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의 뜻은 땔나무(장작)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는 말이다.
원수를 갚기 위해 분발하는 것이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즉 복수나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참고 이겨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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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 (臥薪嘗膽)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싸움에서 전해지는 고사이며 가시가 많은 나무에 누워 자고 쓰디쓴 곰쓸개를 핥으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겼다는 뜻이다.
臥(엎드릴 와), 薪(섶나무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BC 496년 오(吳)나라의 왕 합려(闔閭)는 월(越)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월왕 구천(勾踐)에게 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합려는 화살에 맞아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병상에 누운 합려는 죽기 전 그의 아들 부차(夫差)를 불러 이 원수를 갚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부차는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하였다. 부차는 매일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겼다.
부차의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은 월나라 왕 구천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오나라를 먼저 쳐들어갔으나 대패하였고 오히려 월나라의 수도가 포위되고 말았다.
싸움에 크게 패한 구천은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회계산(會稽山)에서 농성을 하였으나 견디지 못하고 오나라에 항복하였다.
포로가 된 구천과 신하 범려(范蠡)는 3년 동안 부차의 노복으로 일하는 등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었고 구천의 아내는 부차의 첩이 되었다. 그리고 월나라는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목숨만 겨우 건져 귀국하였다.
그는 돌아오자 잠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회계지치 會稽之恥〕을 잊었느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이후 오나라 부차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북벌에만 신경을 쏟는 사이 구천은 오나라를 정복하고 부차를 생포하여 자살하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이와 같이 와신상담은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이 합쳐서 된 말로 ‘회계지치’라고도 한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동검(銅劍) : 越王句踐自作用劍 (월왕구천자작용검)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의 창
1965년 초(楚)나라의 무덤 (望山楚墓群)에서 구천의 청동검이 출토되었는데, 이와 함께 오왕 부차의 창(矛)도 발견되었다.
오 나라가 월나라에게 멸망한 뒤에, 월나라도 초나라에게 멸망당하였으니, 초나라가 구천의 동검과 부차의 창을 전리품으로 가져 갔을 것이다. 현재 검과 창은 후베이(湖北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왕 부차검(吳王夫差劍)
쑤저우(蘇州)시 박물관은 오왕 부차검(吳王夫差劍), 월왕검(越王劍) 등 일부 진귀한 청동 병기들을 쑤저우 박물관에 전시하게 됐다고 전하며 이 문물들은 베이징(北京)과 난징(南京) 등 지역에서 잠시 전시된 적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최근 몇 년 동안 깊숙이 보관되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들이라고 밝혔다.
그 중 국보라 불리는 오왕 부차검은 현재 국내외의 유사한 검 중에서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검으로, 2000여 년이 흘러도 여전히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한 검날을 지니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춘추 시대(BC770~BC403)의 청동검
1. 초나라의 청동검. 1965년, 허베이 성 Jiangling에서 출토.
2. 오나라 왕 부차(夫差, Fuchai)의 검. 1976년 헤난 성 Huixian 출토.
3. 오나라 공자 광(光), 훗날 오나라 왕 합려의 검. 1964년 산시성(山西省) Yuanping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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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 오(吳)나라 임금 합려(闔閭)와 월(越)나라 임금 구천(勾踐)은 라이벌인 동시에 철천지 원수지간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지금의 절강성에 있던 취리(檇李)라는 곳에서 격돌한 것이 절정이었는데, 합려는 이때 적의 화살에 맞은 손가락 상처가 의외로 크게 악화되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임종에 앞서 합려는 아들 부차(夫差)에게 말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네 아비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왕위에 오른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를 갈았다. 그는 ‘섶나무를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잤으며[臥薪(와신)]’, 자기 방에 드나드는 신하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유언을 한 번씩 외치게 함으로써 자기 마음의 고삐를 항상 바짝 죄었다. 그런 한편 군사 훈련에 박차를 가해 군대를 정병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사실을 안 월나라 구천은 코웃음을 쳤다.
“아들놈이 아비의 복수를 하겠다고? 젖비린내 나는 것이! 그렇다면 내가 먼저 본때를 보여 주리라.”
구천이 선제 공격을 서두르자, 참모인 범려(范蠡)가 말렸다.
“병(兵)을 움직이는 데는 많은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고 나서도 적당한 시기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 소리 마오. 합려가 이미 죽고 없는데 무슨 준비며 시기라는 거요?”
