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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김씨 족보

안산김씨 종친(종인)이 알아야 할 보학 상식

by 연송 김환수 2010. 4. 16.

안산김씨 종친(종인) 보학 상식

 

보학(譜學)은 1960년대 까지는 양반 집안의 후손이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필수 교양이었습니다.

 

보학이란 족보학을 말하며 조상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추적하고 이를 정리하는 분야의 학문입니다. 

 

보학에 관하여 막힘없이 답변을 잘하면 확실한 양반후손 대접을 받았으므로 보학은 문벌(門閥)과 교양의 척도였던 것입니다.


보학문답(譜學問答)에서 최고 경지는 ‘팔고조’(八高祖)를 아는 일이다.

 

나를 중심으로 친가(親家) 와 외가(外家)의 고조(高祖)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팔고조도(八高祖圖)는 조상을 고조대까지 밝힌 가계도로 그 가계도상에 나타나는 고조가 8명이기 때문에 팔고조라고 합니다.


나를 기점으로 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즉 나의 조상을 부, 조, 증조부 , 고조부 등으로 부계(父系)쪽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母)와 그 모의 선계, 조모와 그 조모의 선계 등으로 방향으로 찾아 올라간다.


팔고조도에 표현되는 인물은 자신을 포함하여 총 31명이 된다.

 

우리 안김집안에서는 다음에 열거된 최소한의 보학관련 질문사항에

답변을 잘할 수 있도록 자제분들에게 반드시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질의응답 (質疑應答) 

   

Q&A (question and answer), 문답 (問答)

 

 

 

 

 

 

Q : 관향(貫鄕)이 어떻게 되느냐 ?

 

    안산김가(安山金家) 입니다.


    시조는 고려 초기 상서좌복야로 “안산현개국후” 로 봉해진

    김긍필이며 경순왕의 손자(은열 아들)로  대보공 김알지의

    30세이며, 일부 문헌에는 태종무열왕의 17세 직계 후손

    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 김은부는 호부상서, 상호군이며 딸 3명이 고려

    현종의 태후(2명) 및 왕후(1명)가 되어 국구(왕의 장인)로

    “안산군개국후“ 에 봉작되었습니다.


    외손인 덕종, 정종, 문종이 왕에 오르면서 4대 50여년 동안

    고려시대의 최고 문벌귀족이 되었으며. 김태후 집안(안산

    김씨)은 대대로 왕실과 혼인하도록 정해져 고려시대 문벌

    귀족 가문의 지위를 계속 누리게 되었습니다.

 

    김은부의 11대 후손 김정경이 이조판서와, 좌명공신으로

    연성군(안산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안산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관향(貫鄕)·본적(本籍)·관적(貫籍)·선향(先鄕)·본(本)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대개 혈연·지연에 매여 살고 있는데, 성이 부계(父系)의 연결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본관(本貫)은 그 조상의 거주지를 나타낸 것이다. 성과 본관이 동일해야 같은 혈연으로 볼 수 있다.

http://blog.daum.net/yescheers/8597597

 

 

 

Q : 입향조(入鄕祖)가 누구냐 ?

 

   ○ 안산김씨

 

     ▷ 경기도 안산시, 개성시(고려 도읍지) 일원

         시조부터 8세(7대손) 까지

     ▷ 경기도 안산시, 서울시(京) 일원

         9세(8대손, 문하시중 김위) - 15세(14대손) 까지 


        시조 김긍필의 14세(13대손) 암,을신,맹감,지,맹린, 맹전,

        맹추,맹균,맹일,맹강,맹유,맹철,맹혁,맹현에서 분파

        (이분들의 과거급제 시기가 1470년- 1480년대임)


   ○ 안산김씨 교감공파 (청산파)

  

     ▷ 충남 아산시 도방면 일원

         16세(15대손) : 수의부위 김원회 (1515년생)

     ▷ 충북 옥천군 청산면 일원

         17세(16대손) : 동지중추부사 김수온


본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방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후손과

가문이 번성하게 되면, 그 후손들은 맨 처음 그 지방으로 옮겨간

조상을 입향조(入鄕祖)라고 합니다.

