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권력층 암투 드러낸 묘지명 공개

고려말 권력층 암투 드러낸 묘지명 공개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9-02-09 07:00 | 최종수정 2009-02-09 10:17

 

 

 

 

권력층 암투 고려묘지명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327번째로 공개된 고려시대 묘지명(墓誌銘). 하남역사박물관이 최근 입수한 이 묘지명은 고려후기에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광산김씨 가문의 화평군(化平君) 김광철(金光轍.1284-1349)의 것으로 길이 116㎝, 폭 47㎝다. 이 시기 고려사회에서 권력층 암투가 심각했음을 엿보이는 대목이 보인다. 2009.02.09.<< 문화부 기사참조 >>

 

하남역사博, 광산김씨 김광철 묘지명 입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려시대에는 묘지명(墓誌銘)을 대체로 무덤 속에 시신과 함께 매장했다. 이 묘지명에는 그 사람의 가문 내력과 행적을 적기 마련이다.

 

이런 고려시대 묘지명으로는 327번째 유물이 공개됐다.

 

하남역사박물관(관장 김세민)은 고려후기에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광산김씨 가문의 화평군(化平君) 김광철(金光轍.1284-1349)의 묘지명을 최근 입수했다고 9일 밝혔다.

 

길이 116㎝, 폭 47㎝인 이 묘지명은 다른 고려시대 묘지명처럼 검푸른 색을 띠는 청석(靑石)을 판형으로 다듬어 한쪽 면에 김광철의 행적을 자세히 새겼다.

 

일부 글자가 깨져 나갔지만, '○○○○金公墓銘'(김공묘명. ○는 깨져나간 글씨)이라는 제목을 전서체(篆書體)로 쓴 다음, 본문을 시작했다. 본문은 김광철의 가문과 그의 주요한 경력을 기술한 대목과 죽은 이에 대한 찬송문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명문을 검토한 고려사 전공 최규성 상명여대 명예교수는 "고려시대 묘지명은 글을 쓴 사람이 죽은 사람과의 관계를 밝힌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묘지명에는 그런 부분이 생략됐고, 나아가 이 시대 묘지명에서 흔한 '대원고려국(大元高麗國)'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광철은 '고려사'에 열전이 남을 정도로 광산김씨 가문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태현(金台鉉)의 둘째 아들로, 고려사에는 충정왕(忠定王) 원년(1349) 6월 병자일에 "화평군 김광철이 졸(卒)했다"는 아주 짧은 행적만 나와있다.

 

다만,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시대 묘지명 326점 중에는 그의 아버지 김태현과 생모인 왕씨(王氏), 그리고 그의 형 김광재 묘지명이 포함돼 있어 이 가문의 행적은 대강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묘지명을 통해 김광철이 17세에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 나간 이후 학문과 관계 깊은 직책인 예문관(禮文館) 대제학(大提學)을 비롯해 성균관 좨주(祭酒),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등의 요직을 역임했고 지제교(知製敎) 같은 문한직(文翰職)을 두루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 교수는 "김광철이 부친 못지않게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이 묘지명에 의하면 김광철은 죽기 전에 둘째 사위에게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이 반드시 즉위할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두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창부원군은 나중에 충정왕이 된다.

 

이런 언급은 이 시대 원 간섭기 고려 권력층에서 차기 권력의 향배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