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 학 방/성씨를 찾아서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by 연송 김환수 2010. 5. 13.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를 조용헌 교수는 나름의 기준으로  (고택이 유지된 가문을 선정

대상으로 삼음) 15가문 정도를 꼽았다. (2002.01.15 발간)


모두가 바쁜 세상 책 읽어 볼 여유도 없으신 분들은 다음의 핵심 내용에 5분정도 보셨으면 합니다.

 


1. 경북 영양의 시인 조지훈 종택

   지조 있는 인간을 보고 싶다!


2. 경주 최 부잣집

   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무엇인가


3. 전남 광주 기세훈 고택

   전통은 든든한 뒷심이다


4. 경남 거창 정온종택

   때를 기다린다


5. 안국동 해위 윤보선 고택

   덕을 쌓아야 인물 낸다


6. 남원 몽심재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한다


7. 대구 문씨

   돈이 아닌 지혜를 물려주라


8.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내 뜻에 맞게 산다


9. 충남 아산 외암마을 예산 이씨 종가

   정신의 귀족을 지향한다


10. 전남 진도 양천 허씨 운림산방

   우물을 파려거든 하나만 파라


11. 안동 의성 김씨 내앞종택

    도리를 굽혀 살지 말라


12.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가슴에 우주를 품는다


13. 전북 익산의 표옹 송영구 고택

   사람 보는 눈이 다르다


14. 경북 안동의 학봉종택

   자존심이 곧 목숨이거늘


15. 강릉 선교장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하나의 책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그 책이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전국의 명문가 15곳을 직접 찾아 다니며 각 명문가의 역사와 정신,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 이 책의 가치는 명문가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 될 것이다.


솔직히 뼈대있는 집안이야기는 기분나쁜 주제이다. 그래 조상 잘 만났구나. 거기에 풍수까지 결부되면 그래 집터 잘 골랐구나.


줄줄이 출세한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그래 잘났구나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을 했느냐 ?


보통사람들은 명문가 얘기를 들으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한편으로는 귀가 솔깃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존경심이 우러나오지 않는 무관심 더 나아가 경멸의식까지 동반하는 이중적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결코 나만의 심정만은 아닐 것이다.


왜 그러할까?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세 100년은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면서 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마치 군대 유격훈련 받는 것처럼 혹독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 시대 우리 모두는 상처받았다. 그것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한 가장에서부터 국가를 경영한다는 사회지도층 모두가 그러했다. 이 시대는 진정 존경받는 어른이 없는 불행한 사회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제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상류사회가 존재할수록 그 사회는 안정된 사회이고, 아울러 사회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는 수백년 동안 고택을 유지해온 명문가 집안이 과연 ‘어떻게 살았는가(How to live)’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결과 명문가 집안의 가장 큰 공통점으로 ‘네가 살아야 나도 사는 상생의 원리’를 실천해 왔음을 찾아냈다.


그것은 유교식으로 표현하면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우리의 전통적인 믿음이요,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로마 천 년을 지탱해 준 철학 ‘노블레스 오블리제(혜택받은 자들의 책임; 특권계층의 솔선수범)’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만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의 가훈을 바탕으로 12대 400년 동안 계속 만석의 경제력을 유지해 온 경주 최부잣집의 경륜과 철학을 추적하고, 아울러 그것이 가능할 수 있게 한 하나의 요소로서 그집 고택의 풍수적 조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마치 주변 산과 물이 다르듯,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전국의 15곳 명문가 이야기를 저자 특유의 쉽고도 맛깔나는 문체로 소화해 내고 있다.


그렇다. 도덕성을 갖춘 상류층의 등장은 정치사회의 안정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까지도 높여줄 것이다. 국가경쟁력은 첨단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류층의 오블레스 노블리제 의식, 그것이 참다운 삶과 문화의 질 그리고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될 것이다.


이 책과 비슷한 책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종가집’ ‘고택’ ‘명가’ 등을 다룬 것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몇가지 점에서 예전 책들과 완전히 차원을 달리 한다.


먼저, 수백년 전통의 ‘고택’이라는 하드웨어에 담겨 있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동양사상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동양사상의 주류는 유교와 불교이다.


