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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건강,사랑방/봉료요법 (벌)

벌꿀의 사전적 정의 (한봉,양봉)

by 연송 김환수 2012. 9. 19.

 

벌꿀(honey)의 사전적 정의

 

꿀벌이 꽃의 밀선에서 빨아내어 축적한 감미료이며 빛깔·향기·맛·성분은 벌이나 꽃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벌꿀

 

양봉

 

일반적으로 수분 17%, 비중 1.41이다. 고형분의 대부분(83%)은 당분으로서 거의 같은 양의 과당과 포도당으로 되어 있으며 슈크로스는 약 2%이다.

    

 

 

 

 

이들 당분은 원래 꽃에 있던 슈크로스가 꿀벌의 입에서 나오는 효소의 작용으로 전화당인 과당과 포도당으로 변화된 단당류이기 때문에 흡수가 쉽고 칼로리원(源)으로서 속효성(速效性)이고 영양가가 높다.

 

또한 특수한 풍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꿀술이나 제과원료로 이용되기도 하며, 예로부터 약용으로 귀중하게 사용되어 왔다.

 

벌꿀 중에 함유된 꽃가루의 영양가치가 인정되고 있는데, 여왕벌은 몸이 크고 성력(性力)이 강하며 일벌은 정력적이라고 해서 로열젤리와 함께 꽃가루의 영양에 관한 연구가 있다.

 

벌꿀의 빛깔과 풍미는 원료인 꽃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밀원이 되는 식물로서는 유채·메밀·싸리나무·아카시아·밤나무·감나무·밀감나무·클로버·자주개자리 등이 있다.

 

봄에 꽃이 만발하고 벌의 활동이 왕성할 때 꿀을 채취한다. 1kg의 꿀을 얻기 위해서는 560만 개의 꽃을 찾는다고 하며 여왕벌을 중심으로 벌 1통에서 10∼13kg의 꿀을 얻을 수 있다. 벌꿀은 색깔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데, 그 기준은 벌꿀색깔 등급기(Pfund Colour Grader)로 한다.

  

   한봉

양봉과 달리 전통적인 벌꿀의 채집방법으로 채집통과 양식이 양봉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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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꿀 또는 식물체나 진드기 등의 감미 분비물을 꿀벌[Apis mellifera L.(유럽꿀벌), Apis indica Radoszkowski(동양꿀벌)]이 모아 벌집 중에 저축, 숙성시킨 것으로 전자를 꽃벌꿀, 후자를 감로벌꿀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유통 벌꿀의 대부분은 전자이다. 가공양식으로는 벌꿀이 저장되고 있는 벌집 전체 또는 일부를 봉하여 상품으로 하는 벌집벌꿀, 벌집의 꿀뚜껑을 제거하여 원심분리하여 조제되는 추출벌꿀, 그리고 벌집을 압착하여 얻어지는 압착벌꿀 등으로 분류된다. 주된 밀원화는 밤꽃, 연꽃, 귤, 클로버, 아카시아 등이지만 기타 300종에 이른다.

 

벌꿀의 품질은 이들 밀원의 종류, 채밀지, 시기 등에 따라 색조, 풍미, 성분조성치 등에 차가 있다. 주성분은 포도당과 과당으로 70% 이상, 양자의 비는 과당 쪽이 약간 많은 것이 일반이다.

 

기타 각종의 당류를 함유하고 자당은 보통 5% 이하에서 1~2%, maltose는 2% 전후, 기타 melezitose, raffinose 등 여러 가지의 올리고당을 함유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단백질, 아미노산, 효소, 유기산, 무기성분, 화분 및 그 밖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벌꿀 처리가공은 원료의 용해, 혼합, 여과, 용기에의 충전 등 아주 간단한 것이다. 농색의 것이나 풍미가 양호하지 않은 벌꿀을 활성탄, 규조토 혹은 이온교환수지 등으로 처리한 탈색, 탈취 벌꿀이 있고 또한 최근 음료용에 한외여과막이나 규조토 처리에 의한 탈단백질 벌꿀이라 칭하는 것이 유통되고 있다.

