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스크랩] 오늘의 소사 (10/01)

by 연송 김환수 2010. 10. 1.

 

---------------------------- 오 늘 의 관 심 뉴 스 ------------------------------------

'고연전' 헌혈증 50장, 위독한 산모 살렸다


2009 정기 고연전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11일 오전 `2009 정기 고연전'이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학생들이 힘차게 응원을 하고 있다. 2009.9.11 see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고려대생들이 축제기간 사랑을 나누고자 기증한 헌혈증 50장이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던 산모에게 전해져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긴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30일 고려대에 따르면 이 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박지홍(23)씨는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1일 출산하려고 지방의 한 종합병원에 간 막내 누나가 출혈이 심해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발을 동동 굴렀다.

경북 안동의 한 병원 분만실에 있던 박씨 누나는 아기를 낳고서 자궁이 수축하지 않는 자궁 근육무력증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의료진은 혈관에 수축약을 투여하는 조처를 했으나 박씨 누나는 8시간가량 피를 흘리며 버티느라 400㎖ 분량의 혈액 팩 50개(20ℓ)를 수혈받아야 했다.

이는 50명이 헌혈해야 모을 수 있는 혈액량으로 몸속의 피를 다 바꾸는 '교환수혈'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수술을 마친 박씨 누나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박씨는 헌혈증 50장을 구해 제출하거나 수혈비용으로 갑자기 목돈을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고민하던 박씨는 지난 24일 고려대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들러 학교 홈페이지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원센터에 들른 김한겸 고려대 학생처장이 우연히 이 소식을 전해듣고는 곧바로 지난 축제기간 '헌혈 고연전'에서 고대생이 기증한 258장의 헌혈증을 떠올렸다.

고대 총학생회와 사회봉사단은 이처럼 학기 중 헌혈 행사를 지속적으로 펼쳐 온 덕분에 헌혈증을 556장이나 갖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는 긴급회의를 거쳐 소아암 병동 등에 기부하려던 헌혈증 일부를 사정이 급한 박씨에게 건네기로 했다.

박씨 가족은 이렇게 구한 50장의 헌혈증을 병원에 낼 수 있었다. 박씨 누나는 두 달 더 병원 신세를 져야 하지만 경과가 좋아 얼마 전 일반병실로 옮겼다.

지난 24일 박씨는 고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 게시판에 동료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글을 올렸다.

박씨는 "누나가 출산을 해봐야만 알 수 있다는 자궁 근육무력증이 있는 걸 뒤늦게 알았고 수술하느라 수혈을 많이 받아야 했다. 온 집안이 누나 걱정이었고 이곳저곳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학교에서 도와줘 감동했다"고 썼다.

그는 "혈액을 나눠 주셔서 누님이 살 수 있었다. 여러분이 나눈 피로, 빨간 나눔으로 참 행복했다"며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yjkim84@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오-늘-의--소-사---------------------------------------

 

1883년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 창간

 

한성순보는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당의 언론기관으로 창설되었다. 한성순보는 근대적인 형태를 갖춘 신문의 효시로서 월 3회 발행되었다.

원래는 국한문체를 목표로 했으나 활자가 미처 준비되지 않아 결국 순한문으로 표기. 이 한성순보의 영향으로 민간신문이 속출하게 된다.

 

------------------------------------------------

1926년   나운규감독 영화 '아리랑' 단성사에서 개봉

 

민족영화 '아리랑'의 한 장면(1926)

초기 한국 영화 걸작 '아리랑'은 1926년 4월말 안암골(지금의 서울 안암동)에서 첫 촬영에 들어갔다. 당시 안암골은 기껏 초가집 십여 채만 있는 산골이었다. 풍년 잔치를 벌이는 장면을 찍기 위해 엑스트라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자 무려 800명이나 몰려들었다.

추운 날씨에 고생을 덜기 위해 술을 대접했는데, 취한 엑스트라들이 싸움을 벌여 난장판이 됐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자 나운규는 극장 직원들에게 고깔을 씌우고 징과 북을 두들겨가며 춤추게 했다. 이를 보고 모두들 함께 춤추기 시작했고 나운규는 이 장면을 찍어 영화에 삽입할 수 있었다.