그러나 전통문화에 배어 있는 옛사람의 정신과 구체적인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불·선이라고 할 때의 선의 전통, 그리고 응용학문으로서의 풍수학·관상학·사주학까지 꿰고 있어야 선인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어렵고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천문·지리·인사라는 전통적인 동양의 삼재사상의 이해체계 속에서 용해하여 오늘날의 코드로 자연스럽게 되살려내고 있다.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정통으로 대학에서 불교와 유교를 전공했으면서도, 일찍부터 재야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기인·달사들과 교류하고 또한 지난 15년간 한·중·일 삼국의 600여개 사찰을 현장 답사해 온 저자의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다양하게 조명한들 어려운 한자말과 생경한 용어들이 남발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전통문화를 조금 깊이 있게 소개할 때마다 부딪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사건이 얽힌 일화에는 많은 한자 지명과 인명 그리고 한시가 들어가고, 다양한 개념들은 형이상학적인 철학용어들이다. 오늘날 전통문화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의미있게’ 라는 대중서의 방향을 충족시켜야 한다.


- 김기덕/건국대 강사·한국사·영상역사연구소장 (2002-01-19)


-----------------------------------------------------------------


출판사 서평

  

명문가의 15가지 원칙

  

경북 영양의 시인 조지훈 종택 / 지조 있는 인간을 보고 싶다!

 

재물과 사람과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은 이 원칙을 370년 간 지켜왔다. 조지훈도 삼불차 집안의 훈도를 받으면서 자라났기 때문에 지조론을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록 유달리 혹독한 근대화 시기를 거친 우리지만, 그 숱한 변절과 기만을 단순히 시대 탓으로 돌리기엔 내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에 이 집안의 지조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경주 최 부잣집 / 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무엇인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만석 이상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경주 최 부잣집에 내려오는 400년 전통의 가훈이다. 부불삼대(富不三代)라지만, 최 부잣집은 9대 동안 진사를 지내고 12대 동안 만석을 한 집안으로 조선 팔도에 널리 알려진 명부(名富)의 대명사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와 덕망을 이어온 집안은 아마도 조선 팔도에 이 집뿐일 것이다. 3대도 어렵다는 명부의 길을 12대 동안 이어온 최 부잣집의 경륜과 철학은 무엇일까.

  

전남 광주 기세훈 고택 / 전통은 든든한 뒷심이다

 

고택 뒤 700평 대숲에서 들려오는 대나무 이파리 소리와 온갖 새들의 합창. 그리고 대숲에서 자라 맛이 일품인 죽로차. 한국의 고급문화를 상징하는 '계산풍류'의 현장이 바로 기세훈 고택이다. 전남 광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성씨를 꼽는 '() () ()'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 집안이 명문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 집안들이 배출한 인물들 때문이다. 광주 지역에서 기씨 집안이 명문으로 부상한 계기는 고봉 기대승이라는 걸출한 인물 때문이다. 300년 역사를 지닌 고택에서 배어 나오는 전통과 풍류의 정취, 그리고 죽으면 화장해서 가족 납골당에 들어갈 거라는 명문가 종손의 결단.

 

 경남 거창 정온종택 / 때를 기다린다

 

'금색 원숭이의 정기가 뭉쳐 있다'는 뜻의 금원산을 배경으로 한 동계고택은 그 강강한 기세가 무림 고수가 살기에 적당한 집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바로 이 집에서 조선 후기 최대의 반란 사건 주도자인 정희량이 배출되었다는 것을 우연한 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지리(地理)와 인사(人事)의 연관관계를 파고들어가보면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고, 뜻을 크게 품었던 탓에 충신과 역신 사이를 오가야 했던 정씨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만나게 된다.

  

안국동 해위 윤보선 고택 / 덕을 쌓아야 인물 낸다

 

풍수적 기운이 짱짱한 화강암 지반의 서울 종로구 일대. 특히 안국동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 명당 터이다. 그중에서도 '안국동 8번지' 윤보선 고택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명택이다. 한국 정치의 산실이라고도 불리는 이 고택을 처음으로 낱낱이 밝혔다. 윤보선 전 대통령 집안은 대통령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서 활약한 이 집안 윤씨들이 한국인명사전에 무려 50여 명이나 들어가 있다. 또 이 집안에는 공덕을 쌓아야 명당을 얻는다는 옛말이 절대 틀린 말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화도 전한다.

