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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연방/법정스님 말씀 등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 법정스님

by 연송 김환수 2016. 4. 8.


[법정스님] 오두막편지

 

2.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 법정스님

 

나는 중이 되지 않았으면 목수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일용에 쓰일 물건을 만들기 위해

연장을 가지고 똑닥거리고 있으면 아무 잡념도 없이 즐겁기만 하다.

하나하나 형성되어 가는 그 과정이 또한 즐겁다.

며칠 전에도 아궁이의 재를 쳐내는 데 쓰일 고무래를 하나 만들었다.

전에 쓰던 것이 망가져 다시 만든 것이다.

톱으로 판자를 켜고, 나뭇단에서 자룻감을 찾아

알맞게 다듬고 똑딱똑딱 못을 박아 완성해 놓았다.

시험삼아 새 고무래로 재를 쳤더니

고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아궁이 속이 말끔해졌다.

아궁이 속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야 불도 잘 들인다.

고무래 같은 걸 시장에서는 팔지도 않지만 만약 그걸 돈을 주고 사다가 쓴다면,

손수 만들 때의 그 즐거움은 누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처음 불일암에 들어가 만든 의자는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말짱하다.

장작더미 속에서 쓸 만한 참나무 통장작을 고르고 판자쪽을 잇대어 만든 것인데,

사용 중에 못이 헐거워져 못을 다시 박은 것말고는 만들 때 그대로다.

그때 식탁도 함께 만들었는데 몇 차례 암주가 바뀌더니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산중에서는 재료로 쓰이는 나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재목의 생김새에 따라 그에 맞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큰절 헛간에서 굴러 다니던 밤나무 판자를 주워다가 대패로 밀고 톱으로 켜서

맞추어 놓은 폭이 좁은 서안(書案)은 지금도 그 암자의 큰방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중노릇과 목수일을 간단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순수하고 무심하기로 말한다면 중노릇보다 목공일 쪽이

그 창조의 과정에서만은 훨씬 앞설 것이다.

사람끼리 어우러지는 중노릇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생놀음'이 끼여들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발휘하고, 삶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직업이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참으로 좋아서 하는 직업인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그 일이 좋아서,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가 아니라,

수입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도 지니지 않고 책임감도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일과 사람이 겉도는 불성실한 직업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일을 하지만 그 일에 흥미가 없으면 일과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책임을 느낄 때 사람은 그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인간이 되어 간다.

 

한눈 팔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장인匠人들은 그 일에 전 생애를 걸고 있다.

그들은 보수에 넋을 팔지 않고 자신이 하는

그 일 자체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순간순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55세 혹은 60세가 되면 직장에서는 일을 그만 쉬라는 정년停年을 맞는다.

그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직장에는 정년이 있지만 인생에는 정년이 없다.

흥미와 책임감을 지니고 활동하고 있는 한 그는 아직 현역이다.

인생에 정년이 있다면 탐구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멈추는 바로 그때다.

그것은 죽음과 다름이 없다.

타율적으로 관리된 생활방식에 길들여지면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심화시킬 그 능력마저 잃는다.

자기가 하는 일에 흥미와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그는 하루하루 마모되어 가는 기계나 다름이 없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인내와 열의와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옛날 장원의 한 영주가 산책길에 자신이 고용하고 있는

젊은 정원사가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정원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정원을 구석구석 아주 아름답게 손질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젊은 정원사는

자기가 관리하는 나무 화분마다 꽃을 조각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영주는 그 젊은 정원사를 기특하게 여겨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화분에다 꽃을 조각한다 해서 품삯을 더 받을 것도 아닌데,

어째서 거기에다 그토록 정성을 들이는가?"

젊은 정원사는 이마에 밴 땀을 옷깃으로 닦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정원을 몹시 사랑합니다.

내가 맡은 일을 다하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이 나무통으로 된 화분에 꽃을 새겨 넣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이 한없이 즐겁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영주는 젊은 정원사가 너무 기특하고

또 손재주도 있는 것 같아 그에게 조각 공부를 시킨다.

몇 년 동안 조각 공부를 한 끝에 젊은이는 마침내 크게 이룬다.

이 젊은 정원사가 뒷날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최대의 조각가요,

건축가이며 화가인 미켈란젤로 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열의와 기쁨을 가지고

품삯과는 상관도 없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간 것이다.

그는 화분의 나무통에 꽃을 아름답게 조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5분이나 10분 동안만 더 손질을 하면 마저 끝낼 일을 시간이 됐다고 해서

연장을 챙겨 떠나는 요즘의 야박하고 약삭빠른 일꾼들 눈으로 보면,

그 젊은 정원사는 숙맥이요, 바보로 보일 것이다.

자신의 일에 애착과 책임감을 가지고

기꺼이 땀흘리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는 높고 귀한 존재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

그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라.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환하게 꽃피우라.


-오두막 편지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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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1.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흙방을 만들며

인디언 '구르는 천둥'의 말

시간 밖에서 살다

뜰에 해바라기가 피었네

자기 관리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청정한 승가

바람 부는 세상에서

그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새벽 달빛 아래서


2.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장작 벼늘을 바라보며

새벽에 내리는 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달빛에서도 향기가 나더라

명상으로 삶을 다지라

홀로 있음

참된 여행은 방랑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른 나뭇단처럼 가벼웠던 몸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두 자루 촛불 아래서

안으로 귀 기울이기

비닐 봉지 속의 꽃

수선 다섯 뿌리

섬진 윗마을의 매화

어느 오두막에

가난한 절이 그립다

개울물에 벼루를 씻다

인간의 가슴을 잃지 않는다면

오두막 편지

파초잎에 앉아


4. 눈고장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나다

겨울 채비를 하며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에

허균의 시비 앞에서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눈고장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나다

화개동에서 햇차를 맛보다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랴

뜬구름처럼 떠도는 존재들

바보의 깨달음

다산 초당에서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가을에는 차맛이 새롭다

내 오두막의 가을 걷이

어느 독자의 편지

이 가을에는 행복해지고 싶네

나를 지켜보는 시선

거리의 스승들

가난을 건너는 법

그런 길은 없다

산천초목에 가을이 내린다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책속으로

 

우툴두툴한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있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미친 바람 소리도 한결 부드럽게 들린다. 이 방에 나는 방석 한 장과 등잔 하나말고는 아무것도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안에서 나는 잔잔한 삶의 여백을 음미해 보고 싶다. --본문 15쪽에서

 

일상적인 우리의 정신상태는 너무나 복잡한 세상살이에 얽히고 설켜 마치 흙탕물의 소용돌이와 같다. 우리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도 이런 흙탕물 때문이다. 생각을 돌이켜 안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는 명상은 이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작업이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둘레의 사물이 환히 비친다. 본래 청정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80

 

우리는 말하기 전에 주의깊게 생각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는 귀 기울여 듣는 데 익숙해야 한다. 말의 충동에 놀아나지 않고 안으로 곰곰이 돌이켜 생각하면, 그 안에 지혜와 평안이 있음을 그때마다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말을 아끼려면 될 수 있는 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없이 무책임하게 제삼자에 대해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110

 

바람직한 인간관계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주어야 한다. 덜 채워진 그 여백으로 인해 보다 살뜰해질 수 있고, 그 관계는 항상 생동감이 감돌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 168

 

일상적인 우리의 정신상태는 너무나 복잡한 세상살이에 얽히고 설켜 마치 흙탕물의 소용돌이와 같다. 우리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도 이런 흙탕물 때문이다. 생각을 돌이켜 안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는 명상은 이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작업이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둘레의 사물이 환히 비친다. 본래 청정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