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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학 방/성씨 연원(최)

최씨(崔氏)의 유래

by 연송 김환수 2014. 7. 26.

최씨(崔氏)의 유래 

우리 나라 성씨(姓氏)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씨족(氏族) 중 하나인 최씨(崔氏)는 역사상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전통있는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오랜 역사의 흐름과 체험 속에서 많은 특성을 남겼으며, 역사상 선현(先賢)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에서 더듬어 볼 수 있는 최씨(崔氏) 특유의 기개(氣槪)ㆍ강기(剛氣)ㆍ신념(信念)ㆍ절조(節操). 등으로 ‘최고집’ 혹은 ‘최씨 앉은 자리 풀도 안 난다’ 등 많은 애칭을 낳기도 하였다.

고허촌장(高墟村長ㆍ沙梁部) 소벌도리(蘇伐都利)에게 최씨(崔氏) 성을 내렸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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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崔氏)의 원조(元祖)는 신라(新羅) 건국의 전신(前身)인 사로(斯盧ㆍ서라벌)의 육촌(六村) 중의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 사량부(沙梁部)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기원전 57년경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여러 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32년) 봄, 6부(六部)를 개정하고 알천 양산촌장(閼川楊山村長ㆍ梁部) 알평(謁平)에게는 이씨(李氏), 돌산 고허촌장(突山高墟村長ㆍ沙梁部) 소벌도리(蘇伐都利)에게는 최씨(崔氏), 무산 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ㆍ漸梁部) 구례마(俱禮馬)에게는 손씨(孫氏), 취산 진지촌장(嘴山珍支村長ㆍ本彼部) 지백호(智伯虎)에게는 정씨(鄭氏), 금산 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ㆍ漢祇部) 기타(祇陀)에게는 배씨(裵氏), 명활산 고야촌장(明活山高耶村長ㆍ習比部) 호진(虎珍)에게는 설씨(薛氏)의 성(姓)을 내려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위의 6부(六部) 촌장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시조(始祖)는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4세손이며 신라(新羅) 말기의 대문장가(大文章家)인 최치원(崔致遠)을 주축으로 하여 선대(先代) 및 후대(後代)에서 분파되었다고 보면 정확하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최씨(崔氏)는 387본(本)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거의가 지명이고 실제 시조가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43본이다. ‘경주최씨상계세보(慶州崔氏上系世譜)’의 기록으로는 소벌도리(蘇伐都利) 24세손 최치원(崔致遠)의 윗대에서 분파(分派)된 본관으로 개성(開城)ㆍ동주(東州·철원)ㆍ전주(全州·군옥파)가 있고, 최치원(崔致遠)의 장손(長孫)인 승로(承老)의 후손에서 함양(咸陽)ㆍ청주(淸州)ㆍ영흥(永興)ㆍ충주(忠州)ㆍ용강(龍崗)ㆍ수원(水原)ㆍ부안(扶安)ㆍ강릉(江陵)ㆍ강화(江華)ㆍ화순(和順)ㆍ통천(通川)ㆍ양천(陽川)ㆍ원주(原州)가 있고, 이 밖에 해주(海州)ㆍ진주(晋州)ㆍ탐진(耽津)ㆍ전주(全州·순작, 균, 아) 최씨가 최치원(崔致遠)의 지손(支孫)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