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석수실, 일화오엽루, 대몽각 - 통도사 추사 편액

by 연송 김환수 2020. 2. 29.

통도사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 여러 작품이 있다.





통도사 추사 작품

  - 성담상게(聖譚像偈) - 성보박물관

  - 일로향각(一爐香閣) - 응진전(바로 밑), 모각

  - 탑광실(塔廣室) - 주지실

 노곡소축(老谷小築) - 주지실

  - 산호벽수(珊瑚碧樹) - 보광선원 현판 뒤쪽

 

○ 통도사 극락암 : 무량수각(無量壽閣), 호쾌대활(好快大活)


○ 통도사 사명암 : 대몽각(大夢覺), 일화오엽루(一花五葉樓), 석수실(石壽室),

                          대호쾌활(大好快活)이 남아있다.


□ 통도사 추사 김정희 편액 작품

성담상게(聖覃像偈)


성담상게(聖覃像偈) - 추사 김정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추사의 성담상게(聖譚像偈)가 있다.



18552, 추사 나이 70세 때인 과천 시절 글씨이다.

백파대사비에 버금가는 행서 글씨이다.


성담상게(聖覃像偈) <49×87cm> 성담(聖覃: 聖潭으로도 씀) 의전(倚琠) 스님은 19세기 통도사에서 이름을 떨친 대강백이다.

선교(禪敎)에 모두 밝은 학문적 명성은 불교계뿐 아니라 유림에까지 알려져 권돈인(權敦仁: 1783~1859)과 추사 등 사대부들과 깊은 교분을 가졌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권돈인 찬이 있는 스님의 진영(眞影)이 있는데, 이 찬도 같은 때에 써준 것이다.

 

성담상게(聖覃像偈) -성담상(聖覃像) 게송(偈訟)


面門月滿 얼굴은 둥근 달 같고

頂輪花現 정수리엔 꽃무늬가 어렸네

噫辣聖師 , 성사의

宛其在玆 완연한 모습이 여기 있구나

可以塞老淸之悲歟 늙어 스신한 자의 슬픔을 달랠 만하니

是大悲相歟 바로 대자비의 형상이시어라

文字盤若 문자와 반야가

互攝登光 함께 빛을 발하도다

阮堂老人題 時年七十 완당노인이 칠십세에 쓰다.

 

이 글의 주인공인 성담(법호는 聖覃, 聖潭으로도 씀. 법명은 의전(倚琠))스님은 19세기 통도사에서 이름을 떨친 대강백이다. 청담준일(청담준일)의 법맥을 계승한 사법제자이고 도암우신(도암우신)의 증법손이다.

 

성담스님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시작, 불교 경전은 물론 도가 유가의 경전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성장하여서는 당시 이름난 영호남 지역의 강당을 찾아다니며 선지식들에게 선교의 깊은 뜻을 공부하였다. 성담스님은 학문적 명성은 송림에 떨쳤으며, 유림에 까지 알려져 권돈인을 찾아다니며 선지식들에게 선교의 깊은 뜻을 공부하였다.

 

성담스님 학문적 명성은 총림에 떨쳤으며 유림에 까지 알려져 권돈인(權敦仁:1783~1859)과 추사 등 사대부들과 깊은 교분을 가졌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권돈인 찬이 있는 스님의 진영(眞影)이 있는데, 이 찬도 같은 때에 써준 것이다. 스님은 학문적인 명성에 비해 덕성에 못 미쳐 일찍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일로향각탑광실, 노곡소축, 산호벽수, 무량수각(극락암)

일로향각(一爐香閣), 탑광실(塔廣室), 노곡소축(老谷小築), 산호벽수(珊瑚碧樹), 무량수각(無量壽覺)


일로향각(一爐香閣)-응진전(바로 밑), 모각

 