“젊은 오왕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부차를 우습게 보는 구천은 주위의 만류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려 출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구천의 생각과 정반대였다.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군은 호랑이같이 사나워, 월나라군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오나라군은 적을 파죽지세로 밀어붙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몰아넣고는 철통같이 포위해버렸다.
‘내가 너무 경솔하여 이 치욕을 당하는구나!’
월왕 구천은 땅을 치고 싶도록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사지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하든가, 앉아서 굶어 죽든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때 범려가 말했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닙니다. 오왕에게 항복하고 앞으로 신하로서 섬기겠다고 약속하여 일단 이 국면을 벗어난 다음 훗날을 도모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합려의 자식놈에게 항복을?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소?”
“공론이란 한때의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큰일을 도모하는 데 남의 뒷소리가 무슨 상관입니까?”
“하지만 항복을 청한다고 그가 들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애비의 유언을 되새긴다는 지독한 놈인데.”
“오나라 재상 백비(伯嚭)는 물욕이 많은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자기네 임금을 설득하라고 하는 겁니다. 어쨌든 시도해 보지도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월왕 구천이 백기를 들자, 오나라 대신들 중에서도 강경론자인 오자서(伍子胥)는 받아들이지 말 것을 주장했다.
“항복을 받고 월왕을 놓아 보내는 것은 위험합니다.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쳐서 그의 명맥을 끊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자, 월나라로부터 뇌물을 받은 백비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월나라군은 사생결단으로 덤빌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앞에 당할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끝내 이기더라도 우리 병사들 역시 부지기수로 죽거나 다칠 것인즉, 실로 그 뒷일이 걱정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침을 삼키며 이 싸움의 향방을 지켜보고 있을 사방의 군웅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오왕 부차는 결국 백비의 간언에 따랐다. 항복한 구천으로부터 신하로서 섬기겠다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귀국을 허락하는 선처를 베풀었다. 이제는 오나라 속령(屬領)이 된 고국에 돌아온 구천은 곁에 항상 짐승 쓸개를 놓아 두고 그 ‘쓴맛을 핥으며[嘗膽(상담)]’ 복수의 칼을 갈았다. 구천이 은밀히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오자서는 임금에게 간청했다.
“자기 나라로 돌아간 구천은 목숨을 살려 준 전하의 너그러운 은의도 잊고 군사를 기르기에 여념이 없다 합니다. 시급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오. 군사력이란 그렇게 단시일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오. 그쪽보다 신경 쓸 곳은 따로 있소.”
당시 부차의 관심은 중원 쪽으로 쏠려 있었고, 제(齊)나라 중원 진출, 나아가서 천하 패권 쟁탈의 제일차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자서가 물러서지 않고 계속 간언하자, 마침내 화가 치민 부차는 그더러 자결하라고 명했다.
이때 오자서는 죽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눈을 빼서 동문(東門) 위에 놓아 다오. 내 눈으로 오나라가 월나라에게 망하는 꼴을 확인해야겠다.”
회계의 치욕적 항복이 있었던 날로부터 12년이 지난 기원전 482년 봄, 구천은 드디어 군대를 이끌고 번개같이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런 줄도 모르고 부차는 황지(黃池)란 곳에서 여러 제후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패자(覇者)가 되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국내의 오나라군이 월나라군에 제대로 맞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로부터 장장 7년 동안 오나라와 월나라는 전쟁을 계속했는데, 그 결과 초전의 승기를 끝까지 살린 월나라의 승리가 결정되었다. 부차는 월나라군이 서울인 고소(姑蘇)로 육박하자 하는 수 없이 나아가 무릎을 꿇었고, 이로써 오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내 그대를 죽일 것이로되, 회계에서 진 빚이 있어 목숨을 빼앗지는 않겠다. 그 대신 용동(甬東)으로 가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도록 하라.”
구천은 이렇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부차는 그 호의를 사양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부차가 꿈꾸었던 천하패자의 자리는 구천의 차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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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상하오천년사
와신상담 (臥薪嘗膽)
필(邲)의 전투에서 대패한 진(晉)나라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초나라가 점차 강대해지기 시작했다.
진나라와 초나라 간의 패권을 다투는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었는데 결국 송나라가 나서서 두 나라를 화해시키고 나서야 전쟁을 그만두었다. 이리하여 중원의 정세가 평온해지자 남방에서 오나라와 월나라가 싸우기 시작했다.