 

벌꿀은 WHO, FAO에 의한 국제규격이 있다. 국내적으로는 성분규격을 보면, 고유의 색택과 향미를 가지고 점조성이 있어야 한다.

 

수분 21% 이하, 회분 0.6% 이하, 산도 40 meq/kg 이하, 전화당 65% 이상, 자당 7% 이하, HMF 40mg/kg 이하, 타르 색소와 인공감미료는 검출되어서는 안 되며 이성질화당은 음성이어야 한다.

 

식품공전에서는 꿀벌들이 꽃꿀을 채집하여 벌집에 저장한 것을 채밀한 것으로, 채밀 후 화분, 로얄젤리, 당류, 감미료 등 일절 다른 물질을 첨가하지 아니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규격은 성상은 고유의 색택과 향미를 가지고 점조성이 있어야 하며 밀원에 따라 결정이 생성될 수 있다, 수분 21.0% 이하, 회분 0.6% 이하, 산도 40.0meq/kg 이하, 전화당 65.0% 이상, 자당 7.0% 이하, 히드록시메틸푸르푸랄 80.0mg/kg 이하, 타르색소 불검출, 인공감미료 불검출, 이성질화당 음성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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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 한봉과 양봉의 차이는

 

 

한봉(韓蜂) : 한국의 토종꿀

 

동양 꿀벌(Apis indica Radoszkowski)이 꽃꿀 또는 식물체나 진드기 등의 감미 분비물을 모아 벌집에 저축, 숙성시킨 것으로 감로벌꿀 이라 한다.

 

 

한봉은 한국의 토종벌이 생산하는 꿀로서 토종벌은 서양벌에 비해 덩치가 작다.

 

1년에 한번만 채취(첫 서리 내릴때)하며, 장소를 이동하지 않고 한 자리에서만 채취하므로, 정해진 장소의 일정한 꽃에서 채취한 특성 있는 벌꿀이며, 여름에 벌들이 벌통 밖에서 날개짓을 하여 수분을 충분히 증발시켜 꿀의 농도가 진하다.

 

전통적인 벌꿀의 채집방법으로 채집통과 양식이 양봉과 다르다.

 

 

양봉(洋蜂) : 서양종(西洋種)의 벌꿀

 

유럽 꿀벌(Apis mellifera L.)이 꽃꿀 또는 식물체나 진드기 등의 감미 분비물을 모아 벌집에 저축, 숙성시킨 것으로 꽃벌꿀 이라 한다.

 

외국에서 들여온 서양벌들이 생산한 꿀로서 서양벌은 토종벌에 비해 덩치가 크며, 공격성이 강해 주위의 토종벌들을 공격하는 외래종이다.

 

양봉은 일년 동안 꽃을 따라다니며, 여러 곳에서 꿀을 채취하며 여름철에 벌들이 더위와 다른 벌을의 침입을 피해 벌통안에 머물다보니 수분을 충분히 증발시킬 수 없어 농도의 차이가 심하다.

 

여러 차례 채취를 하다보면 꿀벌들이 먹을 양식이 적어 물엿이나, 설탕 등을 벌꿀에게 공급하여 일부는 벌꿀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다.

 

 

 

 

한봉(韓蜂) : 토종벌(재래종벌)의 특성

 

인도가 원산지고 중국 일본 기타 아시아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농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토종벌이 여기에 속하며 성질이 온순하며 분봉력과 월동력은 강한 편이나 서양종에 비해 근면하지 못하고 봉군의 도망이 잦은 것이 결점이다.

 

여왕벌의 몸길이는 13∼17㎜ 숫벌은 12∼13㎜ 일벌은 10∼13㎝이고 어린 벌은 담황색이나 늙으면서 흑갈색으로 변하는 소형종이다.

 

벌집은 서양종과 같이 다엽상의 벌집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려 짖고 개량소상에서 사양을 싫어하며 재래식 벌통인 통나무 속에서 사육되는 실정이다.

