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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조선오백년 야담

조선 오백년 야담 제6화 / 異花 雪竹梅 - 復讐奇譚

by 연송 김환수 2013. 8. 29.

朝鮮(李朝) 五百年 野談

 

차 례

 

第 一 話 - 寶娘靑湖 - 血痕奇譚

第 二 話 - 樂浪好童 - 悲戀哀史

第 三 話 - 楊書房致富 - 抱腹絶倒

第 四 話 - 風流監司 - 節佳妓話

第 五 話 - 哀戀話 - 靑春悲戀

第 六 話 - 異花 雪竹梅 - 復讐奇譚

第 七 話 - 將軍義盜 - 名將逸話

第 八 話 - 煩惱僧 - 佛力奇譚

第 九 話 - 悲愴- 百濟哀話

第 十 話 - 金議官 叔侄 - 韓末逸話

第十一話 - 李星信最後 - 海戰悲話

第十二話 - 阿非知九層塔 - 望鄕哀話

第十三話 - 可憐杜十娘 - 名妓哀話

第十四話 - 公主神尺 - 怪夢奇譚

第十五話 - 餘愁 - 落照悲話

第十六話 - 斬首된 별아기 - 愛情悲譚

第十七話 - 千里遠情 - 義俠美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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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육 화> 復讐奇譚(복수기담)

異花 雪竹梅 (이화 설죽매)

 

1.

이조 중엽(李朝中葉)에서 조금 지난 시절이었다. 임금이란 이는 정사는

모르고 대궐 깊숙이 들어앉아서 주색에 침몰하고 날마다 풍류와 잔치를

일삼고 궁녀들의 춤과 노래속에 파묻히어 있었다. 간신적자는 정권을

잡고 흔들며 파당을 지어서 서로 싸우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세도를 잡아서 그 일문이 모두 벼슬을 하는데

청수(靑水)라는 사람은 장안의 건달로 유명하였으나 역시 명문의 자손이라

아무런 자격도 없으면서 충청 어떤고을의 원님이 되었다.

이 고을은 산수가 명미하고 경치도 훌륭하려니와 어염시수가 좋고

들에는 오곡이 풍등하고 산에는 백과(百果)가 있어서 살기 좋은 고장으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여기 사는 백성은 대개 잘 지내고 부자가 많았다.

그중에도 임원(林原)이란 사람은 이 고을에서도 유수한 부호인데 그 때

부호라는 것은 대개 세도를 부려서 서민의 재물을 뺏거나 부정한 행정을

해서 부자가 되기 일수인데 임원만은 정당하게 벌은 재상이었다.

부자라는건 대개(?) 인색한 법인데 임원은 그렇지 아니해서 인심을

얻었다. 그래서 거지란 거지는 이집에 단골로 다니고 또 지나가는

나그네도 임원의 소문을 듣고 와서 며칠씩 식객노릇을 하다가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집에는 손님이 떠나는 날이 없었다.

다만 임원은 양반이 아니요 평민이라고 해서 이 고을양반들에게 늘

학대를 받고 지내는 것이었다. 양반이 아니면 성명이 없고 그 자손도 글

공부를 해야 벼슬도 못하고 아무리 똑똑한 이재라도 써먹을 수가 없는

억울한 세상이었다.

임원에게는 딸과 아들남매가 있었다.

딸은 열일곱이라는 꽃다운 아이로 얼굴이 달덩이처럼 동탕(動蕩)하여

미인으로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혼처가 물밀듯하지마는 이리 삐긋 저리

삐긋 혼인이 잘 되지 아니하였다. 양반의 집과는 혼인을 할 수 없고

상놈집 자식으로는 인물이 없고해서 고르고 고르는 중이었다.

미랑(美娘)이를 어서 시집보내야 할텐데

그러기 말야, 그러나 어디 똑똑한 사내자식이 있어야지

미랑의 아버지 어머니는 늘 걱정을 하였다.

