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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재실,묘소

성묘(省墓)란?

by 연송 김환수 2013. 8. 25.

성묘(省墓)?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서 돌보는 일을 말하며 주로 설, 추석, 한식에 한다. 비슷한 말에는 간산(看山)배묘(拜墓)성추(省楸)전묘(展墓)전성(展省)참묘가 있다.

 

 

간산(看山) : 산을 둘러봄.

배묘(拜墓) : 삼가 소분(掃墳).

소분(掃墳) : 경사로운 일이 있을 때에 조상의 산소에 가서 제사

                  지내는 일.

소묘(掃墓) : 무덤을 쓸다. 깨끗이 함.

배분(拜墳) : 삼가 소분함.

성추(省楸) : 호두나무를 살핌.

전묘(展墓) : 묘를 살펴봄.

전성(展省) : 임금이 선대(先代)의 능묘(陵墓)에 친히 나아가 제사

                  하고 성묘하는 것.

참묘(參墓) : 성묘에 참여함.

배소례(拜掃禮) : 쓸고 절하는 예절.

상묘의(上墓儀) : 묘에 진헌하는 의식.

 

 

省墓(성묘)의 갑골문자(甲骨文字) 한자 형성을 살펴보면

 

(살필성) 이란 글자는  少(적을소) + (눈목)으로

少(적을소)자는 (작을소) + 丿(삐칠별)이고 그 아래에 눈(눈목)이

있으므로 눈썹을 찡그리고 사물을 살핀다는 상형문자(象形文字)이다.

 

(무덤묘)란 글자는 (없을막) + (흙토)

(없을막)++(풀초) + (해일) + (큰대)로 형성되어 풀이나 초목 아래에 태양이 들어가는 자형으로 해가 진다” “어둡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아래에 흙(土흙토)이 있으므로

(무덤묘) 죽은 이를 땅속에 묻는다는 의미로 해석을 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무덤()” 이라는 말은

 

무덤의 첫 글자인 라는 말은 묻는다는 말이고,

바위흙무더기를 말하는 우리의 옛글에서 왔다.

 

따라서 무덤은 묻은 바위또는 묻은 흙무더기를 말한다.

어원 :  묻다(동사) > 묻 + 엄(접미사) > 무덤(명사로 파생)

          무더맷 신령을 청하고 (석보상절)

          + 엄 →  무덤석보상절(1447년)>  

          무덤ㅅ 서리예 긋어다가 두리라(월인석보)

          무더믈 일우니이다(선사내조)

          내 외로왼 무더믈 가 올오져(초간 두시언해)

         새베 니러 의식 무덤 아픠 가 울오 脫喪 고도 더욱 슬코 그려

           <1514속삼강행실도효:6b>

          무덤 <동국신속상감행실도(1617년)> 

     

묻엄은 어간이 어원에서 멀어진 경우이므로 무덤으로 적는다.

 

예전에는 무덤이 아닌 묻엄으로 쓰였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묻음>묻었다의 줄임말인 묻엄>무덤이 된 것인데, 무덤은 어원적으로 볼 때 '묻다'라는 동사의 ''에 명사화 ''이 맞춤법의 규정에 따라서 '무덤'으로 표기된 것이라고 한다.

 

 

성묘하는 방법

 

성묘는 봄에는 한식(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 여름에는 단오(음력 5월 5일), 가을에는 추석(음력 팔월 보름), 겨울에는 음력 101일에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금씩 다를수 있는데 설날 명절전후, 한식, 추석, 음력 10에 성묘를 하기도 한다.

 

성묘 하는 시기는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말 그대로 묘소를 살피는 정도로 생각하여 많은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다.

성묘를 하는 시기도 한식과 추석명절 정도이고가을 묘제를 대신하여 추석 때 성묘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성묘시 준비물은 술과 과일, 말린 고기인 포()를 의미하는 주과포(酒果脯)정도만 준비한다.

 

성묘란 글자의 뜻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이상이 없었는지를 확인하고 살피는 의식의 하나이며, 사별한 조상에게도 생존시처럼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수많은 자손들이 나이 많은 어른을 모시고 조상의 효열담(孝烈談)을 들어가면서 줄을 지어 성묘 가는 모습은 아름다운 정경이다.

