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궁 (Samseonggung, 三聖宮)
위치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삼성궁길 86-15
삼성궁은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성전으로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수 있다.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배달겨레의 성전이며, 수도장이다.
15년 전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선도를 이어받은 한풀선사가 수자(修子)들과 함께 수련하며 하나 둘 돌을 쌓아올려 기묘한 형상으로 쌓은 1,500여 개 돌탑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이국적인 정취를 풍겨낸다.
이 돌탑들은 이 곳에서 원력 솟대라 부른다. 삼한 시대에 천신께 제사지내던 성지, 소도(蘇塗)엔 보통사람들의 접근을 금하려 높은나무에 기러기 조각을 얹은 솟대로 표시를 했다.
지금 성황당에 기원을 담듯, 소원을 빌며 지리산 자락의 돌로 솟대를 쌓아 옛 소도를 복원하고 있다. 3,333개의 솟대를 쌓아 성전을 이루고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 문화를 되찾아 홍익인간 세계를 이루자며 무예와 가, 무, 악을 수련하는 이들의 터전이다.
위치는 청학동 마을 바로 옆에 있지만 들어가는 데에는 약간의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산길을 3백여 미터 오르면 천하통일대장군과 민주회복여장군, 장승이 서있는 곳에 "징을 세번 치고 기다리세요"란 팻말이 서 있다.
잠깐 기다리면 수도자가 한사람 나와 설명과 안내를 한다. 영어가 새겨진 모자는 벗어야 하고, 도복을 입어야 한다. 몇 발자국 옮기면 단군을 모신 전각이 나온다.
"배달민족 후예라 생각하시면 이곳에 경의를 표해 달라"는 정중한 요청을 받아 들여 차례로 줄서 절을 하고 환웅을 모신 천궁에도 절을 하고 나면 자유로운 관람이 허락된다.
이곳에서는 일년에 한 번 개천대체(열린하늘 큰마당)가 열리는데, 이때 많은 방문객들의 자유로운 방문을 허락한다.
삼성궁은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도장(道場)으로 청학동 도인촌이 있는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 해발 850m에 있다.
정식이름은 지리산청학선원 삼성궁으로, 묵계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부터 33만㎡의 터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였다.
궁의 이름은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궁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도인촌과 달리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한풀선사를 중심으로 수행자들이 선도(禪道)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장(道場)이다.
수행자들은 새벽에 일어나 삼법수행을 하고 해맞이 경배를 드린 뒤 선식으로 아침을 먹고 활쏘기·검술 등 전통무예와 선무를 익히며, 오후에는 솟대를 세우거나 밭을 일구고, 저녁에는 법문을 공부한다.
한풀선사와 수행자들이 이곳이 소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쌓고 있는 솟대는 1000개가 넘는다.
한반도와 만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연못, 한낮에도 햇빛 한점 들지 않는 토굴, 전시관, 전통찻집 아사달, 천궁, 숙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맷돌·절구통·다듬잇돌 등으로 꾸며진 길과 담장과 함께 짜임새 있게 가꾸어져 있다.
관광을 하려는 탐방객이 궁 입구에 있는 징을 세 번 치면 안에서 수행자가 나와 맞이한다. 탐방객 가운데 한 사람은 고구려식 도복으로 갈아입어야 안내를 받을 수 있다.
1년에 한 번 가을 단풍철이 되면 개천대제라는 행사를 여는데, 이때 한풀선사와 수행자들이 닦은 무예를 구경할 수 있다.
삼성궁 입구 매표소 대인 7천원 입니다.
이미지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건국전에는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셨다.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여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셨다.
1984년 음력 3월 16일 삼성사(三聖祠)를 삼성궁으로 개명하고, 선도(仙道)의 중흥을 꾀하기 위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폐허속의 원시림을 가꾸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울타리를 만들어 행인의 출입을 막고, 굴러다니는 돌을 모으고 연못을 파는 행선(行仙)을 하여 오늘의 삼성궁을 이루었다.
건국전에는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셨고 삼성궁을 창건한 한풀선사의 사진이 오른쪽에 있다.
