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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청계 안정환

참다운 선(禪)은 이름을 붙일 수 없고

by 연송 김환수 2018. 2. 6.

 

 

(선)

禪可禪非眞禪 (선가선비진선)

色可色非眞色 (색가색비진색)

眞禪無名 眞色無色 (진선무명 진색무색)

此是 眞空妙有 禪也 (차시 진공묘유 선야)

 

 

선(禪)을 선이라 하면 참된 선이 아니요.

색(물질)을 색이라 하면 참된 색이 아니다.

참다운 선은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진정한 색은 색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텅빈 가운데 묘(妙)함이 있는 선(禪)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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晴溪居士 (청계거사) / 서예가 安定煥 (안정환)

詩禮山房主人 (시례산방주인) /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출생

別號 : 禮堂. 詩庵, 金井山主人, 詩禮山房主人

 

약력(略曆) 및 경력(經歷)

동경 아세아 미술대전 초대작가 동 초대작가상

일본 동화미술대전 추천작가 동 추천작가상

한중일 초대전 초대작가

SEOUL 미술대상

대한민국 서예전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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晴溪(청계) 安定煥(안정환)은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전각장(篆刻匠)이며 서화가(書畵家)이다. 본관은 광주(廣州) 안씨(安氏)로 대종회 임원인 외임유사를 맡아 봉사하고 있으며, 경남 김해군 진례면 시례리 (김해 예동<禮洞>) 출생이다.

 

전각장(篆刻匠)은 전통기법으로 나무, 돌, 금속, 갑골 등 단단한 물질에 글자나 문양을 새기는 장인을 말한다.

 

전각장(篆刻匠) 안정환은 어려서부터 한학자인 조부에게서 한문과 서예를 익혔고, 저명한 서예가이자 전각가였던 부친(父親) 청사(晴斯) 안광석(安光碩)에게서 전각을 사사 받았다.

 

전각 분야에서 55년 이상 종사해왔는데 목각과 석각 외에도 동각(銅刻), 와각(瓦刻), 도자각(陶瓷刻), 금속각(金屬刻)에 두루 능하고 서예에도 조예가 깊은데 부친으로 부터 서법(書法)을 구(求)한지 70여년이 넘었다. 

 

그는 조선시대 추사의 맥을 이은 부친의 가르침을 받아, ‘기법과 그에 앞선 서도(書道)의 자세와 세예가로의 심상’을 잊지 않고 전각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 금강공원 정문의 현판인 “金剛公園(금강공원)”은 추사체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서예가(書藝家)이며 서화가(書畵家)이신 晴溪(청계) 安定煥(안정환) 선생의 글씨이다.

 

 

 

 

 

 

석각은 돌에 새기고(石刻), 나무에 새기면 목각(木刻), 기왓장과 동판, 철, 죽간(竹簡) 등에 갑골문·전서·해서를 서각한다. 서각 작품중 으뜸은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를 가로 180cm, 세로 45cm의 참나무에 새긴 "세한도" 작품이다.

 

 

 

 

세한도 벚나무 세로 45cm x 가로 180cm

 

원본 세한도는 세로 23㎝, 가로 69.2㎝정도였는데 추사와 청나라·조선 문인 20명의 ‘댓글’ 등이 이어지면서 15m에 육박하는 두루마리 장권(전체 크기 33.5×1469.5cm)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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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尋牛莊) 2 한용운

 

선(禪)은 선(禪)이라고 하면 선(禪)이 아니다.

그러나 선(禪)이라고 하는 것을 떠나서 별로히 선(禪)이 없는 것이다.

선(禪)이면서 선(禪)이 아니요.

선(禪)이 아니면서 선(禪)인 것이 이른바 선(禪)이다.

∙∙∙∙∙∙ 달빛이냐 ?

갈꽃이냐 ?

흰모래 위에 갈매기냐 ?

 

 

 

  

심우장(尋牛莊)

  

심우장(尋牛莊)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대지의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인 남쪽에 한옥으로 지은 심우장이 북향하여 서 있고, 대문 맞은편에는 벽돌조 단층으로 지은 관리인 주택이 심우장과 직교하며 동향으로 서 있다.

