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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김씨 연원(淵源)/안산의 유래, 市史

잿머리 성황당

by 연송 김환수 2009. 5. 9.

안산 향토 문화 유적 제1호

 

 

  

(안산=연합뉴스) 강창구 기자 = 고려시대의 외교 책사 서희의 설화가 얽힌 잿머리성황제가 29일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잿머리 성황당에서 열렸다.

안산문화원이 주최한 이 성황제에서는 당주의 장군놀이, 상산대감놀이, 대신놀이, 남사당 줄타기 등 무속적 민속놀이가 학계의 고증을 거쳐 재현됐다.


성황제가 열린 잿머리는 고려 광종 때 내의사시랑(內議事侍郞)이던 서희(942∼998)가 10여년간 단절된 송(宋)과의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배를 타고 출발하기 전 머물렀던 곳이다.

서희는 당시 갑작스런 풍랑으로 이 곳에서 하루를 머물던 중 꿈속에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비(妃)가 비명에 죽은 한을 풀어달라'는 그 친정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 위령제를 지내자 풍랑이 잠잠해졌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마을주민들이 사당을 만들고 매년 음력 10월 초순 제사를 지내며 굿판을 벌인 데서 성황제가 유래했으며, 안산문화원은 각종 자료수집과 고증을 거쳐 1984년부터 성황제를 개최하고 있다.

잿머리 성황당은 안산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돼 있고 성황당이 있는 해봉산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곡산성의 잔해가 남아 있다.

kcg33169@yna.co.kr

잿머리성황당 []

 고려시대 서희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기 전 제를 지내기 위해 세운 성황당으로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산76에 위치해 있다.

 

고려 성종 때 내부시랑이었던 서희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던 중 잿머리 해안에서 배를 타려고 하자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장도()를 비는 제를 지내고 잠이 든 서희의 꿈에 소복을 입은 두 여인이 나타났다. 두 여인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김부대왕)의 비 홍씨와 장모 안씨였는데 그들은 사당을 마련해 경순왕과 두 모녀의 영정을 두고 제사를 지내 한을 풀어주면 파도를 잠재워 항해를 돕겠다고 했다. 잠에서 깬 서희가 그들의 바람대로 관아의 수장을 불러 사당을 짓게 하고 화공을 불러 영정을 그리게 하여 며칠 후 모두 완성되자 거칠던 바다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그 후로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과 마을 사람들은 이 사당에 제를 올리며 순탄한 항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현재 세워져 있는 성황당은 1990년에 개축된 것이며 당집이 있는 산에는 서희가 쌓았던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안산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85년부터 안산의 문화행사로 이곳에서 가을성황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

 

 

 잿머리성황당

고려 제6대 성종(982∼997) 때 내부시랑 서희(徐熙)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기전 장도(壯途)를 비는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세웠고 그후도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다.

안산시 성곡동 산 76번지에 위치한 잿머리 성황당은 다른 여러지방에 있는 성황당과는 달리 발생유래가 특이하다. 일반적인 성황당이 한마을 단위만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신당(神堂)으로 발생한데 반해 잿머리 성황당은 발생설화가 독특하다. 고려 제6대 성종(982∼997)때 내부시랑 서희(徐熙)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잿머리 해안(현재 당집이 있는 아래)에서 배를 타려고 했을 때 갑자기 잠잠하던 바다가 폭풍우가 몰아쳐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서희가 장도(壯途)를 비는 제를 지내고 잠이 들었을때 꿈에 소복을 한 두 여인이 나타나 "우리는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김부대왕)의 비 홍씨와 친정어머니 안씨인데 경순왕과 결혼 후 나라가 망하고 비명에 죽은 것이 한이 되어 모녀 혼령이 안주치 못하고 이렇게 배회하고 있으니 저희 거쳐라도 마련해 주십사고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라고 말하자 서희는 그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경순왕의 세번째 부인 안씨의 영정


