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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한비자의 세유삼망(世有三亡. 망하는 세 가지 길)

by 연송 김환수 2014. 6. 27.

한비자의 世有三亡(세유삼망· 망하는 세 가지 길)

 

以亂攻治者亡 (이난공치자망)

以邪攻正者亡 (이사공정자망)

以逆攻順者亡 (이역공순자망)

 

세유삼망은 세상을 망하게 하는 3가지로

 

‘난(亂)이 치(治)를 공격하면 망하고,

사(邪)가 정(正)을 공격하면 망하고,

역(逆)이 순(順)을 공격하면 망한다’는 의미이다.

 

 

世有三亡(세유삼망)

 

以亂攻治者亡(이란공치자망)

以邪攻正者亡(이사공정자망)

以逆攻順者亡(이역공순자망)

 

세상(世上)에는 망(亡)하는 길이 세가지가 있으니,

 

어지러운 나라가 정치(政治)를 잘 하고 있는 나라를 공격(攻擊)하면 공격(攻擊)하는 자(者)가 망(亡)하고,

 

정직(正直)하지 못한 자가 정직(正直)한 자(者)를 공격(攻擊)하면

공격(攻擊)하는 자(者))가 망(亡)하며,

 

도리(道理)를 거역(拒逆)하고 있는 자(者)가 도리(道理)를 따르고 있는 자(者)를 공격(攻擊)하면 공격(攻擊)하는 자(者)가 망(亡)한다.

 

-韓非子 初見秦- (한비자 초견진)

 

(註) 한비자(韓非子)-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한(韓)나라 사람으로서 이사(李斯)와 함께

'순경(荀卿)-순자(荀子)'에게 학문(學問)을 배웠다,

 

그 이사(李斯)에게 사약(死藥)을 받고 죽었다.

 

자기(自己) 스스로, 한(韓)나라 사람이면서,  

호(號)를 한(韓)나라 한자(韓字)에 아닐비(非)에 아들자(子)를 써서

'한비자(韓非子)'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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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韓非子)

 

외국어 표기 : 韓非子(중국어)

국적 : 중국

시대 : 춘추시대

출생-사망 : 미상 ~ BC 233

직업 : 정치가, 법률가

관련인물 : 순자

 

중국 춘추(春秋) 시대 말의 정치가ㆍ법률가.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에게 법률을 배웠다. 나라가 날로 어지러워짐을 슬퍼하여 왕에게 새로운 개혁(改革)과 질서 확립을 건의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법률(法律) 제도를 밝혀 군주의 권력을 확립하고, 신하를 법률로써 다스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도모하였다. 너무 글을 읽는 데만 치우친 유교의 무기력한 교육을 배척하고, 순자의 성악설(性惡說), 노장(老莊)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받아들여 법가의 학설을 대성시켰다.

 

그의 학설은 당시의 현실 정치를 직접 반영시킨 것으로 진왕이 실시하였으나 뒤에 질투심 많은 이사ㆍ요가(姚賈)의 참소로 독살당하였다. 형법의 여러 이론들을 설명하고 풀이한 《한비자(韓非子)》란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한비자(韓非子)

 

중국 전국(戰國)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공자(公子)로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주창한 한비(韓非:BC 280?∼BC 233)와 그 일파의 논저(論著).

 

구분 : 논저

저자 : 한비

시대 : 중국 전국시대 말

 

55편 20책에 이르는 대저(大著)로, 원래 《한자(韓子)》라 불리던 것을 후에 당(唐)나라의 한유(韓愈)도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혼동을 막기 위하여 지금의 책이름으로 통용되어 왔다.

 

이 책은 한비가 죽은 다음 전한(前漢) 중기(BC 2세기 말) 이전에 지금의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거의가 법의 지상(至上)을 강조하는데, 55편을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이 성질이 다른 6군(群)으로 나눌 수 있다.

