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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불사사의,기타

고대 7대 불가사의

by 연송 김환수 2008. 10. 19.

 

바빌론의 공중정원

 

[─ 空中庭園, Hanging Gardens of Babylon]

바빌로니아 수도 바빌론(지금의 이라크 남부)의 왕궁 안에 꾸몄던 정원.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실제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솟아 있는, 즉 지구라트에 연속된 계단식 테라스에 만든 옥상 정원으로 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반(半)전설적 인물인 삼무 라마트 여왕(그리스어로는 세미라미스이며 BC 810~783년에 아시리아를 다스린 아다드 니라리 3세의 어머니)이 만들었다고도 하고, 네부카드네자르 2세(BC 604~562 재위)가 고향의 산과 푸른 나무를 그리워하는 메디아 출신의 아내 아미티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작가들은 공중정원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정원의 계단식 테라스에는 돌로 발코니를 만들어 씌우고, 그 위에 갈대와 역청·납 등을 층층이 쌓아 관개수가 새나가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공중정원이 있었다는 뚜렷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독일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는 바빌론에 있는 궁전 북동쪽 모퉁이에서, 독특하게 연이어 있는 방과 지하실의 기초를 발굴해 냈다.

 

그 한가운데의 지하실에 특이한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은 공중정원 기초의 일부인 듯하며 사슬 펌프로 물을 퍼올려 이곳에 저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의 피라미드 [Pyramids of Giza]

 

이집트의 알지자(기자) 근처 나일 강 서안(西岸)의 바위고원에 세워진 제4왕조(BC 2575~2565경) 3개의 피라미드로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

 

이중 가장 북쪽에 있는 가장 오래되고 큰 피라미드는 제4왕조 2번째 왕 쿠푸(그리스어로는 케오프스)가 세웠다. 대(大)피라미드라고도 하며, 밑변 평균길이 230.4m, 원래 높이 147m이다. 가운데 피라미드는 제4왕조의 8명의 왕 중 4번째 왕 카프레(그리스어로 케프렌)가 세웠고 각 밑변길이 216m, 원래 높이 143m이다. 남쪽 끝에 있는 마지막으로 세워진 피라미드는 제4왕조의 6번째 왕 멘카우레(그리스어로 미케리노스)의 피라미드로 밑변길이 109m, 완공 때 높이 66m였다.

 

3개의 피라미드는 내부·외부가 모두 고대에 이미 도굴당해 시체안치실에 있던 껴묻거리[副葬品] 대부분이 사라졌다. 무른 흰색 석회석의 외벽도 거의 모두 벗겨져버렸기 때문에 피라미드들의 높이가 원래보다 낮아져 대피라미드도 지금은 138m 높이에 불과하다. 가운데 있는 카프레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삽도(揷圖)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직도 석회석 외벽이 남아 있다.

 

쿠푸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단일 건축물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옆면 경사가 51°52'이며 밑변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해 있다. 대피라미드의 중심부는 황색 석회암 벽돌로 만들어졌고 지금은 거의 없어진 바깥벽과 내부통로는 그보다 고운 입자의 옅은 색조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의 시체안치실은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었다. 이 거대한 건축물에는 1개당 평균 2.5t 무게의 돌 230만 개가 사용되었다.

 

쿠푸는 다른 두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술적 정교함이나 공법에서 탁월한 걸작품이다. 특히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사용된 돌덩어리들의 크기와 무게를 고려할 때 설계의 기하학적 정밀성이나 돌을 깎은 정확도는 감탄할 만하다. 아직 제자리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외벽 돌들은 무게가 16t까지 나가는 것도 있지만 이 외벽 돌은 물론 내벽까지도 고대 이집트를 비롯한 세계 어느 곳의 석조건축보다도 더 정교하게 연접되어 있다.

 

대피라미드의 입구는 북쪽 측면, 지상 약 18m 위에 있다. 입구에서 비탈져 내려가는 복도는 피라미드 내부를 경사지게 내려가 피라미드가 서 있는 돌이 많이 섞인 표토층을 지나 완성되지 않은 지하실에서 끝난다.

