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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학 방/근대현대 인물

계영배(戒盈杯) - 넘침을 경계하는 잔

by 연송 김환수 2013. 9. 13.

 

계영배(戒盈杯) - 넘침을 경계하는 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하여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었던 의기(義器)가 있었다.

 

그 의기(義器) 바로 계영배(戒盈杯)인데 계영배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계영배(경계할계, 찰영, 잔배)

 

계영배는 술잔(찻잔)에 물을 가득 채우려 해도 넘치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잔의 70% 이상을 술로 채우면 잔 중앙에 빈 기둥이 있어 그리로 넘쳐 아래로 떨어져 잔 받침에 고이게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계영배를 들여다보면 잔 밑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잔 내부를 보면 가운데 둥근 기둥이 있고 그 기둥 밑에 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계영배의 비밀은 바로 그 둥근 기둥 속에 감춰져 있다.

 

술을 가득 부어 기둥 속 관의 맨 위까지 차면 구부러진 말굽 위로 넘어가게 되어 술이 아래쪽으로 빠지게 된다.

 

이때 잔 아래 구멍으로 연결된 관은 술이 빠지는 만큼 진공상태가 되므로 관 안쪽과 바깥의 압력 차로 인해 기둥 밑의 구멍 안으로 술이 계속 들어가 바닥이 보일 때까지 새게 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압력에 있다. 술을 관의 맨 윗부분 높이보다 적게 따를 경우, 잔 내부의 수압과 기둥 내의 대기압이 같기 때문에 술이 새지 않는다.

 

하지만 술을 계속해서 따를 경우, 잔을 채운 수압이 기둥 안쪽의 대기압보다 커져, 술이 잔 밑바닥과 연결된 통로 끝까지 빨려 들어간다. 이로 인해 술이 잔 밑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계영배에는 잔을 기울이지 않고도 구부러진 관을 이용하여 액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는 사이펀의 원리가 담겨 있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환공이 계영배를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 과욕을 경계하는 것을 보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제학을 가장 많이 배출했으며 문과 합격자만 200명이 넘었던 명문가 연안(延安) 이씨의 가훈은 넘침을 경계하라는 뜻의 계일(戒溢)이다.

 

역시 대대손손 역사에 족적(足跡)을 남긴 명문가의 가훈답다.

 

세조 때 대사헌을 지낸 저헌(樗軒) 이석형(14151477)은 만년에 성균관 서쪽 연못에 계일정을 짓고 수신(修身)했다.

 

물이 넘치는 것을 경계하듯 매사에 분수를 지키려 노력했던 것이다.

 

참고로 이석형은 연안이씨 집안으로 정몽주의 증손녀 사위이다.

 

이분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분의 묘에 대하여 잠시 언급해 본다.

이석형이 정몽주 집안 선산에 묻히게 된 것은 그의 처인 정씨(정몽주의 증손녀이자 정보의 딸) 덕이다.

 

이 자리는 정몽주의 손자인 정보가 봐둔 묘자리였는데, 이석형에게 시집간 딸이 아들을 낳고 숨을 거두자 애석한 마음에 그 자리에 딸을 안장했고, 1477년 이석형이 죽자 부인묘에 합장했다.

 

속설로는 정씨부인이 정보의 묘자리가 대단한 명당 자리임을 알고 그 자리를 시댁에 주고자 야음을 틈타 묘자리에 연못물을 퍼날랐다.

 

아무리 명당이라도 물이 나오면 무덤을 쓰지 않는 바, 정보는 그 자리를 포기하고 다른 곳에 묘를 썼으며, 정씨부인이 기존 자리를 시댁에 달라고 문중에 청해 얻었다고 전한다.

 

이석형 묘자리가 대단한 명당자리라 그의 후손에서 고위 관료가 수십명이나 배출되었다.

어찌보면 며느리 덕분에 딱히 별 볼일이 없던 이석형 집안이 복을 받은 셈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나라는 계영배의 역사는 조선 후기에 대표적 실학자인 규남 하백원(圭南 河百源)과 도공(陶工)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자인 하백원(河百源, 1781~1845)이 술이 가득채우면 새어나가는 잔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비슷한 시기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강원도 홍천 지방의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이 둘은 각자의 과학지식과 도자기 빚는 기술을 활용해 잔의 70% 이상을 술로 채우면 술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는 계영배를 제작했다.

 

우명옥은 당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후에 자신의 방탕한 삶을 뉘우치면서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잔은 후에 조선후기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에게 전해지며 그는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요즘도 계영배를 주문하면 구할 수 있는데 하이픈공법으로 만들어 중앙에 빈 기둥이 없이 깔끔하면서도 잔이 넘치지 않게 되어있는 제품도 있다.

 

 

 

 

 

계영배에는 꼭 그 잔 받침이 아래로 흐르는 물을 보이지 않게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계영배는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이든 무엇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면 곧 넘쳐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를 암시해준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잊고 실행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취임이전에 한나라당에서 본격적인 정치를 하면서 주로 외국인들이나 꼭 선물을 할 만한 사람들에게 계영배를 선물하곤 했는데 계영배 선물은 외교가에 소문이 나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2118일자 조선일보5면에 보면 이런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가 17일 당 출입기자들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자택에 초청했다. 박 부총재는 기자들에게 자기로 된 술잔을 선물로 주면서, 그 잔의 이름을 계영배(戒盈杯)’라고 했다.

 

지인들이나 외국 손님들에게 계영배(戒盈杯)를 선물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계영배(戒盈杯)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로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 이상 차오르면 술이 모두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린다.

 

계영배는 잔의 70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아래의 작은 주전자같이 생긴 곳으로 떨어져 고이게 됩니다.

70%이하만 채운 술잔은 더이상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에 잔을 들고 마시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계영배는 잔의 70%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흘러내리는 제품이 정상이지만 일정 부분만 줄어들어 70%가량이 항상 잔에 남아 있도록 제작된 제품(불량품?)도 있는 것 같다.

제작할 때부터 일정부분만 줄어들게 만든 제품이라면 계영배의 변형된 7할배(계영배)로 보시면 될 듯합니다.

 

원래 70% 이상 술을 따르면 밑으로 몽땅 빠져 버리는 이 잔의 교훈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은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 라는 말로서 인생사 고비마다 과욕을 경계하고 성찰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생활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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