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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수집방/국내지폐,우표

중국우표 한장에 5억7000만원

by 연송 김환수 2010. 1. 24.

중국우표가 5억7000만원에 팔린 까닭

2010 01/26   위클리경향 860호

5억7000만원에 거래된 중국 문화혁명 에러우표.
우표의 가치는 희소성에 있다. 아무리 의미있는 우표라 해도 발행 물량이 많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가격이 오를 수 없다.
 
문위우표가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이지만 우체국 소인이 찍히지 않은 미사용분은 2만~5만원밖에 안한다.
 
반면에 우체국 소인이 찍힌 사용필 문위우표는 한 장에 800만원을 호가한다.
 
미사용 문위우표는 흔하고, 사용필
문위우표는 귀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비싼 우표는 거의 에러우표다. 정상 발행한 우표에 뭔가 중대한 오류가 드러나 부랴부랴 회수했지만 미처 회수되지 못한 우표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시중에 나오면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세계 최고가로 꼽히는 미국의 인버티드 제니 우표나 스웨덴의 트레스킬링 황색우표가 그런 경우다.
 
인버티드 제니는 제니라는 비행기를 거꾸로 새겨넣은 우표이고, 트레스킬링 우표는 청색으로 칠해야 할 바탕색의 일부를 황색으로 잘못 칠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제작 실수가 나중에 엄청난 돈이 되는 우표의 역설이다.

최근 홍콩 경매시장에서 또 한 번 이런 사례가 나왔다. 1960년대 우표 한 장이 중국 우표사상 최고가인 368만 홍콩달러(약 5억7000만원)에 팔린 것이다.
 
오드리 헵번 우표 한 장이 1억2000만원에 팔려 요 몇년 사이 이뤄진 우표 경매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이 지면(경향> 831호·2009년 6월30일)에 소개한 바 있는데 이보다 5배 가까이 높은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이번에 대박을 터뜨린 우표는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1968년에 발행된 것이다. 인민들이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의 어록이 담긴 붉은색 수첩을 손에 들고 흔드는 모습과 함께 붉은색으로 칠해진 중국 지도 안에 ‘전국산하일편홍(全國山河一片紅)’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전국의 산과 강이 붉게 물들었다는 뜻으로, 마오쩌둥이 ‘붉은 혁명’을 주도하던 당시 중국 분위기를 잘 보여 주는 우표다.

그러나 이 우표가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에 팔린 이유는 명작이어서가 아니다. 중국 정부가 발행 직후 오류를 발견, 반나절 만에 회수명령을 내린 에러우표이기 때문이다.
 
당국의 손길을 피해 살아남은 우표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중국의 엄중한 정치 상황을 감안하면 극소수일 게 분명하다. 희소가치가 높은 우표인 것이다.

우표 디자인에 오류가 있다고 해서 다 거둬들이는 것은 아니다. 철자가 틀렸다거나 사실관계를 잘못 나타낸 경우 그냥 넘어간 사례도 적지않다.
 
예를 들어 1964년 멕시코에서 나온 미·멕시코 양국 대통령이 악수하는 우표는 명백한 에러다. 멕시코의 로페스 마테오스 대통령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보다 키가 훨씬 작은데도 거의 같은 키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우표는 회수되지 않았고, 따라서 희귀하지도 않다.

이번 문화혁명 우표의 오류는 민감한 영토 문제다. 중국 본토에는 붉은색을 칠하면서 대만은 흰 공간에 놓아둠으로써 대만을 중국과 다른 나라처럼 보이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간주한다. 현실이야 어떻든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한 적이 없다. 대만을 별개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우표는 중국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치명적 오류인 것이다.

제작 실수를 한 우표 디자이너는 어떻게 됐을까. 큰 벌을 받았을 것 같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실제로는 무사하다. 에러우표를 디자인한 완웨이성(萬維生)은 이번 경매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부 관리들이 그건 정말 큰 실수라고 말했고, 나는 오랫동안 감옥에 갈 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거액을 주고 우표를 손에 넣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주권 국가로서의 대만을 확인하고 싶은 애국적 대만 사람일까, 나중에 더 큰 돈을 받고 팔 수 있다고 보는 우표 투자자일까. 우표 수집가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지만 구매자나 판매자의 신원은 베일에 가려 있다.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