 

마을을 창건한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된 마을의 경우는 구전에 의해 알려질 뿐 추적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http://blog.daum.net/yescheers/2226587

http://blog.daum.net/yescheers/8597585

 


 

Q : 불천위는 어떻게 되는가 ?

 

    좌명공신인 연성군(안산시의 고호) 김정경 할아버지는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로 충북 괴산에 소재한 위정사에서

    기일인 음력 7월15일에 기제를 지내고 양력 4월 5일에

    하남시 감북동에 있는 위정각에서 춘계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경기도 포천시 옥병서원에 호조참판 김성대 할아버지

    배향 되었으며 포천시 이동면 동음사에는 김성대, 김성재,

    김성발, 김성옥(金聲玉) 할아버지를 배향하고 있으며 전국

    에 도남재, 만세재, 경모재, 귀후각, 송양재, 칠은정, 영모

    당 등 재실이 있습니다.


불천위에는 나라에서 인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와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한 향불천위(=유림불천위), 문중에서 모셔야 한다고 뜻이 모아진 사불천위(私不遷位=문중불천위)가 있으며 4대가 지나도 위패를 옮기지 않고 계속 모시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조에 나라에서 정하여준 국불천위는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공신들에게만

해당되었다. 차등봉사를 규정한 경국대전 봉사조항 세칙에는 공신이 된 자는 대가 비록 다하여도 신주를 옮기지 않고 따로 방 하나를 세운다고 되어 있다. 별묘를 세운다는 말입니다.

http://blog.daum.net/yescheers/8597591

http://blog.daum.net/yescheers/5840530

http://blog.daum.net/yescheers/8597752

http://blog.daum.net/yescheers/8597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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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효자 정문이나 열녀 정려문이 있는가 ?

 

    포천시 청산면 금동리에 대성학원 교수 김기병 효자 정문이

    있으며

 

    의정부시 산곡동 거문돌 마을에는 평산 신씨 의금부사

    류영겸의 배우자인 안산김씨 열녀 정려문이 있습니다.

 

김기병 선생

본관은 안산이고 조선조 초 왕자의 난을 평정하여 좌명공신(佐命功臣)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진 위정공(威靖公) 김정경의 다섯째 아들인 안성위(대호군, 시호 호평공 한)의 15대 후손이다.

* 안성위의 아들 참판공 휘 맹혁파(청산)라고도 합니다.

 

김흥섭(金興燮)의 아들로 포천 청산면 금동리에서 출생하였다.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고 재예(才藝)가 뛰어나서 배우면 잊지 않고 기억하였으며 어머니의 마음을 잘 받들고 아침, 저녁으로 한냉서열(寒冷暑熱)을 살펴 편안하게 하여 드렸다.

 

17세 되던 겨울 어머니가 중한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해 소생시켜 드렸다.

 

그런데 얼마 후 어머니께서 또 병환이 나자 정성을 다하여 시탕(侍湯)하였으나 별 효과를 얻지 못하여 동동촉촉(洞洞燭燭-공경하고 삼가서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하던 중 의원 말이 노루의 간(肝)이라야 약효가 있겠다 하므로

 

김기병은 산에 올라 노루를 구하고자 이 골짝, 저 산골을 헤메며 노루 한 마리만 눈에 띠도록 하여달라고 하늘에 심축(心祝)하기 여러 날 만에 노루 한 마리가 앞을 지나는 지라 김기병은 손쉽게 노루를 잡아 그 간을 어머니께 약으로 드렸더니 특효가 있어 어머니 병환이 나았다.

 

김기병은 부부가 합심하여 어머니 받들기를 더욱 더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려 그의 어머니 70세가 넘으셨다.

 

그 후 노환으로 또 위독하여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기 여러번 기적으로 회생하여 여러 날 동안 연명(延命)하다 추운 겨울에 산과(山果)를 잡숫고자 함으로 김기병은 눈이 쌓인 높은 산에 올라 사방을 헤매었으나 막연한 일이었다.

