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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해병대, 군관련

해병 연평부대 "우리는 지지 않았다"

by 연송 김환수 2010. 12. 14.

해병 연평부대 "우리는 지지 않았다"

2010.12.14 14:46

 

해병장병 피격 당시 상황 수기(手記)로 남겨


"내 두 눈에 박혀있는 2010년 11월 23일은 계속 정지 한 채 두 눈에서 잠자고 있다...우리는 지지 않았다. 그 때를 지우는 일은 내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해병대사령부가 지난달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담은 연평부대 장병들의 생생한 체험을 담은 수기(手記)내용을 14일 공개했다.

전투에 참가한 장병들 가운데 우선 1차적으로 공개한 12명의 수기내용은 현재 초고 상태이지만,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진솔한 언어로 꾸밈없이 담겨져 있다.

 


1차 수기는 즉각 대응사격에 임했던 포 7중대 장병들과 사상자 치료와 후송을 담당했던 의무실, 포탄이 집중적으로 낙하된 본부지역의 장병을 대상으로 종합했다.

적이 쏜 포의 파편에 귀옆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포반원들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자동사격이 불가능하자 수동으로 사격에 가담했던 3포반장 김영복 하사는 "맞고만 당할 수 없어 억울하고, 분노에 차올라서 신속히 포탄을 준비해 반자동임무로 사격에 가담했다"며 "솔직히 (당시 상황이)무섭기도 했지만 포반원을 살리고 싶었다"고 당시 심정을 기록했다.

K-9 대응사격을 지휘했던 7중대장 김정수 대위는 "적의 기습 포격으로 타격을 받은 중대가 목숨을 걸고 서로 챙기며 임무를 수행해 준 중대원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적이 추가도발 한다면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연평도 피격 당시 연평부대 소속 장병 중에는 2명의 전사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의무실 주변에는 11발의 적 포탄이 떨어지는 절대적인 위기가 직면했다.

의무실의 이재선 하사는 "당시 의무실은 드라마에서 보던 처참한 전쟁 현장이었고, 부상당한 동료장병들의 환부를 찾아 군화를 벗겨보니 담겨있던 피가 쏟아졌다"고 참혹했던 상황을 적고 있다.

그는 2차 폭격으로 다시 대피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대피하지 않고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던 한 해병의 모습도 잊지 않고 있다.

전입 3개월이던 의무병 강병욱 이병은 "적의 포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나도) 살고 싶었지만 환자를 살려야한다는 마음에 '모두 대피하라'는 방송도 무시한 채 환자를 치료했다"며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故문광욱 일병을 구급차에 실을 때는 살리지 못한 죄책감 뿐이었다"고 참담했던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의무실에서 피로 얼룩진 부상자의 손을 잡고 "기도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하승원 대위(목사)와 포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군종목사와 함께 화재 진압에 몸을 던졌던 백종협 병장의 뜨거운 동료애의 사연들도 담겨있다.

민간인을 살리고, 후송시키는데 전력을 다했던 인사팀의 당시 모습은 인사과 안준오 중사의 수기에서 볼 수 있다.

연평어린이집의 유아들과 교사들을 대피시키고, 긴급물자를 대피소에 지급한 그들은 "우리는 포격의 순간에 최소한 자신의 안녕을 위해 자세를 숙이지는 않았다"며 "전투 현장에는 사기충천한 연평부대원이, 불타는 마을에는 인사팀이 있었다"고 당당했던 부대원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해병대사령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의 전투상황을 기록한 수기집을 발간, 장병 교육용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