중호(重浩)도 장가를 들여야지, 벌써 열 다섯살이 되었구려, 늦었지

뭐요

늦었구말구, 나이 열다섯이면 호패를 찰텐데

그때는 대걔 사나이가 열두 서너살이면 장가를 들고 계집애는

열서너덧살이면 의례히 시집을 보내는 것이었으니 그들 남매 미랑과

중호의 혼기가 늦었다는 것도 당연한 말이다. 이람도 예쁘려니와 그동생

중호도 누이와 같이 아름답게 생기었다. 언듯보면 중호도 미랑과 같이

여자 비슷하게 생기고 살결이 희고 예뻣다. 그리고 재주도 있고 똑똑해서

글방에서 사서 삼경을 다 배웠지마는 양반이 아니라 과거를 볼 수도

없었다.

아버님, 저는 왜 글공부를 했어도 과거를 못봅니까?

양반의 자손이 아니라서 그렇단다

같은 사람인데 양반이라야 벼슬을 하고 그도다 더 잘난 인물이다로

상놈이면 썩어 버리니 그런법이 어디 있어요

그러기 나라가 이렇게 망하는게 아니냐, 이번 새로 도임한 원님도

팔난봉이지만 양반의 집 자식이라고 원님이 되었단다

정말 원통하고 분해요. 그럼 저는 뭘해야 좋을까요?

농사나 장사나 했지 별 수 있니

중호는 울었다 높은 학문을 배웠으나 써 먹을데가 없는 것이 지극히

원통하였다.

양반의 집으로 양자를 가면 어떻게 속일 수가 있고 과거를 볼 수가

있는데- 가난한 양반에게 땅이라고 떼주면 될 수는 있지마는...

임원도 한탄스러워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싫어요. 남의집에 가서 벼슬을 하느니 이집에서 농사를 짓는게

나어요

글쎄 네가 외아들이니 양자를 보낼수도 없고

딴 고을에 가서 양반노릇은 할 수 없나요?

그것도 할 수 없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양반이 되지 못했나요

우리 선조도 고려때는 양반이었더란다. 그런데 고려가 망하고 이조가

되는데 이조에게 붙는 사람은 양반이 되고 이조를 반대하는 집은 다

평민이 되었단다

그럼 지금 양반은 다 나쁜 사람들이로군요. 우리도 조상은 좋군요

그럼- 사람이야 다 매일반이지 양반이니 상인이니 하고 가르는 것이

잘못이지

아무리 못났어도 양반이면 상인에게 해라나 하게를 하고 수틀리면

잡아다가 때리고 돈이나 곡식을 욹어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양반같지

아니한 토반(土班)의 행패는 더욱 심해서 평민들은 그 등살에 살 수가

없었다.

임원도 원님이나 양반들에게 뜻기는 것이 굉장히 많았고 억울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마는 호소할 데가 없었다.

청수는 이고을에 부임하자 위선 가장 비위에 맞는 이방(원님밑에서

일하는 아전) 하나와 친하였다. 악한 임금은 간신과 가까워지는 법이요

악한 상관은 악한 하관과 배가 맞는법이다. 탐관오리가 번창해서 나라를

어지럽게하는 세상이었다. 청수는 이방을 불러서 위선 이 고을의 명기를

수청들이게하고 또 한편 돈을 긁어 모을 방도를 의논하는 것이었다. 그저

토색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고을 상놈중에서 누가 부자냐?

네이- 임원이란 놈이 상인이지만 큰 부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먹을 수 없니?

네이- 그저 트집을 잡아서 끌어다가 때리고 족치면 됩니다

트집을 어떻게 잡는단 말이냐?

다 하는 수가 있읍니다

이방은 원님의 귀에다가 대고 간사스럽게 뭐라고 속살속살한다.

으응- 그렇게 예쁜 딸이 있다- 그거 꿩먹고 알먹는 격이로구나- -

하루라도 빨리!

청수는 희색이 만면이다.

며칠후이다.

이방이 사령을 데리고 임원의 집으로 왔다.

웬일이시오?

임원은 이방에게 말하였다.

원님께서 따님을 보시자고해서-

같은 평민이건만 하대를 한다.

왜요?

