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日本國)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한데 니혼(Nihon), 니폰(Nippon) 또는 닛뽄 이라 하고, 영어로는 Japan(재팬)으로 표기한다.
일본의 국가명인 "일본국(日本國)"은 8세기경부터 1천년여 동안 사용해 왔지만, 정확하게 어떻게 쓰고 읽어야 하는지 법으로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日本)"이라는 표기를 두고 ‘니혼’, ‘니폰’, ‘닛뽄’이라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엇갈려 있고 심지어 ‘야마토(Yamato)’라 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까지 있다.
* 야마토 (Yamato, 大和대화) : 일본 혼슈[本州] 가나가와현[神奈川縣]에 있는 도시
야마토 전함(Battleship Yamato) :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건조한 세계최대의 전함.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야마토 급(Yamato Class) 전함 3척을 계획하였는데 그 중 1번 함이 야마토 함이다. 야마토(大和, yamato)는 일본의 고대국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의 기대와 달리 야마토 급으로 개발된 3척의 전함은 모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격침되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해상전투에서 전함의 역할과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공격형 항공모함이 해상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력으로 부상하였다.
야마토 함은 1937년 11월부터 일본 히로시마 남부 쿠레(Kure) 시(市) 해군공창에서 건조되어 1941년 12월 16일 완성되었으며 일본 연합함대 기함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야마토 함을 극비밀리에 제작했으며 불침함이라고 불리며 신뢰도가 높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거대 전함은 더이상 군사전력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대 여론도 있었다.
야마토는 기준배수량 69,100톤에 만재배수량이 72,809톤이며 함의 길이는 263m, 폭은 38.9m이다. 증기터빈 4기를 장착하여 15만 마력, 최대속도 27노트로 항해할 수 있었다. 무장은 460mm 3연장포 3기 9문을 주포로 하여 전방에 6문 후방에 3문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155mm 3연장포 4기 12문의 부포를 설치하였고, 대공방어를 위해 고사포로 127mm 2연장 6기 12문이 설치되었다. 기관포로 25mm 3연장 8기 24문, 13mm 2연장 2기 4문의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1942년 야마토 전함은 첫 전투인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연합함대의 기함으로 참전하였지만 직접적인 교전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공격형 항공모함 위주의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4480mm 함포의 정확도도 떨어지는데다 함대함 전투가 아니기에 역할이 없었고, 미군 항공기에 발각되어 격침이 우려되어 후방에 머물다 퇴각하였다.
해전에서 전투의 양상이 공격기와 뇌격기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자 1943년 7월 야마토 함은 쿠레 해군공창에서 대공방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155mm 3연장포를 6문으로 줄이고 대신 레이더와 127mm 고사포, 13mm 기관포를 증대하였다. 1943년 12월 요코스카(Yokosuka)에서 캐롤라인 제도 트룩(Truk)으로 병력과 장비 수송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아 선체 일부가 침수되었으며 1944년 3월까지 쿠레 해군공창에 정박하며 수리와 대공포를 증대하는 개조작업이 진행되었다.
1943년 4월 일본 2함대에 배속되어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Mariana Island) 해전에 참전하였지만 야마토 전함의 전과는 없었고 항공모함 3척을 잃으며 일본해군의 피해만 막심했다. 1944년 10월 22일 레이테만 해전(Battle of Leyte Gulf)에 출전하여 미국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일부가 침수된 상태에서 미군 함정에 함포사격을 가하여 피해를 입혔다. 이 전투가 야마토가 함포를 발사하며 미국 전함에 타격을 입힌 유일한 공격이었다.