 

 

 

 

토종벌 한봉관련 전설입니다

 

집주인 상사(喪事)에 토종벌이 상복을 입는다.

 

옛날 토종벌을 키우시던 분들의 말씀중에 벌을 기르던 분이 돌아가시면 그 꿀벌들이 상복을 입고 다른 곳으로 간다.

 

벌은 영물이라서 들어오면 논 서 마지기는 사주고 주인을 섬기면서 살다가 집주인이 죽으면 머리에 하얀띠를 띠고 있어 상복을 입는다.

 

토종벌은 기르던 주인이 죽거나 상을 당하면 토종벌은 모두 이마에 하얀 띠를 두르고 돌아가신 주인을 애도한다. 상복을 입은 것과 같다.

 

주인이 돌아가셨을 때, 꿀벌들이 흰테를 두르고 모두 다른 곳으로 날아 갔다.

 

재래종 벌을 기르고 있는 집주인의 상고가 있을때에는 벌들이 역사를 하지 않고 문앞에서 머리에 흰띠를 두르고 지키고 있다.

 

 

 

양봉 (beekeeping , 養蜂) :  꿀을 얻기 위하여 기르는 벌 

 

벌꿀과 밀랍(bee wax)을 생산하기 위해서 꿀벌을 사양하는 일.

 

근래에 와서는 벌꿀과 밀랍을 생산하는 것 외에 왕유(王乳) ·화분하(花粉荷) ·봉침독(蜂針毒) ·웅봉저(雄蜂蛆)의 생산을 비롯하여 종봉생산업(種蜂生産業) ·여왕벌생산업[女王蜂生産業] ·임대양봉 또는 계획수정양봉에 이르기까지 그 생산 분야가 다양하다.

 

한국의 양봉사(養蜂史)는 동양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해외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훨씬 뒤떨어진 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2차에 걸친 전란과 사양봉종(飼養蜂種)의 불량, 벌꿀에 대한 인식부족, 국가시책의 빈약, 밀원식물의 빈약 등을 들 수 있다.

 

양봉사업의 가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① 자연의 자원화(資源化):꿀벌을 이용해서 꽃에서 꽃꿀과 화분을 수집함으로써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사업이다.

 

② 감미료(甘味料)의 자급화(自給化):설탕의 생산량이 풍부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양봉을 장려하고 지도하여 벌꿀 증산을 꾀하고 있으며 감미료로서의 벌꿀 소비량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한국에서 감미료의 주가 되는 설탕은 전부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설탕을 대신할 수 있는 감미료가 자급될 수 있는 길이 마련된다면 무엇보다도 중대한 사업이 아닐 수 없다.

 

③ 보건제(保健劑)의 생산:벌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용과 영양제로서 애용되고 있다.

 

④ 공업 및 화장품 원료를 생산한다.

 

⑤ 농작물의 화분매개체로서 농작물의 결실률을 증대시킨다. 이상과 같이 양봉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양봉 정의

벌꿀과 밀랍(蜜蠟)을 비롯하여 꽃가루[花粉]·프로폴리스[蜂膠] 및 로열젤리(王乳) 등을 얻기 위하여 꿀벌을 치는 일.

 