 

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본관은 청주, 본명은 정옥이다. 용운(龍雲)은 법명이며, 만해(萬海, 卍海)는 아호이다.

 

만해는 1919년 승려 백용성(白龍城) 등과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 발기인 33인 중의 한 분으로 참가하여 <3·1독립선언문>의 공약 삼장을 집필한 분으로 유명하다.

 

처음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가, 시베리아와 만주를 순력한 후 28세 때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출가하여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1910년에는 불교의 변혁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고, 1926년에는 근대 한국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님의 침묵≫을 펴낸 뒤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에 가담하였으며, 1931년에는 조선불교청년동맹을 결성하였다.

 

이곳 성북동은 원래 성밖 마을 북장골, 한적한 동네였다. 만해는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승려 벽산(碧山)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자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으로 땅을 더 사서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고 하였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한용운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심우장의 이름처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소박한 명상이 가능하다.

 

마당에는 성북구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나무로 소나무와 향나무가 있으며 한켠에 올래여행(역사문화여행) 스탬프가 있는 우체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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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이란 무엇인가 ? 

 

선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불교인이든 아니든 선을 생활 속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선은 바로 일상생활의 복잡한 일들로 혼란해진 마음을 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숨을 장소를 주는 곳이다. 혼돈으로 괴로운 마음을 씻고, 청정한 지혜로 가득 찬 마음을 만들어 주는 게 선이기 때문이다.

 

선은 모양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가?

선은 해답이 없는 물건으로 그 해답은 없다. 마음이 가리키는 자리에서 스스로 깨달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선은 일상인으로 흐트러짐 없는 자신의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오는, 지행일체(知行一體)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선을 통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선은 인간 이상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본래의 내 모습을 찾아가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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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법정스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물건과 인연을 맺는다.

물건 없이 우리들이 일상생활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도

물건과의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적인 욕구가 물건과 원만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사람들은 느긋한 기지개를 켠다.

동시에 우리들이 겪는 어떤 성질의 고통은

이 물건으로 인해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에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물건 자체에서보다도 그것에 대한 소유 관념 때문인 것이다.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았거나 잃어버렸을 때

그는 괴로워한다.

소유관념이란 게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를

비로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된다.

이런 경우 집착의 얽힘에서 벗어나

한 생각 돌이키는 회심(回心)의 작업은

정신위생상 마땅히 있음직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있을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리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 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 있을 뿐이다.

 

울타리가 없는 산골의 절에서는 가끔 도둑을 맞는다.

어느 날 외딴 암자에 ‘밤손님’이 내방했다.

밤잠이 없는 노스님이 정랑(淨廊 변소)엘 다녀오다가

뒤꼍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웬 사람이 지게에 짐을 지워놓고

일어나려다가 말고 일어나려다 말고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뒤주에서 쌀을 한 가마 잔뜩 퍼내긴 했지만

힘이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스님은 지게 뒤로 돌아가

도둑이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지그시 밀어주었다.

겨우 일어난 도둑이 힐끗 돌아보았다.

"아무 소리 말고 지고 내려가게."

노스님은 밤손님에게 나직이 타일렀다.

이튿날 아침,

스님들은 간밤에 도둑이 들었었다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은

선가(禪家)에서 차원을 달리해 쓰이지만

물건에 대한 소유관념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그 후로 그 밤손님은

암자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1970)

《무소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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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禪宗)

참선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한 종파.

 

조선 세종 때 모든 종파의 폐합에서 남은 두 종파 중의 하나이다. 1424년(세종 6) 예조의 지시에 따라 7종파를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두 종파로 폐합할 때, 조계종(曹溪宗)·천태종(天台宗)·총남종(摠南宗) 등 세 종파는 선종이란 이름으로 단일화 되었다.

 

선종은 전국에 18개 사찰 및 4,250결(結)의 전답과 1,970명의 승려를 가지게 되었다. 사찰의 수는 교종과 같았으나 전답(교종 3,700결)과 승려의 수(교종 1,800명)는 교종보다 많은 편이었다.

