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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제향,행사

2018년 안산현 개국후 김긍필 시조 할아버지 춘계향사 봉행

by 연송 김환수 2018. 4. 5.

2018년 안산현 개국후 김긍필 시조 할아버지 춘계향사 봉행

 

2018년 4월 5일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 안촌마을에 위치한 감북사(구.위정각)에서 안산현 개국후 김긍필 시조할아버지에 대한 춘계향사(제사)를 대종회 임원과 소종회장님 및 종원분들이 참석해서 향사(제사)를 봉행 하였습니다.

 

이 곳 감북사 숭조각에는 시조 안산현 개국후 김긍필 할아버지, 1세손(대손) 안산군 개국후 김은부 할아버지, 중시조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 3분의 위패를 같이 모시고 있습니다.

 

 

감북사는 중시조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를 모시는 재실인 위정각이었는데 올해 리모델링을 하여 시조 안산현 개국후 김긍필 할아버지, 1세손(대손) 안산군 개국후 김은부 할아버지 2분의 위패를 추가하여 같이 모시고 제향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당초 위정각의 입구 출입문이었던 추충문 현판을 감북사로 변경하고 제향을 지내던 위정각은 숭조각으로 변경을 하였습니다. 

 

중시조이신 위정공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에 대한 향사(享祀)는 변함없이 매년 양력 4월5일에 감북사에서 춘계향사를 지내고 기일인 음력 7월 15일에는 위정사(충북 괴산군 장연면)에서 불천위제사를 봉행하게 됩니다.

 



 

 

 

 

 

 

 

 

 

 

 

 

 

 

 

 

 

 

 

 








 

감북사 (甘北祠)

 

 

숭조각(崇祖閣)

 

 

 

 

 

 

 

 

 

 

 

 

 

 

 

 

 

 

좌측 좌명공신 김정경 신도비, 우측(가운데) 새로 건립한 김정경 신도비

 

 

 

 

 

 

 

 

 

새로 건립한 좌명공신숭정대부 위정 김정경 신도비

 

신도비 상단 전액(전서체 글씨)은 비석 4면에 걸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佐命功臣 崇政大夫 威靖 金公 神道碑銘(좌명공신 숭정대부 위정김공 신도비명)

1면 佐命功臣崇 / 2면 政大夫 / 3면 威靖金公神 / 4면 道碑

  ※ 전액(篆額) ; 전자체(篆字體)로 쓴 현판이나 비갈(碑碣)의 제액(題額).

 

추충분의 익대동덕좌명공신 숭정대부 항 리조전서 련성군 익 위정공 김정경 신도비

推忠奮義 翊戴同德佐命功臣 崇政大夫 行 吏曹典書 蓮城君 謚 威靖公 金定卿 神道碑

 

 

 

 

 

 

 

 

 

 

 

 

기존 좌명공신 김정경 신도비

 

 

 

김정경신도비

 

 

有明朝鮮佐命功臣吏曹典書蓮城君謚威靖金公神道碑銘

推忠奮義翊戴同德佐命功臣崇政大夫行吏曹典書蓮城君謚威靖金公

神道碑銘并序

資憲大夫禮曹判書弘文館提學 經筵日講官 申錫愚 撰

綏祿大夫永明尉兼五衛都摠府都摠管 洪顯周 書并篆

 

유명조선 좌명공신 이조전서 연성군 시위정 김공 신도비명

추충분의 익대동덕 좌명공신 숭정대부 행 이조전서 연성군 시위정 김공 신도비명병서

자헌대부 예조판서 홍문관제학 경연일강관 신석우가 글을 짓고,

수록대부 영명위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홍현주가 글씨와 함께 전액을 쓰다.

 

이 비는 1863(철종 14) 경기도 하남에 건립된 김정경신도비(金定卿神道碑)로 신석우(申錫愚)가 비문을 지었고, 홍현주(洪顯周)가 글씨를 쓰고, 아울러 전액을 하였다.김정경(金定卿 : 1345~1419)의 본관은 안산으로,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진주목사 성경(星慶)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군부사총랑을 역임하였으며, 이성계를 지지하여 조선이 건국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개국한 이후 사문절도사, 이조전서, 판예빈시사 등을 역임하였고, 1400(정종 2) 방간의 난 당시 방원(태종)을 도와 진압하여, 좌명공신 4등에 봉해졌다. 1410(태종 10)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용맹하였고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시호는 위정(委靖)이다.현재 탁본은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탁본한 연대는 1980년대로 추정된다.