 

오직 효심에서 우러나오는 일념뿐이었다.

 

아득히 눈이 쌓인 바위 밑에 앙상한 머루덩굴이 솟아 있으므로 김기병은 쌓인 눈과 낙엽을 헤치고 보자 머루 두어 송이가 달려 있었다.

 

기쁨에 넘쳐 어머니께 바치니 병환은 완쾌되었으며 보는 사람들은 하늘이 도움이라고 찬탄치 않는 이 없었으며 탁이(卓異)한 효행이라고 군천(郡薦)으로 조정에서는 양로지자(養老之資)를 후상(厚賞)하는 은전(恩典)을 내렸고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융희(隆熙)4년 두 번째로 특상을 내렸다.김기병이 별세 후 유의지사(有意志士)의 찬양문이 많았고, 각 교화단체의 포상도 있었으며, 그 아들 김태진(金泰鎭)도 효우(孝友)가 출중하였다고 한다.

 

http://blog.daum.net/yescheers/8597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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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갈장(碣狀)은 누가 썼느냐 ?

 

    갈장(碣狀)은 묘갈명(墓碣銘)과 행장(行狀)을 줄인 표현으로

    대표적인 사례 몇 건을 들면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 신도비는 자헌대부 예조판서

    신석우가 글을 짓고, 수록대부 영명위 홍현주가 글씨와

    함께 전액을 쓰고

 

    호조참판에 증직된 김성대 묘비는 좌의정(뒤에 영의정)

    김창집이 지었으며 행장은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고

    안산김씨 가승이라는 책자에 각종 묘문과 행장의 기록이

    있습니다.


    절도사공 김석보 행장, 지중추사공 김상두 행장, 대사간공

    김양심 행장 등이 있으며

    조헌선생 문하에서 학문을 하신 주부공 김계남 할아버지

    의 행장은 이조정랑(뒤에 부사) 한유(父 영의정 한효원)

    선생이 써주셨습니다.


《안산김씨가승 安山金氏家乘》


편서(編書)로 김은부(金殷傅 , ? - 1017))이하 역대 先祖들의 묘문·행장 및

사적(遺文과 遺事)을 모은 책


安山世碣(奎6980의 1), 金處巖(朝鮮)編.

        1冊(零本) 筆寫本 26.6×16.9cm.

安山 金氏의 遠祖 金殷傅이하 역대 先祖들의 遺文과 遺事 등을 모은 책이다. 당초 金殷傅의 15대손 金處巖이 朝鮮 正祖때 편찬했으나 刊年은 未詳이다. 奎章閣所藏本은 筆寫本이며 그 경위나 연대는 未詳하다. 4卷 2冊이며, 제1책은 安山世碣, 제2책은 安山世輓이다. 권별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 : 蓮城君威靖公金(定鄕)謚狀·墓表, 慕箕齋校理公金(珌)墓碣銘, 贈大司憲公金(聲大)墓表, 贈大司憲公金(聲玉)墓碣銘, 副摠管公金(錫命)墓碣銘, 贈兵曹判書公金(錫範)墓碣銘, 節度使公金 (錫保) 行狀, 學生公金(錫奎)墓碣銘, 知中樞公金(相斗)行狀, 刑曹正郞公金(定五) 墓碣銘, 進士公金(秀五) 墓碣銘, 生員公金(養直)行狀, 大司諫公金(養心)行狀.


{권2} : 安山郡建置沿革, 尙書公金(殷傅)事蹟, 麗史抄錄尙書公以下事蹟, 尙書公奉使天朝詩, 文匡公金(元祥)事蹟, 威靖公(金定鄕)事蹟, 太宗朝敎佐命功臣金定卿書, 敎佐命原從功臣書, 會盟祭告文, 健元陵神道碑陰記, 獻陵碑陰記, 佐命功臣案, 平湖公金漑事蹟, 金氏科甲錄, 安山世派圖, 安山族譜始末序, 安山族譜序, 安山族譜跋, 同宗名行講定圖, 文匡公谷墓所尋訪記, 谷墓山圖, 僉樞公 金琳楊根郡鐵碑, 慕箕齋事蹟, 潛齋公金就礪事蹟, 退溪先生與潛齋酬唱詩, 退溪集潛齋記, 潛齋上退溪問目, 贈大司憲公事蹟, 文谷先生贈大司憲公詩, 大司憲公詩, 行嚴山地許葬家奴記, 燕谷祠新建記, 節度使公事蹟, 竹醉金公贈節度使公燕行詩, 英宗朝諭慶尙左兵使金錫保書, 崔氏婦安山金氏旌閭孝行.