통도사 경내 대웅전 맞은편에 있었던 일로향각(一爐香閣)은 현재는 그 자리에 설법전이 세워진 후로는 명부전 맞은 편, 응진전 바로 밑으로 옮겨졌다. 보광선원을 들어가기 전의 건물이 바로 일로향각이다. 이 건물은 스님이 거처하는 곳이기에, 때문에 나무판자로 만든 벽이 있었으며, 여름에는 문 앞에 발을 내려놓고 있다. 이 건물의 현판에 적힌 일로향각(一爐香閣)이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1847년 팔공산 은해사(은해사)에 큰 불이 나서 절의 거의 모든 전각이 타버려 3년 이상의 중창 끝에 추사에게 여러 전각의 현판을 부탁했다. 당시 영천 군수였던 이학래(李鶴來)가 쓴 은해사연혁변(銀海寺沿革辨)을 보면 은해사 불당의 대웅전, 종각인 보화루가 모두 추사의 글씨이며, 노전을 일로향각이라고 했는데, 이도 역시 추사의 예서이다. 추사 예서 중 백미로 꼽히는 일로향각(一爐香閣)’은 정상적인 글자 형태가 아니다. ()자의 부수인 ()를 작게 위에 붙여 놓은 것이나, ()의 글자를 원래 글자와 달리 변형시킨 것이나, ()자의 ()자의 획을 본래의 안으로 가 아닌 밖으로 삐쳐 변형시킨 것은 미적 구성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탑광실(塔廣室 - 주지실

통도사 주지실 앞에 현판은 탑광실(塔廣室) 43×74cm이다. 탑광실은 부처님의 은덕이 있는 방을 뜻한다. 추사 행서의 멋과 힘이 함께 느껴지는 과천 시절 작품이다. 탑광실은 현재 주지실의 편액으로 쓰고 있지만, 원래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앞 건물의 금강계단 어디에 걸려 있지 않앗을까 생각한다. 추사 행서 중에 보기 드문 서찰에 종종 보이는 글씨체다. 강건한 필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노곡소축(老谷小築) - 주지실

현판 글씨로 2004년 처음 공개된 노곡소축(老谷小築)은 주지실 탑광실 현판 오른쪽 문 위에 걸려 있다.

노곡소축(老谷小築, 55×105cm)탑광실과 마찬가지로 추사행서의 멋과 힘이 느껴지는 과천시절 작품이다.

 

노곡은 추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스님의 남호 같은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른다.

소축(小築)’은 소실(小室)과 같은 뜻이다. 해서의 필의로 쓴 행서로 탑광실글씨와는 또 다른 북비의 옹건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한다.

 

산호벽수(珊瑚碧樹) - 보광선원 현판 뒤쪽

또 통도사 보광선원 현판 뒤쪽에 바로 산호벽수(珊瑚碧樹) 30×107cm라는 현판이 있다.

 

이 글씨는 여러 곳이 보이는데 양산 통도사나 서울 봉원사에 있는 글씨는 모두 낙관만 되어 있으나, 이 현판에는 果七十(과칠십)’이란 기명이 있어서 과천시절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추사 행서 현판이 드물기 때문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산호(珊瑚)는 수중의 보물이고, 벽수(碧樹)는 요수(搖樹)를 말한다. 산호와 벽수가 큰가지 작은가지 서로 어울리라는 어느 사대부 집안이나 어느 절이 융성하라는 뜻으로 써 준 것이다.

 

또 통도사 보광선원에는 추사의 글씨가 한 점이 있다. 멀리 보이지만 果老(과로)라는 글로 보아 과천시절의 글이다.

글씨는 友鶴山人書室이다. ‘학을 멋 삼아 사는 산사람의 글() 읽는 집이다. 또는 학과 산을 벗하는 사람이 공부하는 집이다(201111일 발견)

 

무량수각(無量壽覺) - 극락암(모각)

통도사에는 추사의 글씨가 6점 보인다. 추사 현판 중에 무량수각은 제주도 귀양전과 후의 글씨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실제의 추사체는 제주도 귀양 후의 김정희의 글씨이다.

통도사 극락암에 가면 이 글씨를 볼 수 있다.

일로향각(一爐香閣)과 마찬가지로 모각인 듯하다.