삼성궁 (三聖宮)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신선 도장(神仙 道場). 개설 삼성궁(三聖宮)의 ‘삼성’은 한배임[환인], 한배웅[환웅], 한배검[단군]이다. 배달민족의 고유 경전이라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全戒經)』의 삼화경과 삼륜(三輪),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九誓) 덕목을 교리로 삼고 신선도를 수행한다. 국풍(國風)인 천지화랑(天指花郞) 정신을 연마하는 구도자들의 마을이며,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 도량이기도 하다. 설립 목적 민족 선도(仙道) 교육의 총본산으로서 우리 민족 고유의 도맥을 복원 시키고 5,000년 넘게 이어온 민족 선교를 공부하고 가르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여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셨다. 1984년 음력 3월 16일 삼성사(三聖祠)를 삼성궁으로 개명하고, 선도(仙道)의 중흥을 꾀하기 위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폐허속의 원시림을 가꾸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울타리를 만들어 행인의 출입을 막고, 굴러다니는 돌을 모으고 연못을 파는 행선(行仙)을 하여 오늘의 삼성궁을 이루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3월 16일에 봄 천제(天祭)인 삼신제를 올린다. 삼신제는 ‘하나님 맞이굿’이라 하여 아득한 옛적부터 우리 겨레가 천제를 모셔왔던 전통적인 고유 신앙으로서, 천지 만물의 근본이 되는 삼신 하나님께 해마다 제사를 올려온 민족 고유의 제천 행사였다고 한다. 4월 나물이 지천으로 깔리는 때가 되면 나물을 캐 잔치를 벌이는 나물제를 지낸다. 나물제 날은 삼성궁의 소풍날이기도 한데,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을 모아 이루어지는 소박한 행사이다. 나물제를 통해서 조의선인(早衣仙人)과 화랑의 풍류를 배우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가을 단풍철을 전후하여 개천대제(開天大祭)가 열린다. 이전에는 한풀선사와 수자들이 북을 두드리고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전통 무예를 재현하기도 하였다. 현황 삼성궁은 높이 850m에 위치하며 부지 면적은 4만 3967㎡이다. 시설로는 천궁, 건국전, 청학루, 무예청, 연못, 솟대 시청각실 등이 있다. 2008년 방문객 수는 20만 7880명이었다. |
마고성(麻姑城) 마고성(麻姑城)은 신라의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 있는 상상 속의 지역이다. 『조선민족설화(朝鮮民族說話)의 연구(硏究)』(손진태, 을유문화사, 1947), 「속담의 원류를 찾아서」(강재철, 『한국속담의 근원설화』, 백록출판사, 1980) 참조 부도지에 있는 마고성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의 여신인 마고에게 두 딸이 있고 이들에게서 황궁씨(黃穹氏), 백소씨(白巢氏), 청궁씨(靑穹氏), 흑소씨(黑巢氏)의 남녀 각 1명의, 8명이 태어났고, 이들이 각각 3남 3녀를 낳앗는데, 이것이 인간의 시조이며 몇대를 지나 자손이 30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시인 김지하는 고서인 《부도지(符都誌)》가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고, 《부도지》에서 언급한 마고성(麻姑城)을 인류 시원(始原)의 문명이라고 규정한다. 마고성은 21세기 현재에서 1만 4천 년 전 파미르고원에 있었다고 한다. 또 단군조선이 개국하기 이전 시대인 신시(神市, 신시배달국)도 중요시한다. 고대로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정신으로 현재의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군이 실존인물이라고 믿으며, 율려가 생활 속에 가장 순수하게 살아있던 때가 단군시대이며 한민족의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성(城)안의 사람들은 품성이 순수하여 능히 조화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고 수명은 한없이 길고 누구나 스스로 지키는 자재율로 질서를 이루었다. 어느날 백소씨(白巢氏)의 일족인 지소씨(支巢氏)가 지유(地乳)대신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먹게 함으로써 5미(味)의 맛에 취하고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천성을 잃게 되고 수명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들은 성에서 쫒겨나게 되었고 성안에도 지유(地乳)가 끊어져 모든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의 어른인 황궁씨(黃穹氏)가 책임을 지고 마고 할머니 앞에 복본(復本: 근본으로 돌아감)을 서약하고 모든 사람의 4파로 나누어 성을 떠남에 있어 황궁씨(黃穹氏)는 일행을 이끌고 북쪽 문으로 나가 현 동북아시아 지역의 천산주(天山州)로 갔다. 