글쎄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원님께서 미랑의 소문을 듣고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셔서- 아아 어디 중신(혼인소개)를 하시려는 모양입디다

원님이 무슨 혼인주매란말요. 소용업다고 말씀하시오

누구의 명령이라고 거역한단말요. 순순히 말할때 보내시오. 그렇지

않으면 잡아 갈테니

아니 그런 법이 어디있단 말요. 아무리 원님이기로서니 규중처녀를

함부로 잡아간단 말요

임원은 의심이 덜컥나서 하는 말이다. 원님이 미랑을 보자는데는 딴

배포가 있는 것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잔소리 말고 어서! 그렇잖으면 재미 적을테니

떠드는 소리에 중호가 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원님이 미랑을 보시자고 한다

왜요?

그걸 알 까닭이 있나?

그건 할 수 없소

뭣이?

이방은 중호의 뺨을 후려갈기고

들어가서 계집애를 끌어내라

하고 사령에게 명형하였다.

벙거지를 쓰고 육모방망이를 옆구리에 찬 사령들이 우르르 방으로

들어가서 미랑을 잡아내었다. 미랑은 거꾸러지며 울며 불며 야단이었으나

여럿이 팔과 다리를 붙잡고 떠메어서 가마속에 집어넣었다.

미랑의 아버지 어머니 중호가 모두 울며 덤비는 것을 다른사령이

방망이로 때리고 밀치는 통에 미랑을 태운 가마는 사라지고 말았다.

임원과 중호 부자는 관가로 달려갔으나 역시 군노 사령들에게 매만 맞고

쫓겨나고 말았다.

 

2.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마는 호소할데가 없고 동네사람들은 동정을

하지마는 어쩌는 수가 없었다.

기생도 아니요 규중처녀를 수청들이는 법이 어디 있노!

이번 원님은 아주 호색가래

아마 소첩을 삼으려는 게지

그런 무지한 일이 어디 있담. 양반과 벼슬아치들 때문에 못살겠어

돈과 땅을 바쳐야 미랑을 꺼내올꺼야

이렇게 수군거리었으나 드러내놓고 크게 말도 할 수 없었다.

임원은 아전을 통해서 돈과 땅문서를 바치었으나 미랑은 나오지

못하였다.

미랑은 왠 영문인지 모르고 관가에 잡혀 들어갔는데 원님 청수가 가까이

보더니

- 과시 천하일색이로구나!

하고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방년이 몇인고?

하고 묻는다.

열 일곱살에요

흥 아주 한참피는 꽃이로구나, 오늘밤 내게 수청을 들어라

? 저는 기생이 아닙니다

알아! 그러니까 내 소첩노릇을 하란말야. 우리집 사람은 아직 한양에

머물러있고 나혼자 왔으니 뭐 이 관가의 안주인노릇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가 있단말야

저는 죽어도 싫습니다

- 고집부려야 소용없어, 여기 한번 들어온 이상은 내 물건이니까

원님은 백성을 다스리라는 것이지 규중처녀를 강간함은 옳지 못하다고

아뢰오

- 얼굴도 예쁘려니와 말도 잘 하는군

밤이 되어 청수는 술상을 차려 오라고 해서 먹은 다음 토인이

이부자리를 깔고 문을 꼭꼭 잠근후에 옷을 벗고 미랑의 옷도 벗기면서

- 첫날밤을 치루자고, 아직 사내맛은 모르겠지!

하고 능글맞게 덤벼들었다. 미랑은 반항하고 소리쳐 울면서

이게 무슨 짓예요. 정히 그렇다면 육례를 갖추어서 저를 데려오시든지

하지 이런 무례한 일이 어디 있어요

하고 발악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응 그런 예법은 차차 할셈치고, 오늘밤은 그대로 즐기자. 상놈에게

출가하는 것 보다 이런 원님에게 몸을 바치는게 영광이 아니냐

손목을 턱 잡고 끼어 안으면서 은근하게 말하였다. 미랑은 뿌리치고

싫어요 난 죽어도 싫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청수는 힘으로 미랑의 옷을 벗기고야 말았다.