 

교종 (敎宗)

불교의 경(典), 논(論) 등을 소의(所依)로 하여 사상적인 이론을 세우는 종파. 선종에서는 불교를 크게 나누어 선종(禪宗)과 그 밖의 모든 종파를 교종(敎宗)으로 구분한다.

 

선종은 참선이나 공안 참구를 위주로 하는데, 교종은 교종ㆍ경전 등을 근거로 하여 간경(看經)과 교종수행법을 위주로 한다. 한국불교 수행자들은 일반적으로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하여 처음에는 경전공부에서부터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선(禪)의 경지로 들어가는 방법을 많이 택하고 있다. 교(敎)는 점수(漸修)의 수행법, 선(禪)은 돈오(頓悟)의 수행법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의 교종(敎宗)이란, 1424년(세종6)의 선(禪)ㆍ교(敎) 양종을 통합할 때 화엄(華嚴)ㆍ자은(慈恩)ㆍ중신(中神)ㆍ시흥(始興)의 4종파를 합한 불교 종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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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는 선불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 AD 5세기 부터 시작된 대승불교의 한 흐름으로 달마대사 부터 시작합니다.

 

부처님 열반후 마하가섭을 불교 제1대 조사(처음이라 초조 라고 부름)로 하고 제2대 조사 "아난" 그렇게 계속되어 제28대 조사가 달마대사인데 대사는 문득 느낀바 있어 AD 520년 중국 광조우로 건너옵니다.

 

이 때는 중국 남북조시대였고 이 시대는 수나라 문제가 천하를 통일하며 수-당 시대를 열며 끝나게 됩니다.

 

대사는 하남성 낙양 근처의 숭산 소림사에서 9년동안 면벽수도하며 "선"을 일으키는데 불교 처음부터 따지면 제28대 조사이지만 선불교에서는 제1대 조사(초조)라고 합니다.

 

 

"선"은 초조 달마-2조 혜가-3조 승찬-4대 도신-5대 홍인을 거쳐 6조 혜능에서 "선"이 완성되며 6조 이후에 아주 유명하고 많은 선승들이 이어지는데 행사, 혜충, 회양, 희천, 마조, 약산, 도오, 백장, 조산, 법안, 임제 등 등 입니다. 이들이 조동종, 법안종, 운문종, 임제종, 위앙종 등 의 "선종=선불교"를 크게 일으킵니다.

 

선불교는 곧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원효, 혜공, 지눌, 나옹, 무학, 경허, 만공, 경봉, 성철스님 등의 유명한 선승을 배출하였습니다.

 

혜능-행사-희천으로 이어는 한 줄기에 희천의 제자인 "단하 천연" 스님 이야기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천연스님이 몹시 춥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날 길을 가다 날이 어두워져 쉴 곳을 찾다가 "혜림사"라는 절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마침 아무도 보이지 않아 몸을 녹일 땔감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법당으로 가니 아무도 없어서 목불(나무로 조각하여 만든 부처님)을 들고 나와 도끼로 쪼개어 불을 피우고 쬐고 있는데 안 보이던 승려들이 몰려나오더니 "이 미친놈아!

 

무슨 짓이야!"하고 난리가 났는데 법당에 있어야 할 부처님이 안보여 찾던 한 노승이 나오셨는데 천연은 태연하게 재를 뒤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연은 태연하게 "보면 모르겠소? 나는 지금 부처님사리를 찾고 있는 중이오" 하니 노승이 "이 미친놈아. 나무토막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이냐?" 하고 소리치니 "그래요?

그러면 됐잖습니까?"

 

모두가 말이 탁 막혔는데 그 대중(스님들의 무리를 이렇게 부름)들이 문득 깨달은 것이 있어 모두 불 곁으로 모여 웃음꽃을 피웠답니다.

 

껍데기는 모두 우상이며 이에 현혹되지 마라.

진정한 깨달음은 언제나 그 본질을 제대로 보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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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부처를 찾는가 ?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있다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 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당은 살아있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네

 

여보시게 친구

죽어서 천당 가려 하지 말고

사는 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 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 걸 잊지 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 바라네

부처답게.

 

- 법정스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