황궁씨(黃穹氏)와 그의 자손인 유인씨[3](有因氏) 그리고 유인씨(有因氏)의 자손인 한인씨(桓因氏)가 천년씩 3천년동안 복본을 위해 몸과 마음을 열심히 닦은 결과 기후가 안정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상승하여 인성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 옛날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 속 깊이 들어갔다가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길이 점점 넓어지고 훤해지면서 눈앞에 두 백발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꾼은 무심코 서서 바둑 두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세워 둔 도끼를 집으려 했는데 도끼자루가 바싹 썩어 집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마을로 내려와 보니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한 노인을 만나 자기 이름을 말하자, 노인은 “그분은 저의 증조부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중국의 무릉도원(武陵桃源)처럼 산속을 헤매던 남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낙원'으로 들어가고 그곳에는 풍요로운 논밭이 이어져 있고 사람들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고 며칠 간 머물다가 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다시 이곳에 오려고 하지만 낙원은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곳, 도원경이라 불리는 중국의 '낙원'은 신비에 싸인 별천지이다. 이상향같은 곳이다. 6세기경 간행된 『술이기(述異記)』에는 진(秦)나라 때 왕질(王叱)이라는 나무꾼이 절강성 상류 구주의 석실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는 서두로 시작되는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에버하르트(Eberhard, W.)가 채록한 중국 민담 중에도 한국의 것과 공통된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의 근원설화로 한자어로 ‘선유후부가설화(仙遊朽斧柯說話)’라고도 한다.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전설로도 일부 전해지고 있다. 황해도 평산읍(平山邑)에 가마골(부동(釜洞)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선암(仙巖)과 난가정(欄柯亭)이 있어 옛날 신선들이 이곳에서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온다. 부도지에 있는 마고성에서는 백소씨의 일족인 지소씨가 포도를 먹는 것과 천성을 잃고 수명이 줄어들게 되어 성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기독교 에덴동산과 일부 흡사한 점을 보아 이 당시 사람들의 이상적인 지역이었다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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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청학동 '삼성궁' 창건 한풀 선사
“우리 민족의 근본 찾기, 이제 시작입니다”
/사람속으로/ 기사입력 : 2013-09-06 11:00:0
지리산 하동 청학동에 배달성전 ‘삼성궁’을 창건한 한풀 선사가 삼성궁내를 둘러보고 있다. 뒤로 건국전과 팔각정자인 청학루가 보인다.
'우리'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많다. 잘 모른다는 것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 잘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잘 알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것, 그래서 실체가 낯설고 정체성마저 흐릿해져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하루하루 잃고 사는 우리를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지리산 청학동에서 태어나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복원하며, 신화(神話)로 알려진 역사(歷史)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민족문화 부흥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풀선사(세속명 강민주)'를 만났다.
선사는 지난 30여 년간 환인, 환웅, 단군 등 배달민족의 시조로 추앙받는 삼성인(三聖人)을 모신 민족성전 '삼성궁'을 창건했다. 10월 3일 개천절을 앞두고 지난달 30일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에서 그를 만나 민족혼과 복원 방안 등을 들었다.
▲안호상 박사와의 숙명적 만남
한풀 선사는 청학동에서 면면이 이어온 '신선도(神仙道)' 교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신선도의 한 종파인 '동도교' 창시자인 할아버지 강한수 옹(작고)과 아버지 동원선사(강동혁·작고), 그리고 스승인 낙천선사(김종운·작고)가 유년기 정신적 지주였다.
