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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김씨 연원(淵源)/안산의 유래, 市史

생거최설안산호 / 제2회 안산읍성문화제 / 제1회

by 연송 김환수 2010. 12. 6.

생거최설안산호 生居最設安山好
정조의 깊은 뜻 진작에 알았다면

 

안산 행궁에서 하룻밤을 지낸 정조는 안산을 떠나며

'生居最說安山好(살아서 거주하는 곳 안산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라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正祖大王(정조대왕)의 御製詩(어제시)

地勢盤如萬朶蓮 (지세반여만타연)-지세는 만 송이 연꽃처럼 서려 있는데

尋常魚蟹不論錢 (심상어해부논전)-물고기와 게는 너무 흔해 돈으로 논하지 않고

生居最說安山好 (생거최설안산호)-살아서 거주하는 곳 안산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

況復穰穰大有年 (황복양양대유년)-벼까지 잘 여물어 크게 풍년이 들었음에랴.


지난 30일 필자가 거주하는 수암동에서 안산 최초로 어가행렬이 진행됐다.

 

 지역사회에 20년이 넘도록 살았지만 지금껏 이 같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줄도 몰랐으니 다른 지역에 사는 안산시민들이야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안산시와 경기도와 안산문화원이 함께 주최하여 마련한 이번 제 2회 안산읍성 문화예술제를 기점으로 지역에 대한 애착은 물론 자부심과 기대감 마져 생겼으니 한 번의 축제가 갖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하겠다.

 

안산 수암동은 안산의 발원지이자 읍성이 건재했던 중심지임을 모르는 시민들이 많은 것 같다 행정구역상 안산, 시흥 등 다른 명칭으로 불려 지기도 했지만 실제 이곳은 유서깊은 역사적 흐름이 머물렀던 곳이다.

 

안산에는 별망성 예술제 단원미술제, 대부도포도축제 등 다양한 문화예술 축제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안산시의 근본을 찾는데는 다소 명분이 부족한 것 같다.

 

이번 축제를 통해 알게 된 상식이지만 안산읍성은 수암 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와 만들어진 전형적인 평안성과 평지성의 절충식으로 만들어진 읍성으로 수암봉의 능선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이렇게 자연 지세를 이용한 읍성의 형태는 우리나라 성곽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식전 행사로 마련된 읍성 견학에서 성의 둘레는 772m이고 주요 방어지역으로 여겨지는 서쪽과 북쪽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이 매우 가파르며 몇 개 의 높은 단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군마 7필을 비롯한 경기감사, 총리대신, 조총부대, 훈련대장, 어전 취타대, 대왕어가, 왕세자, 문무백관 순으로 장엄하고 화려한 행렬이 거리를 지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안산에서도 최초 어가 행렬이 재현된데 대해 이번 행사를 마련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됐다.

 

한때 세기적 권력의 위치에 올랐던 안산김씨의 본거지인 안산시 장상동 노리울 에서는 노루 입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안산에서는 원성태후, 원혜태후, 원평왕후가 태어난 곳이며 후손인 덕종, 정종, 문종 임금이 탄생하진 충절의 고장이다.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현재의 경기도 안산은 조선시대에는 안산군관아가 있었을 만큼 중심지였으니 현재 안산시 수암동 253번지 일대로 추정되는 안산군 관아 자리는 볼품없는 경작지에 그치고 있어 역사적 고증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고장에 대한 문화유산 보존에 관심을 높이고 역사적 의미를 되찾음으로서 안산최고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관계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안산이 살아서 거주하는 곳 안산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 정조대왕의 말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성연 기자.

 

상기 기사는 주간신문 서부뉴스 2010년 11월 1일자(제81호) 와 포털싸이트 daum(뉴스-안산), 오마이 뉴스에도 함께 보도되어 언론의 기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뉴스로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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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안산읍성문화제

 

작년에 이어 두번째 열리는 문화제이다.

안산에서 개최되는 여러행사 가운데 안산의 옛 모습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안산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문화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문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예산을 비롯한 안산시의 지원은 

다른 축제나 문화제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행사는 수암동 주민의 노력으로 잘 치루어졌다.

 

TV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유명가수를 비싼 돈 주고 부르고

안산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행사

그리고 '학술심포지움'이라고하면서 학술과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나와

토론아닌 잡담을 하는 학술대회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진정 동네사람들의 축제였다.

