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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內系外系

고려 현종,덕종,정종,문종과 안산김씨 관계

by 연송 김환수 2008. 8. 22.

⊙ 고려 현종(顯宗) 992~1031

 


고려 제8대 왕(재위 1010~1031), 휘(諱)는 詢, 자는 안세(安世), 시호는 원문(元文), 태조의 여덟째 아들인 안종(安宗) 욱(郁)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종의 둘째 비(妃)인 헌정왕후(獻貞王后)(孝肅太后)이다 비는 성종의 두 딸 원정왕후(元貞王后)와 원화왕후(元和王后), 시중(侍中) 안산김씨 김은부(金殷傅)의 딸 원성왕후(元成王后), 대종의 손녀 원용왕후(元容王后)이다 1009년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 강조(康兆)의 옹립으로 왕위에 올랐다 이 해에 강조가 목종을 살해한데 대하여 문책한다는 구실로 거란의 성종(聖宗)이 쳐들어오자 참패하고 친조(親朝)할 것을 조건으로 화의가 성립되어 거란군은 물러갔으나


끝내 친조를 하지 않았다고 또 6성을 요구해 온 것도 거절하였다 1018년(현종9)거란의 장군 소배압(蕭排押)이 6성을 빼앗고자 침입 했으나 강감찬의 활약으로 물리쳤다 다음해 부터 거란과 국교를 열어 평화정책으로 일관하여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모든사치와 호화로운 의식. 제도를 폐지하고 승려의 횡포를 엄금하는 한편 기민(飢民)의 구제에 만전을 가하였다    능은 개성의 선릉(宣陵)이다

 

 

북한 개성 교외 만수산 기슭 언덕에 있는 고려 8대 임금 현종의 선릉. 병풍석이 묻힌 채 민묘처럼 퇴락한 무덤을 훼손된 석물들이 쓸쓸히 지키고 서 있다. 무덤 바로 앞에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다. 장경희 교수 제공

 

 

⊙ 고려 덕종(德宗) 1016~1034

 


고려의 제9대 왕(재위 1031~1034), 자는 원량(元良), 이름은 흠(欽), 시호는 경강(敬康), 현종(顯宗)의 장자(長子), 모후(母后)는 원성태후(元成太后) 안산김씨 1022년(현종13) 태자로 책봉 즉위한뒤에 거란(渠丹)에 억류된 고려인 송환을 요구했으나 거란의 반대로 하정사(賀正使)를 중지 하였으므로 삭주(朔州). 영인진(寧仁鎭). 파천(派川)과 동북(東北)의 여진(女眞)이 대립하고 있어 이 양 적을 방어 하기 위하여 평장사(平章事) 류소(柳韶)에게 명해서 압록강 어구로 부터 영원(永遠)등14성을 거쳐 동해안의 도련포(都連浦)에 이르는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축성하게 하자


동여진인(東女眞人)과 거란인들의 투항이 속출하였다 천리장성은 규모가 매우 웅대하여 길이 천리와 높이와폭이 각각 25측의 석축(石築)이었다 전략무기를 창안하여 새로운 병기를 만들었고 덕종 즉위년에 국자감시(國子監試)를 비로소 시행하여 부(賦)와 시(詩)로써 인재를 등용했다 현종때 시작한 국사 편찬사업을 완성하였으며 능은 개성의 숙릉(肅陵)이다

 

⊙ 고려 정종(靖宗) 1018~1046

 


고려 제10대 왕(재위 1035~1046), 휘(諱)는 형(亨), 자는 신조(申照), 시호는 용혜(容惠), 현종(顯宗)의 둘째아들이며 덕종(德宗)의 동생, 어머니는 원성왕후(元成王后) 안산김씨 비(妃)는 용신왕후(容信王后) 한씨(韓氏), 용의왕후(容懿王后) 한씨 용목왕후(容穆王后) 이씨 1027년(현종18)개부의동삼사 . 검교태사 겸 내사령이 되었다 34년(덕종3)즉위하여 명주성(溟州城)을 수축 다음해에는 북계(北界) 송령(松嶺) 동쪽장성을 수축 하였으며 또 창주(昌州 :平北昌成)에도 성을 쌓았다 36년(정종2) 각 도(道)의 양전(量田)을 다시 실시하고 여러 위(衛)의 군인중 경전(耕田)이 부족한 자에게는 공전(公田)을 더주었다