서희는 이튿날 그곳에 작은 성을 쌓고 사당을 지은 후 화공을 불러 꿈에 본 영정을 그려 모신 이후 위령제를 지냈다. 그러자 신기하게 바다가 잔잔해지고 서희는 아무 탈없이 송나라에 다녀와 막중한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이 설화에 나타났듯이 잿머리 성황당은 항로를 트고 외교 임무를 완수했으며 왕비의 원한을 달랜 역사적 의미를 담는 성황당이다. 그 후부터 중국을 드나드는 사신은 물론 이곳 백성들도 이 사당에 제물을 차려 놓고 극진히 정성을 드리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지금도 당집이 있는 산에는 서희가 쌓은 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매년 잿머리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안산시 성곡동 산 76번지에 위치한 잿머리 성황당은 다른 여러지방에 있는 성황당과는 달리 발생유래가 특이하다. 일반적인 성황당이 성황당이 한마을 단위만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신당(神堂)으로 발생한데 반해 잿머리 성황당은 발생 설화가 독특하다.
고려 제6대 성종(982∼997)때 내부시랑 서희(徐熙)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잿머리 해안(현재 당집이 있는 아래)에서 배를 타려고 했을 때 갑자기 잠잠하던 바다가 폭풍우가 몰아쳐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서희가 장도(壯途)를 비는 제는 지내고 잠이 들었을때 꿈에 소복을 한 두여인이 나타나 "우리는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김부대왕)의 비 홍씨와 친정어머니 안씨인데 경순왕과 결혼 후 나라가 망하고 비명에 죽은 것이 한이 되어 모녀 혼령이 안주치 못하고 이렇게 배회하고 있으니 저희 거쳐라도 마련해 주십사고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라고 말하자 서희는 그러마고 약속하였다.
 
서희는 이튿날 그곳에 작은 성을 쌓고 사당을 지은 후 화공을 불러 꿈에 본 영정을 그려 모신 이후 위령제를 지냈다. 그러자 신기하게 바다가 잔잔해지고 서희는 아무탈없이 송나라에 다녀와 막중한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이 설화에 나타났듯이 잿머리 성황당은 항로를 트고 외교 임무를 완수했으며 왕비의 원한을 달랜 역사적 의미를 담는 성황당이다. 그후부터 중국을 드나드는 사신은 물론 이곳 백성들도 이 사당에 제물을 차려 놓고 극진히 정을 드리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지금도 당집이 있는 산에는 서희가 쌓은 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매년 잿머리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안산시 성곡동 잿머리성황당 잿머리 성황제는 안산시 성곡동에 위치한 잿머리 성황당에서  매년 음력 시월 초순에 지내던 마을제사.

그러나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을 1984년부터 안산문화원 등 각계의 노력으로 성황당 및 성황제를   복원하여 매년 10월(음력)초순 제례를 지내고 있다.

1990년 11월 준공된 잿머리성황당은 안산시 향토문화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안산문화원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에 의뢰하여 학술조사 및 지표조사를 완료했다

(안산문화 1991년 겨울호에 그 내용이 전재되어 있음).

매년 11월 안산문화원 주관으로 잿머리성황제를 지내오고 있다.

 

 

 

 

 

 

 

제 23회 잿머리 성황제
21일오전 11시 성황당에서 열려.



 21일 오전 11시 안산시 성곡동 산 77번지에 소재한 잿머리 성황당에서는 제 23회 잿머리 성황제가 성황리에 진행됐다.

 

▲ 헌수및 헌향을 위해 행사관계자들이 차례로 당내에 입장했다.

 

비교적 쌀쌀한 가을 날씨속에 지리적으로 해풍이 불어오는 곳에 위치한 잿머리 성황당에는 예창근 안산부시장과 이정태 안산문화원장, 잿머리당주, 성곡동 홍한기 동민회장등 약 2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 4부로 나눠 향토 민속놀이로써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 각종 재물과 음식으로 채려진 성황당내에는 향내가 그윽했다.

 

이번 잿머리 성황제에는 안산문화원과 성곡동 동민회가 주최하였으며 문화관광부와 경기문화재단, 안산시, 안산시민회가 후원하여 참석한 행사관계자 및 내빈들에게 푸짐한 잔칫상을 제공했다.

 

▲ 두마리의 돼지가 나란히 제물로 대기중이고 한켠에는 남사당무형문화재가 준비됐다

 

잿머리 성황재의 유래를 보면 고려 광종때 내의사 시랑이었던 서희가 10여 년간 외교가 중단된 송나라와의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사신으로 가려하자 갑작스런 풍랑으로 출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 지역 주민들의 단결된 모습이 성황제를 더욱 의미있게 하였다.

 

그날 밤 서희가 제를 지내고 잠이 들었을때 소복입은 여인이 꿈에 출몰하여 “ 신라경순왕의 비 홍씨의 친정어머니 안씨인데 홍씨가 경순왕과 결혼 후 나라가 망하고 비명에 죽은 것이 한이 되었다”고 하소연하자 이에 서희가 작은성을 쌓은 후 영정을 모셔 위령제를 지내자 다시 바다가 잠들었다는 설화가 이어져 오고 있다.

 

▲ 이번 행사는 여느때 보다 더욱 준비에 완벽을 기한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지어진 작은 사당이 현재의 잿머리 성황당이고 그 역할은 외교와 역사의 한을 달래는데 일조함으로써 현재의 안산시가 향토유적 제 1호로지정, 매년 음력 시월상달이면 고유의전통행사로 지내고 있다.