오나라 왕 합려는 오자서와 손무의 보필로 구거(桕擧)의 싸움에서 초나라를 대패시켰는데 오나라군이 초나라 도성 정도를 진격할 때 월나라군이 오나라로 진격했다. 이로 인해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끊임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합려는 즉시 군대를 돌려 오나라로 돌아와 월나라군에게 반격을 가했다.
기원전 496년, 월나라 왕 윤상(允常)이 병으로 죽자 아들 구천(勾踐)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합려는 월나라가 국상을 치르는 틈을 타서 군대를 진격시켰다.
두 나라 군대는 휴리(携李)라는 곳에서 크게 싸웠는데 결국 오나라군이 대패하고 합려는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합려는 임종시에 아들 부차에게 월나라의 원수를 절대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왕이 된 부차는 기필코 월나라를 패망시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오자서를 상국(相國)으로, 백비(伯嚭)를 태재(太宰)로 삼아 월나라를 진격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복수를 하기 위해 부차가 밤낮으로 군사를 조련한다는 소식을 들은 구천은 이듬해에 선제 공격을 했다.
대초(大椒)라는 곳에서 결전이 벌어졌는데, 그 결과 월나라군이 대패했다.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친 구천은 오나라 군사들에게 겹겹이 포위되었다.
월왕 구천의 검 [춘추시대]
고대 병기 중에서도 특이한 보물로, 출토 당시에도 여전히 빛이 났다. 굉장히 날카로워서 머리카락도 벨 수 있다. 몸체에는 흑색의 무늬가 있고 ‘월왕 구천 자작용 검(越王勾踐自作用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검은 고대 중국의 검 주조 기술이 높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살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구천은 부인을 죽이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려고 했다.
그런데 대신 문종(文種)과 범려(範蠡)가 맹목적인 결전은 오로지 죽음뿐이라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오나라 백비에게 뇌물을 먹여 살길을 도모하는 것이 어떠냐고 설득했다.
구천은 그 말을 따라 몰래 백비에게 미녀들과 금은보화를 보냈다. 탐욕스러운 백비는 뇌물을 받자 매우 기뻐했으며, 부차에게 월나라 구천을 살려주라고 권유했다.
부차는 오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천을 살려주기로 했다. 단, 구천이 오나라로 와서 속죄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범려
구천은 부차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나라 대사를 문종에게 맡긴 후 부인과 대부 범려 등을 데리고 오나라로 갔다.
부차는 아버지 합려의 능묘 옆에 돌집을 하나 짓고 구천 부부와 그의 대신들을 몰아넣었다. 그러고는 죄수옷을 입히고 말을 먹이는 고역을 시켰다.
그리고 외출을 할 때면 범려를 밟고 수레를 탔으며, 구천에게는 말고삐를 잡게 했다. 구천은 이렇게 2년 동안 오나라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 했다.
문종은 백비에게 미녀와 금은보화를 또 보내어,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내도록 부차에게 진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백비의 말이라면 듣지 않는 법이 거의 없는 부차였다.
2년 동안 구천이 진심으로 속죄했다고 생각한 부차는 백비의 말을 듣고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이 원수를 기필코 갚고야 말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무명옷을 입고 잡곡을 먹었다.
잠도 초가집에서 잤으며 돗자리 대신 섶나무를 펴고 잤다. 식탁 위에는 쓰디쓴 쓸개를 달아놓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쓸개를 맛보고는 “구천아, 회계의 치욕을 잊었단 말이냐?” 하고 외치곤 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과거의 치욕을 잊지 않고 분투하도록 거듭 자신을 격려했던 것이다. 이것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긴 유래이다.
월나라가 강대해지는 것을 본 오자서는 근심이 커졌다. 그는 “구천이 지금 쓸개를 맛보며 국민들과 함께 복수를 벼르고 있습니다.” 하고 부차에게 여러 번 간언을 했다. 그러나 부차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오자서를 멀리했다.
2년 후에 부차는 군대를 거느리고 제나라를 쳐서 승리를 거두었다. 온 조정의 문무대신들이 경하했지만 오자서는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제나라를 친 것은 작은 승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월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으면 큰 심복지환을 남겨놓는 것인 줄을 왜 모르십니까?”
이 말에 대노한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살하라며 보검 한 자루를 주었다. 오자서는 그 보검으로 목을 베어 자살했다.