이후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1044년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완성시켰다 또 같은해 예성강(禮成江)의 병선(兵船)180척으로 군수물자(軍需物資)를 운반하여 서북계 주진(州鎭)의 창고에 보관케 하는등 국방정책에 힘을 기울렸다 이듬해 비서성(秘書省)으로 하여금 예기정의(禮記正義) 모시정의(毛詩正義)등을 간행하게 하였고 46년 장자상속법(長子相續法)과 적서(嫡庶)의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다

 

⊙ 고려 문종(文宗) 1019~1083

 


고려 제11대 왕(재위 1046~1083), 초명(初名)은 서(緖), 후에 휘(徽)로 개명, 자는 촉유(燭幽), 현종(顯宗)의 세째아들로 어머니는 원혜태후(元惠太后) 안산김씨 처음에 낙랑군(樂浪君)에 책봉되었으며 정종(靖宗) 때에 내사령(內史令)에 임명되었다 나중에는 정종의 뒤를 이어 고려의 제11대왕으로 즉위 하였으며 고려시대 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문화 황금기(文化黃金期)를 이룩하였다 한편 문종은 왕자 후(煦)를 출가(出家)시켜 승려가 되게 하였으니 그가 곧 대각국사 의천(義天)이다 문종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儒學)도 함께 장려하여 최충의 구재(九齋)를 비롯한12도(徒)의 사학(私學)을진흥 시켰다


문종은 특히 중국 송(宋)나라와 친선을 도모하여 선진문화(先進文化)의 수입에 힘썼다 이와같은 여러가지 현명한 정책이 차차 큰효과를 나타내어 문종의 치세(治世)에는 고려의 문화도 찬란한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 문종은 인재 등용에도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어서 적재를 적소에 배치했기 때문에 제도의 개혁 빈민의 구휼(救恤)등에도 큰 치적을 올렸다 학문을 좋아 하고 서도(書道)에도 뛰어났으며 능은 경능(景陵)이다

 

 

판문군 선적리에 있는 11대 문종(재위 1046~1083)의 경릉. 12도의 사학을 진흥시켰고 송나라와 국교를 열었던 왕이다. 능역이던 무덤 앞은 논밭으로 변했다.

 

원성태후(元成太后)

시대 고려

생몰년 ?-1028(현종19)

본관 안산김(安山金)

시호 광선(廣宣)

활동분야 왕비


원성태후(元成太后)에 대하여   원성태후(元成太后)

?∼1028(현종 19). 고려 제8대왕인 현종의 제3비.

안산김씨(安山金氏)로 시중을 지낸 은부(殷傅)의 딸이며, 어머니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된 이허겸(李許謙)의 딸이다.

1010년(현종 1)에 거란병이 내침하자 왕은 나주로 피난하였다가 적병이 물러가자 왕궁으로 귀환하던 중 공주에 묵게 되었다.

이때 절도사인 은부는 왕을 영접하고, 그 딸로 하여금 어의를 지어드리게 하고, 편안히 모시게 하였다. 왕은 이를 맞아들여 연경원주(延慶院主)로 삼았다. 정종을 낳은 뒤 궁주(宮主)가 되고 얼마 뒤에 왕비로 봉하여졌다.

한편, 왕비의 두 자매도 함께 맞아들여 비로 삼았다. 세 자매가 함께 한 왕의 왕비가 된 예는 이것이 처음이며, 광종 때 왕실족내혼이 이루어진 이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이다.

현종과의 사이에 덕종·정종의 두 아들과 인평왕후(仁平王后)와 경숙공주(景肅公主)를 두었다.