'아리랑'은 촬영 기간 4개월에 제작비 1200원을 들여 천신만고 끝에 촬영을 끝내고 1926년 10월 1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꽤 인기를 끌었지만 처음부터 폭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가고 동냥의 쪽박이 웬말인가"하는 가사가 문제되어 전단 1만장이 압수되기도 했다. 당시 단성사는 하루에 한번, 오후 7시에 영화를 틀었는데 '아리랑'은 5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어 지방에서 수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며 장장 5년간에 걸쳐 최고 흥행작으로 손꼽힐 정도로 빅히트를 기록했다.

나운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까지 맡은 연출 데뷔작 '아리랑'은 한국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전까지의 감상적 신파 영화와는 다른 충격을 안겨줬다. 피폐한 농촌 삶을 사실적으로 다뤄냈고 사이 사이에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았다. 영화 미학적으로도 서구 몽타주 이론을 적극 소화해 내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26년에는 한국영화 제작이 3편에 불과했지만, '아리랑'의 성공에 고무되어 다음해에는 무려 14편이나 만들어졌다.

 

---------------------------------------

1946년  대구 십일 민중 항쟁이 시작되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주변 강대국의 이해타산과 좌·우 이념 대립에 따른 남과 북의 갈림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주고 있다. 1946년 10월 1일에 일어난 대구의 민중 항쟁은 이런 아픔의 서막 격이었다.

해방된 지 1년 조금 지나 일어난 이 항쟁의 배후에는 사회교란을 목적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와 책동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책동과 조종이 주효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남한의 행정을 담당한 미군정의 거듭된 실정도 한몫 거들었다.

해방을 맞은 남한의 많은 공장들은 기술과 원료의 부족, 기업주의 운영 기피 등으로 조업을 중단하거나 단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다 남한 총 자산의 8할 정도를 점하는 주요 사업체와 농지를 접수한 미군정이 원칙 없는 경제정책을 전개함으로 말미암아 공업·농업부문의 생산감소는 물론 대량 실업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게다가 1946년에 들어서자 미군정은 미곡수집령(1946.1.25)을 발표하였는데, 이 때문에 식량이 부족하고 물가가 앙등하는 등 심각한 경제문제가 발생하여 민중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한편 군정 초기 미군정은 좌우익을 막론하고 정치활동을 허용해 왔었다. 그러자 공산주의자들은 이 틈을 타서 세력 확장에 나섰으며, 갖가지 파괴활동과 파업 등을 선동하였다. 때마침 터진 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은 더 이상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 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이들의 활동을 불법화하였다.

위기에 직면한 공산당은 미군정에 대한 기존의 유화적인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전술을 채택하였다. 9월 총파업은 이러한 정세하에서 좌익이 새로이 채택한 전술이었다. 이들은 9월 24일 전국적인 규모의 철도파업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대구에서는 좌익단체의 하나인 대구노동평의회가 주동이 되어 철도파업에 대한 동정파업을 일으켰다. 이에 경찰은 파업조종자의 색출과 파업의 금지에 나섰다. 이로 인해 경찰과의 충돌이 벌어졌으며, 이 사태가 대구의 10월 민중 항쟁을 유발한 직접적 원인과 동기가 되었다.

대구노동평의회 측과 경찰의 충돌은 폭력사태로 발전되고 격화되었다. 10월 1일의 데모는 밤늦게 진압되었지만, 2일 아침 일찍부터 다시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군중은 경찰서를 습격·점령하고 무기를 탈취하였으며, 경찰관이나 고급관리 및 사회 주요인사들의 집을 습격하였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당국은 2일 오후 늦게 대구지방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인근 각지의 경찰병력을 집결시키는 한편, 미군부대의 응원을 받아 데모 진압과 치안 회복을 서둘렀다.