 

 

 

성묘때에는 차례 때 쓴 제수 이외에 간단한 주과포를 별도로 장만하여 산소 앞에 돗자리를 깔고 자손들이 모두 늘어서서 성묘를 하는데, 가장 웃대 산소에서부터 차례로 성묘를 한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리 성묘를 가기도 하지만 본래는 당일 성묘를 간다.

 

성묘의 순서

1. 성묘 제수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주과포해(,과일 포,

    식혜)와 추석명절 성묘에 송편 등이다.

    향, 향로, 돗자리, 흰 종이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준비물

    이다.

    여러 조상의 묘가 있는 경우에는 부모의 묘를 먼저 찾는다.

2) 산소에 도착하면 차례를 지내기 전에 먼저 남자는 2,

    여자는 4번 절을 한다.

3) 향을 피워 혼백을 모신 후 제주가 2번 절을 하고 3번에 나눠

    술을 묘에 뿌린다.

4) 가족이 모두 함께 절한 후 제주가 술을 따라 상에 올리고 재배

    한 후 물러나면 주부가 젓가락을 시접 위에 걸쳐놓고 4

    절한 후 물러난다.

    *** 주부(主婦) : 주인의 아내. 아내 부婦 자이다.

         제사를 행함에 주부(主婦)가 아헌관이 되어야 正家이다.

         참고로 주부(主父 : 한 집안의 어른)가 대신하기도 한다.

5) 10분 정도 뒤로 물러나 있다가 주부가 다시 젓가락을 내려

    놓는다.

 

제주(祭主)는 고인(故人)의 장자(長子)또는 장손(長孫)이 되며 장자(長子)또는 장손(長孫)이 없는 경우에는 차자(次子) 또는 차손(次孫)이 제주(祭主)가 되어 제사(祭祀)를 주제(主祭) 한다.

 

상처(喪妻)한 경우는 남편(男便)이나 그의 자손(子孫)이 제주(祭主)가 되고 자손(子孫)이 없이 상부(喪夫)한 경우에는 아내가 제주(祭主)가 된다.

 

제주(祭主)라 함은 제사(祭祀)를 맡아서 지내는 즉 제사(祭祀)를 주제(主祭)하는 사람을 말 한다. 부모의 상에는 큰아들이 주상, 큰며느리가 주부(主婦)이다.

 

처음에 술을 드리는 사람을 초헌관(初獻官)이라고 한다.

두 번 째 술을 드리는 사람을 아헌관(亞獻官)이라고 하는데 두 번 째가 되는 버금아(亞) 字(자)이다.

 

남인집에서는 초헌관의 아내인 주부가 아헌관이 된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된다.  <老石集二>에 <南人家之祭官規>가 있다.

 

<남인집이 제사를 행함에 초헌관이 누구가 되느냐. 맏손자가 제사 주인으로 되어 초헌관으로 된다.

 

두번 째 드리는 아헌관은 누구가 되느냐. 초헌관의 아내인 주부가 아헌관으로 된다.

 

마지막 술을 드리는 종헌관은 누구가 되느냐. 종헌관은 초헌관이 지명하여 시키게 된다.

 

축, 집사자, 역시 초헌관이 지명하여 시키게 된다. 초헌관 아내가 죽게 되면 여자는(그 아내) 아헌관으로 되지 못한다. 제사는 반드시 남편아내가 손수 행해야 하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초헌관이 죽으면 그 아내는 아헌관이 되지 못하고, 참신 유식 사신에 이르는 마디에는 함께 참배한다>

 

제사에서 주부가 아헌관으로 되는 집이 <正家>로 된다. 여자가 우대되는 집에서 자라게 되면 여자를 소중하게 대접하게 된다.

 

 

 

조선왕실 관혼상제에서 아헌관은 두번째 술잔을 올리는 사람으로 보통 세자가 맡는다. 세자는 8장복을 입고 8류관을 쓴다.

 

석전대제<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에게 지내는 제사>에서의 아헌관은 여성분이 맡는 경우가 많다.

