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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스크랩] 오늘의 소사 (10/07)

by 연송 김환수 201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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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우들과 기도… 욕심없이 살죠”



[서울신문]

“우리는 최고다!” “최~고~다~아~”지난 4일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우리마을’. 말 그대로 맑은 공기와 따스한 가을 햇살이 머무는 곳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50여명의 장애우들이 식탁에 모여 앉았다. 숟가락을 들기 직전이었다. 김성수(시몬·80) 대한성공회 주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우리는 최고다.”라고 먼저 외친다. 그러자 장애우(여기서는 다들 친구로 부른다)들도 큰소리로 따라했다. 이어 잠시 기도를 한다. 말이 어눌한 친구들도 더러 있었지만, 어쩌면 반복됐던 말인지도 모르지만,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며 친구와 우정을 같이했다.

‘우리마을’은 지적장애인 직업재활시설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서 10년 전에 설립했다. 김 주교는 성공회대 총장을 그만두고 1년 전 부인 후리다(78) 여사와 함께 이곳으로 낙향했다. 현재 ‘우리마을 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또 있다. ‘콩나물공장장’이다. ‘우리마을’의 주 수입원인 콩나물 공장 역시 장애우들이 직접 가꾸고 다듬는다.

김 주교는 공장에 들러 “우리는 최고”라는 말로 수시로 격려해준다. 최근에는 삼성 그룹 계열사에 납품할 정도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순수 국산콩을 사용하며 2005년 친환경농산물 인증까지 받은 ‘우리마을’의 효자상품이다.

“저 친구들 보세요, 욕심도 없어요. 순수하고 영혼이 맑은 친구들이지요. 저런 친구들과 늘 함께 지내다 보니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이곳 친구들의 평균 나이는 37세. 팔순의 김 주교는 나이도 잊은 듯 마냥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마을’ 친구들은 콩나물과 버섯 재배 등 무공해 자연농법과 전기부품 조립 등 직업교육을 통해 자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를 초청해 제빵기술도 배운다. 아니 즐거울 수가 없을 터. 한 달에 20만원에서 많게는 70만원의 월급을 받는 날이면 ‘기분 짱’이다. 스스로 값진 보람이다.

훈훈한 화젯거리도 있다. 최대한 짧게 말해야 간신히 알아듣는 유아 수준의 지적장애인 이혜련(34)씨는 얼마 전 첫 월급 25만원을 받아 홀어머니한테 속옷을 선물했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바보’라고 손가락질만 받고 살았던 이씨가 난생 처음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효도를 했던 것. 선물을 받던 날 이씨의 어머니와 이웃이 함께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이런 얘기를 듣고 다들 감동한다고 김 주교는 설명한다.

“우리마을에는 10명 중 4명꼴로 아직도 신발끈을 못 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그런 친구들에게 신발끈을 매주고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비오는 날 그냥 우산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도 있지요. 장애우들에겐 같이 일할 자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김 주교가 ‘우리마을’ 친구들로부터 배우는 것은 또 있다. 정상인보다 의지나 의식이 약하기 때문에 욕심 없이 산다는 것이다. 삶에서 ‘욕심 없이 사는 것’ 하나만 배워도 소중한 것 아니냐고 강조한다. 마음을 열고 이웃을 섬기고, 장애우 빈민 등 약자들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주교는 최근 제12회 ‘길상면민의 날’ 행사로 열린 마을운동회 때 소중한 상을 받았다. 길상면민이 주는 ‘제1회 길상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 면장이나 군수가 아닌 이웃 주민들이 주는 상이기에 기꺼이 받았다. 낙향해 아름답게 살아가는 김 주교에 대한 고운 시선이 아닐까 싶다.