시호는 원성왕후이고 명릉(明陵)에 장사하였으며 현종 묘실에 합장하였다. 덕종 즉위 후에 왕태후로 추존하였고, 뒤에 용의(容懿)·공혜(恭惠), 1056년(문종 10)에 영목(英穆), 뒤에 양덕(良德)·신절(信節)·순성(順聖), 1140

년(인종 18)에 자성(慈聖), 1253년(고종 40)에 광선(廣宣)의 시호가 거듭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 閥族에 관한 硏究(黃雲龍, 親學社, 1978). 〈鄭容淑〉


원혜태후(元惠太后)

시대 고려

생몰년 미상

본관 안산김(安山金)

활동분야

왕비

 

원혜태후(元惠太后)에 대하여

원혜태후(元惠太后)

생몰년 미상. 고려 현종의 제4비.

안산김씨(安山金氏)로 아버지는 시중이었던 은부(殷傅)이며, 어머니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된 이허겸(李許謙)의 딸이다.

원성태후(元成太后)와 원평왕후(元平王后)와는 자매간이다.

1010년(현종 1) 거란의 침입으로 나주로 피난하였던 현종이 왕궁으로 귀환도중 공주에 들렀을 때 납비되었다. 이것은 그동안 왕실내에서만 이루어지던 혼인이 귀족가문으로 확대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현종과의 사이에 문종·평양공 기(平壤公基)·효사왕후(孝思王后)를 낳았다. 문종은 고려 제11대왕이 되고, 그뒤 고려왕통은 문종의 후손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그리고 평양공 기의 후손은 대대로 왕실 공주와 계속적인 혼인관계를 맺는 집안으로 고정되었다.

처음에 안복궁주(安福宮主)라 칭하였다가 연덕(延德)으로 개칭하였고 사후에 원혜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능호는 회릉(懷陵)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閥族에 관한 硏究(黃雲龍, 親學社, 1978). 〈鄭容淑〉


1025년에 왕비로 추봉되고 1027년에 평경(平敬)의 시호를 내렸으며 문종이 즉위한 뒤에 태후로 추존되었다.


원평왕후 김씨(元平王后 金氏) 

생몰년 미상. 고려 현종의 제7비.

안산김씨(安山金氏)로 아버지는 시중을 지낸 은부(殷傅)이며, 어머니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된 이허겸(李許謙)의 딸이다.

현종의 제3비 원성태후(元成太后)와 제4비 원혜태후(元惠太后)와는 자매간이다.

거란의 침입으로 나주까지 피난하였던 현종이 왕궁으로 귀환하던 도중 공주지방에 들렀을 때 납비(納妣)된 언니들을 따라 왕비가 되었다. 현종과의 사이에 효경공주(孝敬公主)를낳았다. 1028년(현종 19)에 원평왕후로 추증되었으며, 능호는 의릉(宜陵)이다.


인평왕후

생몰년 미상. 고려 제11대 문종의 제1비. 고려 제8대왕인 현종의 딸로 어머니는 현종비인 원성태후(元成太后) 김씨(金氏)이다. 문종의 모후인 원혜태후(元惠太后)와는 자매간이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씨로 하였다.

이 혼인은 친계로는 남매간 혼인이며, 모계로는 이종4촌간이 된다. 고려시대에 이와같은 근친혼은 태조가 어머니를 달리하는 그의 자녀를 혼인시키면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왕실혼의 한 특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복남매간의 극단적 근친혼은 광종·덕종·문종의 사례가 있을 뿐 그다지 많지는 않다. 왕자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근친혼의 사례가 있으며, 그런 경우 왕실 내부의 반대를 받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문종과 인평왕후와의 혼인은 모계 4촌이라는 면에서 종래의 혼인보다도 특이한 경우이다. 이는 현종이 김은부(金殷傅)의 세 자매를 모두 왕비로 맞고 거기에서 낳은 자녀를 서로 결혼시킨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 왕실내의 단결을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高麗史

≪참고문헌≫ 高麗初期 婚姻政策의 추이와 王室 族內婚의 성립(鄭容淑, 韓國學報 37, 1984)

 

 

 현종 (왕순, 22년)