 

① 한비의 자저(自著)로 추정되는 <오두(五蠹)> <현학(顯學)> <고분(孤憤)> 등이다. 이들 논저는 먼저 인간의 일반적 성질은 타산적이고 악에 기우는 것으로 설혹 친한 사이에 애정이 있다 해도 그것은 무력(無力)한 것이라 하였고, 따라서 정치를 논할 기초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이 세상은 경제적 원인에 의하여 끊임없이 변화진전하기 때문에 과거에 성립된 정책이 반드시 현세에 적용되지는 않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가(儒家)나 묵가(墨家)의 주장은 인간사회를 너무 좋도록 관찰하여 우연성에만 의존하는 공론(空論)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러한 공론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끊임없이 시세(時世)에 즉응(卽應)하는 법을 펴고, 관리들의 평소의 근태(勤怠)를 감독하여 상벌을 시행하고 농민과 병사를 아끼고 상공(商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군주는 측근·중신·유세가(遊說家)·학자·민중들에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② 한비 일파의 강학(講學) ·토론으로 추정되는 편(編)으로, <난(難)> <난일(難一)∼난사(難四)> <난세(難勢)> <문변(問辨)> <문전(問田)> <정법(定法)> 등이 있다. 사상 내용은 한비의 사상과 거의 같다. 이 중에서 주목할 것은 <난세>와 <정법>으로, 유가의 덕치론(德治論)은 물론 법가(法家)에 속하는 신자(愼子) ·신자(申子) ·상자(商子)의 설까지도 비판하고 수정한다. 이 책을 법가학설의 집대성이라고 일컫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③ 한비 학파가 전한 설화집 <설림(說林)> <내외저설(內外儲說)> <십과(十過)> 등의 제편(諸編). 상고(上古)로부터의 설화 300가지 정도를 독특한 체계에 의하여 배열하고, 그들 이야기의 흥미를 통하여 법가사상을 선전하였다. 소화(笑話)의 유(類)도 섞여 있으나 고대 단편소설로서의 측면도 지닌다.

 

④ 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대(漢代)까지의 한비 후학(後學)들의 정론(政論)으로 추정되는 제편(諸編). 편수(編數)는 가장 많으며 그 중 <유도(有度)> <이병(二柄)> <팔간(八姦)> 등은 오래된 것이고, <심도(心度)> <제분(制分)> 등은 새로운 설이다. 후학들의 주장에서 한비의 사상은 현저하게 조직화되었고, 특히 군신통어(群臣統御:刑名參同)나 법의 운용(運用:法術)에 관한 술책이 세밀하게 고찰되었다. 그러나 군권강화(君權强化)와 엄벌주의를 주장하는 점만이 농후하고, 법의 최고 목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⑤ 도가(道家)의 영향을 받은 한비 후학들의 논저인 <주도(主道)> <양각(揚搉)> <해로(解老)> <유로(喩老)> 등의 4편. 유가의 덕치를 부정하고 법치를 제창한 법가는, 덕치와 법치를 모두 부정하는 도가와는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육반(六反)> <충효> 등에서는 강력한 반대를 나타낸다. 그러나 군주는 공평무사를 본지(本旨)로 하여 신하(臣下)에 대하여는 인간적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심술(心術)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법가 중에도 도가의 허정(虛靜)의 설을 도입한 일파가 있다. 위의 4편은 이들 일파의 논저로서, 전(前) 편은 정론(政論)이고, 후 2편은 편명 그대로 《노자(老子)》의 주석(注釋) 또는 해설편이다.

 

⑥ 한비 학파 이외의 논저인 <초견진(初見秦)> <존한(存韓)> 등 2편 모두 한비의 사적(事蹟)에 결부시켜 책 첫머리에 편입되어 있으나 전자는 유세가의 작품이고, 후자는 한비의 작품을 모방한 상주문(上奏文)이 포함된 것으로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한비와 그 학파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편견적인 인간관 위에 성립된 것으로 지적되며, 특히 유가로부터는 애정을 무시하는 냉혹하고도 잔인한 술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확실히 급소를 찌르는 적평(適評)이라 하겠으나, 그들이 유가·법가·명가(名家)·도가 등의 설을 집대성하여, 법을 독립된 고찰대상으로 삼고 일종의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의하여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진 ·한의 법형제도(法刑制度)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점, 또 감상(感傷)을 뿌리친 그들의 간결한 산문이나 인간의 이면을 그린 설화가 고대문학의 한 전형을 이룬 점에 있어 커다란 문화적 사명을 다하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여러 가지 간행본이 있으나 절강서국(浙江書局)의 22자본(子本)이 좋은 간본이라고 한다.