6세 때부터 낙천선사로부터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등 고대 신선도의 경전을 배웠고, 삼륜, 오계, 팔조, 구서의 계율을 배웠다. 그러던 선사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유학가면서 스승 낙천선사의 소개로 일생일대의 숙명적 동지이자 또다른 스승을 만난다. 신선도 세계관을 가진 한풀 선사가 민족정기라는 더 큰 가치관을 접하는 계기가 시작된 것이다.
안호상 박사(초대 문교부장관·작고).
안 박사는 독일 철학박사 출신으로 당시 우리나라 지성의 꽃으로 불린 인물이다. 장관 재임시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대한민국 교육이념으로 도입한 분이다. 홍익대, 단국대, 건국대 등 민족교육·민족정신과 관련된 이름으로 대학을 인가해준 애국 민족지사였다.
한풀 선사는 안 박사를 만난 이후 안 박사가 관여하던 개천학회 간사를 맡았고, 개천대학원에서 수학하면서 우리나라 상고사 등 민족 역사와 철학을 배웠다.
중앙대학교와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김성훈·설봉식 교수로부터 실물경제와 응용경제를 배우기도 했다.
이후 선사는 안 박사와 함께 1977년부터 정부에 민족의 시조를 기념하는 '국조전'을 만들자고 주창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사의 고향인 청학동으로 돌아와 '배달민족학교'를 지었다.
배달민족학교는 항일독립운동 총사령관 서일장군이 110여년전 세운 독립군단인 '북로군정서'의 부설 교육기관인데, 장교와 사병을 길러내는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 만큼 중요한 민족정기를 삼성궁이 이어 받았고, '배달민족학교 삼성궁'은 수많은 수행자를 길러내며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배달성전은 커져 갔지만 정작 국민들의 정체성과 역사성은 낮아져 민족혼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풀 선사는 "일본은 시조신을 모신 '이세신궁'이 있고, 중국도 시조 '황제 헌원'을 모신 관묘가 있고, 북한은 단군릉과 단군관련 유적 30여종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조를 모시는 사당이 한 곳도 없다"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 추진해야 하는 공공사업을 개인이 하고 있는데도 정부와 지자체에서 미안한 기색없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질타했다. 선사는 "시조(始祖)를 개인영업에 이용하면 중국은 사형, 일본은 종신형에 처한다"고 했다.
▲민족혼, 부흥시켜야 할 숙명적 과업
나라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지만 대종교·신선도·동학·천도교 등 민족종단의 실체가 사라지고 있고, 민족혼과 독립정신이 사라지는 현실도 안타깝다는게 선사의 하소연이다.
선사는 "해방전후사 인식부분에서 우리의 독립정신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독립유공자에게 포상하고 사후 국립묘지에 모시면 끝나는 문제로 치부한다"면서 "독립운동의 의미를 정진시키고 학습하는 단체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뿌리인 역사교육현장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영어밖에 모르는 나라, 최고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는 현실. 전인은 없고 전문인이 넘치는 현실. 그래서 인성이 파괴되는 현실을 철학·역사·사회학의 유기적인 관계로 살려야 한다는게 선사의 지론이다.
선사는 파괴되는 인성의 복구는 배달정신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배달정신은 단군정신을 말하는데, 밝은 땅(배달)에서 배달민족이 행했던 의식세계는 홍익인간·재세이화·광명이세가 철학적 바탕이다. 이 모두가 인간과 자연,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이화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선사는 특히 배달정신을 개천정신과 결부시켰다. 개천정신이 밝음으로 나아가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단군할아버지가 열었다고 하는 개천. 10월 3일을 말한다. 하늘은 단군할아버지가 열기 이전에도 계속 열려 있었는데 무엇을 열었다는 것인가.
선사는 "단군은 물성인 세상에서 인성인 세상을 열었다. 물성이 지배하던 때는 차별화된 인간구조가 됐다. 하지만 단군할아버지부터 사람이 하늘로 받들여져 사람의 성품을 여는 것을 개천으로 삼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자연그대로 살다가 인성이 강조되니 사는 것이 불편해져 머리를 묶는 댕기가 생기고, 옷을 수습하고, 의식주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며 "개천이후부터 인간내면의 깊은 성품을 성찰하고 깨달았고, 인간 모두가 하느님인 세상을 만들었다"고 개천의 의미를 짚었다.