 

종묘 제례를 행하는 제관은 맨 처음 헌작(獻爵)하는 초헌관, 두 번째로 헌작하는 아헌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헌작하는 종헌관등으로 구분된다.

 

왕이 몸소 제사를 올리는 친제(親祭)때는 왕이 초헌관, 왕세자가 아헌관, 영의정이 종헌관이 된다.

 

제례 때 제관인 왕과 왕세자는 어숙실에서 재계(齋戒)를 한 후, 어숙실에서 정전과 영녕전 동문으로 난 어로를 따라 묘정에 들어와 각각 정해진 자리인 전하판위(殿下版位)와 세자판위(世子版位)에 이르러 제사를 올릴 예를 갖춘다.

 

주자가례 전통예절

아헌관은 주부이나 유고이니 다음 차순자는 숙부라 숙부가 아헌관이 되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적손은 종헌관이 될 수는 있습니다.

 

●朱子曰祭禮主人作初獻未有主婦則弟得爲亞獻○又曰祭只是三獻主人初獻嫡子亞獻(或主婦)庶子弟終獻(或嫡孫)

●要訣亞獻條曰若主婦有故則諸父若兄弟中最尊者爲之

 

처상을 당하면 그의 남편이 생존하였으면 그가 상주가 되어 상을 주관하여야 합니다.

●奔喪凡喪父在父爲主註此言父在而子有妻子之喪則父主之統於尊也

●喪大記若子孫有喪而祖父主之

●四未軒曰奔喪註云各爲妻子之喪爲主也則是凡妻之喪夫自爲主也

 

 

 

예전 성묘기록을 보면   

 

1388년 (우왕 14) 10월에 헌사가 또 상서하기를, “현관에 임명된 자는 부모를 보러간다거나 성묘하러 간다고 의탁하여 구두로 전달만 하고는 문득 고향으로 돌아가 오랫동안 묵으면서 관직을 비우니 이것은 임금을 섬기고 나라에 몸을 다하는 의가 아닙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부모의 상사에 가는 이외에는 경계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고 만약 일이 부득이한 것은 반드시 사직한 연후에 떠나게 하시고 위반하는 자는 엄히 다스립시오.하였다. ; 十月 憲司又上書曰顯官任職者 託以覲親省墓 冒干口傳 便歸鄕 曲淹延歲月 曠官廢職 非事君致身之義也 願自今 父母奔喪外 不許出關外 其事有不獲已者 必辭職然後乃行 違者通理[고려사 권제84, 36장 뒤쪽, 38 형법 1 공식 직제]

 

성묘는 일년에 4번을 했다.

 

지금까지 변해온 것을 살펴보면, 정초에는 차례만, 한식에는 성묘만, 추석에는 차례와 성묘를, 그리고 10월에는 4대 이상의 조상에 대한 묘제가 각각 행해져 왔을 것으로 보인다.

 

성묘는 묘를 살핀다는 말이다. 금초나 벌초도 큰 의미로는 성묘에 포함되고 있다. 물론 묘역에 연고가 있으면 관리 보수도 겸하지만 조상의 묘는 가능한 한식과 손이 없는 날을 택해서 했다.

 

첫번째 성묘는

입춘이 되면 설날 명절 전후가 되는데 각 농가마다 벌레의 번식을 막기 위해 논 밭두렁을 태우게 되는데 간혹 불길이 묘에 옮겨 붙어 산소를 태우는 경우가 있다. 첫번째 성묘는 설날명절 전후 시기에 한다. 또는 한식에 첫번째 성묘를 하기도 한다.

 

청명(淸明)때 첫번째 성묘지내기도 하는데 청명은 보통 한식과 겹치거나(6년에 한번씩) 하루 전이 되기도 한다. 청명은 음력 3월에 드는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로 청명(淸明)이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3월의 묘제에 사용되는 축문은 계절의 기운이 차례로 흘러 바뀌고 비와 이슬이 봉분을 적시기 때문에, 이것들을 쓸어내려 봉분을 깨끗이 하고자 합니다.” 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두번째 성묘는

입춘이 지나 한식(동지 이후 105일째 되는 날로 양력 45일 전후) 이 되면 새로 쓴 묘역에 사초나 잔디()를 입히거나 묘역을 보수하는 기간이다. 한식때 두번째 성묘을 한다.

