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인연방/불교용어

향을 사르고 촛불을 밝히는 마음

by 연송 김환수 2013. 7. 20.

사찰예절 불자예절

향을 사르고 촛불을 밝히는 마음

 

 

 

1) 향을 사르고 촛불을 켜는 의미

 

우리 불자들이 사찰에서 피우는 향은 자신을 태움으로써 그윽한 향기를 발산합니다.

 

여러 모양과 빛깔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함께 몸을 태울 때 연기는 하나로 융합되어 모든 사람의 이기심과 아집을 뛰어넘은 화합을 보여줍니다.

 

향은 특별히 자신의 모습을 고집하지 않고 연기는 곧 사라져버리나,

주변의 모든 것 속에 분별없이 스며들어 그 향기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향기는 주거나 받는다는 분별심이 없이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모든 것에 스며들어 그 자체가 됩니다.

 

향은 어둡고 구석진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보고 훈훈한 향기를 심어주어 그것 자체의 향기가 됩니다. 이처럼 향은 화합과 자비의 실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양물입니다.

 

촛불은 자신을 녹여가며 그 맑은 물로써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탁하던 초의 몸이 불꽃에 녹아 맑은 물로 되고 그 맑음만이 새로운 불을 밝힐 수가 있읍니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신앙심과 실천은 우리의 마음을 맑게 정화하여 주고, 그 청정함이 있을 때만이 빛으로 화하여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초는 계속 자신을 태워가며 잠시도 한 모습에 머물진 않으나 끊임없이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 주는 것입니다.

 

청정함에서 태어난 광명의 불꽃으로 어둠 속에 다가가서, 무명업장을 태워버립니다. 이처럼 촛불은 지혜와 정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 초 공양을 올리는 마음

 

향과 초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계속 타오를 때만이 자기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읍니다.

 

자기의 현재 몸을 보존하기 위하여 몸을 태우지 않는다면, 결코 향과 빛을 낼 수가 없습니다.

향기를 발하고 빛을 밝히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을 태우지 않으면 불가능하듯이, 지혜를 구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자기를 헌신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보리수 아래서 증득하신 부처님의 깨달음도,

과거 한량없는 무량한 세월동안 수많은 몸을 받고 헌신하여

보살도를 수행하신 끝에 성취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께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촛불을 밝히고

향불을 사룬 후에 예불을 올립니다.

 

이는 먼저 우리들 중생을 위해 몸을 헌신하여 지혜를 구하고

자비를 실천하셨던 부처님의 은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

딸이 되겠다는 귀의와, 주위에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몸을 바쳐 살아가겠다는 서원을 올리는 것입니다.

 

. 촛불의식은 한 개의 향과 초가 자신을 태워 주위를 향기롭고 밝게 하듯이, 우리의 삶도 이와 같아온 세상이 밝고 향기로운 불국토가 되어 지기를 발원하며 기도를 하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3) 향과 초를 닳아 가는 신앙생활

 

우리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그런 만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행복을 가장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개인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면 결국은 우리 서로 대립하고 싸워 모두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의 이익을 빼앗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삶이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모습이며, 자신을 태워 주위에 향기와 빛을 주는 향과 초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위해 행동을 하면 대부분 자신의 이익이 감소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편하면 편한 만큼 누군가는 불편을 겪게 된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편하게 생활하는 모든 것에 타인의 노고와 고통이 들어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입는 옷과 먹는 음식 그리고 생활하는 집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와 농민과 그 외의 많은 분들의 은혜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향기와 밝은 빛이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향과 초와 같은 삶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향과 초가 몸을 태우는 일을 본받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힘든 것만도 아닙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최소한 자신이 맡은 부분은 자신이 하는 것, 그럼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편할 때 그만큼 수고한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는 마음,

그리고 그가 누구인가를 찾아 감사를 표하는 마음,

그 수고를 내가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없는가를 생각해서 실천하는 마음, 바로 이것이 생활과 삶 속에서 향과 촛불을 피우는 참다운 불자가 되고 자신이 향과 초가 되어 보살도 수행을 하는 길이며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전하고 함께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 보살도 수행의 시간과 공간되어 모든 불자들이 불국토에서 함께 하는 것이 부처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참다운 법입니다.