얼마 후, 구천은 문종에게 조정 일을 보게 하고 자신은 범려와 함께 정예군 5만을 이끌고 오나라를 습격했다. 오나라군은 크게 패하고 오나라의 태자도 전사했다.
기원전 473년, 구천은 재차 오나라를 진격해 부차를 고소산(姑蘇山)에서 포위했다. 이렇게 해서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구천은 부차에게 회계 동쪽에 있는 자그마한 섬인 용동(甬東)을 봉해주었다. 부차는 간신 백비의 말만 듣고 충신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다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목을 베어 자살하고 말았다.
구천은 국왕의 예로 부차의 장례를 치러주었으며, 백비는 죽여버렸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은 춘추시대 말기에 일어난 큰 사건이었다. 기원전 475년에 이르러 중국은 전국시대에 진입했으며, 봉건사회가 시작되었다.
오·월 전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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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 : 옛이야기에서 유래한, 한자로 이루어진 말.
01. 街談巷說(가담항설) : 거리나 마을에 떠도는 이야기나 말. 패관문학의 재료가 됨.
02. 苛斂誅求(가렴주구) :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하고 물건을 강제로 요구함.
03. 假弄成眞(가롱성진) : 거짓된 것을 참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으로 장난삼아 한 일이 진짜가 됨.
04. 佳人薄命(가인박명) : 아름다운 여인은 운명이 박함을 이르는 말.
05. 家藏什物(가장집물) : 집에 두는 여러 가지 물건이나 가구. 장롱이나 문갑 등.
06. 刻鵠類鶩(각곡유목) : 높은 뜻을 가지고 어떤 일을 이루려다 중도에 그만두어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받게 됨.
07. 刻骨難忘(각골난망) : 입은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깊이 뼈에 사무쳐 잊혀지지 않음.
08. 各樣各色(각양각색) :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 제각기 다양한 모습들.
09. 角者無齒(각자무치) : 뿔이 있으면 이가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복을 갖추지 못함을 이르는 말.
10. 刻舟求劍(각주구검) : 배에서 물속에 빠뜨린 칼을 찾을 속셈에서, 빠뜨린 자리를 뱃전에 표시해 놓았다가 나중에 그 표시를 보고 칼을 찾으려 했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것으로 미련하고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
11. 艱難辛苦(간난신고) : 몹시 고되고 괴로움. 어려움을 견디며 몹시 애씀.
12. 肝膽相照(간담상조) : 간과 쓸개가 서로 비춤. 곧, 서로 생각하는 바가 통함.
13. 竿頭之勢(간두지세) : 막대기 끝에 선 형세라는 뜻으로 아주 위태로운 상황을 이르는 말.
14. 渴而穿井(갈이천정) : 미리 준비하여 두지 않고 일이 닥쳐서야 허둥지둥 덤벼댐.
15. 甘言利說(감언이설) :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남을 꾀는 말.
16. 甘呑苦吐(감탄고토) :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
17. 甲男乙女(갑남을녀) :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
18. 康衢煙月(강구연월) : 번화한 큰 길거리에서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 태평한 시대의 평화로운 거리 풍경을 이르는 말.
19. 强弩之末(강노지말) : 강대한 힘일지라도 최후에는 쇠약해짐을 이르는 말.
20. 剛木水生(강목수생) : 어려운 사람에게 없는 것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며 강요함 을 이르는 말.
21. 改過遷善(개과천선) : 잘못을 고치고 옳은 길에 들어섬.
22. 去頭截尾(거두절미) : 앞뒤의 잔말을 빼고 요점만 말함.
23. 居安思危(거안사위) : 편안한 때에 앞으로 닥칠 위태로움을 생각함.
24. 乾坤一擲(건곤일척) : 운명과 흥망성쇠를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나 성패를 겨룸.
25. 黔驢之技(검려지기) : 별 볼일 없는 보잘 것 없는 기량을 뽐냄.
26. 隔靴搔癢(격화소양) : 신을 신은 위로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일이 아무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함을 이르는 말.
27. 牽强附會(견강부회) :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조건이나 이치에 맞추려고 함을 이르는 말.
28. 見利思義(견리사의) : 이익을 보면 의리에 맞는가 어떤가를 먼저 생각해야 함.
29. 犬馬之勞(견마지로) : 개나 말 정도의 하찮은 힘이란 뜻으로 자기의 노력을 낮추어 일컫는 말.