물론 '옥'에도 '티'가 있듯이 여기에도 '티'는 있었다. 

 

동시에 여러행사가 진행되었다.

제일 먼저 진행된 것은 안산의 鎭山인 취암(鷲巖 ; 일본의 영향으로 수암봉이라 개명되었다)을 관장하는 산신께 드리는 산신제였다. 

 

      

 현재 안산에서 산신제를 올리는 곳은 팔곡동, 화정동, 광덕산 등 여러 곳이 있다. 

진행이 좀 미숙한 면도 있었지만 때마침 산을 오르는 등산객의 호응이 좋았다.

 

 

 

 

정조대왕 안산 행궁 행차시연은 1797년 음력 8월 16일 당시 정조의 어가행렬이

안산에 당도하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원래 어가행렬은 적게는 1천여 명에서 많게는 5천명에 이르는 거대한 행렬이었다.

이러한 행렬이 안산을 지나갔고, 또한 이곳 안산 행궁(안산객사)에서 임금이 하룻밤 묵었다는 사실은 안산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로, 2010년 안산객사를 복원하며 개최하는 안산읍성 문화예술제는 매우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어가행렬보다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지만 옛날 안산을 되짚어보기에 충분했다. 

 

 

 

 

옛 안산의 사진을 모아 사진전을 열었다.

단원 김홍도와 그의 스승 표암 강세황이 예술세계를 펼쳤던 옛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옛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격적이었다.

그러나 단원 김홍도의 미술이 싹텄던 이곳의 구(區)명칭은 '단원구'가 아닌 '상록구'이다.

무엇인가 걸맞지 않은 모습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정조가 하룻밤 묵고간 안산행궁. 최근에 복원되었다.

 

1797년 추석날 한양을 출발한 정조대왕은 평소 다니던 노량진․금천․화성으로 가는 길을 놔두고 양천(陽川)을 거쳐 김포의 장릉을 참배하고 하룻밤을 묵었다. 16일 아침 김포를 떠나 부평을 거쳐 안산에 이르렀을 때는 야심한 시각이었다.

 

안산 행궁에서 하룻밤을 지낸 정조는 안산을 떠나며

'生居最說安山好(살아서 거주하는 곳 안산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라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正祖大王의 御製 詩

地勢盤如萬朶蓮 (지세반여만타연)-지세는 만 송이 연꽃처럼 서려 있는데

尋常魚蟹不論錢 (심상어해부논전)-물고기와 게는 너무 흔해 돈으로 논하지 않고

生居最說安山好 (생거최설안산호)-살아서 거주하는 곳 안산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

況復穰穰大有年 (황복양양대유년)-벼까지 잘 여물어 크게 풍년이 들었음에랴.

 

 

안산을 떠나 구포(鷗浦)를 거쳐 화성 현륭원(顯隆園)에 이르러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화성행궁에서 이틀을 묵은 정조는 평소대로 지지대고개를 넘어 시흥과 노량진을 거쳐 한양으로 돌아갔다.

 

 

이때 “안산 백성이 관가에서 빌린 곡식 중 가장 오래된 1년 조를 탕감하고, 금년에 빌려간 곡식에 대한

이자를 특별히 면제하라”는 특전을 내렸다.

 

그리고 어가행차가 지나간 고을의 수령에게 명하여 한 고을마다 3통씩 제목을 내걸고서 과거(科擧)를 보아 시권(詩券)을 거두어 올리게 하였다.

 

안산에 대하여는 아래와 같은 제목으로 시험에 응하도록 하였다.

 

부(賦)는 어제 시(御製 詩) - “생거최설안산호(生居最說安山好) 황복양양대유년 (況復穰穰大有年)”

시(詩)는 “봉사남경취전당홍종지호왈연성(奉使南京取錢塘紅種之號曰蓮城)”

명(銘)은 “평근루(平近樓)” 

 

 

이 과거시험에서 장원은 시(詩)부문에서 권중술(權中述), 부(賦)부문에서 안산군 동몽교관 (童蒙敎官)인 김집(金鏶) 명(銘)부문에서 전주 최씨 진사 최홍진(崔鴻晋)이

각각 부문별 1등을 차지했는데, 장원 3인 중 1등으로는 최홍진이 뽑혔다.

이 중 김집과 최홍진은 오랫동안 안산에서 세거한 안산 사람이었다.