  

남원 몽심재 /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한다

 

몽심재가 남원 인근 지역에서 회자된 이유는 과객 대접을 잘했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후하게 대접하기로 유명했던 몽심재는 조선 후기 지리산 로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스캠프였다. 또 몽심재는 우백호보다 좌청룡이 훨씬 길고 튼튼해 풍수상 도인(道人)이 많이 나오는 조건을 갖췄다. 이 때문인지 몽심재의 죽산 박씨 가운데서 원불교 교무가 40여 명이나 나왔고, 이중 여자 교무의 수가 압도적이어서 "호음실에서는 사위 구경하기 힘들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이 집안은 특히 수백 년 간 힘없는 사람들을 남달리 배려하고 돕는 가풍을 이어왔다.

  

대구의 남평 문씨 세거지 / 돈이 아닌 지혜를 물려주라

 

독서를 많이 하면 나쁜 팔자를 좋은 팔자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믿음이었다. 특히 유가에서 독서를 중시했다. 대구 인흥리에 세거하는 남평 문씨 집안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갖고 있는 집안으로 꼽힌다. 남평 문씨들의 문중문고인 '인수문고'8500(2만 권 분량)을 수장, 민간으로서는 고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예로부터 전국의 문인과 달사들이 찾아와 책을 열람하고, 학문을 논한 문화공간이었다. 경술국치 무렵에 남평 문씨들이 인수문고의 기반이 된 만권당을 설립한 배경은 무엇이고, 왜 특히 역사책을 중시했을까?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 내 뜻에 맞게 산다

 

1만 평의 집터에 50만 평에 달하는 장원(莊園)을 가진 윤선도 고택. 이곳에서는 호방함과 소요유(逍遙遊)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저자는 이곳을 '녹색의 장원'이라 부른다. 청룡·백호·주작·현무라는 '유교적 만다라'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고산고택은 천문과 지리에 해박한 옛 사람들의 지혜도 전해준다. 그만큼 격이 느껴지는 집이고, 그 격은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터에서 느껴지는 호방함에서 나온다. 남도(전라남도)가 예향(藝鄕)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게 된 배경에 자리한 윤선도 고택. 호남 예술정신의 요람이었던 이곳의 페트런(patron, 후원자) 정신.

 

 충남 아산 외암마을 예산 이씨 종가 / 정신의 귀족을 지향한다

 

충청도 아산의 예안 이씨 문정공파 종가에서 만난 '정신의 귀족' 이득선 씨. 이득선 씨가 체득한 내공이 바로 '3년시묘(三年侍墓)'이다. 일생 동안 한학자로 살았던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 옆에다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년 동안 생활하며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염을 간직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3년 시묘를 직접 실천한 인물, 현대에 살면서 '중세적 삶'을 경험해본 인물. 저자는 아마도 남북한을 통틀어 근래에 3년 시묘를 글자 그대로 실천한 사람은 이득선 씨가 유일할 것이라고 경외의 염을 보낸다.

 

 전남 진도 양천 허씨 운림산방 / 우물을 파려거든 하나만 파라

 

"진도의 양천 허씨들은 빗자락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 이 대단한 소문의 근원지인 운림산방. 내리 5대째 유명 화가를 배출한 이 산방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당대 발복(當代發福)으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발복의 가업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근세 100년 동안 전통과 민속이 총체적으로 단절되고 해체되는 경험을 겪어야만 했던 우리 나라에서 선대가 했던 일을 손자대에 계승하는 경우는 희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양천 허씨들은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5대째 계속 화가를 배출했다. 1대 소치, 2대 미산, 3대 남농, 4대 임전, 5대 허진. 5대째 예술가를 배출한 집안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아도 그리 흔치 않은 것 사례이다.

  

안동 의성 김씨 내앞종택 / 도리를 굽혀 살지 말라

 

경상북도 안동에 위치한 의성 김씨 종택은 권력의 부조리를 정면에서 고발하는 기백과 목숨을 내건 의리로 인해 조선시대에 금부도사가 세 번이나 체포영장을 들고 오는 수난을 겪었다. 또 비범한 인물들을 배출한 내앞종택의 산실(産室)은 이문열의 소설 소재로 등장할 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안동 지역 인근에서 회자되는 '유가(儒家)에는 3년마다 금부도사가 드나들어야 되고, 갯밭에는 3년마다 강물이 드나들어야 된다'는 속담은, 자신의 신념과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 금부도사의 체포영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알았던 조선 선비들의 정신이 잘 나타난 말이다.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 가슴에 우주를 품는다

 

19세기 동양 삼국을 풍미한 조선 제일의 명필 추사 김정희. 추사가 살던 고택은 무기(武氣) 서린 바위산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솜이불처럼 포근한 야트막한 둔덕이 에워싸고 있다. 주변 사방에 살기가 보이지 않는 이러한 산세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가장 선호하던 산세다. 바로 이런 곳에서 문기(文氣)가 무르녹은 문자의 향기文字香와 서권의 기書卷氣가 발산한다. 이 집은 또 산 자가 죽은 자가 동거하는 구조이다. 이렇게 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옆에 있다는 한국적 사생관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추사고택이다.