30. 見蚊拔劍(견문발검) : 모기를 보고 검을 뺀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가지고 크게 서둘러 대거나 수선을 피우며 화를 냄을 이르는 말.
31. 見物生心(견물생심) :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김.
32. 見危授命(견위수명) :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기의 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침.
33. 犬兎之爭(견토지쟁) : 개가 토끼를 쫓다가 둘 다 지쳐서 죽.자 농부가 이것을 얻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두 사람의 다툼에 제 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익을 얻음.
34. 結者解之(결자해지) :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처음 시작한 사람이 그것을 해결해야 함.
35. 結草報恩(결초보은) : 은혜를 입은 사람이 혼령이 되어 풀포기를 묶어 놓아 적이 걸려 넘어지게 함으로써 은인을 구해 주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36. 傾國之色(경국지색) : 임금이 혹하여 국정을 게을리 함으로써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
37. 驚弓之鳥(경궁지조) : 한 번 궂은일을 당하고 나면 늘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됨.
38. 輕擧妄動(경거망동) : 경솔하고 망령되게 행동함.
39. 敬而遠之(경이원지) : 존경하기는 하되 가까이 하지는 아니함.
40. 驚天動地(경천동지) :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인다는 뜻.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함.
41. 鷄口牛後(계구우후) : 소의 꼬리보다는 닭의 부리가 되라는 뜻.
42. 鷄群一鶴(계군일학) :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
43. 鷄卵有骨(계란유골) : 달걀에도 뼈가 있다는 뜻. 복 없는 사람은 좋은 기회도 도움이 안 됨.
44. 惑世誣民(혹세무민) : 세상 사람을 미혹하게 하여 속임.
45. 鷄鳴狗盜(계명구도) : 중국 춘추 시대에 맹상군(孟嘗君)의 식객들이 닭 울음소리와 좀도둑질로 맹상군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점잖은 사람이 배울 것이 못되는 천한 기능 또는 그런 기능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
46. 孤軍奮鬪(고군분투) : 고립된 군사력으로 분발하여 싸움.
47. 膏粱珍味(고량진미) :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
48. 鼓腹擊壤(고복격양) : 배를 두드리며 땅을 침. 태평성대를 즐김을 이르는 말.
49. 姑息之計(고식지계) : 당장에 편한 것만 취하는 계책
50. 孤掌難鳴(고장난명) : 한쪽 손뼉은 울릴 수 없다는 뜻. 시비는 혼자서 이뤄지지 않음. 또는 혼자 힘으로는 일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
51. 苦盡甘來(고진감래) :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말.
52. 曲學阿世(곡학아세) : 중국 한나라의 원고생(轅固生)이 공손홍(公孫弘)에게 학문의 정도(正道)는 학설을 굽혀 세상 속물에 아첨하는 게 아니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함. 왜곡된 학문으로 세상에 아첨함.
53. 困獸猶鬪(곤수유투) : 궁지에 몰리면 약한 자도 오히려 강한 자를 해칠 수 있음.
54. 骨肉相爭(골육상쟁) : 뼈와 살이 서로 싸움. 동족끼리 서로 싸움을 비유.
55. 空中樓閣(공중누각) : 공중에 누각을 지음과 같이 근거가 없는 가공의 사물을 말함.
56. 誇大妄想(과대망상) : 터무니없이 과장하여 엉뚱하게 생각함.
57. 過猶不及(과유불급) :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
58. 瓜田李下(과전이하) : 의심받을 행동은 처음부터 해서는 안 됨.
59. 管鮑之交(관포지교) : 중국 춘추 시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이 매우 친밀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60. 刮目相對(괄목상대) : 상대방의 학문이나 덕망, 기술 등이 전에 비하여 크게 발전하였음을 이르는 말.
61. 曠日彌久(광일미구) :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냄.
62. 矯角殺牛(교각살우) :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 작은 일에 힘쓰려다가 일을 망침.
63. 巧言令色(교언영색) : 남에게 아첨하느라고 발라 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를 이르는 말.
64. 膠柱鼓瑟(교주고슬) : 비파나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풀로 고착시켜 버리면 한 가지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는 뜻. 변통성 없이 꼭 달라붙은 소견이나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이르는 말.
65. 敎學相長(교학상장) : 남을 가르치거나 남에게 배우거나 모두 나의 학업을 증진시킨다.
66. 九曲肝腸(구곡간장) : 굽이굽이 깊이 서린 창자라는 뜻. 굽이굽이 사무친 마음 속.