 

특히 최홍진은 안산문단(安山文壇)을 여는데 지도자적 위치에 있던 최성대의 종손(從孫) 이며, 조선후기 안산을 문화운동의 중심지로 이끌었던 해암(海巖) 유경종(柳慶種)의 사위이다. 최홍진은 이날의 장원으로 1801년(순조 1) 4월 24일에 거행된 별시문과 (別試文科)에 직부(直赴)되어 병과(丙科)로 급제하였고, 벼슬은 승문원 정자(正字)를 지냈으며 안산에 은퇴하여 살았다.

 

 

국적도 없고 안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도 없는 내용의 축제보다는

안산에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사실을 재현하는 읍성문화제가 지속적으로 열리기를

바란다.

 

정조대왕도 극찬하였던 1만 송이의 연꽃과 같은 안산의 지세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안산에서 우리의 상징인 연꽃을 볼 수 없고

안산의 정체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1만송이의 다른 꽃을 보아야만 한다.

아쉬운 마음은 나만의 생각일까?

                                                    출처 :  http://blog.daum.net/maro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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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안산읍성문화예술제

 



제 2회 안산읍성문화예술제가 지난 2009년에 이어 오는 10월 30일 개최될 예정이다. 안산시의 발원지 수암봉 자락의 문화재인 안산읍성을 복원시키고 역사적 의미를 더욱 드높이고자 마련된 안산읍성문화예술제는 안산시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행사를 약 2주 앞둔 10월 17일 이번 행사의 추진위원장인 김홍락 위원장을 만나 준비상황과 행사개최의 배경을 들어보았다.

 

질) 먼저 행사 개최목적과 취지를 말해 달라

 

 

김홍락 추진위원장

 

답) 아직 수암동이 안산의 발원지이자 읍성이 건재했던 중심지임을 모르는 시민들이 많은 것 같다 행정구역상 안산, 시흥 등 다른 명칭으로 불려 지기도 했지만 실제 이곳은 유서깊은 역사적 흐름이 머물렀던 곳이다.

 

안산에는 별망성 예술제 단원미술제, 대부도포도축제 등 다양한 문화예술 축제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안산시의 근본을 찾는데는 다소 명분이 부족한 것 같다. 전국 각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축제가 있지만 이번 안산읍성 문화예술제는 안산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질) 읍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는데 시민들에게 이해를 돕는다면

 

답) 안산읍성은 수암 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와 만들어진 전형적인 평안성과 평지성의 절충식으로 만들어진 읍성으로 수암봉의 능선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이렇게 자연 지세를 이용한 읍성의 형태는 우리나라 성곽의 특징이다.

 

성의 둘레는 772m이고 주요 방어지역으로 여겨지는 서쪽과 북쪽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이 매우 가파르며 몇 개 의 높은 단을 이루고 있다. 평지인 남쪽은 돌을 쌓았는데 도로로 인해 절단된 것을 보면 성벽의 바깥 부분과내부에는 부분적으로 석축을 하고 그 안쪽에는 흙을 다져서 성벽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터는 읍성의 주된 통로였던 남문터를 비롯하여 동문과 북문 등 3곳이 있었으며 성의 북서쪽 정상부에는 편평한 터가 있는데 지휘본부의 역할을 하는 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성내에는 조선초기의 무장이었던 김정경의 거처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김정경이 심었다고 전하는 은행나무 3그루가 남아있다.

 

관아 터에는 처음에 이웃인 목내동에 있었으나 1669년 에 이곳으로 옮겼다. 성내의 곳곳에는 기와조각이 많이 발견되어 건물이 여러 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성의 형태나 객사, 동헌 등의 행정시설과 옥사와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군사적 목적보다는 행정적인 역할이 더 강한 전형적인 읍성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 왜구를 막기 위하여 쌓았던 서해안 지역 여러 읍성과 그 계통을 같이 한다.

 

지금은 모든 시설이 파괴되어 주축돌과 장대석, 기와조각이 곳곳에 흩어져있어 시에서는 복원계획을 수립하여 공원화할 계획이며 현재 한양대학교 박물관 팀이 유물 발굴 중에 있다. 이 같이 유래가 깊은 읍성의 의미를 기리고 역사를 되새김으로써 올바른 민족가치관정립은 물론 주민들의 화합의 다지는데 중요한 연례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질) 이번 행사의 주요 내용에 대해 한 말씀

 

답) 이번 2010 안산읍성 문화예술제는 오전 9시 30분 수리산 산신제를 시작으로 안산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출발하는 정조대왕 안산행궁 어가행렬이 시연된다. 편도 4차선중 1개 차선을 이용한 어가행렬은 군마 7필을 비롯한 경기감사, 총리대신, 조총부대, 훈련대장, 어전 취타대, 대왕어가, 왕세자, 문무백관 순으로 장엄하고 화려한 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울 예정이다.