“콩나물을 많이 팔아 돈을 벌게 되면 장애우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줄 수 있는 시설을 늘렸으면 합니다. (잠시 창밖을 보다가) 장애우는 대부분 치아가 약합니다. 복지국가라면 ‘우리마을’ 같은 시설에 은퇴한 간호사라도 파견해 줬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우리마을’의 또 하나의 꿈은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같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김 주교는 나직이 말했다.

강화 김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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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화폐속의 인물 보어 (덴마크-) 출생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 10. 7 ~ 1962. 11. 18.

2003년 발행 500 Kroner, 덴마크의 물리학자.노벨 물리학상 수상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 계의 에너지는 일정한 불연속적인 값들로 제한되어 있다는 양자론(量子論)을 원자구조와 분자구조에 최초로 적용했다. 그는 거의 반세기 동안 양자물리학을 이끌어온 인물로서 주요한 공헌을 했으며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885년 10월 7일 코펜하겐에서 출생하였다. 1903년 코펜하겐대학교에 들어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1911년 논문 〈금속의 전자론(電子論)〉으로 학위를 받았다.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J.J.톰슨, 맨체스터대학교의 E.러더퍼드 밑에서 연구하였다. 당시 러더퍼드의 연구실에서는 α선 산란(散亂) 실험이 행해졌고, 러더퍼드는 원자의 핵모형(核模型)을 제출하였다. 귀국 후 1912년 코펜하겐대학교 강사가 되어, 원자모형 연구에 착수, 러더퍼드의 모형에 플랑크의 양자가설(量子假說)을 적용함으로써 원자이론을 세우고, 수소의 스펙트럼계열 설명에 성공하였다(1913).


후에 이것은 정상상태(定常狀態)의 개념을 전제로, 양자조건 및 진동수 조건으로 규정된, 보다 일반적인 원자이론으로 정리되어 보어의 원자이론이 되었다. 이 이론으로 고전론(古典論)과 양자론이 결합되었고, 양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복사(輻射) 이외의 경우에도 적용, 원자의 구조와 원자스펙트럼을 밝혀졌으며, 전기(前期)양자론 연구의 계기가 되어, 후에 양자역학으로 발전하였다.


1916년 코펜하겐대학 이론물리학 교수가 되었고, 강좌에 부속된 연구소 신설을 제의, 1921년 그 소장이 되었다. 이것이 코펜하겐대학 이론물리학연구소이며, 새로운 물리학 연구의 중심으로서, 많은 인재를 길러 물리학 발전에 공헌하였다. 이 연구소에서 양자론, 즉 양자역학의 개발을 추진했는데, 특히 대응원리(對應原理)와 상보성원리(相補性原理)를 제창했다. 1922년 원자구조론 연구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30년경부터 연구는 원자핵으로 기울어, 원자핵을 원자의 경우에 비해 보다 고전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지적, 핵반응을 설명하는 액적모형(液滴模型)을 제출, 증발이론으로서 핵반응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에 건너가 맨해튼계획에도 참가하였고, 전후에는 코펜하겐으로 돌아갔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무기의 발달에서 생긴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들 문제의 연구를 공개하도록 주장, 국제연합에 공개장을 보내는 등(1950) 정치적 행동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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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미국 31대 대통령에 당선되다

 

허버트 후버(Herbert Clark Hoover, 1874-1964)는 1928년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일년 후 20세기의 가장 극심한 세계적 경제 재난에 직면했다. 후버는 정부의 개입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경제는 그 스스로 개선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대공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후버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 침체기가 시작되었을 때, 미국인들의 단결과 경제활성을 위해 4가지 대 공사를 계획했다. 그러한 공사는 첫째 뉴욕시에 만들어진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둘째는 유타주 국립공원내의 터널, 셋째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의 경계를 이루는 후버댐 건설, 넷째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건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사를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버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공사와 함께 옳지 못한 것들을 많이 수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공사에 참여할 인부를 구할 수 없자 바로 이 주변에 매춘과 도박과 도박을 허용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1932년 후버가 재선을 위해 경선에 나섰을 때 인기는 하락하였고, 경제상태도 나아지지 않아 수백만의 사람들이 여전히 실업상태에 빠져 정부가 건설적인 행동을 취해줄 것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서 후버는 뉴욕 주지사 프랭클린 딜레노 루스벨트(Frankline Delano Roosevelt, 1882-1945)에게 패하고 말았다.