 

전북 익산의 표옹 송영구 고택 / 사람 보는 눈이 다르다

 

명나라 때 대문장가인 주지번과 국경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표옹 송영구. 그의 고택은 내룡(來龍), 안산(案山), 득수(得水) 삼박자가 훌륭한 풍수 명당이자 고밀도 기에너지를 갖춘 '마당바위'로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 명문가를 손꼽을 때 가장 중요한 자격 기준은 그 집 선조 또는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How to live)'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를 천착하다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호남대로의 중심지인 전주의 어느 건물 현판에 감춰진 표옹 집안의 드라마는 무엇일까?

 

경북 안동의 학봉종택 / 자존심이 곧 목숨이거늘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맞아 장렬히 싸우다 순국한 학봉 김성일 집안. 이 집안의 애국정신은 그 직계 후손들과 정신적 자식인 제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전해진다. 학봉의 퇴계학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제자이자, 학봉의 11대 종손인 김흥락은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해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제자만 60명이나 배출했고, 학봉의 직계 후손들 중에서도 11명이 훈장을 받았다. 학봉은 서애 유성룡과 함께 퇴계의 양대 제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안동 일대의 명문가는 거의 퇴계와 서애, 학봉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서애가 복잡한 현실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데 주력한 경세가로서의 측면이 강했다면, 학봉은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는 의리가로서의 측면이 강했다고 한다. 이 의리가를 지켜온 학봉의 후손들의 고집도 만만치 않다 

 

강릉 선교장 /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건물 10동에 총 120여 칸의 규모를 자랑하는 선교장. 민간 주택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된 고택이다. 한국의 선풍(仙風)과 풍수사상이 집안 곳곳에 깊숙이 배어 있는 선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장원으로서 손색이 없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자는 옷도 대충 입고, 먹는 것도 되는 대로 먹을 순 있지만, 사는 집만큼은 푸른 소나무 숲이 있는 아름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소나무 숲과 연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선교장은 한국인이 가장 선망하는 집이기도 하다.

  

왜 명문가인가?

 

전국의 명문가 15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각 명문가의 역사와 정신,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푸른역사)가 출간됐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왜 '새삼스럽게' 명문가 이야기인가?

이 책의 저자인 조용헌 교수는 "새 천년에 걸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여기서 새로운 문화란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지난 세월, 살아남느라 먹고사느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이제는 이야기해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삶의 질'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삶의 질은 경제력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경제력만 있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고민하고, 이 책에서 밝히고자 했던 문제도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고, 품위 있고, 질 높은 삶인가? 이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으며, 살고 있을까?

  

존경받는 상류문화 형성을 위해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책이 이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여기서 저자가 생각하는 명문가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상류층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

이제 한국 사회에도 상류사회 또는 상류문화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어느 나라이든지 간에 상류사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상류사회가 존재할수록 그 사회는 안정된 사회이고, 아울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 저자는 이제 한국 사회도 부도덕한 졸부의 시대가 가고 제대로 된 상류층이 나와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존경받는 상류문화 형성에 이 책이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문화가 진정한 상류문화인가? 어떻게 살아야 명문가가 될 수 있는가? 명문가를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 그 집 선조 또는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How to live)'라고 말한다. 돈이 많다고, 벼슬이 높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진선미(眞善美)에 부합하는 삶을 대대로 이어온 집안이 명문가라는 것이다.

  

고대 로마인과 조선 선비의 공통점 '노블레스 오블리제'

 

이 대목에서 저자가 들고 나오는 중요한 개념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천 년을 지탱해준 철학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조용헌 교수는 우리 나라 명문가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 또한 이것이라고 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번역하면 '혜택 받은 자들의 책임' 또는 '특권 계층의 솔선수범'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최전선에 나가 피를 흘리고, 공중을 위해 자기의 금쪽 같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귀족은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책임지는 것이 귀족이고, 노예나 평민은 그 책임이 없거나 약했다. 여기서 로마를 이끌어간 리더십이 나왔다.