{권3} : 世輓(세만)으로 되어 있으나 輓외에 祭文, 致祭文, 哀辭등도 들어 있다.

        * 세만(世輓) : 죽음을 애도하는 시가(詩歌)


安山世輓(奎6980의 2), 金處巖(朝鮮)編.

        1冊(72張) 筆寫本 26.4×16.9cm.

1635년(仁祖 13)경부터 시작하여 英祖朝에 이르기까지 安山金氏 家系 가운데 특기할만한 인물이 죽었을 때 그 죽음을 애도하여 보내온 글과 祭文을 모아 놓은 것이다. 各輓은 당시 名士들의 것이며, 祭文은 대체로 親族이 지은 것이다. 金處巖(1755∼?)이 編하였다. 그 내용은 仁祖朝의 大司憲公挽부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 金壽增, 金昌集등 34명의 弔辭와 祭文 4편이 있다. 그 다음에는 副摠管公挽, 肅廟朝致祭文, 節度使公挽·祭文, 王世子致祭文, 防禦使公挽·祭文, 通德郞公挽·祭文, 生員公挽·祭文, 大司諫公挽·祭文, 通德郞公挽·祭文 등의 순서로 실려 있고 제일 마지막 祭文이 編者가 쓴 것으로 兄 金處莘의 죽음에 대한 祭文이다.

 http://blog.daum.net/yescheers/7540978

 

 

 

 

Q : 어떤 문집(文集)이 있느냐 ?

 

     김처암의 편서(編書)로 안산김씨가승(安山金氏家乘)이 4권

     2책이 있으며 김상채(金尙彩) 시인의《창암집》3권 1책이

     있습니다.



창암집 (蒼巖集)



조선 후기의 시인 김상채(金尙彩)의 시문집. 3권 1책. 목판본. 1816년(순조 16) 손자 종식(宗軾)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창암집≫의 권두에 조종영(趙鍾永)의 서문이 있다. 권말에 당시 여항문인(閭巷文人)들의 모임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이끌어 나갔던 장혼(張混)과 풍양조씨(豊壤趙氏) 세도의 중심인물이었던 조인영(趙寅永)의 발문이 있다. 장혼은 종식과 친구 사이이다.


≪창암집≫의 권1·2에 실린 시들은 자연을 소재로 한 평범한 것이거나, 안분자족하고자 하는 생활의식을 읊은 것들이다. 권1 초두의 사언시 8수는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등 유가적 덕목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각각 8행씩으로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권2의 〈술계자질시 述誡子姪詩〉도 이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 시에 화답한 엄한붕(嚴漢朋)·홍우택(洪禹澤)·김시빈(金時彬) 등 12인의 당시 여항시인들의 시가 같이 실려 있어서, 저자의 여항문단에서의 활동을 짐작하게 한다.


권3에 실린 문(文)들은 대개 개인적인 것들이다. 〈족보서〉는 자신의 집안인 안산김씨(安山金氏)의 족보내력을 기술한 것이다. 〈기일록서〉는 자손들에게 선조의 기일을 지킬 것을 당부한 글이다. 그리고 〈가록서〉와 〈선영중즙기〉 역시 한미한 자신의 집안 내력에 대하여 쓴 글이다. 〈장빙군행장〉은 장인 장창한(張昌漢)의 행장이다.