 

 

한비자(기원전 약 280∼233년)의 이름은 한비이고 전국 말기 한(韓) 출신이다. 원래는 한나라의 공자로 순자(荀子)에게 배운 중국 고대의 이름난 사상가이자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기원전 234년은 진왕 정(훗날의 진시황) 13년으로 진나라가 군사를 동원해 한나라를 공격해왔다. 이 해 진왕 정이 한을 공격한 것은 까닭이 있었다. 오랫동안 천하통일에 힘을 쏟아온 진은 6국을 제거할 결심을 하고 6국 중에 가장 약한 한나라를 우선 공격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또 한편, 진왕 정은 6국을 소멸시키는 자신의 숙원을 위해 인재를 적극적으로 긁어모으고 있었다. 그런 진왕 정이 언젠가 한비자의 저술인 『고분(孤憤)』과 『오두(五蠹)』를 읽고는 깜짝 놀라며 이 책을 쓴 사람은 틀림없이 기재일 것이며 자신의 통일대업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이사(李斯)에게 감탄을 연발하며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사는 "이것은 한비자란 자가 쓴 것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진왕 정은 한비자를 얻기 위해 한을 공격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한비자를 지명하며 진나라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고, 한왕은 진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비자를 사신으로 보냈다.

 

한비자와 이사는 사실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도 잘 꾸미지 못했다. 하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썼다. 이사는 이런 한비자에 열등의식을 느끼며 자책했다. 『한비자』는 군왕들이 보라고 쓴 책이다. 한비자는 유가 학설에 반대하면서 군주의 권술(權術)에 대해 대서특필하여 훗날 군주가 전제독재로 신하를 통제하는 데 이론과 방법을 제공했다.

 

한비자는 한나라가 갈수록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걱정이 되어 여러 차례 한왕에게 부국강병의 모략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한왕이 씩씩하게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못내 가슴 아팠다. 또 권력을 가지고도 신하들을 제대로 통제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재능 있는 인재를 기용하여 국가를 강성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한나라의 상황은 이와는 정반대로 허영과 사치에 빠져 나라를 위기로 몰고 갈 인물들을 등용하고 있었고, 이 자들의 지위가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들보다 더 높았다. 이에 울분을 품고 『고분』, 『오두』, 『내외저(內外儲)』, 『설림(說林)』, 『세난(說難)』 등 십만여 자에 이르는 저작을 써서 역사상 득실의 변화를 종합했다.

 

한왕은 당초 한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자 비로소 한비자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항복을 자청하게 했다. 진은 한비자를 억류시킨 다음 단숨에 한나라를 공격하여 한왕 안(安)을 포로로 잡고 한나라를 멸망시켰다.

 

진왕(秦王) 정(政 : 후의 始皇帝)은 그의 전제정부에 관한 이론에 깊은 감명을 받아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이를 통일국가의 정치원리로 삼았다. 그의 이름을 따라 한비자로 명명된 그의 저서는 당시 법가 이론의 총괄이다(→ 중국철학).

 

한비자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전국시대(BC 475~221)의 약소국이었던 한(韓)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다. 한비자는 유가인 순자(筍子)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나, 나중에 순자를 저버리고 그당시 봉건체계가 붕괴되는 상황과 보다 밀접한 이론을 가진 다른 학파를 따랐다. 자신의 충고가 한 왕에게 무시당하자 한비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말솜씨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에 대해 있을지도 모를 반론에 대한 논박도 글로 썼다.

 

BC 221년 통일 후 시황제가 된 당시의 진왕 정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BC 234년 진은 한을 공격했고, 한왕은 한비자를 진에 협상자로서 파견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려고 했다.

 

진의 승상이자 이전에 한비자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이사(李斯)는 한비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에 왕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한비자가 이심(二心)을 가졌다고 모함하여 그를 투옥시켰다. 이사는 한비자를 속여 그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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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제 논조(論調)와 조금 다르지만 참고로 보시기 바랍니다.

              *** 논조(論調) : 의견이나 주장 따위를 펼치는 말투나 글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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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꼭 짚어 보아야 할, 나라가 망하는 길들

 

새누리당의 친이계의 중진인 이재오 의원이 이번 박 대통령이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사의표명 60여일만에 다시 유임시키는 결단을 보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단행하는 고위직 인사가 돌고도는 물래방아도 아닌데, 아무리 인재가 없기로서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전 총리를 재 기용한 것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으로 보인다.