이 항쟁은 다음날인 3일 충청남북도의 경찰병력 700여 명이 증파됨으로서 진정되었다. 당국은 이 사건으로 희생된 자가 사망자 20명, 중상자 50명, 행방불명자 30명이라고 발표하였으나, 실상은 그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항쟁을 계기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그리고 제주도에서까지 크고 작은 소요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

BC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페르시아 대왕 다리우스 3세의 최후 결전-가우가멜라 전투

 

1136년  영국의 베켓(Becket)대주교, 헨리 2세의 교회재판권 요구를 거절

1207년  헨리 3세(Henry III), 잉글랜드 왕 출생

 

1542년  서애 유성룡 출생

1593년  임진왜란으로 피란간 선조 한성으로 환도

1684년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프랑스 극작가 세상떠남

1685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6세 출생

1708년  존 블로(John Blow), 영국 작곡가 세상떠남

 

1728년  미국 정치가 로버트 리빙스턴 사망

1791년  러시아의 소설가 악사코프 출생

1795년  벨기에(Belgium), 프랑스 공화국의 일부가 됨

1843년  영국의 가장 인기있는 일요 신문 <더 뉴스 오브 더 월드(The News of the World)>가 처음 출판됨

1865년  폴 듀카(Paul Dukas), 프랑스 작곡가 출생

 

1878년  에드윈 랜드셔(Edwin Landseer), 영국 화가 세상떠남

1882년  게룬 국제금은양본위회의 개최

1883년  한성순보 창간되다 

1884년  독일-소련-오스트리아 3제(帝), 폴란드에서 회담. 독일-소련 밀약 성립

1903년  미국 프로야구 제1회 월드시리즈 개막

 

1904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우크라이나 태생 미국 피아니스트 출생

  

1908년  학회령 실시(한일학회의 단속강화)

1908년  헨리 포드(Henry Ford)에 의해 디트로이트에서 T형 자동차의 첫 모델이 만들어짐

 

1910년  조선총독부 설치, 초대 총독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임명

 

1911년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독일 철학자 세상떠남

1914년  최남선, 대중계몽잡지 '청춘' 창간

1917년  면(面)제 시행

 

1918년  조선 식산(殖産)은행 설립

1918년  파이잘(Faisal)의 아랍 군대가 영국군 장교 로렌스(T E Lawrence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함께 터키군으로부터 다마스커스(Damascus)를 빼앗음

 

1920년  월터 매튜(Walter Matthau), 미국 영화배우 출생

1920년  총독부, 전 사법관에 법복 착용을 지시

 

1922년  경성시립도서관 개관

1923년  영국의회, 자치령 제국의 외국과의 조약체결권을 승인

1924년  지미 카터(Jimmy Carter), 미국 39대 대통령 출생

 1925년  페르시아의 카쟐왕조 멸망

 

1926년  나운규감독 영화 '아리랑' 단성사에서 개봉 

1926년  조선총독부 청사 준공.(1997년 2월 28일에 완전철거)

 

1933년  리처드 해리스(Richard Harris), 영국 배우 출생

 

1935년  줄리 앤드류스(Julie Andrews), 영국 여배우, 가수 출생

1935년  철도박물관 개설

 

1936년  프랑코(Francisco Franco)장군, 스페인 국민당 정부의 수반 및 군총사령관이 됨

 

1938년  독일군, 뮌헨 조약(Munich Agreement)으로 히틀러에게 넘겨진 수데텐란드(Sudetenland)와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에 입성.

 

1942년  조선청년특별연성령 공포(17세~21세까지 훈련 실시)

 1945년  조선체육회 발족(회장 이병학)

 

1946년  뉘른베르크 재판 판결(독일 전범 12명에게 교수형 판결)

1946년  대구 10.1 사건 (좌익폭동)발생 

1946년  조선해안경비대 총사령부 이전(진해→서울)

 

1947년  방송호출부호 HAKA Z까지로 변경

1948년  한글전용법 국회 통과

 

1949년  3군 보도과를 국방부 정훈국에 통합

1949년  공군 창설(육군항공국 해체)

1949년  모택동(Mao Zedong)을 수반으로 하여 중화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이 선포됨

1949년  신태영 준장을 소장으로 진급시켜 육군총참모장에 보임

1949년  유승열 대령을 제1사단장에 보임

1949년  유엔총회, 한국단독초청안 가결

1949년  육군 총참모장(채병덕)과 제1사단장(김석원), 남북교역사건으로 예비역에 편입

1949년  제2차 옹진지구 전투사령부 설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50년  국군 수도사단 및 제3사단, 38도선 돌파

1950년  국군, 항공병과 창설 

 

1951년  대한신문 발족

 

1953년  미국의 화가 존 마린 사망

1953년  孫元一 국방부장관, 반공포로 시위 발포에 관한 중대경고 발표

1953년  제5군단 창설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정식조인(1954.11.17 발효)

 

1955년  사관학교설치법 공포(법률 제374호)

1955년 해방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 개최

 

1956년  국군의 날 제정.

