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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학 방/근대현대 인물

유물 복제 전문가 김진배씨

by 연송 김환수 2013. 10. 9.

복제품? 진품 혼 담아낸 또 하나의 유물입니다

 

등록 : 2013.07.18 19:50

 

 

금속유물 복제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김진배씨가 경주 자신의 공방에서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의 복제품을 만들고 있다. 그가 만든 이 문화재의 또다른 복제품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경주/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문화’] 나도 문화인

유물 복제 전문가 김진배씨

공예명장 아버지 이어 25년 외길

하루 10여시간씩 몇달 매달려

털끝 실수에도 처음부터 다시

손상부위도 똑같이 더 힘들어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에 전시된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는 실로 정교한 장식이 압권이다.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막 피어날 듯한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고,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물고기·사슴·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이 향로는, 그러나 실은 진품이 아닌 복제품(레플리카)이다.

 

2005년 이 대향로의 복제품을 만든 사람이 바로 김진배(51)씨다. 김씨는 진품을 전시할 경우 손상이 우려되거나 동시에 여러 박물관에서 같은 유물을 전시해야 할 경우 박물관의 의뢰로 복제품을 만드는 우리나라 최고의 금속유물 복제전문가다.

 

경북 경주시 하동 민속공예촌에서 공방 삼선방을 운영하는 그는 올해로 25년째 이 길을 걸어오고 있다. 국립박물관이 금속 유물 복제품이 필요할 때마다 찾는 최고 전문가지만 그는 장인정신으로 일하지만 전문가라는 말은 부끄럽다고 말한다.

 

김씨는 스스로 태어날 때부터 유물 복제 전문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김인태씨는 금속공예명장(91-5)으로, 국내는 물론 일본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금속공예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김인태씨가 복제한 경주 천마총 진열품인 국보 188호 금관과 장신구 복제품들은 전문가들이 진품과 구별하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였다.

 

김씨는 아버지 밑에서 복제 재료인 도금판과 곡옥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컸다.

 

말이 없는 분이셨어요. 종일 의자에 앉아 두드리고 붙이고 하면서 제 손에 곡옥 같은 걸 그냥 쥐여주시는 거죠. 어느 순간 저도 아버지 옆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허허허.”

 

아버지 잔심부름을 하며 실력을 닦은 그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사학과에 진학했다. 우리 유물의 뿌리와 가치를 먼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캠퍼스 커플로 만난 동갑내기 아내 박정희씨와 1989년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했고, 부부가 함께 유물 복제의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말로 뭘 가르쳐주시지 않아요.

 

모든 건 눈썰미와 느낌으로 배웠습니다. 본인 맘에 들 때까지 똑같은 작업을 100번이고 200번이고 계속 시키셨어요.” 지독한 수련을 통해 그가 배운 것은 화려한 외양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옛 선조들의 정신과 혼을 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1993년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인생의 길잡이를 잃은 충격은 대단했다. 자칫 방황도 할 뻔했지만 그를 다시 잡아준 것도 아버지에게 이어받은 일이었다.

 

아버지의 명예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아들은 인생의 고삐를 더 단단히 죄었다.

 

홀로 금동반가사유상(국보 78), 황남대총금관(국보 191) 1000점이 넘는 유물을 복제했다.

 

금동반가사유상(국보 78호)

 

  황남대총금관(국보 191호)

 

김진배씨가 복제한 국보 90호 금제태환이식(金製太環耳飾) 금귀걸이

경주/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유물 복제가 힘든 것은 교본이나 공구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망치 등 기본 공구 외에 필요한 모든 공구를 스스로 만든다.

 

못이나 쇳조각 끝을 갈아 손에 맞게 만든 맞춤형 공구’ 2000여개가 공방 안에 가득하다.

 

화덕과 아궁이 불 대신 가스불을 쓰는 것 말고는 1000년 전 신라시대 금속장인들이 했던 방식과 지금 방식이 똑같은 셈이에요. 그 장인들은 자기 맘대로 문양을 넣고 만들었겠지만, 저는 점 하나까지 똑같이 만들어야 하고, 손상부위까지 똑같이 만들어야 하니까 더 힘들다고도 할 수 있죠.”

 

유물 한 점 복제하는 데는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5개월 넘게 걸린다. 이 기간 동안 딴짓을 절대 하지 않는 것도 고통이다. “화장실도 참고, 졸음도 참아야 해요. 하루 10시간 넘게 작업하는데, 중간에 쉬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든요.”

 

그는 부부총에서 발굴된 금귀고리인 금제태환이식(국보 90) 복제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귀고리 몸판은 주물로 만들 수 있어 그나마 수월하지만 문제는 그 위에 올라가는 장식이다.

 

유물명칭

금제태환이식(金製太環耳飾)

국적/시대

한국(韓國) / 신라(新羅)

재질

금속(金屬) / 금제(金製)

크기

지름 : 3.8 cm / 전체길이 : 8.7 cm

지정구분

국보(國寶) 90

용도기능

() / 장신구(裝身具) / 신체장식(身體裝飾) / 이식(耳飾)

출토()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시(慶州市) 普門里 夫婦塚內 婦塚

참고문헌

* 명품도감, 국립중앙박물관 편, 삼화출판사, 1985, 66

소장기관

국립1(國立1) / 중앙(中央)

유물번호

본관(本館) 6255 

 

금도금한 철사를 0.3~0.5로 잘라 불에 쬐면 동그란 구슬 모양이 되는데, 이 구슬을 5000~6000개를 만들어 하나하나 귀고리 몸판에 땜질해 붙이는 데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5999개를 잘 붙여도 마지막 한 개를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돼요. 몇 번이나 그렇게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했어요. 죽고 싶죠.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마음 다스린 뒤 다시 작업하는 수밖에 없어요. 허허허.”

 

섬세한 작업을 하느라 늘 돋보기를 쓰는 탓에 시력도 나빠졌고, 장시간 작업으로 허리디스크 진단까지 받았다. 모두 복제가의 운명적 직업병들이다.

 

김씨의 걱정은 외국과 달리 국내에는 공인 복제품이나 공인 복제가제도가 없어 기술을 전수할 방법이 마땅찮은 현실이다.

 

몇 해 동안 손재주 좋다는 젊은이들을 가르쳤는데 대부분 석 달을 못 견디고 가버렸다고 한다. “요즘은 박물관이 많아지니까 대량으로 복제품 만드는 업자들도 생겼어요.

 

제대로 배워서 제대로 써먹는 장인들이 나와야 할 텐데.” 2~3개월 걸려 만든 복제품도 재료비를 포함해 한 점당 200~300만원 정도이고, 언제 일이 들어올지 알 수도 없으니 인기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김씨도 기념품이나 소품 등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도 군대 간 아들, 대학 다니는 딸이 하고 싶다면 전수하고 싶어요. 제 사명이랄까?”

 

김씨의 마지막 꿈은 자신이 만든 복제 유물들을 모아 복제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복제품을 가짜라고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제겐 선조들의 얼과 혼, 문화를 담은 또 하나의 유물입니다.”

 

경주/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