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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소리꾼 장사익

꽃구경 - 장사익

by 연송 김환수 2013. 9. 22.

 

 

음원은 저작권이 있어 생략합니다.

 

동영상 보시려면 아래주소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http://youtu.be/EL1AQQU0MpY

 

꽃구경 / 장사익 노래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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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22세 할머니의 장수비법

                                                                                         

 

효는 만행의 근본이다 라는 말을 깨닫기 전에 부모님은 이세상 분이 아니셨다.

지나간 후에 후회 한다고 하였던가 ?

 

효도의 효(孝)라는 글자는 늙은 노인(老)을 자식(子)이 업고 있는 형상을 보고 만든 형성문자입니다.  늙으신 부모님을 자식들이 정성껏 보살펴 드리면서,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어버이 살아신제

 

    - 정철 -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닲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의 훈민가(訓民歌)중의 '자효(子孝)'이다.

효도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며, 불효(不孝)는 죄(罪) 중에 대죄(大罪)이다. 그러니 효도는 미루었다가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 계실 적에 효(孝)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

 

 

 

효 도

 

옛날에 몹시 가난하게 사는 한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나이든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였고 어려운 형편에 많은 양의 식사를 하였습니다,

 

살기가 너무 힘들었던 이 가난한 부부는 의논 끝에 아버지를 멀리 산 속에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 아들은 아버지를 지게에 짊어지고 깊은 산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 속으로 들어갈 때 아들은 자신의 발자국 소리 외에 또 다른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버지 이게 무슨 소리죠 ? ”

 

“응 나무 꺾는 소리란다.” “누가 나무를 꺾나요 ?”

 

“내가 꺾었단다” “왜요 ?” “널 위해서란다.

 

네가 날 놔두고 돌아갈 때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해 두었단다”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지게를 세워 놓고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괜찮다. 빨리 올라가거라”

 

“아니에요.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가요”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 역시 엉엉 울면서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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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 (高麗葬)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고 하는 장례 풍습으로 효()를 강조하는 일부 설화에서 전해지지만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조선 시대 민간에서는 연고를 확인할 수 없는 고분(古墳)’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늙은 부모를 산속의 구덩이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례를 지냈다는 풍습으로 오늘날에도 늙고 쇠약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고려(高麗)라는 명칭 때문에 우리나라 고려 시대에 있었던 장례 풍습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러한 풍습이 있었다는 역사적 자료나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풍습과 관련된 설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설화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마치 이러한 풍습이 실재했던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으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명칭이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에는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 있는데 그 자손이 호적과 재산을 달리하여 공양을 하지 않거나 부모나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슬퍼하지 않고 잡된 놀이를 하는 자는 법으로 엄격히 처벌하는 등 효()를 매우 강조하였다.

 

장례 풍습은 불교식 의례를 근간으로 하였으나, 국가에서 상복 착용의 기간을 오복(五服) 제도로 법제화할 정도로 유교적 의례도 중시하였다. 또한 화장과 매장이 일반적이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이 풍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을 뿐이다.

 

노부모를 산에 버렸다는 풍습이 있었다는 역사적 자료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노부모를 제대로 공양하지 않아도 불효죄로 매우 엄격히 처벌했던 당시의 윤리의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려시대 이전 국가들의 장례 풍습을 기록하고 있는 삼국지(三國志)등의 기록에서도 그러한 풍습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고고학적으로 뒷받침되는 자료들도 없다.

 

노부모를 산에 버리는 고려장의 풍습에 관해서는 몇몇 설화들만 존재한다. ‘기로전설(棄老傳說)’이라고 불리는 설화는 70살이 된 늙은 아버지를 풍습대로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함께 갔던 손자가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지고 온다며 그 지게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지성으로 봉양했다. 이후 풍습이 없어졌다는 설화다.

 

그리고 노모의 지혜라고 불리는 설화는 한 관리가 늙은 어머니를 풍습대로 산에 버리려 했는데,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가는 길을 잃을까봐 가지를 꺾어 표시를 했고 관리는 차마 어머니를 버리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왔다.

 

어느날 중국의 사신이 노새 두 마리를 가져와 어미와 새끼를 알아맞히라고 하여 모두 풀지 못했는데, 관리의 어머니가 굶긴 뒤에 여물을 주어 먼저 먹는 놈이 새끼라고 알려 주어 문제를 풀 수 있었고, 그 뒤로 늙은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지역에 따라서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며, 늙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늙은 부모를 산에다 버리는 풍습을 소재로 한 설화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자식 때문에 깨달음을 얻어 늙은 아버지를 잘 봉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중국 당() 시대 이후에 전승된 효자전(孝子傳)의 원곡(原穀) 이야기와 유사하고, 늙은 부모의 지혜로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인도의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기로국(棄老國) 설화와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일부 학자는 기로(棄老)’고려내지는 고구려로 변화하여 자리를 잡으면서 고려장이라는 명칭이 나타났고, 이러한 풍습이 실재했던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곧 고려장이라는 명칭은 기로장(棄老葬)’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변화한 것으로, 고려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한, 고려장이라는 명칭은 20세기 초까지 노부모를 유기하는 장례풍습보다는 연고를 확인할 수 없는 고분(古墳)’을 이르는 말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고려총(高麗塚)고려산(高麗山)고려곡(高麗谷)고려분(高麗墳)이라고도 하였다.