 

총 150여명으로 구성된 어가 행렬은 정조대왕이 과거시험을 관장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수암봉 주차장을 지나 객사까지 이어지는 행렬에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13년전 당시 정조의 행차를 통해 안산지역 문화축제의 정통성을 살리는 한편 취타대의 웅장한 우리음악이 연주되면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이어 오전 11시부터는 공식행사가 진행된다.

 

개그맨 서인석씨의 사회로 진행되는 공식행사에 앞서 시립 국악단과 대금연주가의 보석으로 알려진 안성군씨와 천재 소리꾼 박수빈이 펼치는 난타 공연은 많은 시민들에게 우리가락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많은 내빈들 또한 안산읍성 문화예술제개최의 참된 의미를 직접 보고느낌으로서 함께 하는 축제, 안산시민으로서 자긍심을 채울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날 것이다.

 

이번 행사의 2부순서로는 안산지역 25개 주민자치센터에서 예심을 거쳐 진출한 노래자랑이 관건이다. 우리나라의 노래문화는 대중성이 강하다 특히 축제장의 노래솜씨는 대부분 프로를 능가할 만큼 수준높은 실력자들이 출연함으로써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먼저 마이웨이를 부른 인기가수 윤태규씨의 공연에 이어 그날을 부른 김연숙 등 국내 유명가수들이 출연하여 가요계의 서막을 올린다. 이어 예선을 통과한 약 25명의 출연진들이 한껏 기량을 뽐내게 된다.

 

질) 그 밖에 특별한 체험행사가 있다면

 

답) 오전 9시 30분 읍성이 있었던 성곽터를 탐방하고 김정경 장군의 사저터를 다녀보는 유적지 탐방이 있는데 훌륭한 교육 자료가 될 것이다. 이어 오전 10시 부터는 수암봉 주차장앞마당에서 진행되는 투호놀이와 새끼꼬기, 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객사앞마당에서는 정조 대왕이 안산행궁 행차 시 관장했던 과거시험이 재연된다.

 

관내 초중고 등학생 약 80여명이 참가하는 과거시험은 현대판 수능시험과도 같은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그밖에 안산읍성 및 안산동 역사관련 자료를 영상으로 담은 사진전, 먹거리, 네일아트, 인삼전시판매, 한지 공예 등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도 마련했다.

 

안산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기대되고 있다. 유적지 순례시상 및 경품추첨과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가 함께 열릴 계획이다.

 

질)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특별한 애로사항이라면

 

답) 주민모두가 한마음으로 단합된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막상 위원장직을 맡고 보니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앞섰다. 지역 축제를 통해 우리 안산동을 널리 알리고 우리가 사는 안산동이 역사적으로 소중한 의미를 가진데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됐다.

 

앞으로도 지역발전과 수암봉 사랑하기에 적극 동참하여 오는 2011년 안산읍성문화예술제에는 안산뿐만 아니라 인근 시흥이나 안양에서도 많은 분들이 찾아오길 기대한다. 특히 이번 행사를 위해 각계 각층에서 함께 협조해 주신점이 무엇보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모쪼록 행사가 안전사고 없이 원만히 진행되길 기원하며 다소 부족한 것은 서로 챙겨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끝으로 안산읍성문화제에 관심을 갖고 대외적인 홍보를 아끼지 않은 서부뉴스와 안산인터넷뉴스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안산읍성문화재의 유래와 역사를 찾아서

 

地勢盤女萬朶連 : 지세반여만타연

尋常魚海不論錢 : 심상어해불논전

生居最設安山如 : 생거최설안산여

況復禳禳大有年 : 황복양양대유년

 

소반 같은 땅 모양은 일만 송이 연꽃과같고

물고기와 게는 너무 흔해 돈으로 논하지않고

살아서 거주하는 곳 안산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

벼까지 잘 여물어 크게 풍년이 들었음에라

 

1797년(정조21년)8월 15일

 

김포의 장릉과 현륭원을 전배하기 위해 왕궁을 출발한 정조는 숭례문밖의 관왕묘에 주정한 후 양천행궁, 김포행궁, 부평행궁,을 거쳐 시흥에 이르자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묘(신천동 소래산에 있음)에 승지를 보내제사를 드리게 했다.