미랑은 발버둥을 치고 손으로 원님의 얼굴과 가슴을 밀었으나 결국 약한

여자라 강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청수가 정신없이 미랑을 능욕하고 있는데 미랑의 몸이 점점

차디찬 것을 느끼었다.

그리고 꼼짝하지않고 있어서 아마 미랑도 이제는 단념학 좋아서 가만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여인의 몸이 굳어진 것을 알고 입에

입을 대보니 숨소리가 없다. 그는 깜짝 놀래서 미랑을 흔들었으나 눈을

감은채 아무 반응이 없다.

기절한 것인가 하고 주무르고 야단이었으나 소용이 없다.

토인과 아전을 불러서 응급 치료를 해보나 깨어나지 않고

숨이 끊어졌읍니다!

하고 아전이 말하였다. 옷을 벗은 미랑의 시체는 처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청수는 그동안 모르고 시체와 관계하고 있었다. 이것을

생각하니 찬물을 끼얹는 듯 몸서리가 났다. 그는 비로소 가기가 너무

과도하게 했다는 후회의 가책을 받았고 처녀하나를 죽인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새벽에 그 집으로 시체를 옮기게 해라. 자결을 했다든지 기절을

했다든지 좋도록 말해라

그 이튼날 새벽에 임원의 집에는 미랑의 시체가 운반되었다. 이런

기맥힌 일이 어디 있을것인가. 청천의 력력도 분수가 있지 어제까지

멀쩡한 딸이 죽어서 송장이 되어 오다니 원통절통한 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중호는 시체를 안고 통곡하였다.

대관절 왜 죽었단말요?

사령에게 물으니

글쎄 원님께서 귀애하시는데 밤중에 자결을 했는지 기절을 했는지

모릅니다

고 대답하였다.

그럴 리가 없다. 필유곡절이다

임원은 미친듯 관가에 들어갔다. 군노사령이 막고 때리는 것도

무릅쓰고 들어가서

이놈아! 내딸을 왜 죽였는지 말해라!

하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나 원님은 나오지도 않고 들은척 하지도 아니하고 임원은 쫓겨

나오고 말았다.

사흘후 미랑의 상여는 동네를 지나서 북망산으로 향하였다. 고을

사람들도 동정해서 눈물을 흘리었다.

원님이 수청들라고 하는걸 듣지 않아서 인거야

강간하는데 기절한거래

자결을 했다고도 하던데

아무튼 억울한 죽음이지 뭐야

이번 원님은 아주 고약하대

민심은 요란하였다.

장례를 치루고 임원은 날마다 관가에 들어가 미친듯 호통을 치고

원놈 나오너라 내딸을 왜 죽였는지 알자!

하고 소리쳤다.

청수는 임원이 날마다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굴어서 소요스럽기도

하려니와 이렇게 하면 나쁜 소문이 더 퍼지는 것이 두려워서

네 그놈을 잡아 가두어라

하고 명령하여서 임원은 마침내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놈아 왜 나를 가두는거냐?

옥중에서도 미친듯 날뛰었다.

그의 아내와 아들의 비통은 더 말할것이 없었다. 미랑이 참혹하게

죽은데다가 그 아버지까지 억울하게 옥에 갇히게 될때 분하고 원통하나

호소할데가 없었다. 그야말로 사또나 임금님이나 그 위에 가서

말해야겠는데 그런 길도 없으려니와 말한댓자 원님 편을 들것이요 소용이

없을것이 뻔히 아는 노릇이다. 백성의 억울한 것을 호소할데가 도무지

없었다.

옥에서 나오게 하느라고 뒤로 아전들에게 운동한는데 돈과 전답이 많이

없어졌으나 아전들도 그럴듯이 말하면서 먹기만 하고 임원을 내주지

아니하였다.

임원은 분통이 터져서 음식도 못먹고 잠도 자지 못해서 그만 병이 덜컥

나고 말았다.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임원이란 놈이 다 죽어가는데 어찌 하오리까

이방이 원님에게 물었다.

- 그럼 내보내야지, 또 여기서 그놈마저 죽으면 말썽이 많을테니

 

3.