1945년 오키나와(Okinawa)를 공격해오는 미군을 막기위해 텐고 작전(天號作戰, Operation Ten-Go)이 실행되었으며 항공모함과 항공기 지원없이 야마모 전함, 순양함 야하기(Yahagi)와 구축함 8대로 함대를 구성하여 출전하였다. 하지만 오키나와에 도착하기도 전에 미군의 뇌격기의 어뢰공격을 받아 좌현으로 기울며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2차 미군 급강하폭격기에서 발사된 포탄이 갑판에 명중되어 탄약고가 폭발하면서 야마토 전함은 침몰하였다. 3300(또는 2750)명의 승무원 중 280명만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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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국가 공식명칭을 통일하지 못하고 자기 나라를 ‘니혼’, ‘니폰’ 또는 ‘닛뽄’이라 부르고 있으며, 외국인들은 영문표기 이름인 재팬(Japan)이라 부르고, 불어권에서는 ‘자퐁(Japon)’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에서 화폐 발행을 담당하는 일본은행은 ‘니폰 긴코(Nippon Ginko)’라는 공식적인 영문 표기를 사용하는데 화폐에 표기된 니폰긴코를 발음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니혼 긴코"라고 부르고 있다.
니혼 긴코(Nihon Ginko :일본은행) 표기된 일본 1만엔 지폐 뒷면
일본의 양대 도시인 도쿄와 오사카에는 각각 "일본교(日本橋)"라는 동일한 다리 지명이 있는데 이곳에 지하철 역이 있다. 일본교지하철역의 공식명칭을 도쿄에서는 "니혼바시"역이라 쓰고 오사카에서는 "니폰바시"역이라고 쓰고 읽고 있다.
"일본교(日本橋)"라는 지명은 같은 의미, 같은 글자인데 한쪽에서는 "니혼", 다른 한쪽에서는 "니폰"이라고 쓰고 읽고 있는 것이다.
도쿄의 "니혼바시" 역
오사카 "니폰바시" 역
공공기관의 영문 명칭도 "Nihon(니혼)"으로 사용하는 일본대학, 일본여자대학, 일본복지대학 등이 있는데 공식적으로 ‘니혼’ +기관명으로 쓰고 읽는다.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 "일본서기(日本書紀)"도 "니혼쇼키"라고 읽는다.
반면, 니폰(Nippon)이라 표기하고 읽는 곳도 많은데 일본은행, 일본공업대학, 일본치과대학, 항공사 전일본공수(ANA), 신일본제철 등은 공식적으로 니폰(Nippon) + 기관명으로 영문 표기를 하고 "니폰"으로 읽고 있다.
니혼, 니폰 등 일본을 어떤 경우에 쓰고 읽는지에 대해 법적으로 정해진 바 없으나, 1934년 문부성 국어조사회에서 "니폰(Nippon)이라는 공식 국가명으로 사용하자 제안한 기록이 있다.
그 영향인지 상당수의 국가 기관과 공신력을 갖춘 기구와 회사는 기관명칭 앞에 "니폰(Nippon)"을 표기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NHK 문화부의 자료 조사에 따르면 거의 반반이긴 하지만
‘니혼’ 쪽이 ‘니폰’보다 2~3%, 많게는 6~7% 가량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니폰’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 졌다. 이는 "니혼"보다 강한 어감의 "니폰"이 일본인의 의식 속에 녹아 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의 격렬한 응원구호를 거치는 동안 ‘니폰’이 보다 강하게 읽혀지며 ‘닛뽄’이라는 발음이 부각되었는데 지금도 일본의 국가 대항 경기를 보면 일본 축구 응원단이 ‘닛뽄’을 외치고 있다.
재팬은 일본의 고대 중국어식 발음 ‘지펑’에서 유래했는데 8세기 이전 중국에서는 일본을 ‘왜국(倭國)’이라 불렀는데, 이후 일본의 공식 문서가 중국으로 전달되며 ‘해가 나는 나라’ 라는 의미의 ‘일본(日本)’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를 중국인들은 중국어 발음대로 ‘지펑’이라 읽게 된다.
한 동안 ‘지펑’이라 불리던 13세기 중국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에 의해 ‘황금으로 뒤덮힌 나라, 지팡구(Zipangu 혹은 Cipangu)’로 유럽에 소개 되며 오늘날 재팬의 유래가 되었다.
실제로 존재한다 믿었던 중국의 황금의 섬 전설과 ‘지펑’이라 불리던 일본의 존재를 혼돈해서 썼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지팡구(Cipangu)"로 표기된 1492년의 세계 지도
일본인은 각종 규격 통일을 좋아하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음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데, 왜 그들이 공식적으로 국가 이름을 통일하지 않고 2개, 3개로 혼용하여 사용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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