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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수필 등

안산김씨 - 할머니 졸업장

by 연송 김환수 2010. 10. 18.

 

 

 

할머니의 졸업장

  

 초등학교 졸업식 날, 민규와 할머니는 꽃다발을 한 아름

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축하해요! 그리고 민규! 너도 축하한다!"

 "그래, 고맙다. 며늘아기야."

 "엄마, 고마워요."

 

 오늘은 이 가족에게 무척 기쁜 날이다. 민규와 민규의 할머니가

함께 초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그동안 참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다. 6년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 뒤늦게나마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로 기뻤는데···.

나보다는 민규가 고생이 많았지."

 

 할머니의 말처럼, 사실 민규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할머니와 함께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친구들에게는 놀림감이

된 것이다.

 

 2학년 때, 민규와 할머니는 공교롭게도 같은 반이 되었다.

 

어린민규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와 밖에서 좀 놀다가 집에 가려고 하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뒤에서 규를 불렀다.

 

 "민규야, 어서 집에 가자."

 

 그뿐만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친구와 장난을 치면 할머니가

치를 주곤 했다.

 

 게다가 할머니 때문에 창피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수학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할머니에게 구구단을 외워

라고 시켰다.

 

 "민규 할머니, 일어나서 구구단 6단 외워 보세요."

 "예, 육일은 육, 육이 십이, 육삼··· 육삼··· 육삼 십구!"

 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하하. 육삼 십구래!"

 "할머니, 그것도 몰라요."

 "민규야, 너희 할머니는 왜 그러시냐?"


 할머니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으로 넘겼지만 민규는 달랐다.

오히려 자기가 틀린 것처럼, 민규가 더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말로 할머니가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할머니와 함께 학교 다니는 게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다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 종이 치면, 아이들은 할머니

주위로 곧잘 모여들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하며 운을 떼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참으로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어떤 아이는 쉬는 내내 화장실도 안 가고 이야기를 듣느라,

수업 시간에 곤란을 겪은 적도 있었다.

 

 "와, 재미있다!"

 "또 얘기해 주세요."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해 줄 테니까 기대하렴."

 

 "네!"

 

 "민규, 넌 좋겠다. 집에서도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쉬는 시간만 되면 민규는 어깨를 우쭐거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손자 녀석과 6년간의 학교생활을 마

감하는 할머니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러다가 졸업장을 받아 드는 순간, 옛날 생각이 났는지 할머니는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할머니, 왜 울어요?"

 

 "응, 너무 기뻐서 그래. 이 졸업장을 받으니 너무나 행복해서

래. 공부 못한 게 평생 한이었는데 이제야 그 한을···."

 

 할머니는 개근상을 받았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간절

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머니,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앞으로?"

 "예, 공부 계속하실 거예요?"

 

 "배우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멈추기 서운한데,

어떡하지?"

 "그럼 더 배우셔야죠."

 "나이 먹고 주책이라고 놀리는 게지?"


 "누가 그래요? 배움에 나이가 있나요? 민규랑 중학교 같이

다니시면 되겠네요."

 

 "뭐? 하하하."

 

 할머니는 무척 기뻤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며느리가 고

마웠고, 함께 학교를 다녀 준 민규가 고마웠고, 한을 풀도록

허락해 준 아들이 고마웠다.

 

 "어머니, 졸업장 잘 보이게 가슴 앞으로 내미세요."

 

 "이렇게?"

 "예. 민규, 너도."

 "네."

 찰칵.

 

 햇살 좋은 날, 한 장의 졸업식 사진. 참으로 뜻 깊은 하루였다.

  

 

 그동안 살면서 자신의 어머니나 할머니를 무시한 적이 있습니까?


 "노인네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몰라." "엄마는 초등학교도 안 나오고 뭐 했어?"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일지 모르겠지만,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먹고사는 게 더 절실했던 시대에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들을 우리는 존경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도 있는 것이니까요.

또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배움 앞에는 늦음이 없습니다. 배우는 일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배우는 기쁨, 알아 가는 즐거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며 행복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adjyg6/GN3m/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