 
천추태후의 자객에도 여러차례 살아남은 현종은 강조의 옹립으로 18세에 등극하는데,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강감찬-귀주대첩).
현종의 할머니는 신성왕후 김씨로 경순왕의 큰아버지인 김억렴의 딸로 경순왕 사촌누이이다.
현종의 어머니는 헌정왕후로 성종과 천추태후의 동생이다.
경종의 왕후였으나 경종이 사망한 뒤 사가에 나가 홀로 지내다가 삼촌인 안종을 만나 정을 통해 임신하게 된다.
이 일로 성종은 안종을 유배보냈고, 헌정왕후는 현종을 출산하고 산고로 사망하였다.
 

(1) 원정왕후 : 성종의 딸로 문화왕후 성을 따라 김씨로 하였다. 1010년 거란이 침입하자 임신한 몸이라
                     외가가 있는 선산으로 피했고 왕은 나주로 피난했다.
(2) 원화왕후 : 성종의 딸로 낙랑군대부인 성을 따라 최씨로 하였다. 거란 침입시 나주로 피난하였다.
(3) 원성태후 : 안산 김씨로 시중을 지낸 김은부의 딸이다. 현종이 나주로 피난하였다가 귀환하던 중
                     공주에 묵게 되고 원성태후가 어의를 지어 드리고 편안히 모시었다. 김은부의 세자매가
                     (원혜태후, 원평왕후) 모두 왕비가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며 광종 때 왕실족내혼이
                     이루어진 이래 새로운 양상이다.
(4) 원혜태후 : 김은부의 딸로 이것은 왕실내에서만 이루어지던 혼인이 귀족가문으로 확대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아들 문종은 11대왕이 되고 그 뒤 고려 왕통은 문종의 후손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5) 원용왕후 : 태조의 친손자인 경장태자의 딸로 할머니 선의왕후를 따라 유씨라 하였다.
                     경장태자는 현종의 생모인 헌정왕후와는 남매간이다.
(6) 원목왕후 : 993년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이를 담판으로 물리친 서희의 손녀이며 내시령이었던
                     서눌의 딸이다. 현종은 태조 이래 가장 많은 13인의 비빈을 두었고 그 중에는
                     귀족가문의 타성도 다수 있었다. 광종 이래 새로운 혼인관계로 귀족과의 연결을 통하여
                      왕실의 고립을 막고 많은 자녀를 두어 왕족을 번성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7) 원평왕후 : 김은부의 딸
(8) 원순숙비 김씨 : 김인위의 딸로 덕종의 1비가 된 경성왕후를 낳았다

 

 

고려 제8대 현종 가계도

 

제8대. 현종顯宗 991~1031(1010~1031 재위) : 안종과 헌정왕후 황보씨의 장남

 1. 휘 : 왕순(王詢)
 2. 자 : 안세(安世)
 3. 별칭 : 대량원군(大良院君), 왕(王)
 4. 시호 : 현종대효덕위달사원문대왕(顯宗大孝德威達思元文大王)
 5. 능호 : 선릉(宣陵)

 

★ 원정왕후 김씨(元貞王后 金氏 ?~1018) : 선산 사람
 1. 부친 성종(成宗 960~997)
 2. 모친 문화왕후 김씨(文和王后 金氏)
 3. 별칭 : 현덕왕후(玄德王后)
 4. 시호 : 의혜(懿惠)
 5. 능호 : 화릉(和陵)
 6. 임신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정확한 자녀는 기록 없음

 

★ 원화왕후 최씨(元和王后 崔氏 ?~?) : 경주 사람
 1. 부친 성종(成宗 960~997)
 2. 모친 연창궁부인 최씨(延昌宮夫人 崔氏)
 3. 별칭 : 항춘전 왕비(恒春殿 王妃), 상춘전(常春殿)
 4. 자녀(2녀)
  * 효정공주(孝靜公主)
  * 천수전주(天壽殿主)

 