 

그는 SNS상의 페이스 북에 글을 올리고, 한비자의 世有三亡(세유삼망)을 예로 들었다.

 

'以亂攻治者亡'(이난공치자망) '以邪攻正者亡'(이사공정자망) '以逆攻順者亡'(이역공순자망) 이라 적은 것이다.

 

이를 직역하면 첫번째 亂이 治를 공격하면 망하고, 두번째 邪가 正을 공격하면 망하며, 세번째 逆이 順을 공격하면 망한다는 뜻이라 했다.

 

이를 다시 요즈음 돌아가는 세태를 놓고 의역을 해 보면,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며 우왕좌왕을 일삼는 자들이 남을 지도하거나 다스리는 위치에 올라 가르치거나 다스리며 지도자 행세를 하면 나라가 망하고,

 

거짓과 꼼수, 음융함이 가득하거나 사악한 생각을 품은 자들이 올바른 생각으로 正道를 가는 사람들을 공격하면 나라가 망하며,

 

도리에 어긋나는 짓거리를 밥먹듯 하며 세상을 역행하는 삶을 산 자들이 순리에 순응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격하면 나라가 망한다." 는 뜻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세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비자의 '世有三亡' 그대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을 더 찾아보거나, 야권이나 재야와 흉금을 털어놓고 인재를 발굴할 생각은 접은 채, 그 생각을 음흉하게 품고 사리분별없이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다시 국무총리로 유임시키는 것은 엄밀히 따져 이는 유임이 아니고 신임으로 보는 것이 맞는 해석임에도 "유임시키기로 했다 "라고 발표하는 뻔뻔함까지 보이고 있고,

 

다시 총리로 기용하는 사람이나. 다시 총리로 기용한다고 국가개조를 위해 이 한 목숨 다 바쳐 기여하겠다며 눌러 앉은 사람이나 다 똑 같기 때문이다.

 

비단 정치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망해가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발견이 가능하다.

 

중국의 춘추시대 법가의 시조이자 관포지교로 유명했던 관자(管子)는, 나라가 망하는 9가지 징후를 얘기했다.

 

① 국방을 게을리 하면 나라가 망한다.

② 무차별적인 평화주의가 난무하면 나라가 망한다.

③ 쾌락주의가 세상에 만연되면 나라가 망한다.

④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가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고 억지와 고집

    이론에 휘말리면 나라가 망한다.

⑤ 황금만능주의나 금권주의가 세상에 만연되면 나라가 망한다.

⑥ 사람들이 이념이 아닌 이해관계에 따라 패거리를 만들고 파벌을

    조성, 세력다툼이 심해지면 나라가 망한다.

⑦ 위나 아래를 상관하지 않고 사치풍조나 허례허식에 휩쌓이면

    나라가 망한다.

⑧ 정실인사에 얽매여 끼리끼리 나누어 먹고, 정실인사, 보은인사,

     낙하산인사가 성행하면 나라가 망한다.

⑨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아첨을 일삼고 진실을 왜곡, 호도하며

     잔머리 굴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잔꾀, 잔재주를 일삼는 소인배

     들이 득실거리며 나라를 좌지우지하면 나라가 망한다.

 

인도의 성자라 일컫는 '간디' 옹은 나라를 망치는 사회의 7대 죄악을 얘기했다.

 

① 원칙없는 정치

② 도덕성이 없는 상업(장사 또는 경영)

③ 노동이 없는 富의 축적

④ 인격없는 교육

⑤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⑥ 양심없는 쾌락

⑦ 희생없는 신앙 이 그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위의 7 가지가 모두 해당되는 것 아닌가 싶다.

 

정치, 경제, 사회가 온통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하고, 단체, 국가, 정당 할것없이 모두가 공동체를 망각한 채, 사사로운 탐욕과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으며, 민주주의란 미명아래 법과 제도, 원칙과 기본을 무시한 채, 자기들 마음 내키는대로 권력을 마구 휘둘러대는 세상을 만났으니, 거기에다 사치와 호화스러운 생활에 물들어 나라 빚은 물론 가계 빚이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세상을 만났으니 어찌 나라가 쇠약해지거나 망하지 않고 성하겠는가 ?

 

"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자 사이에 불신과 증오가 가득할 때에 나라의 기운은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아놀드 토인비)

 

출처 : http://blog.daum.net/tnstntjd7/8886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