임원은 떠메여 옥에서 나와 집으로 왔다. 그는 맥이 없고 다 죽어가는

것이었다. 중호는 애가 타서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가서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로 점점 병은 침중해졌다.

어느 비오는날 밤중이었다. 임원은 아내와 아들이 옆에 있는데 눈을

감고 죽은듯이 있다가 겨우 눈을 떠서

중호야 원수를 갚아라

하는 말을 겨우 남기고 운명하고 말았다.

중호와 그 어머니는 시체에 엎드려 한없이 울었다. 울고 울어도 원한이

풀리지 아니하였다. 한집안의 귀한 두 목숨이 생으로 억울하게 죽었으니

그럴 수 밖에.

그들고 가까운 서민들은 동정을 하고 장례식에 참례했지만 원님의

불평을 노골적으로 할 수는 없었다. 말을 해도 잡혀가서 볼기를 맞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관리들의 비행으로 갖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하고싶은

말이많지마는 말도 자유로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서로 쳐다보고 한숨만

쉬는 것이었다. 과연 불쌍한 백성들이었다.

장례를 치루고 나서 중호와 그의 어머니는 맥이 탁 풀리고 텅빈 집에서

울기만 하였다. 그 어머니는 심화가 나서 누워버리고 말았다. 중호는

아버지가

원수를 갚아라

하는 유언을 날마다 속으로 되풀이하였다.

그 원수를 어떻게 갚을까 주야로 궁리해 보았다 원님에게 가서 그를 푹

찔러죽이는 것이 제일인데 칼을 품고 몇번 가 보았으나 얼씬도 못하게

경계가 삼엄하였다. 자칫하면 또 잡히어 갇히는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몇달후에 갑자기 원님 청수는 여기를 떠나서 한양으로 갔다는

소문이 들리었다. 원님이 떨어진줄 알았는데 웬걸 내직으로 영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도도 있지만 여기와서 백성에게서 착취한 재물로

상관에게 뇌물을 주어서 높은 자리로 올라간 것이었다. 이렇게 악독한

관리라 권세를 잡아서 나라는 어지러워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어

허덕이는 것이었다.

중호는 원님 청수가 서울 한양으로 갔다는데 실망을 하였다. 그래도

여기 있어야 어떻게든지 원수를 갚을 기회가 있을터인데 먼데로

가버리었으니 기가 막히었다.

그러나 어찌했든 그놈을 따라가서 어떻게든지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양에 가기로 결심하였으나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기가 차마 어려웠다. 그렇다고 집에 그대로 엎드려 있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 얼마동안 제가 한양에 갔다가 오겠읍니다

한양에는 왜?

그 원님놈을 만나서 원수를 갚고 오겠읍니다

아니 나이 어린 네가 어떻게? 도리어 위험하지 않으냐?

염려 없읍니다. 다 생각이 있읍니다. 다만 어머님을 혼자 두고

떠나기가 차마 죄송하고 불효 막심이오나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유언도

있고요, 지하에 있는 누이를 생각해서도 기어이 원수는 갚아야겠읍니다

오냐 그렇기는 하다마는.... 가면 몇달이나 걸리겠니?

몇달 가지고는 안될 것입니다. 몇해가 걸릴지- 적어도 일년은 넘을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죽지나 아니할지-

맘을 튼튼히 잡수시고 제가 원수를 갚고 올때까지 꼭 살아 계셔야

합니다

오냐, 그럼 내 걱정은 말고 갔다가 오너라

중호는 땅을 팔아서 노자를 두둑히 만들었다.

괴나리봇짐을 해서 등에 짊어지고 열여섯살된 소년은 집을 떠나게되었다.

어머니는 간신히 일어나서 대문 밖까지 나와서 아들이 가는 것을

작별하였다.

모자는 붙잡고 한참동안 울었다. 이웃집 수동이 어머니에게 집일을

신신당부하였다.

웬만하면 어머니도 한양으로 모셔가도록 하겠으나 얼마동안만 참으소서

 

중호는 그리운 집과 고향을 떠나서 들길 산길을 걸어갈 때 눈물이

발자국마다 고이는 것 같았다.

오냐 맘을 독하게 먹자!