양봉내용

우리 나라 양봉의 기원이 기록상으로는 고구려 동명성왕 때 재래종벌인 동양종꿀벌(Apis cerana)이 원산지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수렵과 함께 자연에서 열매를 채취하여 먹이를 해결하면서 바위 틈이나 큰 나무의 구멍에서 달고 진한 꿀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당시의 생활이 농경생활로 접어들어감에 따라 정착영농의 시대로 발전하고, 이 때부터 사유재산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자연발생적인 꿀벌의 소유가 양봉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같은 연유로 우리 나라 양봉의 기원은 자생적일 가능성이 높다. 문헌상으로 가장 괄목할 만한 기록은 삼국시대에 우리 나라 양봉기술이 꿀벌과 함께 일본에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즉, 643년(의자왕 3)에 백제의 태자 풍(豊)이 꿀벌 4통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양봉 기술을 일본에 전해준 것이다. 그 뒤 발해와 일본과의 교역에서 꿀을 주요 수출품으로 기록한 것은 우리 나라 양봉이 계속 발전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꿀의 용도가 다양화되어 유밀과(油蜜果)를 만들어 먹을 정도였다. 이 시대에는 사봉(寺蜂)이라 하여 절에서 양봉을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왕조가 태평성대를 누릴 즈음에는 꿀의 소비량이 많아졌으나 공급량이 모자라서 왕실주방용도 충당하기 어렵게 되자, 꿀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하여 1192년(명종 22)에는 궁중 외에는 대소반가(大小班家)와 사찰에서까지 유밀과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령(禁令)을 내렸다.

 

이와 같은 조처는 그 뒤 조선시대에도 꿀이 모자랄 때마다 계속되었다. 조선왕조에는 꿀이 진상품(進上品)의 하나가 되어 강원도관찰사의 진상품 가운데 인제(麟蹄) 꿀은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

 

이 시대에는 각종 문헌에 양봉에 관한 기록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1433년(세종 15)에 나온 ≪향약집성방≫과 선조 때 나온 ≪동의보감≫에는 벌꿀과 밀랍 뿐만 아니라 꿀벌의 애벌레(蜂子)까지도 영약(靈藥)으로 등장하고 있어 양봉업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찬팔도지리지 新撰八道地理志≫나 이보다 100여 년 뒤인 중종 때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벌꿀의 산지에 관한 기록은 많지만, 양봉기술 등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실학파가 등장하면서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숙종 때 홍만선(洪萬選)이 지은 ≪산림경제≫에 비로소 양봉기술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온다.

 

즉, 벌을 보호하는 방법[護蜂法], 꿀을 따는 방법[割蜜法]이라든가 월동할 때 꿀을 과다하게 따내면 벌들이 굶어 죽게 된다는 등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때부터 사대부층에서 양봉기술의 보급에 나서게 되었으며, 꿀벌기르기와 채밀방법을 지도할 수 있는 양봉기술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홍만선의 ≪산림경제≫ 이후 많은 저술 활동과 함께 양봉업의 발달을 짐작할 수 있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순한글로 된 ≪규합총서 閨閤叢書≫를 들 수 있다.

 

이 책에는 벌꿀을 이용한 여러 가지 음식 만드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벌꿀의 수요층이 많이 늘어난 만큼 양봉이 일반화되었음을 증명하는 자료인 것이다. 이 시대의 꿀벌은 모두 동양종이었고 채밀방법을 비롯한 양봉기술은 원시적이었으며, 번식마저 저조하였다.

 

벌집을 쥐어짜서 걸러낸 것을 생청(生淸), 밀폐된 방에 군불을 때어 꿀이 흘러내리도록 하여 걸러낸 것을 화청(火淸)이라 하였는데, 두 가지 모두 벌집을 파괴하는 방법이므로 생산과 번식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적 의미의 양봉은 한말 독일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개량종벌이 도입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비로소 가동식 소광을 넣을 수 있는 오늘날과 같은 벌통, 소초(巢礎), 원심분리기에 의한 채밀방법 등 근대양봉의 3대 요소가 소개된 것이다. 그 뒤 개량종벌은 이탈리안종·카니올란종 등이 계속 도입되었으나 현재는 이탈리안종 및 코카시안종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1914년에는 양봉농가 호수, 벌꿀과 밀랍의 생산량, 꿀벌 사양방법, 벌꿀과 밀랍의 용도 및 수급상황, 양봉장려대책 등을 종합한 실태보고서를 겸한 지침서로 ≪양봉조사 養蜂調査≫가 발행되었다.