 

▲ 예창근 안산부시장또한 이같은 향토민속행사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이번 23회째 성황재 또한 삼현육각을 대동하고 당주의 장군놀이, 신장놀이, 상산대감놀이, 전당주 대신놀이, 특히 경기도무형문화재 제 21호 남사당 줄타기 놀이등 무속계의 내노라 하는 향토 민속놀이가 학계의 고증을 거쳐 재현됐다.

 

▲ 신라경순왕비의 아픈 과거가 설화가 되어 짓게된 잿머리 성황당.

 

이 같이 중요한 민족문화가 자취를 감춘것은 지난 일제시절 민족문화 말살정책도 일조하였으며 약 수 십년 전만 하더라도 원시동, 신길동, 목내동등 인근주민은 물론 부천, 인천까지 유가를 돌며 안산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수 천여 명 규모의 마을축제로 이어져 내려 온 바 있다.

 

▲ 무속인들이 해마다 시월 상달이면 어김없이 제를 준비해왔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안산시의회의원들과 안산시청 관계공무원, 언론계, 일반시민등 다양한 계층에서 참석하여 헌수 및 헌향을 하였으며 준비된 잔치음식은 스산한 가을 날씨를 훈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안산도심 어느 곳에서나승용차로 약 20분이면 도착할수있는 향토유적 제 1호.

▲ 이정태 안산문화원장은 이번 행사에 대한 의미를 간략히 소개하였다.
▲ 이현우 안산문화원 사무국장또한 이번 행사를 위행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 남사당놀이 줄타기 에서 어름살이와 맞추는 민속연주.
▲ 이민근 시의원등 행사를 빛내기 위한 많은 관계자들이 함께 하였다.
▲ 특히 지역 원로들의 관심이 과거 성황재에 대한 고증을 더해갔다.
▲ 좌측부터 무형문화재 제 21호 어름살이 서주향 양. 연주를 맡은 박상준군. 이동규군.
▲ 서양의 밝은미소는 외줄 앞에서도 두려움 하나 엿볼수 없었다.
▲ 가랑비 마져 내리고있어 보는이들의 마음을 졸이기에 충분했다.
▲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 서양의 몸동작에 청중들이 숨을 가다듬었다.
▲ 성황재는 풍요를 기원하고 반월공단의 무재해와 번영을 기원한다.
▲ 민속악기특유의 소리에 맞춰 사뿐히 줄을 타는 줄타기 연기.
▲ 소녀의 걸죽한 말씨에 모든 청중들이 박수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이들이 있어 한국 민속고유의 전통은 맥을 이어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민족의 전통민속행사를 홍보합니다.

잿머리성황제를 위해 수고많은신 관계자분께 찬사를 보냅니다.

안산인터넷뉴스는 시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노력합니다.

 

 

 

 

 

 

 

 

 

 

 

 

 

 

 

 

 

제 25 잿머리성화제
성곡동 잿머리 성황당에서



 마을공동체 뿐만 아니라 안산시 전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공단의 무재해를 기원하는 제25회 잿머리 성황제가 29일 성곡동 잿머리성황당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올려졌다.

 

 현 잿머리 성황당은 일제 강점시대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사라졌다가 1984년 성곡동 주민과 가계 인사로 발굴위원회가 발족되고 안산문화원의 적극적인 후원과 주민들의 성금으로 1990년 복원 준공된 것으로 안산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잿머리 성황당은 마을 단위로 제액초복을 기원하는 여타의 신당과 달리 독특한 발생설화를 가지고 있다. 고려 광종 때 송나라와 국교를 트기 위해 사신으로 가던 서희가 갑작스런 폭풍으로 해봉산 아래에 발이 묶이게 되었는데 이날 꿈에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비 홍씨와 친정어머니 안씨를 만나 나라가 망한 한을 풀고 안식처를 마련해 달라는 청을 받고 사당을 지어 위령제를 지내자 바다가 잠잠해져 외교임무를 마쳤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날의 행사는 산바래기를 시작으로 유가재현이 있었고, 축하공연으로 영화‘왕의남자’에 출연했던 남사당보존회 권원태씨의 줄타기 공연과 안산경기민요단의 경기민요 공연으로 흥을 돋구었다.

 

 성황제는 전통유교식이 아닌 삼현육각을 대동하고 당주의 장군놀이, 신장놀이, 상산대감놀이, 전당주대신놀이, 줄타기놀이 등으로 무속을 병행한 민속놀이이므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축제적 분위기로 안위와 풍요를 기원하는 동시에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잿머리 성황제는 한 마을단위의 행사이기도 하지만 지역 내 소중한 전통민속행사로 타지역과는 구별되는 탄생설화의 희귀성을 인정받아 경기도 무형문화재 등록을 고려해야할 중요한 문화재로 앞으로 계속 전승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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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식 기자(kyuns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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