★ 원성왕후 김씨(元成王后 金氏 ?~1028) : 안산 사람
 1. 부친 시중 안산군개국후 김은부(安山郡開國侯 金殷傅 ?~1017)
 2. 모친 안산군대부인 이씨(安山郡大夫人 李氏) : 소성현개국후 이허겸(邵城縣開國侯 李許謙)의 딸
 3. 조부 상서 우복야 상주국 안산현개국후 김긍필(安山縣開國侯 金肯弼)
 4. 조모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
 5. 현종 비 원혜왕후, 원평왕후와 자매
 6. 별칭 : 연경원주(延慶院主), 장경궁주(長慶宮主), 원성태후(元成太后)
 7. 시호 : 용의(容懿), 공혜(恭惠), 영목(英穆), 양덕(良德), 신절순성(信節順聖), 자성(慈聖),

              광선(廣宣)
 8. 자녀(2남 2녀)
  * 덕종 흠(德宗 欽 1016~1034)
  * 정종 형(靖宗 亨 1018~1046)
  * 인평왕후(仁平王后 ?~?) : 제11대 문종 비
  * 경숙공주(景肅公主)

 

★ 원혜왕후 김씨(元惠王后 金氏 ?~?) : 안산 사람
 1. 부친 시중 안산군개국후 김은부(安山郡開國侯 金殷傅 ?~1017)
 2. 모친 안산군대부인 이씨(安山郡大夫人 李氏) : 소성현개국후 이허겸(邵城縣開國侯 李許謙)의 딸
 3. 현종 비 원성왕후, 원평왕후와 자매
 4. 별칭 : 안복궁주(安福宮主), 연덕궁주(延德宮主), 원혜태후(元惠太后), 평경왕후(平敬王后)
 5. 능호 : 회릉(懷陵)
 6. 자녀(2남 1녀)
  * 문종 휘(文宗 徽 1019~1083)
  * 평양공 기(平壤公 基 1021~1069)
  * 효사왕후(孝思王后 ?~?) : 제9대 덕종 비

 

★ 원용왕후 유씨(元容王后 柳氏 ?~?) : 정주 사람
 1. 부친 경장태자(敬章太子) : 대종과 선의왕후의 아들

 

★ 원목왕후 서씨(元穆王后 徐氏 ?~1057) : 이천 사람
 1. 부친 내사령 서눌(徐訥 ?~1042) : 서희(徐熙 942~998)의 아들
 2. 모친 이천군대부인 최씨(利川郡大夫人 崔氏)
    계모 이천군대군 정씨(利川郡大君 鄭氏)
 3. 별칭 : 숙비(淑妃), 흥성궁주(興盛宮主)

 

★ 원평왕후 김씨(元平王后 金氏 ?~?) : 안산 사람
 1. 부친 시중 안산군개국후 김은부(安山郡開國侯 金殷傅 ?~1017)
 2. 모친 안산군대부인 이씨(安山郡大夫人 李氏) : 소성현개국후 이허겸(邵城縣開國侯 李許謙)의 딸
 3. 능호 : 의릉(宜陵)
 4. 자녀(1녀)
  * 효경공주(孝敬公主)

 

★ 원순숙비 김씨(元順淑妃 金氏 ?~?)
 1. 부친 평장사 경조현개국남 김인위(京兆縣開國男 金因渭)
 2. 별칭 : 경흥원주(景興院主), 덕비(德妃)
 3. 자녀(1녀)
  * 경성왕후(敬成王后 ?~1086) : 제9대 덕종 비

 

★ 원질귀비 왕씨(元質貴妃 王氏 ?~?) : 청주 사람
 1. 부친 중서령 왕가도(王可道 ?~1034)
 2. 모친 개성군부인 김씨(開城君夫人 金氏)
 3. 제9대 덕종 비 경목현비와 자매

 

★ 귀비 유씨(貴妃 庾氏)

 

★ 궁인 한씨(宮人 韓氏) : 양주 사람
 1. 이름 : 한훤영(韓萱英)
 2. 부친 평장사 한인경(韓藺卿)
 3. 자녀(1남)
  * 검교태사 충(檢校太師 忠)

 

★ 궁인 이씨(宮人 李氏)
 1. 부친 급사중 이언술(李彦述)