한양길을 향해서 날마다 걸었다. 가다가는 주막에서 자고 산설고

물설은 타향의 길을 가면서 어머니를 위하여 하늘께 빌었다. 서울 근처에

가서는 어떤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입었던 옷을 다 내버리고 누이 미랑의

옷을 가지고 온 것을 바꾸어 입었다.

머리는 칭칭 따아서 자주 댕기를 드리고나니 한다하는 처녀가 되었다.

중호는 이제부터 여자 행세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야 원님 청수에게

가까이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중호는 미랑을 닮아서 얼굴이 예쁘고 살결도 곱고 목청도 아름다워서

누가보나 사내로 생각할 수 없을만치 가쪽같았다. 한양성으로 들어오니

만호 장안은 어마어마하였다.

- 여기가 임금이 계시고 모든 정승들이 사는 곳이로구나, 우리

나라를 다스리는 수도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그보다도 여기는

내 철천지 원수, 불공대천지 원수가 있는 곳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반갑고 피가 전신에서 끓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늙은이 내외가 사는 정갈한 집에 사처방을 얻어서

돈을 후히 주고 숙식을 하도록 하였다.

처녀는 어째서 혼자 한양엘 왔노?

- 시골서 지내기가 갑갑하고 여기와서 발천(發闡)을 하려고요 뭘

했으면 좋을까요?

글쎄 무슨 재주가 있는지.....

저는 가무(歌舞)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기생이 될까 합니다

- 처녀같은 얼굴이면 훌륭하지

그때 기생이란 지조가 있고 가무만 숭상해서 천대를 받지 아니하였다.

중호는 노파를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

어머니처럼 대접하니 노파도 딸처럼 귀여워하였다. 그 노파와 수소문해서

가무를 가르치는 선생을 찾았다. 남자선생, 여자선생, 두 사람에게

노래와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재주도 비상하지마는 일편단심 지성으로

배우니 그의 가무는 출중하게 날마다 장족의 진보를 하였다.

참 우리가 많이 가르쳐 봤다마는 너같이 빨리 능숙해지기는 처음이다.

정말 천재로구나

이렇게 배운지 일년이 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성껏 배웠다.

봄날이나 가을달밤 같은 때는고향에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이만하면 인제 기생으로서 나설 수 있다. 장안에서는 뽑히는 기생이

될 것이다

중호는 조그만 집을 하나 장만해서 독립의 생활을 하기로 하였다.

그때는 기생이 무슨 요릿집이나 그런데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손님이

찾아오고 대가의 연회에나 대궐에 간혹 불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중호는 집을 구하되 원님 청수의 집 근처로 하였다. 청수의 집은

소슬대문에 굉장하였고 조사한 결과 내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으며 역시

풍류남아로 기생집 출입이 잦다고 하였다.

계집애 하인을 하나 두었다. 중호보다 한두살아래인 처녀인데 먼저

주인집 노파의 조카딸이었다. 집안이 간구해서 시집보내기전 시중을 하게

하였는데 다른집 같으면 보내지 않겠지마는 여기만은 전부터 잘알고

친한고로 보낸 것이다.

중호의 예명은 설죽매(雪竹梅)라고 지었다. 눈속에 청청한 대나무와

눈바람 속에서도 피어나는 매화의 어기찬 지조를 상징하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설죽매는 원체 유식한지라 글도 잘 짓고 글씨도 잘쓰고 그동안

그림도 배웠다.

설죽매같은 기생은 장안에 없다!

이런 소문이 차차 퍼졌다. 거문고 가야금도 일등 기생만 못지

아나하였다.

살림하는 계집애 이름은 국희(菊姬)라고 하였다.

퍽 얌전하고 예쁜 처녀이었다.

 

4.

설죽매와 국희는 딴방을 쓰고 따로 잤다. 그러나 조석상대를 하고

지내니 자연 정이 들고 말았다. 국희는 설죽매가 남자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치 못하였다.

설죽매의 소문이 나자 장안 풍류남아와 화랑들이 꿀종지에 개미 모이듯

하였다. 그들은 설죽매에게 반해서 어찌할줄을 몰랐다. 재색이 겸비한

기생은 드문데 설죽매는 가무니 서화니 음률이니 뭐나 다 잘하였다.