 

 

-----------------------------------------------------

 

향과 초를 공양하는 마음

 

초는 자신을 태워 남을 이롭게 하고

향은 그 연기가 뭉치듯 화합하겠다는 의미

 

불자들이 절에 가서 주로 올리는 공양은 향과 촛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향 공양, 초 공양은 가장 간단하고 흔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여기에도 일정한 규율이 있습니다.

 

공양 올리는 규율을 알아보기 전에 향 공양과 초 공양의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지요.

 

먼저 부처님 전에 촛불을 밝히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초는 자기의 몸을 태워 밝은 빛을 발산함으로써 어둠을 밝히고 남을 이롭게 하는 아름다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촛불공양을 올리는 마음도 나 자신을 희생시켜 남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서원, 즉 부처님과 약속을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촛불 공양을 올리더라도 왜 부처님 앞에 촛불을 켜는지 그 의미를 알고 행한다면 훨씬 그 의미가 크겠지요. 그 의미를 알고 나면 부처님 전에 촛불을 밝히는 마음이 더욱 경건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양의 의미도 모른 채 촛불을 켜는 것은 단순한 노동행위에 지나지 않겠지요.

 

향을 올리는 것에는 부처님께 아름다운 향기를 올려 찬탄하는 것과, 또 여러 개의 향이 타더라도 향 연기는 하나로 뭉쳐 합해지듯이 개인의 이기심을 버리고 모두와 화합하는 마음을 갖겠다는 부처님과의 약속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고 청량감을 주는 향으로 부처님께 최상의 공양을 올리며 그 향연처럼 대중이 화합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겠습니까.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향 공양을 드리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다른 불자들이 부처님 전에 향 공양을 올렸다면 다음 기회로 공양을 미뤄야 합니다.

 

누구든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렸으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내가 올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따금씩 법당에 가보면 향로에 향이 빼곡히 꽂혀 뿌연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해롭듯이 향도 지나치게 많이 피우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앞에서 독경과 염불을 하는 스님들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내 초, 내 향을 올려야 한다는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그것도 부처님께서 버리라고 가르치신 욕심에 해당하니까요.

 

그러면 지금부터 향·초를 올리는 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촛불을 켤 때에는 오른 손으로 초를 잡고, 왼 손으로 받들어 촛대에 반듯하게 꼽고 불을 켭니다.

 

향을 올릴 때도 마찬가지로 오른 손으로 향을 쥐고, 왼 손으로 받들어 촛불에 불을 붙여서 향로 가운데에 반듯하게 꼽습니다. 혹시 초가 다 타서 바꾸어 꽂을 때 촛농이 탁자 위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향로에 향을 꽂고 나면 다시 합장을 한 채 뒷걸음질로 조심조심 물러나 반 배를 하고 몇 걸음 더 물러 나와 3배를 올립니다.

 

3배를 올릴 때는 스님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어간(복판, 가운데)을 피해 가급적 법당의 양쪽 편에 자리를 잡고 절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아 공간이 따로 없을 때라든가 어간을 이용해야만 할 부득이한 상황일 때는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흔히 법당에 사람이 많이 모이면 자리가 좁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앞에서부터 조금씩 당겨 앉는 양보하는 마음을 내야합니다. 뒤에는 자리가 없어 우왕좌왕 하는데 앞에서는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지요. 이래서는 안되겠습니다. 촘촘히 앉아서 더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할 수 있도록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경전은 가급적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독송을 하고, 절대로 경전을 발로 밟거나 넘어 다녀서는 안됩니다.

 

경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법보(法寶)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경전 위에 다른 물건을 올려놓는 것도 엄격히 금하고 있지요.

 

경전을 소중히 여기지 않거나 공경하지 않으면 아주 박복해지고 지혜가 사라지는 과보를 받는다고 합니다.