≪창암집≫의 잡저 〈효선성훈계술편팔장교회자질〉은 사친(事親)·봉제(奉祭)·교자(敎子)·우애(友愛)·근학(勤學)·목족(睦族)·적선(積善)·치가(治家)의 8조목으로, 이를 자손들에게 지킬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그리고 〈삼성재유고 三省齋遺稿〉가 말미에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이는 아들 제량(濟良)의 시문 약간을 모은 것이다. 종식이 할아버지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아버지의 것도 함께 수습하여 넣은 것이다. 내용은 시 13수, 문 1편이다. 국립중앙도서관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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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군 김정경 공은 일찍이 남용이 세 번 반복했다는 ‘옥의 흠은 갈 수 있지만 말의 흠은 갈 수 없다’는 말을 좋아하였고, 황석소서를 즐겨 읽어 무릇 벼슬하여 일을 처리 할 때에 여기에서 힘을 얻은 것이 많았다.


 * 황석공소서 :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 병서(兵書)로 황석공이란 사람이 유방을 도운

                       한나라 개국공신 장자방, 즉 장량(張良)에게 전수했다는 병서

 http://blog.daum.net/yescheers/3315032

 

 

 

 

Q : 팔고조도에 대해 아느냐 ? 

 

    팔고조도(八高祖圖)는 조상을 고조대(4대)까지 밝힌 가계도

    로 그 가계도상에 나타나는 고조가 8명이기 때문에 팔고조

    라고 합니다.

 

    팔고조도란 사대(四代)까지의 조(祖) 및 외조(外祖)의 계통

    도(系統圖)를 말합니다.


나를 기점으로 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즉 나의 조상을 부, 조, 증조부 , 고조부 등으로 부계(父系)쪽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母)와 그 모의 선계, 조모와 그 조모의 선계 등으로 방향으로 찾아 올라간다. 

 

보학문답(譜學問答)에서 최고 경지는 ‘팔고조’(八高祖)를 아는 일이다.

http://blog.daum.net/yescheers/8597760

http://blog.daum.net/yescheers/8597597

http://blog.daum.net/yescheers/2226587

http://blog.daum.net/yescheers/1709719

 

 

아래 팔고조 관계 호칭도를 보시고 직접 작성해 보세요

 

 

八高祖 關係 呼稱圖

外外

曾外家

外外家

曾外家

外家

陳外

曾外家

陳外家

曾外家

本家

外外曾外高祖母

外外曾外高祖父

外外高祖母

外外高祖父

外曾外高祖母

外曾外高祖父

外高祖母

外高祖父

陳外曾外高祖母

陳外曾外高祖父

陳外高祖母

陳外高祖父

曾外高祖母

曾外高祖父

高祖母

高祖父

外外

曾祖母

外外

曾祖父

曾祖母

曾祖父

陳外

曾祖母

陳外

曾祖父

曾祖母

曾祖父

外祖母

外祖父

祖母

祖父

 

 * 팔고조도에 표현되는 인물은 자신을 포함하여 총 31명이 된다.

 

팔고조도[八高祖圖]

 

특정인의 가계(家系)를 본인으로부터 위로 고조까지 소급했을 때 8명의 고조가 기재되는 세계도(世系圖). 개인의 혈연관계를 위로 추심할 경우, 부(父)대에서는 부모 2명이 되고 조(祖)대에서는 4명(조, 조모, 외조, 외조모)이 되며, 증조대에서는 8명, 그리고 고조대에서는 16명이 된다.

 

고조대(高祖代)의 16명 중 8명은 고조이고 8명은 고조모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위로 조상을 소급해 올라갈 경우 고조대에 해당하는 조상이 사실은 16명이지만 남성인 8명의 고조만을 지칭하여 8고조도라 하는 것이다. 팔고조도는 동고조(同高祖) 8촌을 친족단위로 파악하는 친족제도의 산물이었다.

 

동양의 유교식 친족제도는 동고조 8촌을 친족집단의 최소이며 최대의 단위로 파악하였다. 유교의 상복제도(喪服制度)나 친족용어, 또는 상속관행도 동고조 8촌 이내의 친족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고조 8촌 이내의 친족집단은 상호간에 가승(家乘 : 한 집단의 역사적 사실을 적은 책)이나 팔고조도 등을 만들어 서로를 인식하고자 노력하였다.