이것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그것을 행하는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삶의 질을 더 높이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시오노의 주장이자, 조용헌 교수의 주장이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사는 상생(相生)의 원리

 

바로 이 부분, 도덕적 의무를 통해 자신의 삶의 질을 높였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이 땅의 명문가 사람들이 지향한 삶의 원칙은 단순한 도덕적 실천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와 보람을 찾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는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우리의 전통적인 믿음과도 일맥상통한다. 나보다 못하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집안은 주변 사람들의 신망을 받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알게 모르게 주변의 도움으로 경사가 생길 가능성도 많을 것 아닌가. 따라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상생(相生)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도 그 집안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를 후원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도 위대하지만, 자그만치 123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만석꾼을 지내면서 적선을 해온 경주의 최 부잣집도 그에 못지 않은 철학과 신념을 갖춘 집안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고택을 유지해야 명문가다

 

그렇다면 그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파악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가장 실질적인 자료는 고택이다. 저자는 우선 현재까지 전통 고택을 유지하고 있는 집이어야 명문가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서구화와 산업화의 거센 비바람을 맞으면서 지금까지 이러한 고택들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 토대를 갖춘 명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러한 고택들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이라면 당연히 역사성을 깊이 의식하고 있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의식하는 사람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의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집안의 역사와 사회적 기여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집안이 400~500년의 세월 동안 고택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광주의 고봉 기대승(1527~1572) 집안, 안동의 학봉 김성일(1538~1593) 종택, 해남의 고산 윤선도(1587~1671) 집안이 이러한 고택을 유지하고 있다.

  

인물을 배출해야 명문가다

 

명문 고택을 유지하는 집안들 가운데는 과거와 현재에 걸쳐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곳이 많다. 특히 그 집안을 일으킨 중시조들은 당대에 이름을 날린 인물들이다. 그 후손들은 현재에도 사회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사들이 많다. 서울 안국동의 윤보선 집안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집안 윤씨들은 한국인명사전에 무려 50명 가까운 사람이 등재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진도의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1808~1893) 이래로 5대째 계속해서 화가를 배출하고 있는 집안이고, 남원 몽심재의 죽산 박씨들은 원불교 성직자를 40명이나 배출했다. 자고로 인물이 나와야 고택을 유지할 수 있다.

 

 명문가를 지탱하는 바람과 물의 원리

 

이상의 세 가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조건이다. 저자는 여기에 바람과 물의 원리를 덧붙인다. 전국의 명문 고택들을 두루 현장답사한 저자는 한국의 명문 고택들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풍수의 핵심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 있다고 설명한다. 명문 고택들은 되도록 땅의 기운인 '지령(地靈)'을 훼손하지 않고 집을 지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면 천문·지리·인사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동양의 삼재(三才)사상을 바탕으로 지은 집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택으로 꼽히는 강릉 선교장, 충남 외암마을의 예안 이씨 종가, 전북 익산 왕궁의 망모당, 경남 거창의 동계고택,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등이 그렇다.


------------------------------------------------------------------


조선의 명문가는 어디일까 ?

 

한국에는 명문으로 평가할 만한 가문들이 적지 않다.

 

명문가는 선정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마다 매우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정된 가문들은 대략적으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나름대로 가문의 철학과 처세술, 가치관을 반영한 가훈류의 가르침이 전승 유지되고 있다. 어느 가문이든 확실한 가문의 정체성을 유지해왔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둘째

이런 가문들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가옥을 기준으로 한고택 명문가의 경우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으면 그런 조건을 유지해 나가기 어렵다.

나아가 가문의 정체성을 음으로 양으로 강제하고 주입하는 메커니즘으로서 경제력의 존재를 무시하기도 불가능하다.

 

셋째

역사 인식이다. 아무리 경제력이 뒷받침된다 해도 제대로 역사를 인식하고 살지 않는다면 단절은 아무 때고 찾아올 수 있다. 가치종합체로서 가문은 더 적극적인 정신활동을 요구한다.

 

마지막

자녀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가문의 가치에 공감하는 후세가 계속충원되지 않으면 가문의 역사성은 쉽사리 단절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후손들의교육이 이뤄졌다 할지라도 적절한 수준의 인재가 가문에 등장하는 행운도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