 

이 하강 복도는 올라가는 복도로 연결되는데, 이를 따라가면 여왕의 방으로 알려진 방과 46m 길이의 커다란 경사진 회랑(回廊)이 나온다. 이 회랑의 윗부분에는 흔히 왕의 방으로 불리는, 시체안치실로 통하는 길고 좁은 통로가 있다. 왕의 방 내부 벽과 천장은 모두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 방에서 2개의 좁은 구멍이 내부를 비스듬하게 통과해 외부로 나 있는데, 이것이 종교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 통풍을 위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왕의 방 위쪽에는 거대한 화강암 석판이 수평으로 배치된 5칸의 방이 있는데, 석판을 설치한 목적은 시체안치실 천장에 놓인 석재 덩어리들이 누르는 엄청난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피라미드를 세운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한 해답이 없으나 당시 이집트인들은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는 고패와 도르래가 없었으므로 벽돌·흙·모래로 제방을 쌓고 그 제방 위로 썰매·굴림대·지렛대를 이용하여 돌을 끌어올린 듯하다. 제방은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면서 점점 높고 길어졌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대피라미드를 짓는 데 20년이 걸렸으며 성인 남자 10만 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나일의 홍수로 들에서 할 일이 없을 때 피라미드 공사를 진행한 듯하다. 각 건조물은 원래 죽은 왕의 시신을 모신 피라미드와 이에 딸린 장제전(葬祭殿)과 장제전에서 나일 강 가까운 계곡에 있는 사원으로 통하는 경사진 둑길로 구성되어 있다. 각 피라미드 옆에는 다른 왕족의 무덤으로 쓴 보조 피라미드가 1~2개 있다.

 

대피라미드의 남쪽 카프레 계곡 사원 부근에는 대(大)스핑크스가 있다 (→ 스핑크스). 바위산을 깎아 만든 이 스핑크스는 얼굴은 카프레 왕이고 몸은 누워 있는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길이는 약 73m, 높이는 20m에 달한다(→ 스핑크스). 1925년 쿠푸의 둑길 상단 가까이에서 쿠푸의 어머니 헤테페레스 여왕의 장비(葬備)를 담고 있는 구덩무덤이 발견되었다.

 

돌이 들어찬 깊은 구덩의 밑바닥에는 여왕의 빈 돌널[石棺]이 제4왕조 장인(匠人)들의 탁월한 예술성과 완벽한 기술을 보여주는 가구와 보석들에 둘러싸여 있다. 3개의 피라미드 둘레에는 왕들의 친척이나 대신(大臣)들의 장지(葬地)로 사용된 ' 마스타바'로 불리는, 꼭대기가 평평한 장례용 구조물의 큰 분포지가 있다. 기자에는 격자모형으로 늘어서 있는 제4왕조의 중심적 마스타바를 비롯한 많은 마스타바가 발견되었는데, 이중 몇 개는 제3왕조(BC 2650~2575경)의 것이고, 나머지는 제5~6왕조(BC 2465~2150경)의 것이다

 

 

파로스 섬의 등대 [─ 燈臺, Pharos of Alexandria]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

 

가장 유명한 고대의 등대로 기술적인 위업이며 이후 세워진 모든 등대의 원형이다. BC 280년경 크니도스의 소스트라토스가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2세를 위해 알렉산드리아 항 안에 있는 파로스 섬에 세웠고 높이가 135m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등대는 3단식으로 맨 아래층은 4각형, 중간층은 8각형, 꼭대기층은 원통형이며 모두 약간 안쪽으로 쏠리게 지어졌다. 폭이 넓은 나선형 경사로가 옥탑으로 이어져 있었으며 옥탑에서 밤에 불을 밝혔다.

 

이 등대 위에는 거대한 조상(彫像)이 높이 솟아 있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를 태양신 헬리오스의 형상으로 나타낸 것으로 여겨진다. 이 등대는 일찍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6세기까지는 불가사의 목록에 오르지 않았다(최초의 목록은 그대신 바빌론의 성벽을 꼽고 있음). 중세 아랍인들은 꼭대기 등대를 작은 모스크로 바꾸었다. 이 등대는 12세기 이후에 무너졌으며 1477년경 맘루크 술탄 카이트 베이는 그 잔해를 이용해 요새를 지었다.