 

1917년에는 윤신영(尹愼榮)에 의해 개량종 꿀벌의 양봉지침서인 ≪실험양봉 實驗養蜂≫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국한문 혼용인데 그 뒤 오랫동안 양봉가들의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30년대를 양봉의 황금기라고 일컫는데 이때부터 벌꿀의 용도도 다양화되었고 수요층도 일반 서민층에까지 널리 확산되었다. 특히 제약용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나 당시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였던 천일약방(天一藥房)은 ‘영신환’의 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양봉사업부를 설치하고 전국 산천을 옮겨다니며 양봉을 하였다.

 

1950년대의 양봉업은 남부지방의 유채·자운영·아카시아와 중부 산악지방의 싸리·메밀 등을 주밀원으로 서서히 재기를 시작하여 1960년대에는 전쟁전의 수준을 넘어 성장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는 벌꿀과 밀랍생산 일변도에서 벗어나 로얄젤리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말에 꽃가루를, 1985년 이후에는 봉독(蜂毒)으로 생산영역을 넓혀나갔다. 1928년 우리 나라에서 사양된 총 봉군수(蜂群數)는 17만여 군인데 그 중 동양종이 84% 이상이었다.

 

1935년에는 총 봉군이 20여만 군으로 동양종은 82% 정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1955년의 경우를 보면 전체 봉군수가 크게 감소하였으며, 7만여 군 중 75%는 동양종인데 10년 후 1965년의 경우는 12만여 군인데 점차 동양종의 비율이 감소하여 59% 정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1980년 말에는 100군 이상을 사양하는 양봉농가는 전국적으로 3,000호를 넘어서게 되었고, 부업양봉까지 합하면 4만여 호의 양봉농가에 총 보유봉군수는 40만군에 육박하게 되었다. 또한 1987년에는 4만 8000여 호의 양봉농가에 총 보유봉군수는 53만여 군이고, 그 중 재래종은 10만여 군이었다.

 

1960년대 중반, 남부지방에 처음으로 발생한 꿀벌응애와 1984년의 석고병(초크병) 등이 전국으로 만연되어 사양된 봉군의 약 40%가 피해를 받게 되었으며 1992년에는 급기야 서양종 꿀벌이 29만여 봉군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1993년 중국에서 꿀벌이 수입되는 과정에서는 중국가시응애가 유입되어 전국 규모로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양봉농가의 70%가 경제적 손실을 본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되었다.

 

농촌의 고소득 작물인 딸기·참외·토마토·고추 등은 시설재배 면적이 해마다 늘어 이들 작물의 화분매개용으로 꿀벌의 수요가 급증하였지만 국내 사양되고 있던 꿀벌의 봉군수가 부족하여 이를 채울 수 없었으며 결국 1991년 이후 매년 외국에서 꿀벌을 수입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최근 4년간(1995∼1998) 우리 나라가 외국에 지불한 벌 값은 693만 불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 양봉산업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꿀 생산량이 연간 8,000톤 내외에 이르고 그 밖에 화분, 로얄제리 등까지 포함하면 모두 1000억 원 규모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양봉산업의 경제성은 위와 같은 양봉산물 생산에 의한 이익보다는 꿀벌이 식물(산림과 농작물)의 화분매개를 원만하게 도와주어 얻게 되는 이익이 100배 이상 되므로 해마다 작물의 화분매개를 통해 약 10조 원이 넘는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양봉은 꿀벌을 활용하여 각종 꽃으로부터 꿀과 꽃가루를 수집함으로써 산지자원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산업이다. 우리 나라의 기후와 풍토는 꿀벌의 사양에 적합하므로 꿀벌의 품종개량과 고품질산물생산, 밀원식물의 계획적인 조림, 농작물의 계획수분 등 각종의 정책적인 지원책이 <꿀벌법> 또는 <양봉진흥법>을 통해 수립된다면 그 전망은 매우 밝을 것이다.

 

참고문헌

山林經濟

閨閤叢書

實驗養蜂(尹愼榮, 中央書館, 1917)

韓國養蜂總覽(韓國養蜂協會, 1983)

최신 양봉경영(서울대, 양봉과학연구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