 

1908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일본인의 도굴 사건과 관련해 고려장 굴총(掘冢)’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으며, 191617년에 조선총독부 식산국에서 조사한 고적대장(古蹟臺帳)에도 고려장은 고분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고려장이라는 용어가 노부모를 산에 버리는 장례 풍습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것이 처음 확인되는 기록은 미국의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가 일본에 머무르며 1882년에 발간한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 The Hermit Nation)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리피스는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 노인을 산 채로 묻어 버리는 고려장과 산신이나 해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제(人祭)가 성행했다고 서술하였다.

 

하지만 그리피스는 역사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을 전공한 학자로 일본 정부의 초빙으로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의 전신인 도쿄가이세이학교[東京開成學校]에서 강의했으며, 일본이 주체가 되어 조선에서 미신과 전제왕권을 몰아내고 서구문명과 기독교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의 자료들에만 의존해서 한국의 역사와 풍습에 대해 서술했는데, 한국에 대한 편견에 기초하여 일부 설화의 내용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왜곡하여 서술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기로(棄老) 설화들이 각종 설화집과 동화책 등에서 소개되면서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1919년 미와다 다마키[三輪環]가 펴낸 전설의 조선1924년과 1926년 조선총독부와 나카무라 료헤이[中村亮平]가 펴낸 조선동화집등에서 이 설화들이 수록되었고, 이후 1948에 발간된 이병도(李丙燾)조선사대관(朝鮮史大觀), 1963년에 발표된 김기영(金綺泳)고려장이라는 영화 등을 통해 그러한 인식이 더욱 확산되었다.

 

참조항목기로전설, 노인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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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22세 할머니의 장수비법

                                                                                            연합뉴스 | 입력 2009.12.16 16:28 |

 

순창군, 문화 콘텐츠용 공모작 발표         

 

(순창=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유달리 장수(長壽)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 11대 왕 중종은 전북 순창에 사는 122세의 조씨(趙氏) 할머니의 장수 비결이 몹시 궁금했다.

중종은 조 할머니를 만나 장수의 비법을 직접 듣고 싶었으나 나이가 많은 탓에 거동이 불편해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조에서 똑똑한 김시원을 뽑아 순창으로 내려 보냈다.

순창에 122세의 할머니가 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방방곡곡에서 그 비법을 알고자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모두 허사였다. 아무리 많은 재물도 장수 비법을 살 수 없었다.

조 할머니의 아들 마행곤(馬行坤)이 낸 3개의 문제를 맞힌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행곤은 임금의 명을 받고 내려온 김시원에게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내린 것이오. 내가 이를 함부로 알려주면 천기누설에 해당하니 아무에게나 쉽게 가르쳐 줄 수 없소. 만약 당신이 내가 낸 3가지 문제를 풀 수 있다면 당신은 자연히 답을 얻게 될 것이오"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었던 문제를 냈다.

첫 번째 과제는 조 할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먹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김시원은 궁리 끝에 다음 날 아침 쟁반에 물을 한 사발 떠가지고 갔다.
결과는 '딩동댕'이었고 그 이유를 묻자 김시원은 "순창의 옛 지명은 옥천이라 하여 물이 맑은 곳이어서 이를 오래 마시면 몸이 윤택해지고 모발이 희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들은 빙그레 웃으며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전에 물을 드신다"며 "여기까지 맞힌 사람들은 많다"며 두 번째 문제로이어갔다.


한때 조 할머니는 육종(암)에 걸린 적이 있는데 이를 치료한 약이 순창에 있으니 찾아오라는 문제에 김시원은 느닷없이 밥상을 들고 나타났다.

밥상의 보자기를 걷어내니 그 상에는 흰죽과 된장을 이용한 탕, 고추, 고추장, 무장아찌, 호박무침뿐이었다.

김시원이 "이 고을에서 며칠 머물며 보니 80세 넘은 노인들이 많았고 그들이 끼니마다 먹는 것이 바로 이런 음식들이었소. 음식을 숙성시키면서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니 보약보다 무엇이 못 하겠소. 그리고 소식하면서 배부르게 먹기에는 밥보다는 죽이 더 좋을 것 같았다"고 말하자 아들은 "어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흰죽을 먹었으며 병이 난 뒤에도 흰죽과 채소만 드셨고, 그래서 병이 나았다"며 무릎을 쳤다.