한식은 동지 이후 105일째 되는 날로 양력 45일 전후가 되는데 양력으로 따지다 보니 한식날이 음력 2월이 될수도 있고, 3월이 될 수도 있다.

한식에 첫번째 성묘를 하고 두번째 성묘는 단오(음력 5월 5일)에 지내기도 한다.

세번째 성묘는

한식을 지내면 추석(음력 팔월 보름) 성묘이다. 추석 성묘는 추석이 들기 앞달에 한다. 이 때가 처서의 전후 시기가 되는데 산야의 잡풀은 처서가 되면 잎이 마르고 씨앗이 영그는 때이다. 씨앗이 영글어 떨어지기 전에 잡풀을 베어 낸 것이다. 이를 두고 벌초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세번째 성묘이다.

 

 

네번째 성묘는

음력10월달이나 시월 보름에 묘제를 지내는 것이 마지막 일년의 네번째 성묘이다.

묘제(墓祭)는 음력 10월 초하루(1)부터 늦으면 20일까지 지내는데 집안마다 좋은 날을 정하여 지낸다.

 

묘제(墓祭)는 묘에서 지내는 제사로 예서(禮書)에는 묘제라고 하나 일상생활에서는 시사(時祀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한다.

주자의 가례 家禮에 의하면, 4대 조상까지는 3월 상순에 날짜를 택하여 묘제를 지내고, 그 윗대의 조상은 101일에 올리도록 되어 있다.

10월 묘제의 축문은 초목의 잎이 뿌리로 돌아가는 때를 맞아 근본을 갚을 일을 생각하게 되어 감히 봉분을 깨끗이 하고자 합니다.”

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금초(禁草), 벌초(伐草) 사초(莎草)의 의미를 살펴보면,

 

금초(禁草)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줄인 말이며, 무덤에 불조심을 하고 때를 맞추어 풀을 베고 잔디를 잘 가꾼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무덤에 불이 나면 조상에 대한 욕보임은 물론 그 후손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벌초(伐草) 무덤의 풀을 깎아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금초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벌초라는 말의 사용에 대해서는  좀 더 다루어 보기로 한다.

 

벌초란 말은 중국한어대사전이나 일본한화대사전이나 한국 한한대사전에는 그 말이 없고, 방대한 50만 어휘를 수록했던 동남아 삼국에서 대사전류에 보이지 않으므로 예전부터 사용했던 어휘는 아닌 것이다.

 

伐(벌)이란? 치다, 찌르다, 베다, 자르다, 두드리다, 없애다, 처벌하다 .....등으로 사용되며 벌(伐)은 갑골문자에서 무기로 사람의 목을 치는 자형이다.

이러한 살벌한 말뜻의 글자를 조상의 무덤을 살피는 성묘 때에 풀을 단장하는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과 글은 반드시 연고가 있는데 다만, 그 깊은 뜻을 비천하게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경전이나 사전에도 안 나오는 벌초라는 말은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고 성묘(省墓)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벌초란 말 대신에 경전에서는 "易墓(역묘)단어가 이미 나와 있는데

이 말은 현재 우리가 몰라서 안쓰고 사장(死藏)되어 있는데 이말을 되살려 쓰기보다는 성묘라는 말을 사용하면 된다.

 

공자는 역묘란 "易墓 非古也(역묘 비고야)라 했다. 易墓? 묘역의 풀과 나무를 베어서 거칠어지지 못하도록 다스리는 것은 옛법이 아니라고 주석했다. 더 쉽게 풀이하면 이 말은 본뜻은 옛날에는 묘지를 만들면 묘역 주위에 난 초목을 베어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면 묘지를 정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옛날이란 은나라 이전을 말한다. 그리고 은나라 이전에는 아예 봉분이 없었다.(孔穎達疏: 殷以前墓而不墳是不治易也)

 

옛날 은나라 이전에는 매장만 하고 봉분은 하지 않았으며 묘역의 잡초나 나무들을 베거나 해서 거칠어지지 않도록 다스리는 일도 없었다.