 

=====================================================

 

[법회기초상식] 2.초 밝히는 마음

 

무명을 걷고 자성을 보라

 

데스크승인 2013.07.16 16:50:43

안직수 기자 | jsahn@ibulgyo.com

 

빛 공양 풍습은 부처님 당시부터 전통

향은 이기심.아집 뛰어넘는 화합 상징

 

법당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촛불을 켜고, 향을 공양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경건한 공양이 바로 향과 초 공양이다.

 

법당에서 반배를 올리고 초를 밝힌다. 초를 올릴 때는 오른손으로 초를 잡고 왼손으로 받들어 촛대에 반듯하게 초를 꽂은 다음 불을 켠다. 그리고 한발 물러나 합장 반배를 한다. 초는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힌다. 이처럼 초를 밝히는 것은 내 무명의 어둠을 밝히고,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는 고체연료에 심지를 넣고, 삼투압 효과로 심지가 서서히 타 들어가면서 빛을 발하는 원리다. 초는 정성의 상징이었다. 과거에는 벌집을 정제한 밀납이나, 쇠기름, 콩기름 등으로 만들었다. 서민들은 주로 콩기름이나 쇠기름을 굳혀 직접 초를 만들어 부처님 전에 올렸다. 한해 수확을 마치고 얻은 기름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마음이 바로 초 였다. 현재는 석유에서 추출한 파라핀 성분으로 만드는데, 온도가 높은 동남아시아에서는 팜나무나 야자나무 기름을 정제해 액체 상태로 등불을 올린다.

 

빛을 공양하는 풍습은 부처님 재세시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전통이다. 난다라는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께서 마을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동냥을 해 얻은 돈으로 기름을 사서 등을 올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다른 등은 모두 꺼졌지만, 가난한 여인이 올린 작은 기름의 등불은 밤이 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여인의 정성이 담긴 초는 바람이나 물리력으로도 끌 수 없다며 여인을 위해 수기를 내리셨다. 그 이야기는 빈자의 일등이란 이야기로 전해지면서 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초는 어둠을 밝히는 것을 상징하면서, 물질의 변화를 보여주는 공양물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모든 법은 항상 머물지 않고, 모든 물질은 항상 변화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초는 45~65에서 녹으면서 노란색 부분(물을 생성)1400에 달하는 파란색(기화되는 부분) 두 부분으로 빛을 발한다. 액체를 굳혀 고체로 만들고, 여기에 불을 가해 기체와 액체로 다시 흩어지는 물질변화의 원리를 촛불을 통해 볼 수 있다.

 

태어나서 병들고 늙고 죽는 것처럼, 우리의 생은 변화한다. 마치 고체인 초가 열에 녹아 액체로, 기체로 사라지듯이. 하지만 빛은 물질의 변화에도 항상 밝은 상태 그대로다. 마치 우리의 본성이 그러하듯이”. 초를 통해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삼법인의 가르침을 돌아볼 수 있다.

 

초를 밝히고 나면, 향 공양을 올린다. 향 하나를 두 손으로 들어 촛불에 대어 불을 붙힌 다음 가운데 자를 그리듯 향로에 꽂으면 불이 자연스럽게 꺼지면서 향이 오른다. ‘형태로 향을 꽂는 것은 마음의 중심, 중도사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향은 주변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화합의 의미를 지닌다. 향로에 여러 개의 향을 꽂아보자. 각각의 향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조금 지나면 하나로 합쳐져 올라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향의 특성으로 인해 향은 이기심과 아집을 뛰어넘는 화합을 상징하고 있다.

 

향은 특유의 향기를 갖고 있다. 이 향기가 주변의 탁한 기운을 흡수하고 흩어진다. 집안에 냄새가 잘 빠지지 않을 경우 향을 피운 다음, 창문을 열면 냄새가 사라진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 다른 냄새를 머금지만 그 냄새를 대체해 머물지 않고 사라진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주변의 허물을 감싸앉고 이를 머물게 하지 않고 흩어줌으로써 세상을 정화시키는 마음.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대자대비이며, 보살의 실천행이 아닐까.

 

향과 초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많은 가르침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향과 초를 밝힘으로써 법회 공간을 청정하게 하는데서, 신행이 시작된다.

 

[불교신문2929/2013717일자]

 

 

몰라몰라 .....   어디 사는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