67. 狗尾續貂(구미속초) : 담비의 꼬리가 모자라 개꼬리로 잇는다는 뜻.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다는 뜻으로 격에 맞지 않은 일이 행해짐.
68. 口蜜腹劍(구밀복검) :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배 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뜻.
69. 九死一生(구사일생) :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
70. 口尙乳臭(구상유취) :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 언어와 행동이 아직은 어리고 유치함을 일컬음.
71. 九牛一毛(구우일모) :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박힌 하나의 털이란 뜻. 많은 것 가운데에서 극히 적은 것을 이르는 말.
72. 膾炙人口(회자인구) : 맛있는 음식처럼 사람의 입에 오르내림을 이르는 말.
73. 九折羊腸(구절양장) : 아홉 번 꼬부라진 양의 창자라는 뜻.
74. 國士無雙(국사무쌍) : 나라 안에는 견줄 만 한 자가 없는 인재로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말.
75. 群鷄一鶴(군계일학) :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 즉, 많은 사람 중의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말.
76. 群盲撫象(군맹무상) : 소경들이 코끼리를 만져 보고 제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뜻. 자신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하거나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77. 群雄割據(군웅할거) : 많은 영웅들이 제각기 자리 잡고 서로의 세력을 다툼.
78. 窮餘之策(궁여지책) : 매우 어려운 가운데 짜낸 한 가지 꾀.
79. 權謀術數(권모술수) :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교묘하게 남을 속이는 술책을 이르는 말.
80. 捲土重來(권토중래) : 한 번 패한 자가 힘을 돌이켜 다시 쳐들어온다는 뜻. 한 번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을 뜻함.
81. 貴鵠賤鷄(귀곡천계) : 손에 닿기 힘든 먼 곳의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것을 천하게 여기는 인정을 이르는 말.
82. 克己復禮(극기복례) : 사욕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좇음.
83. 近墨者黑(근묵자흑) :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 가까이하는 사람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
84. 金科玉條(금과옥조) : 금옥과 같은 법률이란 뜻. 아주 귀중한 법칙이나 규범.
85. 金蘭之契(금란지계) : 둘이 합심하면 그 단단하기가 능히 쇠를 자를 수 있고, 우정의 아름다움은 난의 향기와 같다는 뜻 친구 사이의 매우 도타운 사귐의 뜻.
86. 錦上添花(금상첨화) : 비단 위에 꽃을 보탠다는 뜻. 좋고 아름다운 것 위에 더 좋은 것을 더함.
87. 金石牢約(금석뇌약) :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 매우 굳음.
88. 琴瑟之樂(금슬지락) : 부부의 사이가 몹시 좋음.
89. 金烏玉兎(금오옥토) : 금오는 태양, 옥토는 달로 日月(일월)을 이르는 말.
90. 錦衣夜行(금의야행) :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는 뜻. 성공은 했지만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보람 없는 행동이나 입신출세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이르는 말.
91. 錦衣還鄕(금의환향) :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 크게 성공하여 자신의 고향이나 집으로 돌아옴.
92. 金枝玉葉(금지옥엽) : 황금으로 된 나뭇가지와 옥으로 만든 잎이란 뜻. 임금의 자손이나 또는 귀여운 자손을 소중하게 일컫는 말.
93. 奇想天外(기상천외) : 상식을 벗어난 아주 엉뚱한 생각.
94. 杞人之優(기인지우) :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몹시 걱정함을 이르는 말.
95. 騎虎之勢(기호지세) :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형세. 무슨 일을 착수한 후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없는 형세.
96. 洛陽紙貴(낙양지귀) : 글의 평판이 널리 알려짐을 이르는 말.
97. 落穽下石(낙정하석) : 남의 환란에 다시 위해를 가함. 또는 불행이 엎친 데 덮친 격.
98. 落花流水(낙화유수) :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낙화는 물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기를 바라고, 유수는 떨어진 꽃을 싣고 흐르기를 바란다는 뜻. 시간의 흐름이나 남녀 간의 그리운 심정을 이르는 말.
99. 難兄難弟(난형난제) : 누구를 형이라 해야 하고,누구를 아우라 해야 할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 어떤 사물이나 사람 사이에 우열을 구분할 수 없는 비슷한 상태를 이르는 말.
100. 南柯一夢(남가일몽) : 덧없는 한 때의 꿈이나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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