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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무원 이돈섭

蝶欲試花猶護粉(접욕시화유호분), 法(법)

by 연송 김환수 2026. 7. 27.

문루망유안가림원병중유기(聞魯望游顏家林園病中有寄)는 당나라의 시인 피일휴(皮日休)가 동시대의 절친한 시인이자 동반자였던 육구몽(陸龜蒙, 자 노망)에게 보낸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시의 제목은 "노망(육구몽)이 안씨 집안의 정원을 유람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중에 마음을 담아 보내다"라는 뜻이다.

 

아래 작품은 칠언율시중 두소절인 14자를 적은 작품이다

蝶欲試花猶護粉(접욕시화유호분)

鶯初學囀尚羞簧(앵초학전상수황)

나비는 꽃에 앉아보려 하지만 (날개의) 고운 가루가 다칠까 조심스러워 하고,

꾀꼬리는 이제 막 우는 소리를 배우는 터라 아직 부끄러운 듯 수줍어하네.

 

나비가 꽃에 않으려 하나 꽃은 아직 수줍게 몸을 닫고 꾀꼬리 갓 소리를 배우는 터라 아직 부끄러움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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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루망유안가림원병중유기(聞魯望游顏家林園病中有寄)

 

一夜韶姿著水光 (일야소자저수광)

謝家春草滿池塘 (사가춘초만지당)

細挑泉眼尋新脈 (세조천안심신맥)

輕把花枝嗅宿香 (경파화지후숙향)

蝶欲試飛猶護粉 (접욕시비유호분)

鶯初學囀尚羞簧 (앵초학전상수황)

分明不得同君賞 (분명부득동군상)

盡日傾心羨索郎 (진일경심선색랑)

 

一夜韶姿著水光, 謝家春草滿池塘(일야소자저수광, 사가춘초만지당)

하룻밤 사이에 아름다운 봄 빛깔이 물광에 배어들고, 사가(謝家)의 봄 풀은 연못에 가득하겠구려.

'소자(韶姿)'는 아름다운 봄의 자태를 뜻합니다.

'사가춘초(謝家春草)'는 남북조시대 시인 사령운의 유명한 구절인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를 인용한 것으로, 안씨 집안의 정원이 사령운의 연못처럼 아름다운 봄풀로 가득 덮여 있음을 비유했습니다.

細挑泉眼尋新脈, 輕把花枝嗅宿香(세조천안심신맥, 경파화지후숙향)

자네는 샘구멍을 세밀하게 파헤치며 새로운 물줄기를 찾고, 꽃가지를 가볍게 쥐고서 지난 밤의 향기를 맡고 있겠지.

안가림원에서 봄을 즐기는 육구몽의 여유롭고 섬세한 유람 모습을 시인이 상상하며 묘사한 대목입니다.

蝶欲試飛猶護粉, 鶯初學囀尚羞簧(접욕시비유호분, 앵초학전상수황)

나비는 날개짓을 시험해 보려 하나 오히려 날개 가루를 아끼고, 꾀꼬리는 처음 노래를 배우느라 생황 같은 울음소리를 오히려 부끄러워하는구나.

늦겨울이나 이른 봄날,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나비와 꾀꼬리의 생동감 넘치면서도 조심스러운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명구입니다.

分明不得同君賞, 盡日傾心羨索郎 (분명부득동군상, 진일경심선색랑)

분명 자네와 함께 감상하지 못하니, 날이 저물도록 마음을 기울여 색랑(索郎)을 부러워하네.

'색랑(索郎)'은 당시 유명했던 전통 술인 '상락주(桑落酒)'의 별칭입니다.

병에 걸려 정원에는 가지 못하고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그 좋은 곳에서 봄을 즐기고 있을 친구 육구몽을 하루 종일 부러워하는 시인의 솔직한 심정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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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서 '나비가 꽃을 찾는다는 蝶欲尋花(접욕심화),

꾀꼬리가 우는 곳이라는 黃鸝啼處(황리제처) 같은 표현은 당나라 시인들의 대구(對句) 기법입니다.

 

蝶欲採花花未開 (접욕채화화미개)

鶯初學語尙多羞 (앵초학어상다수)

 

蝶欲採花(접욕채화) : 나비가 꽃에 앉아(꿀을) 따려 하나,

花未開(화미개) : 꽃은 아직 수줍게(활짝 피지 않고) 몸을 닫고 있네.