 

이어 영조조에 영의정을 지낸 김치인에 대하여는 아직 시장이 마련되지 못하였다하여 홍문관으로 하여금 조속히 거행하는 동시에 그의 묘 (안현동 길마재에 있음)에도 제사를 드리게 하고 성종조에 참찬을 지낸 구종직의 묘에도 사람을 보내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정조가 안산행궁에 도착한 것을 8월 16일 늦은 밤, 이날 현재의 수암봉 주차장 부지에 마련된 객사에 하루를 묵으셨다.

 

이튿날 8월 17일 정조는 안산행궁 아헌에서 안산에 거주하는 유생들을 상대로 행행시사를 실시하였는데 어제로 부제는 <살기는 이 안산 땅처럼 좋은 곳이 없겠는데 하물며 올해는 풍년까지 들었다네>이었고 시제는 <남경에 사신으로 가서 전당흥을 가져와 그것을 심었는데 이르기를 연성이라 하였다>이었다.

 

또 명제는 <평근루>였다 이 행행시에서 는 모두 25명을 선발하였고 부 장원에는 유학 김집이 뽑혔고 시 장원에는 유학 권중술이 뽑혀 감시와 회시를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리고 장원에는 진사 최홍진이 선발되어 직부회시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였고 그 외 22인에게는 가각 규장전운을 사급하였다.

 

정조는 안산행궁에 머물면서 안산아헌에 나아가서 란 어제시를 읆었는데 이 시는 현재도 안산고장의 부로들간에 성조가 우리고을에 아름다움을 읆은 노래하고 전해진다.

 

한때 세기적 권력의 위치에 올랐던 안산김씨의 본거지인 안산시 장상동 노리울 에서는 노루 입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안산에서는 원성태후, 원혜태후, 원평왕후가 태어난 곳이며 후손인 덕종, 정종, 문종 임금이 탄생하진 충절의 고장이다.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현재의 경기도 안산은 조선시대에는 안산군관아가 있었을 만큼 중심지였으나 1914년 일제가 부,군,면을 통폐합 하면서 행정의 중심지로 변모된 바 있다. 현재 안산시 수암동 253번지 일대로 추정되는 안산군 관아 자리는 볼품없는 경작지에 그치고 있어 역사적 고증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홍락 안산읍성문화예술제 추진위원장

 

 프로필

(현)안산동 주민자치위원장

(현)SC건설(주)대표이사

시흥시장 표창 및 주민간사패(봉사부문)

안산학 제 2기 수석부회장

경희대 행정대학원 안산캠펴스 12기 수료

경희대 행정대학원 안산캠펴스 총동문회 자문위원

 

김균식

 

상기 기사는 주간신문 서부뉴스 2010년 10월 18일자(제79호) 와 포털싸이트 daum(뉴스-안산), 오마이 뉴스에도 함께 보도되어 언론의 기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뉴스로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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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산읍성 문화제 개최
역사와 전통이 깃든 유서 깊은 문화유적 홍보
서은영   2009-11-25 오후 4:17:03

 

 

 

 

 

 

 

 

 

 

 

 

 

 

 

 

 

 

안산동은 지난 11월 14일 주민들에게 우리 지역 문화재의 의미와

가치를 알리기 위해 안산읍성 문화제를 개최하여 주민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다.

 

장기간에 걸친 복원사업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있던 경기도 지정

문화재『안산읍성 및 관아지터』에 대하여 문화제를 개최함으로써

『안산읍성 및 관아지터』가 우리 동내 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가

아닌 역사와 전통이 깃든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며 복원사업이 완료

되면 훌륭한 관광 상품으로써 지역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점을

주민 스스로가 깨닫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의식전환의 계기가 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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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읍성문화제 2,000여 주민 '성황'

입력시각 : 09-11-19 09:38
 

 

사진1 : 제1회 안산읍성문화제가 지난 14일 수암봉 공영주차장에서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 하게 개최됐다.