有明朝鮮佐命功臣吏曹典書蓮城君謚威靖金公神道碑銘

推忠奮義翊戴同德佐命功臣崇政大夫行吏曹典書蓮城君謚威靖金公

神道碑銘并序

資憲大夫禮曹判書弘文館提學 經筵日講官 申錫愚 撰

綏祿大夫永明尉兼五衛都摠府都摠管 洪顯周 書并篆

有若堂而高四尺于廣之治西玄川負亥原寔惟蓮城君金公定卿攸藏氏貫安

山系出高麗左僕射肯弼若侍中渭判三司元祥牧使星慶爲曾祖祖稱母趙氏

密直副使平壤千禩女生于元至正乙酉任爲延康殿直判護軍宗簿副令軍簿

摠郞中正大夫及事我 太祖策原從功 太宗時佐戡朴苞亂策佐命勳秩視

崇政封爵田民有券書嘗節制義興軍典吏曹再銜 命赴 朝咸著勞績寢疾

世宗遣太醫而診內侍而訊畋而賜獐肝以病中欲嘗也公感泣 恩造恨無以

卒萬一報是年七月十五日竟以赴 聞壽七十五即 永樂己亥輟 朝致侑

贈謚威靖禮備哀榮公甞喜南容三復語好讀黃石素書凢立 朝處事得力爲

多嗚呼 聖祖龍興天開一治炳幾達權如山川出雲盖多其人學問於陽村訏

謨於厖邨質儉於夏亭皆乘運名世之材若公素負韜略戡平禍亂可以幷駕諸

公爲 國初英豪豈不偉哉宜其順天迓休毓繁厥祉凡三娶判書申翼之新陽

君盧瑛南平君王和女生五男一女別將沚申出護軍灌別將滌盧出判中樞平

胡公漑安城尉澣署令安鐵山妻王出平胡之子校勘孟鋼始以科甲進孫琨瑋

珌珌顯己卯彙征時六代孫就義七代孫沆繼登文科六代孫府使就礪七代孫

參奉聲大 贈持平聲玉八代孫參奉始聲皆以學行稱錫命錫保以武顯九代

孫知中樞相斗縣監定五傡罹辛丑士禍牧使相鼎十代孫防禦使養一竝參奮

武勳養心文大諫外裔多達官顯人玄川之竁旣成申氏盧氏祔王氏葬其下壬

坐十四代孫樂朋以陶谷李公所撰表來請神道之刻愚辭不獲謹纂次爲文而

系之以銘 猗嗟蓮城赫閥宏器佐命翊運筮革六二旂常旣揭金帛蕃賜

允㫌相報聿殫殄瘁秉銓銜 命績懋厥試圭無言玷石有書秘公服膺斯勳措

于事勳烈山峙福履川至文武忠孝衍錫其類我銘牲繫永表玄隧

崇禎紀元後四癸亥 四月 日立

 

김정경신도비

유명조선 좌명공신 이조전서 연성군 시위정 김공 신도비명

추충분의 익대동덕 좌명공신 숭정대부 행 이조전서 연성군 시위정 김공 신도비명병서

자헌대부 예조판서 홍문관제학 경연일강관 신석우가 글을 짓고,

수록대부 영명위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홍현주가 글씨와 함께 전액을 쓰다.

 

당과 같은 모습에 높이가 4척이며 광주 고을 서쪽의 현천에 해방을 등진 언덕은 곧 연성군 김공 정경의 묘소이다. 본관은 안산이고, 선계는 고려좌복야 긍필에서부터 나왔다. 시중 위와 판삼사 원상과 목사 성경이 공의 증조와 조부,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평양조씨로 밀직부사 천사의 딸이다. 원나라 지정 을유년(충목왕 1, 1345)에 태어나 벼슬하여 연강전직 · 판호군종부부령 · 군부총랑 · 중정대무가 되었고, 우리 태조를 섬겨 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태종때에는 박포의 반란을 평정하여 좌명공신에 책봉되어 품계가 숭정에 올랐으며, 작위를 봉하고 전호와 민호를 하사한 권서가 있다. 일찍이 의흥친군위 절제사를 지냈으며 이조를 관장하였다. 두 번이나 명을 받들고 명나라 조정에 사신으로 가서 공적이 모두 현저하였다. 병들어 눕자 세종께서 대의를 보내어 진료하게 하고, 내시를 보내어 문병하셨으며, 사냥하여 노루 간을 하사 하셨으니, 이는 병중에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공은 성은에 감읍하여 끝내 만에 하나도 갚을 수 없음을 한스럽게 여겼다. 715일에 마침내 부음이 들렸으니 향년 75세이며, 해는 영락 기해년(세종 1, 1419)이다. 조정의 정사를 거두고 제물과 제문을 모내어 조상하고, 위정이란 시호를 추증하여 신하의 죽음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공은 일찍이 남용이 세 번 반복했다는 옥의 흠은 갈 수 있지만 말의 흠은 갈 수 없다는 말을 좋아하였고, 황석소서를 즐겨 읽어 무릇 벼슬하여 일을 처리 할 때에 여기에서 힘을 얻은 것이 많았다. 오호라! 성조가 용흥하여 하늘이 한번 다스림을 열어주시어, 기미에 밝고 권형에 통달한 분들이 마치 산천에 구름이 일듯하여 그 사람이 많았다. 학문은 양촌이요, 나라를 위한 계책은 방촌이며, 질박하고 검소함은 하정이니, 모두 운을 타서 세상에 이름난 인재들이다. 공으로 말하자면 평소에 육도삼략을 지고 화란을 평정하여 제공들과 명예를 나란히 하여 국초에 영호가 될 수 있었으니,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그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아름다움을 맞이하고 그 복지를 육성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하도다.