마지막 과제는 생각보다 쉬운 듯했다. 그저 마씨 가족들이 노모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마씨 가족은 4대가 함께 살고 있어 식구만 해도 30명이 넘었다.

며느리는 떡을, 둘째 아들은 비녀를, 손자는 천자문을 읽어 드렸다.
가족들이 노모에게 주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어서 김시원은 도대체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증손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노모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웃음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김시원의 뇌리를 '탁'하고 스쳤다.

그는 다음날 매실 하나를 들고 노모를 찾았다. 아들은 "그대가 가져온 답은 매실입니까?"라고 물었고, 김시원은 "아닙니다. 제가 가져온 것은 효(孝)입니다"라고 답했다.

아들은 "맞다"며 "아무리 귀하고 몸에 좋은 음식이 있으면 무엇하겠습니까? 자식이 효를 다해 부모가 걱정이 없다면 신선도 부럽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니 천수를 누리는 것입니다"라며 김시원을 손을 잡았다.

그렇게 김시원의 지혜로 조씨 할머니의 장수 비법은 세상에 드러났다.
결국, 순창의 맑은 물과 발효 식품, 소식(小食), 그리고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효(孝)가 바로 장수의 비법이었다는 옛 이야기다.

장수 연구에 정통한 레오나드 푼(미국 노인의학연구소장) 박사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올해 6월 순창군을 방문해 100세 이상의 노인들을 면담한 뒤 "이들 노인이 원만한 나들이를 하고 건강상태도 좋은 비결은 이 분들을 직접 모시고 사는 아들, 며느리와 따뜻한 가족애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 가족애나 효가 장수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 '122세 조씨 할머니의 장수비법' 이야기는 순창군이 장수와 관련된 구전설화와 체험담을 발굴해 장수 고을의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해 공모한 100여 편의 작품 중 선정된 것이다.

순창군은 이 작품이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적 고증을 통해 신뢰감을 높이고 할머니의 장수 비결을 문제풀이 방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내 최우수작으로 뽑았다고 밝혔다.                                     ichong@yna.co.kr


 

) 본 블로그 매니저의 본문관련 근거자료 제시

 

조선왕조실록 (정족산본) 

中宗 35 (1540)년 4월 4일

乙丑 1540년 中宗 35년 庚子 嘉靖  

장수한 마유량의 처와 그의 아들 행곤에게 의식에 관한 물품을

제급하라고 명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수촌으로 <동각잡기>기록
<동각잡기>라는 문헌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장수를 한 사람이 장수에서 태어난 것으로 적고 있다. 장수현의 마유량이란 사람의 부인 조씨로서 112세인데 빠졌던 치아가 다시 나서 길이가 한치쯤 되었다 한다.

 

34세에 낳은 아들 이름이 행곤인데 이때 80세가 되어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했다.  * 연령 ?

 

전라 감사가 이 일을 조정에 보고하니 중종께서 전고하기를 상고에 요순의 나라에도 또한 이에 이르지 못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듣지도 못했던 일이다 하고 외식을 내리게 하고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각잡기 [東閣雜記]

 

선조 때 이정형(李廷馨:1549~1607)이 고려 말부터 조선 선조 때까지의 사실(史實)을 뽑아 엮은 책.

필사본. 2권 1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본조선원보록() 또는 선원보록이라고도 한다. 권상은 조선의 건국 배경부터 중종 때의 기묘사화()까지, 권하는 중종 말년부터 선조 때의 임진왜란까지를 다루고 있다. 책머리에 조선왕실의 선조계보()를 약술하고, 고려 말의 기사는 태조에 관한 것을 중심으로 추려 모았다. 《대동야승()》 권53∼54에도 실려 있다.

 

 

 

임유후(任有後)의《휴와야담(休窩野談)》에,

"중종(中宗) 때 전라도 장수현(長水縣)에 마유량(馬惟良)의 아내 조(趙)씨가 나이 1백 20세에 빠졌던 치아가 다시 나서 쌀알만하였고 검은 머리가 다시 났으며, 43세 때 낳았던 아들 행곤(行坤)이 이때 나이 80이었는데, 감사(監司)가 이 사실을 상신하여 의식(衣食)을 지급받게 되었다." * 연령 ?

 

 

 

임유후(任有後)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川). 자 효백(孝伯). 호 만휴당(萬休堂)·휴와(休窩). 시호 정희(貞僖). 1624년(인조 2) 생원시·진사시, 1626년 정시문과에 각각 급제하여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1628년 동생 지후(之後)가 반란을 음모하다가 발각되어 숙부인 판서 취정(就正)과 그 두 아들이 죽음을 당하자 사직했다.