 

대둔사(대흥사) 무량수각(67×186cm) 현판은 1840년 추사 55세 때(현종 6), 제주도 유배가면서 대흥사에 들러 초의 스님에게 대웅보전 옆 선방(禪房) 건물이던 백설당(白雪堂)이 써준 글씨이다.

 

현재 대흥사에 있는 일로향실(一爐香室)〉 〈동국선원(東國禪院)등의 현판과 함께 추사와 초의의 평생에 걸친 교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글씨의 획이 살지고 장쾌한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추사의 예서이다. 현재 통도사 극락암에 이 글씨가 있으나, 역시 모각인 듯하다. 차이점이라던 노원(老院)이라는 호의 크기가 확연이 다르다. 그리고 극락암에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예산 화암사(華巖寺) 현판 무량수각(30×124cm, 현재 수덕사 박물관 소장)은 제주도 유배 중에 쓴 글씨이다.

추사의 제주도 귀양시절인 1846년은 그의 희갑이 되는 해, 추사의 고향 예산에서는 화암사의 중창이 이루어져 9월에 완성되었다.

 

화암사는 추사 집안의 원찰로 이를 기념하여 화암사에 써서 보낸 글씨가 시경루무량수각이다.

추사가 글씨의 이상향으로 여기는 전한(前漢)시대 경명(滰銘)의 글자를 기본으로 한 예서의 골격에 전서와 해서의 뜻을 더한 새로운 조형미가 풍기는 글씨이다.



====================================================================================

○ 통도사 사명암 추사 작품


- 석수실(石壽室), 일화오엽루(一花五葉樓), 대몽각(大夢覺), 대호쾌활(大好快活)






통도사 사명암의 일승대는 늘 차향 가득하지만, 서예의 묵향 가득한 전시장이다. 일승대는 동원스님이 주로 사용하는 다도실이다.


육각정의 건물 내부의 기둥과 도리에 현판이 걸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 현판의 글씨는 어떤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현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글씨 형태가 있다. 일부 글자는 전서와 초서이다. 20개의 현판을 달아놓았다.



석수실(石壽室) - 추사 김정희

일승천 안쪽에 있는 석수실(石壽室)”은 추사의 글씨체이지만 낙관은 없다.

석수만년(石壽萬年) ‘돌의 생명은 만년 간다에서 온 것이다.

만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돌과 같이 장수를 기원하는 글이다. 회갑 때 즐겨 쓰는 말이다.


일화오엽루(一花五葉樓) - 추사 김정희

 

일화오엽루(一花五葉樓)” 현판에 과노(果老) 김정희 낙관이 있다

 

달마대사가 설중단비(雪中斷臂), 눈 속에서 팔을 자른 혜가에게 천축에서 가져온 낡은 붉은색 옷과 음식 담는 그릇을 전하는 게송에 나온다.

한 송이 꽃에 잎이 다섯 개.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되어 진다.

 

하나의 해석은 달마대사로부터 다섯 명의 제자(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를 거쳐 선종의 가르침이 천하를 덮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다섯 번째인 혜능에게 꽃은 드디어 열매를 맺게 된다.

또 다른 해석은 선종의 육조 혜능 스님이 이룬 한 송이 깨달음의 꽃에서 위앙종, 임제종, 조동종, 법안종, 운문종 등 오종(五宗) 또는 오가(五家)의 잎이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몽각(大夢覺) - 추사 김정희


인생의 큰 꿈을 깨우치고 무명의 꿈 그림자를 타파하는 대몽각(大夢覺)<삼국유사>에 기록된 조신의 꿈과 관계있다.

연인을 사랑하게 된 스님 조신에게 관세음보살은 한편의 꿈을 주어 무명(無明)이 만들어 낸 세계가 꿈인 줄 깨닫게 하고, 그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대몽각(大夢覺)의 가르침을 준다.

대호쾌활(大好快活)- 추사 김정희


밝게 웃자.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베풀면 우리 삶과 세상이 맑아지고 활기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