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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사랑이야기

한 남자가 남기고 간 기억과 상처

by 연송 김환수 2009. 12. 4.

Boston Korea 신문/여성칼럼 12/04/2009

 

226] 한 남자가 남기고 간 기억과 상처  /신 영

  

몇 년이 흘렀을까. 남의 일처럼 그렇게 잊고 지냈다. 문득 '한 남자의 자살' 그리고 남은 한 여자와 두 아이가 생각난다. 1999년의 일이다. 한국에서 친정어머니가 많이 위독하시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한국가는 티켓을 구하는 동안 그 다음 날에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에 대한 서러움과 서글픔 그리고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기 바로 전날에 가까스로 보스턴에서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정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허탈감에 오랜 비행시간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김포 국제공항에 큰언니네 작은 조카(딸)가 남편(조카사위)과 함께 공항에 나와 이모인 나를 마중하고 있었다. 작은 조카의 결혼소식은 들었지만, 조카사위의 얼굴을 마주하기는 처음이었다. 처음 보는 조카사위는 훤칠한 키에 눈에 띄는 호남형은 아니었지만, 밉상은 아니었다.

"남자가 인물만 좋으면 뭘 해! 인물값이나 하지!" 혼자 마음으로 중얼거리며….

"안녕하세요? 이모님!" 하며 밝은 표정으로 조카사위는 인사를 해온다.

"그래, 잘 있었어요?" 하며 얼떨결에 멋쩍은 첫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집으로 향해 가던 길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외할머니가 위독하셨던 얘기와 병원에서 계시다 돌아가신 얘기까지 서로 슬픈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친정 조카를 사이에 두고 조카사위와 처이모와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은 둘째 언니가 중신을 섰던 터였다. 사돈 되시는 시부모님께서도 두 분 모두 조용하시고 인품도 좋으신 분이셨다. 조카의 시어머님께서는 그림을 즐기시는 서양화가이시며 며느리에게도 자상한 시어머님이셨다.

 

조카 부부는 결혼 후에도 아들 둘을 낳고 별 탈 없이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었다. 둘째 조카는 시집에서도 알뜰하고 살림꾼이라며 칭찬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친정이나 시댁에서도 두 사람의 결혼은 아주 행복한  가정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즐겁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을까. 아이들이 3살 5살 정도였다는 기억이다. 그때가 벌써 지금으로부터 8~9년이 된 일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려는 연말연시로 동네에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느닷없이 한국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둘째 조카사위가 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는 비보를 받은 날이었다.

하도 갑작스러운 얘기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무슨 얘기래?" 하면서….

그렇게 한 남자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이 세상에 두고 떠났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을 곁에 두고 떠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게 죽음을 선택했을 만큼 절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속이 상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무책임함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나중에서야 사정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조카사위에게 결혼 전 사귀던 여자가 있었단다. 젊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는 일이야 당연한 일이다. 헌데, 중요한 것은 그 상대 여자가 결혼을 했다가 얼마 후 이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내(조카딸)가 모르는 사이 두 사람은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아내(조카딸)는 견딜 수 없는 배신감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남편(조카사위)이 자신의 잘못을 빌며 사정을 했지만,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단다. 

 

그렇게 서로 부부간의 신뢰에 금이 가고 나중에는 서로 양가 집안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어머님은 며느리에게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며느리는 단호하게 거절을 하고 별거를 원했다. 그렇게 며칠 별거를 위해 친정집에 와 있는 동안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이 세상에 아내와 두 아들을 남기고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한 남자는 그렇게 자신의 옛 사랑을 추억하다가 곁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말았다. '한 남자의 자살'은 사랑하는 가족과 그의 부모 형제와 그리고 처가댁 가족들에게도 슬픔과 아픔 그리고 고통과 큰 상처를 남겼다.

 

 

 

                                                                              Boston Korea 신문/여성칼럼 12/04/2009

                                                                                     [신영의 세상스케치] 중에서---

                                                                              http://blog.daum.net/skyusa21/11305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