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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노래모음

고향의 봄 - 작품해설

by 연송 김환수 2015. 7. 25.

"고향의 봄" 노래를 작사하신 이원수선생의 출생지는 경남 양산이며, 창원(마산)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선생의 문학이 피어난 곳이다.

 

1926년 방정환이 펴낸 〈어린이〉에 〈고향의 봄〉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고향의 봄〉은 낭만적인 향토애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뒤에 홍난파선생이 곡을 붙였다.

 

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 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작품해설 - 장석주시인

 

〈고향의 봄〉은 1926년에 방정환이 펴낸 잡지 《어린이》가 실시한 현상공모에 당선한 동시다.

〈고향의 봄〉은 우리에게 〈아리랑〉이나 〈애국가〉못지않게 각별한 뜻이 담긴 시이다.

노래로 더 친숙한 이 작품은 한국인이 집단무의식에 새긴 원체험이자

남과 북, 해외의 동포 대부분이 외우고 있는 동시다.

 

이번 연재를 위해 문인 선정위원들이 추천한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고향의 봄〉을 부를 때 감성의 저 깊은 곳에 숨은 마음의 금(琴)은 서러움에 떨며 운다.

언젠가 돌아가 몸을 눕혀야 할 '고향의 봄'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실낙원의 봄'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더 이상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은 불어오지 않고,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는 지도에서 찾을 수 없다.

고향은 마음의 홀로그램에만 남는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용량이 큰 '백업메모리'다.

그 기억은 아무리 인출해서 써도 마르지 않는다.

 

타향에서 거둔 성공과 번성은 우아한 퇴행에 지나지 않는다.

고향에서 멀리 나간 사람일수록 "고향의 봄"은 그 간절함으로 사무치고, 목청의 울혈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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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은 이원수 선생이 15세 때 지은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입니다.

 

마산에서 소년회 활동을 하던 이원수는 어린이운동의 선구자인 방정환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잡지 '어린이'지에 투고 당선되었으며, 당시 마산에서 활동하던 이일래(산토끼 작사)선생이 곡을 붙여 마산일대에서 불려지다 1927년 홍난파 선생이 다시 곡을 붙였습니다.

 

'고향의 봄'의 배경이 된 곳은 경남 창원 소답리며 소답리 일대의 아름다운 경험을 풀어낸 시가 고향의 봄입니다.

 

꽃대궐의 무대는 조각가 김종영 선생의 종택이라고 합니다.

 

이원수 선생은 '월간소년' 1980년 10월호에 '자전회고록-흘러가는 세월 속에'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습니다.

 

"내가 난 곳은 양산이라고 했다. 양산서 나긴 했지만 1년도 못되어 창원으로 왔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난 곳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 마산에 비해서는 작고 초라한 창원의 성문 밖 개울이며 서당 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 그런 것들이 그립고 거기서 놀던 때가 한없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 그래서 쓴 동요가 <고향의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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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李元壽)

 

출생 1911. 11. 17, 경남 양산

사망 1981. 1. 24, 서울

국적 한국

 

요약 기존의 외형률 중심의 동요에서 벗어나 내재율 중심의 현실참여적인 동시를 썼고, 널리 알려진 동요 〈고향의 봄〉의 작사가이다. 한때 이동원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1926년 방정환이 펴낸 〈어린이〉에 〈고향의 봄〉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고향의 봄〉은 낭만적인 향토애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뒤에 홍난파가 곡을 붙였다. 1973년 한국문학상,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원수 기존의 외형률 중심의 동요에서 벗어나 내재율 중심의 현실참여적인 동시를 썼고, 널리 알려진 동요 〈고향의 봄〉의 작사가이다. 한때 이동원(李冬原)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아버지 문술(文術)과 어머니 진순남(陳順南)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마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윤석중 등과 '기쁨사' 동인이 되었고, 1930년 마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함안금융조합에 다니다가 1935년 독서회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간 옥살이했다.

 

1937년 함안금융조합에 복직되어 8·15해방 때까지 근무했으며, 1945년 10월 경기공업학교 교사로 취직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이어 박문출판사 편집국장, 〈소년세계〉 주간,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국자유문학가협회 아동문학 분과위원장, 서울특별시 문화위원회 문학분과위원 등을 지냈다. 또한 1961~70년 삼화출판사 편집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 등 한국아동문단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968년 마산시 산호공원에 노래비와 1981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문학비가 세워졌다.

