윤씨(波平尹氏)

(15) 평양조씨(평양조씨),

      병루대공시지종(竝累代功臣之宗)

      (資料 : 高麗史)

 

(원문)彦陽金氏一宗定安任太后一宗慶源李太后安山金太后鐵原崔氏海州崔氏孔岩許氏平康蔡氏淸州李氏唐城洪氏黃驪閔氏橫川趙氏坡平尹氏平壤趙氏 並累代功臣宰相之宗可世爲婚

[고려사 권제33, 24장 앞쪽~뒤쪽, 세가 33 충선왕 복위.11

 

언양 김씨 일종과 정안 임태후 일종과 경원 이태후와 안산 김태후와 철원 최씨, 해주 최씨, 공암 허씨, 평강 채씨, 청주 이씨, 당성 홍씨, 황려 민씨, 횡천 조씨, 파평 윤씨, 평양 조씨는 다 누대의 공신 재상의 종족이니 가히 대대로 혼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