특히 후버대통령은 승용차를 좋아했는데 캐딜락이 백악관 전용차가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러나 인기하락과 더불어 대통령 재선에 실패하였지만 후버대통령은 은퇴 후에도 거의 30년 동안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펼쳤다. 그 중 대표적인 활동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대통령 H.S.트루먼의 요청으로 세계의 식량문제를 개선하는데 노력하였고 행정부문 재편성위원회(후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모습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미국대통령의 은퇴 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카터대통령의 행적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면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의 행적은 실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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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년 김형욱 前 중정부장 파리서 실종


1977년 6월 23일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서 증언하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저녁 7시, 파리의 한 카지노에서 나간 이후 그를 봤다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1979년 10월7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갑자기 파리에서 실종됐다. 김형욱은 10월1일 뉴욕에서 파리에 도착, 리츠호텔에 묵다가 실종당일 웨스트엔드 호텔로 옮겨 짐을 풀고 오전 11시30분쯤 ‘키 큰 동양인’과 함께 카지노에 들렀었다.

실종을 둘러싸고 여러 설들이 난무했지만 사람들은 우리 정보기관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6년3개월동안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며 박정희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역을 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망명, 미 의회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해 박 대통령의 표적이 됐다는게 근거였다. 이 때문에 김형욱이 미국에서 회고록을 출간하려 할 때 막후 협상을 벌였던 김재규 중정부장과, 박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할 줄 아는 불같은 성격의 차지철 경호실장이 주로 배후인물로 의혹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 관련자들이 이미 죽었거나 입을 닫고 있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1991년 서울 가정법원이 실종 5년만인 1984년 10월7일자로 김형욱에게 실종선고를 내려 그는 법적으로 사망자로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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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성리학자 김굉필 세상떠남


1571년  레판토 해전(Battle of Lepanto)이 벌어짐. 이 전쟁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오토만 투르크(Ottoman Turks)가 베네치아에게서 시프러스를 빼앗자, 베네치아와 제노바 및 에스파냐의 신성동맹군이 레판토 앞바다에서 투르크군을 공격하면서 발생, 신성동맹군의 승리로 끝남


1573년  윌리엄 라우드(William Laud), 캔터베리 대주교 출생

1747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초대 총장 디킨슨 사망


1806년  영국 발명가 랠프 웨지우드(Ralph Wedgwood)에 의해 처음으로 카본지(-紙 : carbon paper)가 발명됨


1849년   ‘검은 고양이’ 원작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미국 소설가, 시인 세상떠남


1879년  독일-오스트리아 동맹 성립

1885년  닐즈 보어(Niels Bohr), 덴마크 물리학자 출생

1886년  미국 선교사 스크랜튼, 서울에 병원 개설

1894년  미국의 의학자 겸 문필가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 세상떠남

1910년  일제, 조선귀족 75인에 작위 수여


1917년  한강 인도교 준공. 이 다리는 1926년 7월 대홍수로 소실되고 이후 1937년 한강대교 준공 


1919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 항공 KLM이 설립됨.

