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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청계 안정환

금강공원 현판

by 연송 김환수 2020. 7. 30.

부산 금강공원 정문의 현판(懸板)인 “金剛公園(금강공원)”은 추사체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서예가(書藝家)이며 서화가(書畵家)이신 晴溪(청계) 安定煥(안정환) 선생의 글씨이다.

 

두인(頭印) 淸風明月 (청풍명월)

 

晴溪 安定煥(청계 안정환) / 낙관(落款) 安定煥印(안정환인) 晴溪(청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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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금강공원 정문 현판은 차우 김찬균 선생의 글씨였는데 노후되어 2005년에 교체되었다.

 

차우 김찬균 금강공원 편액(扁額)

차우는 주자서체(朱子書體)라는 독특한 필치로 통도사 범종루 등 전국 사찰의 편액(扁額)을 많이 썼던 서예가로 1973년 무렵 금강공원 편액을 썼는데, 현판 가운데 금이 가는 등 노후·훼손되어 지난 2005년 청계의 안정환 선생의 글씨로 현판을 교체하였다.

 

금강공원 편액을 쓰신 晴溪(청계) 安定煥(안정환)은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전각장(篆刻匠)이며 서화가(書畵家)이다.

 

○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출생

○ 別號 : 晴溪居士, 禮堂. 詩庵, 金井山主人, 詩禮山房主人

○ 晴溪(청계) 安定煥(안정환) 약력(略曆) 및 경력(經歷)

 

- 동경 아세아 미술대전 초대작가 동 초대작가상

- 일본 동화미술대전 추천작가 동 추천작가상

- 한중일 초대전 초대작가

- 1986년 SEOUL 美術大展 서예부문 대상

- 대한민국 서예전 초대작가

- 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

- 국민예술협회 초대작가

- 서울미술협회 초대작가

- 서예박물관 작품소장

- 부산시 문화대상 수상

-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전각장(釜山市 無形文化財 第24號 篆刻匠)

- 청계전각연구실 인간문화재 소장

- 개인전 16회(釜山, 日本, 東京 各地域)

 

寄贈(기증)

安定煥 書 刻 (안정환 서 각)

二千四年 秋節 (2004년 추절)

 

거북바위

 

금강공원은 일본인들이 부산에 진출하여 정착한 후 동래온천을 휴양지로 개발하고 주변의 금정산을 관광지로 조성하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초기에는 일본인 자본가의 개인 정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금강공원은 온천장에서 온천욕을 즐긴 관광객들이 거닐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관광코스로 이용되었다.

 

처음에는 금강원으로 불리다가 광복 이후 1965년 4월 21일 건설부에서 공원으로 지정하고 부산직할시에서 금강공원으로 명칭을 바꾼 후 일반인에게 공개하였다. 금강공원은 1972년 6월 26일 부산직할시에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함에 따라 문화재 보호구역이 되었다.

 

1973년 5월 12일 금강공원관리사업소가 설치되었으며, 같은 해 6월 1일부터 공원 입장료를 징수하였다. 2004년 7월 1일부터 공원 입장료를 받지 않고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관광객이 감소함에 따라 공원 내에 있던 동물원이 문을 닫고 놀이시설도 대부분 사라졌다.

 

금강공원은 1993년 5월 22일 부산직할시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이 해제되었으나, 공원 내에 자리한 임진동래의총, 내주 축성비, 망미루, 독진 대아문, 이섭교비 등은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지 않았다. 내주 축성비, 망미루, 독진 대아문, 이섭교비는 1930년대에 동래 일대의 시가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금강공원으로 이설하였던 것으로, 현재는 동래부 동헌을 비롯하여 본래 있던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시켜 놓았다.

 

금강공원 역사

 

1920년 금강공원의 시초는 일제강점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담배 장사로 큰 돈을 번 일본 상인 히가시바라 가지로(東原嘉次郞) 씨가 주변 풍광이 뛰어난 이곳에 개인 정원을 꾸민 것이 비롯되었다. 계곡물을 이용해 일본식 연못을 만들고 전망 좋은 언덕에 탑도 세웠다고 한다. 1931년부터는 정원을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했다.

 

- 1940년 11월 10일에 황기 2600년을 기념한답시고 정원을 동래읍에 기증하면서 금강원으로 명명되었다. 이때 쓴 기념비도 있는데, 기념비를 쓴 사람은 기후현 출신의 일본 상공인이자 당시 동래읍장이었던 야마구치 기요시(山口精)로 되어있다.

 

- 1965년 4월 21일에 공원으로 지정되어 금강공원으로 다시한번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1966년도에 현재도 운행중인 로프웨이(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 1967년 한국에서 민간최초이자 전국 두번째로 개장하는 동물원인 동래금강동물원이 금강공원안의 부지에 설립되었다.

 

- 1972년 6월 26일에 부산광역시 문화재(기념물 제26호)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 그 후 정문 사진 바로 밑에 있는 왼쪽 사진 속의 놀이기구들이 최초로 설치되었고, 그 관계로 1973년 6월 1일부터는 유료 개방으로 전환되었다. 영남권 놀이공원들 중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 1993년 5월 22일부로 부산광역시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이 해제되었다. 임진동래의총, 내주축성비[3], 망미루[4], 독진대아문[5], 이섭교비[6] 제외였지만 일제가 공원 조성을 위해 부산의 문화재들을 임의로 이전시킨 만큼 현재는 대부분 원래 있던 자리로 이전되었다.

 

- 1993~1997년 사이에 일부 놀이기구들이 다른 놀이기구로 교체/개편에 들어갔다.

 

- 2001년 동물원이 경영악화로 영업이 종료되었다.

 

- 2004년 7월 1일, 약 31년 만에 다시 무료 개방으로 전환되었다. 2006년 기준으로는 이용객이 나타날 경우에만 어트랙션(놀이기구)을 작동시켰다. 근 몇십년 만에 망미루에 막혀 있었던 도로가 개통되었다.

 

- 2009년 11월 폐쇄되어 방치된 동래동물원 시설들의 철거가 시작되었다.

 

- 2013년 6월 15일에 로프웨이(케이블카), 비룡열차[8], 바이킹, 피터팬을 제외한 모든 놀이기구들이 철거되면서 사실상 놀이공원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 2014년 공원 입구에 있었던 망미루가 수안동으로 이전되었다. 이전된 이유는 원래 수안동에 위치한 동래부동헌의 문루였지만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에 의해서 금강공원 입구로 써먹기 위해 강제로 이전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