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향토 문화 유적 제1호
(안산=연합뉴스) 강창구 기자 = 고려시대의 외교 책사 서희의 설화가 얽힌 잿머리성황제가 29일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잿머리 성황당에서 열렸다.
안산문화원이 주최한 이 성황제에서는 당주의 장군놀이, 상산대감놀이, 대신놀이, 남사당 줄타기 등 무속적 민속놀이가 학계의 고증을 거쳐 재현됐다.
성황제가 열린 잿머리는 고려 광종 때 내의사시랑(內議事侍郞)이던 서희(942∼998)가 10여년간 단절된 송(宋)과의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배를 타고 출발하기 전 머물렀던 곳이다.
서희는 당시 갑작스런 풍랑으로 이 곳에서 하루를 머물던 중 꿈속에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비(妃)가 비명에 죽은 한을 풀어달라'는 그 친정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 위령제를 지내자 풍랑이 잠잠해졌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마을주민들이 사당을 만들고 매년 음력 10월 초순 제사를 지내며 굿판을 벌인 데서 성황제가 유래했으며, 안산문화원은 각종 자료수집과 고증을 거쳐 1984년부터 성황제를 개최하고 있다.
잿머리 성황당은 안산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돼 있고 성황당이 있는 해봉산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곡산성의 잔해가 남아 있다.
kcg33169@yna.co.kr
잿머리성황당 [城頭里城隍堂]
고려시대 서희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기 전 제를 지내기 위해 세운 성황당으로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산76에 위치해 있다.
고려 성종 때 내부시랑이었던 서희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던 중 잿머리 해안에서 배를 타려고 하자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장도(壯途)를 비는 제를 지내고 잠이 든 서희의 꿈에 소복을 입은 두 여인이 나타났다. 두 여인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김부대왕)의 비 홍씨와 장모 안씨였는데 그들은 사당을 마련해 경순왕과 두 모녀의 영정을 두고 제사를 지내 한을 풀어주면 파도를 잠재워 항해를 돕겠다고 했다. 잠에서 깬 서희가 그들의 바람대로 관아의 수장을 불러 사당을 짓게 하고 화공을 불러 영정을 그리게 하여 며칠 후 모두 완성되자 거칠던 바다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그 후로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과 마을 사람들은 이 사당에 제를 올리며 순탄한 항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현재 세워져 있는 성황당은 1990년에 개축된 것이며 당집이 있는 산에는 서희가 쌓았던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안산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85년부터 안산의 문화행사로 이곳에서 가을성황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
잿머리성황당
고려 제6대 성종(982∼997) 때 내부시랑 서희(徐熙)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기전 장도(壯途)를 비는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세웠고 그후도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다.
안산시 성곡동 산 76번지에 위치한 잿머리 성황당은 다른 여러지방에 있는 성황당과는 달리 발생유래가 특이하다. 일반적인 성황당이 한마을 단위만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신당(神堂)으로 발생한데 반해 잿머리 성황당은 발생설화가 독특하다. 고려 제6대 성종(982∼997)때 내부시랑 서희(徐熙)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잿머리 해안(현재 당집이 있는 아래)에서 배를 타려고 했을 때 갑자기 잠잠하던 바다가 폭풍우가 몰아쳐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서희가 장도(壯途)를 비는 제를 지내고 잠이 들었을때 꿈에 소복을 한 두 여인이 나타나 "우리는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김부대왕)의 비 홍씨와 친정어머니 안씨인데 경순왕과 결혼 후 나라가 망하고 비명에 죽은 것이 한이 되어 모녀 혼령이 안주치 못하고 이렇게 배회하고 있으니 저희 거쳐라도 마련해 주십사고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라고 말하자 서희는 그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경순왕의 세번째 부인 안씨의 영정
서희는 이튿날 그곳에 작은 성을 쌓고 사당을 지은 후 화공을 불러 꿈에 본 영정을 그려 모신 이후 위령제를 지냈다. 그러자 신기하게 바다가 잔잔해지고 서희는 아무 탈없이 송나라에 다녀와 막중한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이 설화에 나타났듯이 잿머리 성황당은 항로를 트고 외교 임무를 완수했으며 왕비의 원한을 달랜 역사적 의미를 담는 성황당이다. 그 후부터 중국을 드나드는 사신은 물론 이곳 백성들도 이 사당에 제물을 차려 놓고 극진히 정성을 드리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지금도 당집이 있는 산에는 서희가 쌓은 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매년 잿머리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고려 제6대 성종(982∼997)때 내부시랑 서희(徐熙)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잿머리 해안(현재 당집이 있는 아래)에서 배를 타려고 했을 때 갑자기 잠잠하던 바다가 폭풍우가 몰아쳐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서희가 장도(壯途)를 비는 제는 지내고 잠이 들었을때 꿈에 소복을 한 두여인이 나타나 "우리는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김부대왕)의 비 홍씨와 친정어머니 안씨인데 경순왕과 결혼 후 나라가 망하고 비명에 죽은 것이 한이 되어 모녀 혼령이 안주치 못하고 이렇게 배회하고 있으니 저희 거쳐라도 마련해 주십사고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라고 말하자 서희는 그러마고 약속하였다.
서희는 이튿날 그곳에 작은 성을 쌓고 사당을 지은 후 화공을 불러 꿈에 본 영정을 그려 모신 이후 위령제를 지냈다. 그러자 신기하게 바다가 잔잔해지고 서희는 아무탈없이 송나라에 다녀와 막중한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이 설화에 나타났듯이 잿머리 성황당은 항로를 트고 외교 임무를 완수했으며 왕비의 원한을 달랜 역사적 의미를 담는 성황당이다. 그후부터 중국을 드나드는 사신은 물론 이곳 백성들도 이 사당에 제물을 차려 놓고 극진히 정을 드리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지금도 당집이 있는 산에는 서희가 쌓은 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매년 잿머리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안산시 성곡동 잿머리성황당 잿머리 성황제는 안산시 성곡동에 위치한 잿머리 성황당에서 매년 음력 시월 초순에 지내던 마을제사.
그러나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을 1984년부터 안산문화원 등 각계의 노력으로 성황당 및 성황제를 복원하여 매년 10월(음력)초순 제례를 지내고 있다.
1990년 11월 준공된 잿머리성황당은 안산시 향토문화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안산문화원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에 의뢰하여 학술조사 및 지표조사를 완료했다
(안산문화 1991년 겨울호에 그 내용이 전재되어 있음).
매년 11월 안산문화원 주관으로 잿머리성황제를 지내오고 있다.
제 23회 잿머리 성황제 21일오전 11시 성황당에서 열려. | ||||||||||||||||||||||||||||||||||||||||||||||||||||||||||||||||||||||||||||||||||
|
'안산김씨 연원(淵源) > 안산의 유래, 市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갤러리 2 (0) | 2009.05.10 |
---|---|
문화갤러리 1 (0) | 2009.05.10 |
안산의 8.15광복, 한국전쟁 (0) | 2009.05.09 |
안산의 일제강점기 (0) | 2009.05.09 |
안산의 조선시대 (0) | 2009.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