 

1926년 방정환이 펴낸 〈어린이〉에 〈고향의 봄〉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고향의 봄〉은 낭만적인 향토애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뒤에 홍난파가 곡을 붙였다. 이어 초기에 발표한 동시인 〈잘가거라〉(어린이, 1930. 7)·〈비누풍선〉(어린이, 1927. 7)·〈헌 모자〉(학생, 1930. 3) 등은 감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40년 초기에는 현실을 외면한 작가들과는 달리 소극적이나마 현실에 저항하는 동시를 발표했는데, 〈어머니〉(아이생활, 1943. 2)·〈빨래〉(주간소학생, 1946. 2. 11) 등이 이에 속한다.

 

해방 후에는 동시보다 동화를 많이 썼으며, 1953년에 발표한 장편동화 〈숲속의 나라〉는 전래동화를 뛰어넘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그밖에도 방송용 아동극이나 아동문학의 기초가 되는 글을 썼는데, 특히 1966년 〈교육자료〉에 연재한 〈아동문학입문〉은 아동문학의 여러 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해설을 시도한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동시집으로 〈종달새〉(1947)·〈빨간 열매〉(1964) 등과 동화집으로 〈어린이 나라〉(1949)·〈숲속 나라〉(1953)·〈파란 구슬〉(1960)·〈보리가 패면〉(1966) 등이 있고, 저서로 〈이원수아동문학독본〉(1961)·〈어린이문학독본〉(1962) 등이 있다. 1970년 고마우신 선생님상, 1973년 한국문학상,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받았다.

 

 

고향의 봄을 쓴 아동문학가 이원수의 딸은 20111122일 부친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사죄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친일인명사전에 아버지의 이름이 등재된 것을 보고서야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친일작품을 쓸 당시 자식들에게 일본어를 못쓰게 하고 한글을 가르치곤 했는데 그런 글을 썼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원수의 죄목은 달랑 5편의 친일시를 쓴 것이 전부이다. 그러면 수천, 수만 명에 달한다는 악질 친일파들은 어디로 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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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서 이원수 선생님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럼 이원수 선생님을 우리 10대 작가에 넣어 공부하는 우리는 어떤 의견인가라는 의문들이 간간이 얘기되어왔고 개인적으로도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어떤 입장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출처 : http://cafe.daum.net/gumichildbook/BKKh/417?q=%C0%CC%BF%F8%BC%F6%20%C4%A3%C0%CF&re=1

 

작가 이원수의 부왜문학 시와 수필에 대해 소개했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이원수 작가는 우리 아동문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이고 그래서 부왜문학 이야기는 큰 안타까움과 비판을 받는 것 같다.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작가였다는 점에서 부왜활동은 비판받아야 한다. 프랑스, 독일의 경우 부역한 문학가에 대해 엄격하게 처단했다.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보더라도 역사의 옳은 평가가 있어야한다.

 

애정을 가졌던 작가라 친일이 더 충격인 것이 사실이다. 생전에 친일을 인정하지 않았고 한마디 사과도 없었던 것이 못내 안타깝지만 이원수 문학을 잘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섣불리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념사업에 작가의 빛과 그림자 모두가 있어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생각에 공감한다.

 

허점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에게 신중하게 책을 선정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아동문학이라 작가의 삶이 더 걸린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주되 친일활동도 알려주어야 한다.

 

작가의 친일행적은 작품과 별개로 평가 받아야한다.

 

우리 회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1939년 이후부터 광복까지는 문학계의 암흑기다. 친일에 걸리지 않는 작가가 없을 정도였고 그래서 연구도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장시간의 열띤 주장과 의견들이 오고 간 시간이었다.

 

그러나 작가 이원수가 우리 현대아동문학에 미친 영향을 생각할 때 자신의 부왜문학에 대해 생전에 어떤 형태로든 사과와 입장을 밝혀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회원 모두의 공통점인 것 같다.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는 앞으로 작가 이원수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