공은 부인을 세 번 맞이하였으니, 판서 신익지 · 신양군 노영 · 남평군 왕화의 딸이다. 51녀를 낳았다. 별장 지는 신씨 소출이요, 호군 관 · 별장 척은 노씨 소출이요, 판중추 평호공 개와 안성위 한과 서령 안철산 처는 왕씨 소출이다. 평호공의 아들 교감 맹강이 비로소 과거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출하였고, 손자는 곤 · · 비인데, 비는 기묘년 휘정 때에 저명했다. 6대손 취의와 7대손 항은 계속하여 문과에 올랐으며, 6대손 부사 취려와 7대손 참봉 성대 · 증지평 성옥과 8대손 참봉 시성은 모두 학행으로써 일컬어졌으며, 석명 · 석고는 무로써 드러났다. 9대손 지충추 상두와 현감 정오는 함께 신축사화에 걸렸으며, 목사 상정과 10대손 방어사 양일은 함께 분무훈에 올랐고, 양심은 문과 대간이다. 외손도 높은 벼슬과 현달한 사람들이 많았다. 현천의 무덤을 완성하고 나서 신씨와 노씨는 부장하였으며, 왕씨는 그 아래에 임좌로 장사 지냈다. 14대손 악붕이 도곡 이공께서 찬한 묘표를 가지고 와서 신도비를 청하니, 나는 사양 할 수 없어서 차례를 모아 비문을 짓고 이어서 명하노라.

 

! 연성이여! 혁혁한 문벌에 큰 그릇이로다.

좌명으로 군운을 붙잡았으니 혁괘 육이를 점침이로다.

표창한 기를 이미 올렸고 황금과 비단도 많이 내리셨도다.

포상하신 성은을 갚으려하여 마침내 몸이 병들도록 충성을 다하였도다.

전조의 일을 맡아 왕명을 받드니 시용에 공적이 많았도다.

옥의 흠은 갈 수 있지만 말의 흠은 갈 수 없다는 것과 황석공의 소서에는 비법이 있도다.

공은 이것을 가슴에 간직하여 행동하고 일을 처리하였도다.

큰 공훈은 산처럼 솟아있고 복록은 냇물처럼 흐르도다.

문무충효는 번성하여 대대로 자손이 이어 가도다.

나는 비석에 명하여 영원히 전해지도록 표하노라.

 

숭정기원후 네 번째 계해년(철종 14, 1863) 4월 일에 세우다.

 

 

 

 

 

 

 

 

 

 

 

 

 

 

 

시조 상서좌복야 상주국 안산현 개국후 김긍필 할아버지 위패(位牌)

始祖 尙書左僕射 上柱國 安山縣 開國侯 金肯弼

 

1세손 중추사 상호군 추충수절창국공신 개부의동삼사 수사공 상주국 안산군개국후

   김은부 할아버지 위패

一世孫 中樞使上護軍 推忠守節昌國功臣 開府儀同三司 守司空 上柱國 安山郡 開國侯

    金殷傅

    配 安山郡 大夫人 仁川李氏 神位 배 안산군 대부인 인천이씨 신위

 

중시조 추충분의 익대동덕좌명공신 숭정대부 행 이조전서 연성군 시 위정공 김정경

   할아버지 위패

   中始祖 推忠奮義 翊戴同德佐命功臣 崇政大夫 行 吏曹典書 蓮城君 謚 威靖公 金定卿

   配 貞敬夫人 平山申氏 神位 배 정경부인 평산신씨 신위

   配 貞敬夫人 交河盧氏 神位 배 정경부인 교하노씨 신위

   配 和惠宅主 開城王氏 神位 배 화혜택주 개성왕씨 신위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 묘(평산신씨, 교하노씨 합장, 왼쪽묘 화혜택주 개성왕씨)

 

연성군 위정공 할아버지는 판서 신익지, 신양군 노영, 남평군 왕화의 딸(평산신씨, 교하노씨, 개성왕씨) 3명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평산신씨와 교하노씨는 연성군과 부장(합장)하였으며, 개성왕씨는 그 아래에 임좌로 장사 지냈다가 최근 연성군 할아버지 옆으로 이장하였다.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 묘(평산신씨, 교하노씨 합장, 왼쪽묘 화혜택주 개성왕씨)

 

 

 

 

 

 

 

 

 

 

대종회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