다만, 상에는 지극히 슬퍼하고 제사에는 지극히 공경하는 것이 고례의 풍습이었다.

슬퍼하고 공경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예의 근본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문집에서 본 伐草(벌초)라는 뜻과 의미는 풀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며, 묘소의 단장을 의미와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는데 18~19세기를 거치면서 벌초라는 뜻으로 오용(誤用)했음을 알 수 있다.

 

사초(莎草) 오래되거나 허물어진 무덤에 잔디()를 입히어 산소를 잘 가꾸는 일을 말합니다.

 

금초(禁草)와 벌초(伐草)는 보통 한가위 한달 전인 음력 715일경부터 한가위 전까지 실시하는데 일년중 우리민족의 최대명절을 맞이하여 자손들이 조상님들이 계시는 장소를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기에 잡초들의 성장이 거의 마무리 되므로 금초 또는 벌초를 실시하고 있지만 금초 또는 벌초는 자손들이 필요에 의해 언제 해도 상관 없다.

 

莎草(사초)관례적으로 한식이나 또는 봄철에 윤달이 들어 있는 때에 시행을 하고 있다. 원래 莎草(사초)라는 말은 성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사초는 풀이름이다. 고례에는 지금의 잔디() 대신에 사초를 심었다.

 

莎草(사초)의 종류는 다양하게 많지만 아래와 같이 잔디와 비슷하게 생긴풀이다.

 

 

     좀보리사초 : 외떡잎식물 벼목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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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는 7시에서 오후 5시 사이가 가장 좋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성묘는 시간을 잘 선택해야 한다. 가장 좋은 시간은 양기가 비교적 왕성한 시간인데 보통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까지가 가장 좋다.

 

날이 아직 밝지 않았거나 이미 해가 넘어간 시간은 성묘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만약 성묘하는 날 정신이 맑지 않다면 옥장신구를 몸에 차도 되는데 이는 정신을 안정시키는데 좋다고 한다.

 

성묘할 때는 의관을 정제하고 표정을 엄숙하고 정중하게 하며 거친 말을 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면 안되며 더욱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불경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성묘를 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야 하며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지 말고 다른 집의 분묘를 자세히 쳐다보거나 밟아서는 안된다.

 

또 다른 집의 분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으며 묘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삼간다.

 

임산부, 병자, 7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성묘하러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성묘를 다녀온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곤함을 느끼는데, 이 때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고대의 풍습에 따르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화로를 타고 지나야 했는데 옛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음기를 쫓아낼 수 있다고 여겼다.

 

엄숙하고 정중함을 나타내는 검은 옷을 입는다.

 

어떤 사람들은 성묘하러 갈 때 검은 옷을 입는 것을 꺼려서 붉은 색 혹은 노란색 등 산뜻한 색깔의 옷을 입으려 하는데, 그 이유는 검은 옷이 쉽게 음기를 불러 오기 때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검은색 옷을 입으면 정중하고 엄숙해 보여 조상에 대한 추모의 뜻을 나타낼 수 있다.

 

성묘할 때는 오히려 색상이 화려한 옷을 삼가해야 하는데 이러한 옷은 성묘할 때의 분위기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흰 옷을 입는 것이 비교적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또 청명에 신발을 사면 안 된다고 여기는데 신발을 뜻하는 "()"자가 사악함을 뜻하는 "()"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신발을 사면 사악한 기운을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심리작용일 뿐이다. 이날 신발을 사도 자신에게 어떤 나쁜 운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청명에 조상을 제배하는 과정의 여러가지 금기가 많이 사라졌다.

 

중국의 경우 봉분앞에서 향을 피우고 기도하며 잡초를 뽑고 준비한 제사음식을 올리며 지전(紙錢) 등을 태우거나 혹 간단하게 꽃 한 다발을 올려 조상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담는다.

 

오늘날 전통적인 묘지제사에도 또한 새로운 변화가 생겨 그 식순이 점차 간단해지고 새롭게 변화되었다.

 

특히 도시에서는 꽃 한 다발과 노란 리본, "천당으로 보내는 편지" 한통 등 친환경적인 제전(祭奠) 방식이 점점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