 

 

로도스의 거상 [─ 巨像, Colossus of Rodos]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로도스 섬 린두스 시(市)의 카레스가 만든 동상.

 

로도스가 데메트리우스 폴리오르케테스의 오랜 포위(BC 305~304)에서 풀린 것을 기념해 만들었는데 주재료는 청동(철로 보강하고 돌로 무게를 더함)이며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상(像)이다. 항구에 세워졌던 이 동상은 높이 30m가 넘으며 상상에 의해 만든 한 돋을새김 작품이 표현하듯이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항구 입구에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기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은 중세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동상을 건조하는 데 12년이 걸렸으나(BC 292~280경) BC 225년경 지진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거상은 AD 653년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다가 그해 로도스를 기습한 아랍인의 손에 파괴되어 청동은 조각으로 팔려 나갔다. 그 분량은 낙타 900마리에 실을 수 있는 양보다 많았다고 한다.

 

 

제우스 상 [─ 像, Statue of Zeus]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조각품.

 

그리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만든 2개의 걸작품 중 하나(다른 하나는 파르테논의 아테나 상)로서 그리스 서부의 올림포스 산에 있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에 놓여 있었다. 높이가 거의 12m에 이르며 시더 목(木)으로 만든 뒤 흑단·상아·금·보석 등으로 정교하게 장식하여 만든 것으로 옥좌에 앉은 제우스의 모습을 나타냈다. 오른손에는 니케 상(像), 왼손에는 독수리가 앉아 있는 홀(笏)이 들려 있었다.

 

8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여기에 표현된 신성한 위엄과 관용으로 유명하다. 1950년대 올림포스에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BC 430년경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신전은 AD 426년에 파괴되었으며, 조각상은 그당시 파괴되었거나 아니면 그로부터 약 50년 뒤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화재로 파괴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복제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아르테미스 신전 [─ 神殿, Temple of Artemis]

 

소아시아 서부 에페소스에 있던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

 

이 거대한 신전은 리디아의 마지막 왕인 크로이소스가 BC 550년경에 지었고 헤로스트라토스라는 미치광이가 BC 356년 불을 질렀으나 그후 재건되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거대한 크기(약 55×110m)만이 아니라 그것을 장식하고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예술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신전은 고트족의 침략으로 AD 262년 파괴되어 다시는 복구되지 않았다. 신전의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대영박물관에는 많은 파편들이 보존되어 있고, 특히 부조로 장식된 기둥의 일부는 유명하다.

 

발굴한 결과 크로이소스가 지은 신전과 BC 4세기에 재건한 신전의 흔적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세워진 3개의 작은 신전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유명한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모방한 작품들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것은 두 팔을 밖으로 뻗치고 미라처럼 뻣뻣하게 서 있는 비그리스적인 표현 양식을 보여준다.

 

원래의 여신상은 황금과 흑단, 은과 검은 돌로 만들어져 두 다리와 엉덩이는 온갖 동물과 꿀벌이 돋을새김된 옷으로 덮여 있으며, 가슴에는 수많은 유방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높은 기둥 모양의 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 [Mausoleum of Halicarnassos]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소아시아의 남서부에 있던 카리아의 폭군 마우솔로스의 영묘(靈廟)로서 그의 누이이며 미망인인 아르테미시아가 BC 353경~351년경에 지었다. 건축가는 피티우스(또는 피테오스)였고 4명의 뛰어난 그리스 예술가 스코파스·브리악시스·레오카레스·티모테오스 등이 조각을 맡았다.

 

로마의 저술가인 대(大)플리니우스(23~79)에 따르면 이 영묘는 거의 정4각형으로서 그 둘레가 125m에 이르렀다고 한다. 36개의 기둥이 둘러싸고 있고 24단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꼭대기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4두마차가 올려져 있었다.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유적의 단편으로는 그리스인과 아마존족의 전투장면을 새긴 프리즈와 마우솔로스 상으로 보이는 높이 3m의 조상 등이 있다. 이 영묘는 아마도 11~15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무너진 돌은 이 지방의 건물을 짓는 데 다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