1928년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됨

1929년  서울에서 경평축구대회 개최 

1931년  데즈몬드 투투(Desmond Tutu), 케이프 타운 대주교 출생

1939년  클리브 제임스(Clive James), 오스트레일리아 비평가, TV 뉴스캐스터 출생


1940년  독일군, 루마니아 진주

1943년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 영국 작가 세상떠남

1946년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

1949년  동독, 즉 독일 민주 공화국(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이 세워짐


1950년  유엔총회, 38선 이북 진격과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설치 결의

1950년  전남일보 창간


1955년  앤더슨, 흑인 첫 뉴욕 오페라단에 

1955년  요요마(Yo Yo Ma), 중국 첼리스트 출생


1957년  한미우호통상-항해조약 비준서 교환


1958년  처음으로 달 뒷면을 찍은 사진이 소련 탐사선 루닉 1호(Lunik I)에서 전송되어옴

1958년  파키스탄서 쿠데타


1959년  미국 테너 가수 마리오 란자 사망


1961년   한국음악협회 발족

1961년  일본-소련 국교회복 공동선언

1961년  프랑스원자력위원회, 정부의 지상핵실험 완료를 발표


1964년  한국-우루과이, 국교 수립

1967년  클레어렌스 버드세이어(Clarence Birdseye), 미국 급속냉동 발명가 세상떠남

1969년  진주 남강 다목적댐 준공


1970년  닉슨, 인도차이나휴전 5개항 제시

1970년  사다트 이집트대통령 취임


1975년  동독-소련 새 우호조약 조인

1975년  서해 소흑산도 근해에서 무장간첩선 격침.


1977년  등소평(1904~1997), 남북통일 직접대화로 해결 희망.

1978년  충남 홍성 지진 발생(가옥 2800여채 균열, 강도 4) 

1979년  김형욱 前 중정부장 파리서 실종 


1980년  내무부, 인구 2만이상 면을 읍으로 승격

1980년  대학교수 겸직금지조치 해제


1981년  한국-일본 대륙붕 공동개발. 7소구 시추 개시


1982년  미국-소련 전략무기감축회담(START I) 재개

1982년  중국, 잠수함발사 미사일(SLBM)실험 성공


1985년  이탈리아의 정기운항선 '아칠레 라우로(Achille Lauro)'호가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에게 습격을 당함


1988년  회색 고래(Grey whales)가 알래스카의 얼음 밑에서 덫에 걸려 동물 보호의 경종을 울리며 국제적 보호 기금의 대상이 됨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 방한

1989년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 미국 여배우 세상떠남


1992년  남한 조선노동당 간첩 검거.

1992년  미국-캐나다-멕시코, 북미자유무역협정 가조인


1993년  아그네스 드 밀(Agnes De Mille), 미국 발레 안무가 세상떠남

1993년  흑인여류작가 토니 모리슨 노벨문학상 수상 


1994년  닐스 예르네(Niels Jerne), 덴마크 면역학자, 미생물학자 세상떠남

1994년  독일 유학 부부 간첩 자수.

1994년  제26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개최(워싱턴), 한반도 위기시 FDO전개 합의

1994년  중국 또 핵실험.

1994년  한국-체코 문화교류협정 체결


1995년  대북 쌀지원 마지막 출항. 15만톤 지원하고 남북관계 더 악화.

1996년  북아일랜드 리즈번(Lisburn)의 영국 군부대에서 두 대의 IRA군 차가 폭발, 21명의 군인과 10명의 민간인이 부상당함

1997년  미국, 땅속공격 전술미사일(ATACMS) 개발중. 90년 첫생산후 신형모델 연구.


1998년  ‘매슈 사건’ 발생, 동성애자 매슈 셰퍼드(21) 나체에 구타당한 채로 발견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일본 방문(~10.10)

1998년  탤런트 이낙훈씨 별세 


2001년  '철인' 칼 립켄 주니어, 메이저리그 은퇴

2001년  미군,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군사거점 공격 

2001년  케냐 은데레바, 여자 마라톤 세계신기록 


2002년  강화도에서 돼지콜레라 발생

2002년  인터넷주소자원관리 공청회 개최

2002년  일본서 인체통신장치 개발 

 

2005년 차세대 전투기 F-15K 한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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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출처 : 화폐수집-여행과 자유 (화여자)
글쓴이 : 노가다귀족/평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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