 

효종(孝宗)이 즉위한 후 기용되어 종성부사(鐘城府使) 때는 여진족에 대한 방비를 하고, 백성들에게 유학(儒學)을 가르쳤다.

 

1660년(현종 1) 예조참판을 거쳐 승지를 지내고 1670년 공조참판·병조참판·경기도관찰사·경주부윤 등을 지내고 은퇴했다.

 

이조판서가 추증, 울진(蔚珍) 고산서원(孤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만휴당집(萬休堂集)>, <휴와야담(休窩野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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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풀이 노래 낙양성 십리허에 뜻  : 십리쯤 떨어진 곳에, 허(許)는 우리 말로 '약'이라는 뜻입니다. "약 10리 쯤 떨어진 곳에"라는 뜻임.

중국어로 "也許"라고 하면 "아마도"라는 추측을 나타냄 

 

중국 낙양 망산(洛陽 邙山)에 수십만기 무덤 2012년까지 탐사작업 진행중 

일명 중국의 북망산으로 널리 알려진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시 망산(邙山) 위치

 

성주풀이

 

무가에서 파생된 민요 또는 잡가, 축원무가, 서사무가. 성주풀이는 네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는 민요의 성주풀이로서 굿거리 장단에 경기소리의 선율로 불려지는 분장체 노래로서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화연으로 서서히 내리소사’ 라는 후렴이 붙는 민요를 말한다. 

 

이 노래는 어느 유명한 민요가수가 불러서 널리 알려진 경상도 지방의 향토민요 성주풀이다. 그러나 원래는 민요가 아니고 무당이 성주신(城主神, 집안을 지키는 가신의 우두머리로 평안과 부귀를 관장함)을 모시고 굿을 할 때 부르던 노래. 또는 굿

 

이 민요는 무가에서 파생된 노래로 볼 수 있으며 중부지역 민간에서 널리 불려진다. 두번째는 잡가로서 성주풀이다. 형식은 가사체로서 4 · 4조 연속체이며, 내용은 ‘성주본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이 본이로다’로 시작하여 제비원에서 자란 소나무 재목을 베어다가 집을 짓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 역시 성주굿 무가에서 파생된 잡가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축원 무가로서 성주풀이를 말하는데 성주굿에 구송하는 성주축원을 말한다. 

 

제비원에서 자란 소나무 재목을 베어다가 집을 짓고 온갖 집치장을 하고 세간을 들여놓은 후 농사짓는 과정과 아들을 낳아 길러 과거에 급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농민들의 소박한 행복관이 담겨진 축원무가이다. 넷째는 서사무가 성주풀이인데 가정수호신이면서 가옥의 신인 성주신의 유래를 서술한 무속신화를 말한다.

 

성주굿이나 안택에서 구연되는데 경기 남부지역에서 전승되는 <성주본가>와 경남 동래지역에서 전승되는 <성조신가>가 있다.

<후렴>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로구나
놀고 놀고 놀아봅시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이댁성주는 와가성주 저집성주는 초가성주
한택안에 공댁성주 초년성주 이년 성주

스물일곱에 삼년성주 설흔일곱 사년성주
마지막 성주는 설흔일곱 사년성주
마지막 성주는 쉬흔 일곱이로다.

<후렴>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반갑네 반가워 설리 추풍이 반가워

더디도다 한양 행차가 더디여
남원 옥중 주럼이 들어 이화 춘풍이 날 살렸구나
왕왕왕 왕왕헌 북소리난 태평년월을 자랑허고

둘이부는 피리소리 쌍봉학이 춤을 추고
소상반죽 젖대소리 어깨춤이 절로 나누나.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드메뇨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에 솔씨받어

공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돌이 기둥이 되었네
낙낙장송이 찍벌어졌구나

청천에 뜬 기럭아 니가 어디로 행하느냐
소상으로 향하느냐 동정으로 향하느냐

소상동정 어디다 두고 내창천에 살리우느냐
녹음방초 성화시여 때는 어이 더디든고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고 누었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요만하면 넉넉한가

일천간장 맺힌설움 부모님 생각 뿐이로다.

낙양성 십리호에 높고 낮은 저무덤은
영웅호걸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며

월야춘풍 미백년 소년 행락이 편시춘
아니놀고 무엇허리 한송정 솔을 비어

조그맣게 배를 모아 한강에 띄어놓고
술이며 안주 많이실어 강릉 경포대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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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누구며
우리네 인생 한번가면
저 모양이 될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저 건너 잔솔밭에 솔솔기는 저 포수야
저 산비둘기 잡지마라 저 비둘기 나와같이
임을 잃고 밤새도록
임을 찾아 헤매노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