 1957년  일본,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선출

 

1958년  미국, 국립항공우주국(NASA) 설립

1958년  한국-태국, 국교수립

 

1959년  세계은행총회, 제2세계은행 설립 가결

1959년  제1전투단을 제1공수특전단으로 개편

 

1960년  나이지리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1년  미 프로야구 선수 로저 매리스, 연간 61홈런 신기록 수립

 

1962년  네덜란드, 34년간의 서부 뉴기니아 통치 종식

1962년  동경서 한국 등 21개국 참가 아시아반공대회 개막

1962년  사이프라스와 문화교류협정 체결

1962년  한국-가봉, 국교수립

1962년  한국-파나마, 국교 수립 발표

 

1963년  알제리아 벨라대통령, 모든 프랑스인소유토지의 국유화 선언

1963년  한국신문연구소 발족

 

1964년  세계최초 고속전철 신칸센(新幹線) 개통 

1966년  인구 센서스 시작 

1969년  영-불 공동 개발한 여객기 '콩코드' 세계최초로 초음속 비행 

 

1971년  '퇴폐풍조' 단속

1971년  세계에서 가장 큰 놀이 공원 디즈니월드(Disneyworld), 플로리다에서 오픈

 

1972년  루이스 세이무어 바젯 리키(Louis Seymour Bazett Leakey), 영국 문화인류학자 세상떠남

1973년  유엔정치위, 남북한 무조건 동시초청안 가결

1974년  육군 제7, 9공수특전여단 창설

 

1975년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에게 14라운드 TKO 승

1975년  장관급 장교계급장 변경(하단에 무궁화 및 월계수잎 추가)

 

1977년  미-소, 중동평화안 합의.

1978년  투발루, 영국으로부터 독립

1979년  로이 해리스(Roy Harris), 미국 작곡가 세상떠남

 

1980년  공군작전사령부 전술항공통제본부(TACC) 운영

1980년  중국항공기, 미국-중공(시애틀~북경)간 첫 취항

 

1981년  동서독, 대규모 간첩교환

 

1982년  헬무트 콜(Helmut Kohl),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의 뒤를 이어 서독 연립내각 총리로 취임

1982년  CD(콤팩트 디스크) 플레이어 발매 시작

 

1987년  우리나라, 세계저작권조약(UCC) 가입 

1988년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소비에트 최고회의에 의해 소련의 대통령으로 선출됨

 

1990년  국방부, 표지장을 10종에서 25종으로 패용제도 확대

1990년  국방정보본부 직제개정(대통령령 제13118호)

1990년  여의도 광장에서 제4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거행

1990년  합동군제 합동참모본부 창설

1990년  해군본부, 서울시 예산지원(29억원)으로 거북선 건조, 한강에 취항

 

1991년  駐러시아 한국무관부 설치

 

1994년  팔라우, 미국으로부터 독립

1994년  KBS 1TV 광고 폐지, 시청료징수 시작

 

1996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최덕근 영사 괴한에 피살. 북공작원 범행추정.

1996년  육군, 러시아제 BMP-3 장갑차대대 창설

1996년  AG(호주그룹) 가입

 

1997년  신포 경수로 공사중단. 김정일 사진 실린 노동신문 훼손트집. 북노동자 숙소봉쇄, 5일 북에 근로자 안전보장 요구. 6일부터 작업재개.

1997년  육군, 제2훈련소 및 각 병과학교 신병들의 부대배치 결과를 가정통신문으로 부모에게 직접통보제도 시행

1997년  UNESCO에서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을 세계기록자산으로 지정.

 

1998년  국군포로 장무환씨(72), 45년만에 탈북귀환. 조창로, 양순용씨에 이어 세번째 탈북국군포로.

1998년  정부기록보존소, 구월산유격대 기록 공개 

1998년  제3차 북미 미사일 회담(뉴욕, ~10.2)

 

2000년  전자서명법, 미국에서 정식 발효 

2000년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폐막 

 

2005년 청계천 복원공사 2년 3개월만에 완공, 개통 

2005년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 


---------------------

행복하세요!

출처 : 화폐수집-여행과 자유 (화여자)
글쓴이 : 노가다귀족/평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