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도 말이냐 기린이냐 다수 의견은 말이다.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천마)그림이다. 가로 75㎝, 세로 53㎝, 두께는 약 6㎜로 1973년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천마총)에서 발견되었다.
천마도가 그려져 있는 채화판은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어 만든 것이다. 중앙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있으며, 테두리는 흰색·붉은색·갈색·검정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천마는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으로, 다리 앞뒤에 고리모양의 돌기가 나와 있고 혀를 내민 듯한 입의 모습은 신의 기운을 보여준다. 이는 흰색의 천마가 동물의 신으로,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나르는 역할이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5∼6세기의 신라시대에 그려진 천마도의 천마의 모습 및 테두리의 덩굴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벽화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신라회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또한 신라회화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그 가치가 크다.

“천마도(天馬圖)”가 말(천마)이냐, 기린이냐는 질문은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논의된 주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체로 ‘천마(하늘을 나는 신마)’로 보는 견해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기린(麒麟)으로 보는 소수의 주장도 있다.
🔹 말(천마)라는 해석이 더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유
천마도는 고구려 무용총·장천1호분 등의 벽화와 함께, 말 장식이나 마구(馬具)와 연관성이 크다고 여겨짐
그림에 묘사된 동물의 체형·다리·갈기·꼬리 등은 말의 형태와 매우 유사
고구려 사회에서 말의 상징성(신성성·군사적 중요성)이 매우 높았음
실제 그림의 명칭도 발굴 초기부터 **‘하늘의 말(천마)’**로 불려왔음
즉, **말을 신격화하거나 비상 능력을 부여한 ‘천마’**라는 해석이 가장 전통적입니다.
🔹 기린(麒麟)이라는 해석이 나온 이유
그림 속 동물의 등에 있는 문양이 날개처럼 보이면서,
“말의 날개인가?”, “혹시 말이 아니라 신수(神獸)인가?” 하는 논쟁이 생김
중국에서 **기린(麒麟)**은 신화 속 동물이며, 고려·조선에서도 『기린도(麒麟圖)』 같은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천마도가 사실은 기린을 형상화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일부 학설이 등장
기린이 역사적으로 **‘상서로운 징조’**를 상징했기 때문에 왕실 무덤 벽화에 쓰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함
다만, **신수인 ‘기린’의 특징(용·사슴·소 등이 섞인 형태)**과 천마도의 동물은 형태적으로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지지를 많이 받지는 않습니다.
👉 학계의 다수 견해: 천마도는 말(천마)을 그린 것이다.
👉 소수 견해: 문양·상징성 등을 근거로 *기린(신수)*일 가능성을 제기한 학설이 존재한다.























천마도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기마형 토기에 뿔모양의 말상투를 만들어 붙였다.
말갈퀴(말의 갈기나 털)로 상투모양을 만들기 때문에 말상투 모양의 뿔을 만든것 이라고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천마지상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천마도와 비슷하다.
5∼6세기의 신라시대에 그려진 천마도의 천마의 모습 및 테두리의 덩굴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벽화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신라회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발굴·복원 보고서에서 “대나무 금동판” 1점과 “옻칠판” 2점 등으로 분류되며, 합쳐서 3점이라는 기록이 있다.
출토 당시 자작나무 껍질(백화수피) 위에 그린 말다래 2점 외에, 대나무 판에 금동 천마 문양을 붙인 말다래 1점도 확인된 바 있다.







1973년 발굴 당시 천마총에서는 백화수피제 말다래 한 쌍이 아래위로 겹친 상태로 확인됐다. 하지만 아래쪽 말다래가 위쪽 말다래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 아래쪽만이 그동안 공개돼왔다.
이들 백화수피제 말다래 바로 위쪽에는 대나무로 짠 바탕판에 투조(뚫어 만듦)한 금동판을 댄 죽제 말다래가 발굴됐다. 새로 발견한 금동판 천마도는 바로 이 유물에 붙어 있다. 얇은 대나무살을 엮어 바탕판을 만들고, 그 앞면에는 마직 천을 댄 뒤에 천마문을 비롯한 각종 무늬를 투조한 크고 작은 금동판 10장을 조합해 금동 못으로 붙여 장식한 것이다.
천마총은 대릉원의 무덤 중 가장 늦은 시기인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무덤의 주인은 소지 마립간(炤知麻立干, 재위 479~500)이나 지증왕(智證王, 재위 500~514)으로 추정되는데, 보통은 지증왕의 무덤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