지난 14일 수암봉 주차장서

개최 문화적 자긍심 고취,

시민화합의 장으로

 

 

안산의 대표적인 문화재

가운데 하나인 상록구

수암동 옛 안산읍성의

문화적 가치를 다시

되새기고 이를 널리 알림

으로써 지역 주민은 물론

안산시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제1회 안산읍성문화제가

지난 14일 수암봉 공영

주차장에서 박주원 안산

 

 

 

시장, 심정구 안산시의회 의장, 박순자 한나라당 최고위원, 김영환 민주당 국회의원 및 시민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개최됐다.

 

안산읍성 문화제위원회가 주최하고 안산동 주민센터가 주관한 이번 문화제는 안산시와 안산문화원, 경기

문화재단 등의 협조로 진행됐으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다채롭게 마련된

갖가지 프로그램을 즐기며 잊고 지냈던 안산읍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매주 수암봉에 다니면서도 바로 이곳에 경기도 지정 문화재인 안산읍성 및 관아지 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하산하던 도중 문화제가 열리는 것을 보고 소중한 안산의 문화재에 대해 알게 돼 기쁘

다"고 말했다.

 

이날 제1회 안산읍성 문화재는 공식행사와 함께 산신제가 모셔졌으며 옛 원님 행차를 재현한 행사와 원님

주관 과거시험을 재현한 백일장 및 사생대회, 안산읍성과 유적지 등의 모습을 담은 역사사진전 등이 함께

개최됐다.

 

또한 새끼꼬기, 한궁대회, 역사OX퀴즈 등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민속놀이와 무공 김유연선생이 직접 써

주는 가훈짓기 행사, 안산읍성과 사직단터 등을 둘러보는 유적지 순례, 그리고 시민들이 자신의 가족들과의

행복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행복한 가족사진전 등이 열려 참가자들을 즐겁게 했다.

 

처음으로 안산읍성 문화제가 개최돼 가슴 뿌듯하다는 안산동 한 주민은 "안산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임에도

안산동은 외곽에 위치한 도,농 복합지역이어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측면이 있었다"며 그러나 "안산 대표

문화재인 안산읍성과 관아지 터를 알리는 뜻 깊은 이번 문화재가 개최되게 돼 누구보다 이 지역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안산읍성문화제위원회 김남용 위원은 "안산읍성을 비롯한 안산동의 수많은 문화유적에 대한

가치를 널리 알리고 그 의미를 찾아보자는 취지로 축제를 마련하게 됐다"며 "이같은 문화제를 통해 주민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또 이 문화제가 75만 안산시민 모두가 하나 되는 화합의 장으로 자리 잡기를 진심으로 바란

다"고 말했다.

 

제1회 안산읍성 문화제 개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경기도의회 김제연 의원은 "문화제가 개최되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관계기관과 축제를 준비하고 또 짜임새 있게 진행하신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며 "앞으로 안산읍성 문화제가 더욱 알차고 내실 있게 진행돼 안산의 대표적 문화유적을 기리는 시민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산읍성 및 관아지는 조선시대는 안산군의 진산(鎭山)인 수암봉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는 100미터 이내의

능선을 이용하여 평지를 감싸도록 고려후기 이후에 축성된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으로 수암동 산 26-4번지

일원에 위치해 있다.

 

성이 축조된 시기에는 해안으로 침입하던 왜구에 대비하여 이곳에 읍성을 축조하고, 바로 뒤편의 수리산이

천험의 산세를 가지고 있어 따로 산성을 축조하지 않아도 피난이 가능했다고 여겨지는 성으로 우리나라 조선

시대 읍성 성립이전의 발생한 읍성으로서 매우 귀중한 문화재적 자료로 평가 된다.

 

전체의 둘레는 772.2m로 북벽 219.4m, 동벽 180.6m, 남벽 197.5, 서벽 174.7m의 성이며 축조방법은 성벽의

내외면을 쌓아 올리는 공법을 사용했다. 배후에 해발 3백 95m인 수암봉을 의지하고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이다.

 

사진2 : 안산읍성문화제에서는 옛 원님행차를 비롯한 민속놀이 등이 마련돼 참석한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3 : 김창일 안산읍성문화제 위원장이 이번 축제 개최 및 안산동 발전에 많은 노력을 한

           김제연 도의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4 : 이번 축제에 참석한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다.