 

★ 궁인 박씨(宮人 朴氏) : 전주 사람
 1. 부친 내급사 동정 박온기(朴溫其)
 2. 자녀(1녀)
  * 아지(阿志)

 

☆ 덕종 흠(德宗 欽 1016~1034) : 원성왕후 김씨 生

 

☆ 정종 형(靖宗 亨 1018~1046) : 원성왕후 김씨 生

 

☆ 문종 휘(文宗 徽 1019~1083) : 원혜왕후 김씨 生

 

☆ 평양공 기(平壤公 基 1021~1069) : 원혜왕후 김씨 生
 1. 시호 : 정간왕(靖簡王)
 2. 자녀(3남)
  * 태위 진(璡)
  * 사공 거
  * 낙랑후 영(樂浪侯 瑛) : 정종의 딸 보령궁주(寶寧宮主)와 혼인

 

☆ 검교태사 충(檢校太師 忠) : 궁인 한씨 生
 1. 부인 : 제9대 덕종의 딸

 

☆ 효정공주(孝靜公主) : 원화왕후 최씨 生
 1. 별칭 : 적경공주(積慶公主)

 

☆ 천수전주(天壽殿主) : 원화왕후 최씨 生

 

☆ 인평왕후(仁平王后 ?~?) : 원성왕후 김씨 生
 1. 제11대 문종 비

 

☆ 경숙공주(景肅公主) : 원성왕후 김씨 生

 

☆ 효사왕후(孝思王后 ?~?) : 원혜왕후 김씨 生
 1. 제9대 덕종 비

 

☆ 효경공주(孝敬公主) : 원평왕후 김씨 生

 

☆ 경성왕후(敬成王后 ?~1086) : 원순숙비 김씨 生
 1. 제9대 덕종 비

 

☆ 아지(阿志) : 궁인 박씨 生
 1. 검교소감 정민상(井民相)에게 하가

 

 

 

숭의전 내부 중앙의 고려 태조 위패 및 영정입니다 

 

아래 숭의전 내부 우측의 고려 현종 위패 입니다

 

 

아래 숭의전 내부 좌측의 원종, 문종 위패 입니다 

 

- 제10대왕 정종(靖宗, 1018~46) 1034~1046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 제11대왕 문종(文宗, 1019~83) 1046~1083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 제12대왕 순종(順宗, 1046~1083) 1083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 제13대왕 선종(宣宗, 1049~1094) 1083~1094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 제14대왕 헌종(獻宗, 1084~1097) 1094~1095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 제15대왕 숙종(肅宗, 1054~1105) 1095~1105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 제16대왕 예종(睿宗, 1079~1122) 1105~1122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 제17대왕 인종(仁宗, 1109~1146) 1122~1146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 제18대왕 의종(毅宗, 1124~1173) 1146~1170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 제19대왕 명종(明宗, 1131~1202) 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 제20대왕 신종(神宗, 1144~1204) 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 제21대왕 희종(熙宗, 1181~1237) 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 제22대왕 강종(康宗, 1152~1213) 1211~1213

휘는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 제23대왕 고종(高宗, 1192~1259) 1213~1259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 제24대왕 원종(元宗, 1219~1274) 1259~1274

휘는 정.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 제25대왕 충렬왕(忠烈, 1236~1308) 1274~1308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 제26대왕 충선왕(忠宣, 1275~1325) 1308~1313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 제27대왕 충숙왕(忠肅, 1294~1339) 1313~30, 32~39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 제28대왕 충혜왕(忠惠, 1315~1344) 1330~32, 39~44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 제29대왕 충목왕(忠穆, 1337~1348) 1344~1348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 제30대왕 충정왕(忠定, 1337~1352) 1348~1351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 제31대왕 공민왕(恭愍, 1330~74)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 제32대왕 우왕(禑, 1364~1389) 1374~1388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 제33대왕 창왕(昌, ?) 1388~1389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쫓겨나 10세때 시해됨

 

- 제34대왕 공양왕(恭讓, 1345~1394) 1389~1392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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