 

개인의 조상을 위로 고조대까지 추심하는 경향은 신분제도와 관계가 있다.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강고한 신분제도가 유지된 한국의 경우에 개인의 신분은 그가 속한 친족집단에 의해 결정되었다.

 

국가는 개인 및 친족집단을 신분별로 파악하여 역(役)을 부과하였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 의무와 역할 및 지위가 달라졌다. 고려시대에 역을 수취하기 위한 근거자료로서 호적을 작성할 때 개인의 조상을 동시에 파악하는 8조호구(八祖戶口) 또는 16조호구(十六祖戶口)가 작성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개인의 호적에는 부, 조, 증조, 및 외조가 포함되는 4조호구(四祖戶口)가 작성되었다. 이 호적은 국가에서 개인의 신분을 파악한 공식적인 근거자료로서 이것에 입각하여 국가는 개인에게 신분에 따른 역을 부과하고 세금을 매겼다.

 

따라서 양반과 같은 상위신분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할 증거자료로서 족보나 가승 또는 팔고조도 등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조선왕실도 왕이나 왕비의 팔고조도를 왕실족보인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에 등재하여 훌륭한 신분의 출신임을 과시하였다.

 

≪참고문헌≫ 璿源系譜記略

≪참고문헌≫ 高麗社會史硏究(許興植, 亞細亞文化社, 1981)

≪참고문헌≫ 韓國社會史硏究-朝鮮社會의 구조와 性格 및 그 變動에 관한 硏究

-(宋俊浩, 一潮閣, 1990)

≪참고문헌≫ 高麗 後期의 ‘八祖戶口’(白承鐘, 韓國學報 34, 1984

 

본인 (1인)

1대위 부모 (2인)

2대위 조부,조모,외조부,외조모 (4인)

3대위 조부의 부모, 조모의 부모, 외조부의 부모, 외조모의 부모 (8인)

4대위 16인 (고조 8명 , 고조모 8명 )

------------------ 팔고조도 : 본인 포함 31명 -------------------

5대위 32인

6대위 64인

7대위 128인

8대위 256인

9대위 512인

10대위 1024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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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조 목족 (宗祖 睦族)  :  선대(시조)할아버지께서 화목한 가족을 강조 하셨습니다.

                                          (화목 :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

   * 화합  단결 (和合 團結)  :  화목하게 어울리고 마음과 힘을 한곳에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 상부 상조 (相扶 相助)  :  서로 서로 도와가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종훈(宗訓)이란

선대(先代)부터 후손(종친=종인)이 지켜야 할 도덕적(道德的) 실천(實踐) 기준(基準)으로 삼은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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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柳永, 송나라 문인)의 권학문(勸學文)

 

父母養其子而不敎 是不愛其子也 (부모양기자이불교 시불애기자야)

부모가 자식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雖敎而不嚴 是亦不愛其子也 (수교이불엄 시역불애기자야)

비록 가르치더라도 엄하지 않으면, 이 또한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父母敎而不學 是子不愛其身也 (부모교이불학 시자불애기신야)

부모가 가르치는데 배우지 않는다면 이는 자식이 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雖學而不勤 是亦不愛其身也 (수학이불근 시역불애기신야)

비록 배운다 하더라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이는 또한 그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是故養子必敎 敎則必嚴 (시고양자필교 교즉필엄)

그러므로 자식을 기르면 반드시 가르쳐야하고, 가르치면 반드시 엄해야 하니

 

嚴則必勤 勤則必成 (엄즉필근 근즉필성)

엄하면 반드시 부지런해지고, 부지런하면 반드시 이루리라.

 

學則庶人之子爲公卿 (학즉서인지자위공경)

배우면 서인의 자식이라도 공경이 되고,

 

不學則公卿之子爲庶人 (불학즉공경지자위서인)

배우지 않으면 공경의 자식이라도 서인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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