 

제1회 안산읍성문화제 열려
지난 14일… 주민 1천여명 참여
[2009-11-24 오전 11:13]

 

안산읍성문화제 위원회(위원장 김창일)가 개최한 제1회 안산읍성문화제가 지난 14일 수암봉공영주차장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모두 1천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 뜨거운 열기속에 진행됐다.

 

안산읍성문화제 위원회(위원장 김창일)가 개최한 제1회 안산읍성문화제가 지난 14일 수암봉공영주차장

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모두 1천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 뜨거운 열기속에 진행됐다.
특히 11시부터 시작된 개막식 행사에는 박주원 시장을 비롯, 박순자, 김영환 국회의원 등 초청인사와

주민 5백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개막식행사에서는 행사개최에 공고를 인정받아 김제연 도의원인 주민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오전 9시 산신제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유적지순례, 원님행차 등 전통의식을 재현하는

프로그램이 실시됐고, 사물놀이, 민속놀이 등의 공연이 있었다.
 

또한 개회식 이후 가수들의 공연과 경품추첨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김창일위원장은 『우리 지역의 전통을 발굴해 내고, 또한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들이 참여해서 매우 보람있는 행가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안산읍성은 수암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와 만들어진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과 평지성의

 절충식으로 만들어진 읍성으로 수암봉의 능선을 이용해 쌓았는데 이렇게 자연지세를 이용한 읍성의

형태는 우리나라 성곽의 특징이다.
 

성의 둘레는 772미터이고 주요 방어지역으로 여겨지는 서쪽과 북쪽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

바깥쪽이 매우 가파르며 몇 개의 높은 단을 이루고 있다.
평지인 남쪽은 돌을 쌓았는데 도로로 인해 절단된 곳을 보면 흙을 다져서 성벽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터는 읍성의 주된 통로였던 남문터를 비롯, 동문과 북문 등 3곳이 있었으며, 성의 북서쪽 정상부에는

평평한 터가 있는데 지휘본부의 역할을 하는 무장이었던 김정경(1345~1419)의 거처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김정경이 심었다고 하는 은행나무 3그루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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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大王(정조대왕)의 御製詩(어제시)  

 

'生居最說安山好 (생거최설안산호)'

 

 

地 勢 盤 如 萬 朶 蓮 (지세반여만타연)

소반 같은 땅 모양은 일만송이 연꽃과 같고

 

尋 常 魚 蟹 不 論 錢 (심상어해부논전)

물고기와 게는 너무 흔해 돈으로 논하지 않고

 

生 居 最 說 安 山 好 (생거최설안산호)

살아서 거주하는 곳 안산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

 

況 復 穰 穰 大 有 年 (황복양양대유년)

벼까지 잘 여물어 크게 풍년이 들었음에랴

 

이 시는 조선 제22대 임금인 正祖大王(정조대왕)이 안산에 와서 하룻밤

묵으며 지은 御製詩(어제시)입니다.

 

서기1797년(정조21년)8월 16일,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릉원 행행길에 안산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노량진에서 시흥을 거쳐 화성에 이르는 평소의 행차길을 버리고 양천을

거쳐 부평행궁에서 잠시 쉬고 날이 저문 무렵에 안산에 도달하여 안산관아

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는데

 

그 이튿날 화성행궁으로 떠나기 전 서울에서 안산까지 임금의 수레가 거쳐 온 10개 邑(읍)의 선비들에게 임금이 親臨(친림)하는 과거시험을 베풀었는

데, 이 때 정조대왕이 직접 시제를 내렸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안산군읍지 '丁巳(정사) 幸行詩士(행행시사) 御題(어제)'

편에 나오는 것으로 거기에서는 안산의 지형을 부채를 반 쯤 펼친 것과 같아 한쪽면은 산에 의탁하고 다른 세 모퉁이는 바다로 둘러 쌓였으며 邑治(읍치)는 동쪽 높은 산 아래 있고 面(면)과 里(리)는 서쪽 연해변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동쪽의 면에는 밭이 많고 논이 적으며, 서쪽의 면에는 논이 많고 기장과 피, 벼 등이 각기 알맞게 자라고 또한 산에서 나물을 캐고 물에서 고기를 잡는 즐거움과 물고기, 소금, 땔나무, 물의 좋음이 있으므로 위와 같은 어제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안산이 살기 좋은 곳임을 말해 주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안산의 지명이 安山인 것은 지형이 매우 안정적이고 일만송이 연꽃이

서로 어깨를 대고 피어 있는 지세이기 때문에 아주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