인간이 곧 신인이면서 인간이 자연인 것을 알았고, 모든 천지자연의 이치에 맞게 조화롭게 사는 성품을 터득해서 가르친 것이 개천절이라는 것이다.
▲필생의 과업으로 쌓는 삼성궁·삼신궁·마고성
첩첩산중 제대로 된 길 하나 없었던 30여 년 전. 선사는 10여 년간 혼자 지리산에서 수행하며 손수 삼성궁이라는 어마어마한 민족성전을 쌓아 올렸다. 90년대 들어서는 몇몇 제자들이 도왔지만 삼성궁의 돌성은 직접 쌓았다.
호미와 삽, 낫으로 행선(수행)하면서 하루 80t에 이르는 돌을 쌓아내며 지금의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하면 쉽게 믿을 사람 누가 있겠냐는 반문도 이해된다.
추위와 더위, 비와 바람, 멧돼지·곰 등 산짐승과 마주하면서도 성전창건을 멈추지 않았고, 등짐을 지며 산속으로 건설자재를 하나하나 옮겨가며 오늘의 삼성궁을 창건해냈다.
선사가 필생의 과업중 첫 번째로 삼성궁을 창건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사가 창건한 삼성궁의 오른쪽 능선을 넘으면 '마고성'이 나오고, 그 성안에 '삼신궁(마고신궁)'이 있는데, 선사의 집안에서 대대로 지켜왔다고 한다. 삼신궁은 지리산 청학동의 산 봉우리인 '삼신봉' 밑에 위치해 있어 삼신궁과 삼신봉의 역사적·지리적 관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마고신을 모신 삼신궁은 항상 있어 왔지만 국조 3대 할아버지를 기념하는 사당이 전국 어디에도 없어 한풀 선사와 안호상 박사, 스승인 낙천 선사의 합의에 따라 갑자년(1984년)에 삼성궁을 창건하기 시작했다.
후원자가 없어 사비를 모으고, 큰누님(강태숙)에게 돈을 빌려 청학동 일대 땅을 매입했다. 일부는 뜻 있는 지역 유지들의 기부로 땅을 제공받기도 했다.
선사는 민족의 근본을 찾는 일에 지역 지식인들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멸시하고, 지역 행정가들의 몰역사성에 따른 반대로 인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풀(큰 기운)' 정신으로 이겨냈다고 한다.
멸시와 반대를 견딘 선사는 "이제 국민들이 삼성궁을 종교단체가 아니라 민족문화 부흥운동 단체라는 것을 알아주고, 지방행정에서도 인정하는 등 민족정기를 일으키는 명소로 발전했다는 측면과 연간 50만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지만 이제 시작이다"고 했다.
내년 10월 서울대학교-삼성궁-UCLA와 세계 마고 학술대회를 개최할 계획도 잡았고, 삼성궁에서 보관중인 선사시대 유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물전시관도 만들어야 한다. 1년에 한번만 개방했던 마고성과 삼신궁의 중건을 서둘러 마쳐 내년부터 연중 공개한다는 약속도 지켜야 한다.
애써 첩첩산중을 찾아오는 연간 50만명에 이르는 관람객들의 입장료와 기념품 판매가 주 수입원인 현실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뜻있는 독지가들의 동참도 민족문화 복원과 중흥이라는 민족적 과업을 진행시키는 선사에게 큰 응원이 될 것같다.
들어갈때 미심쩍은 마음이 든다는 관광객들. 나올때는 "우와~ 정말 대단하다. 또 오겠다"며 크게 만족해 한다. 첫인상은 낯선 곳이었지만 또 오고 싶고, 또 오겠다는 사람들의 약속. 그것은 바로 우리의 DNA가 면면히 이어온 민족적 기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조윤제 기자 cho@knnews.co.kr 사진=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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