鶯初學語(앵초학어) : 꾀꼬리가 이제 막 소리를(지저귀는 법을) 배우는 터라,

尙多羞(상다수) : 아직도 부끄러움이 많아 수줍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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鶯初學語尙多羞(앵초학어상다수꾀꼬리가 처음 말을 배울 때 아직 부끄러움이 많다.

봄의 정취와 설레는 감정을 아름답게 묘사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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蝶欲尋花花未開 (접욕심화화미개)

黃鸝啼處尙多羞 (황리제처상다수)

 

蝶欲尋花花未開(접욕심화화미개)

(나비 접): 나비가

欲尋(욕심을 찾을 욕/원할 욕): 찾으려 하나 / 앉으려 하나

(꽃 화): 꽃은

未開(아닐 미, 열 개): 아직 피지 않았네 / 몸을 닫고 있네

黃鸝啼處尙多羞(황리제처상다수)

黃鸝(누를 황, 꾀꼬리 리): 꾀꼬리가

(울 제): 우는 곳에 / 소리를 메우는 처지에

(오히려 상): 오히려 / 아직

多羞(많을 다, 부끄러울 수): 부끄러움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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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상단 큰 글씨는 法(법) - 전서이전 금문입니다.

 法 (법)

有法不依 等於無法 (유법불의 등어무법)

執法犯法 實在沒法 (집법범법 실재몰법)

법이 있어도 의지하여 따르지 않는다면, 법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법을 집행하는 자가 도리어 법을 범하니, 참으로(정말로) 해결할 방법(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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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법치주의의 붕괴와 사법 불신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유명한 중국의 대구(對句)입니다.

'법을 집행하고 따르는 마음', 또는 '법의 정신'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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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의 法(법)자의 본자는 灋(법)이었다.

이 글자는 물 수(水) +  해태 치(廌) + 갈 거(去)로 이루어진 회의자이다.

여기서 해태(해치)는 전설상의 동물 해태를 말한다.

 

는 법은 물과 같이 공평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는 법은 곧 사회의 불공평, 부정, 죄인을 없애야 함을 의미한다.

()는 올바르지 않은 것을 만나면 그 무서운 뿔로 받아 죽여 버린다고 전해지는 상상의 동물 해태이다.

 

이는 법의 수행이란 모름지기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역류하는 법 없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처럼 공평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노자에서도, 언제나 남을 이롭게 하면서도 조금도 뽐내지 않고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을 두고서 최상의 선이요 도에 가깝다고 극찬했다.

진나라 소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형태에 해태의 모습이 덧붙여져 있다.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법이란 바로 바르지 않은 사람을 떠받아 죽여버리는 해태나,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는 물처럼 언제나 정의롭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의 고문자 형태인 ()은 해치(해태)를 뜻하는 ()를 따른 글자이다.

해치와 해태는 완전히 같은 상상의 동물이며, '해치'가 원래 바른 이름(원말)이고 '해태'는 오랜 세월 동안 민간에서 부르며 다르게 굳어진 말이다.

()=++(물 수+해태 치+갈 거)를 합친 회의자

고대 법에는 해치라 불리는 양()을 심판에 사용했다. 은 해치를 가죽부대에 넣은 형태이다.

좌측에 물 수 변으로 적혀있는 것은 이 가죽부대를 물에 흘려버리는 것을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갈 거)의 자형이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큰 대)(사사 사)로 구분한다. 는 유죄로 판결한 당사자를, 그 아래의 는 뚜껑이 제거된 축고의 그릇을 의미한다.

축고의 그릇은 맹서한 글을 넣어둔 그릇으로 뚜껑이 제거된 것은 주술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 재판에서 패한 해치, 패한 사람, 뚜껑이 제거된 축고를 모두 물에 함께 흘려버리는 뜻을 지닌 글자이다.

고대에 죄란 더럽혀짐이었고, 물은 그 더러움을 떨쳐버려 깨끗하게 씻어내 주는 것이었다.

부정을 탄 해치는 짐승가죽 치이에 싸여 그 사람과 축고와 함께 아주 멀리 흘려보내 버려졌다.

치이란 패소자의 해치나 사람을 멀리 내버릴 때 사용된 가죽부대를 말한다.

이에 따라 은 폐기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현재 의 자형은 해치(해태)에 의한 심판의 의미가 망각되어 廌(해태치)를 제외한 자형만 사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