설죽매! 설죽매!

장안에는 설죽매로 소문이 파다하고 기생계에 꽃이요 뿔이 되었다.

중호인 설죽매는 그렇게 유명해지는 것이 그다지 반가울 것도 없고

귀찮기만 하였으나 다만 청수를 만나자는 그것 뿐이었다. 오는 손님은

설죽매를 건드려 보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다. 패물이니 초피니

수달피같은 선사도 하고 돈을 물쓰듯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안의 부호가

자제도 있고 높은 벼슬아치도 있는데 대개는 훌륭한 남자이었다.

설죽매는 그들을 속이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여보 설죽매- 나하구 같이 삽시다. 살림은 그대가 원하는대로 차려

줄테니

이렇게 말하는 사내가 한둘이 아니었다.

단 하루밤만 자면 소청대로 뭐든지 들어 줄테요

이렇게 몸이 닳아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달이 지나도 청수는 오지

아니하였다. 그야 누구를 중간에 넣어서 오도록 할 수는 있지마는 그

보다는 제발로 걸어 들어오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끈기있게

기다리었다. 그도 풍류남아요 더구나 자기집 근처니 아니올 리가

만무하다.

아씨는 어쩌문 그렇게 사내들한테 환심을 세세요, 정말 부러워요

국희가 어느날 밤 설죽매가 누워있는데 옆에 와서 말하였다.

그런데 부러울 것 없다. 나도 얼마하다가는 그만 둘 작정이다.

여인이란 그저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살림하는게 제일이니라

국희는 이야기하다가 쓰러져 누워서 잠이 들었다. 색색자는 처녀의

얼굴은 한층 더 아름다웠다.

국희는 잠결에 중호의 품으로 기어들었다. 중호는 무의식중에 국희를

꼭 끼어않았다. 잠이 깬 국희는

난 시집안가고 언제나 아씨와 같이 살테야요

하고 정답게 말하였다. 그들은 서로 이상한 애욕이 통하는 것이었다.

- 우리 둘이서 살자

아씨가 혼인하면 어떻게 해요?

응 그럴 리가 없다

포옹하는 그들은 서로 이상한 감촉을 받았다.

어서 네방에 가서 자거라

싫어요. 난 여기서 잘테야요

국희는 그의 품으로 버썩 버썩 달려 들었다. 중호도 이제는 열일곱살-

한참때의 사내로 아리따운 처녀를 품에 안고 있으니 정욕이 발동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국희도 설죽매가 여자인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끌리는

것이었다.

중호는 국희를 밀치면 또 덤벼들고 해서 밤새껏 잠을 못자고

고민하였다.

여름 어느 날이었다.

종내 청수가 설죽매의 집에 왔다. 같은 벼슬아치인 사람과 둘이서

놀러왔다.

수인사가 끝난 후 청수는 설죽매를 한참 바라보더니

어디서 많이 본듯이 낯이 익숙한데

하고 무슨 기억을 더듬는둣 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전에 강간한 처녀

미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호는 마침내 주야장천 생각하고 기다리던 원수를 만나니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울렁거리었다. 더구나 그가 유심히 처다 보는데는 그럴 리가

없지마는 혹시 본색을 눈치챌까하는 염려도 없지 아니하였다.

술상이 들어온후 그들은 술을 마시고 나중에 설죽매의 가무와 음률을

보고 들은후에 청수는 호색적인 눈을 번쩍이며

- 이런 명기가 장안에 있는 줄을 몰랐군!

하고 감탄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장안에 저다지 고귀하신 화랑이 계신줄은

몰랐읍니다

설죽매은 청수에게 추파를 건네며 아양을 떨었다. 사내를 녹이는

애교이었다. 밤 늦게까지 놀다가 갔다.

그다음은 청수 혼자서 왔다. 나란히 붙어 앉아서 술과 음식을 먹는데

설죽매는 이 놈이 자기집 재산을 다 빼앗고 누이와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는 것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으나 참고 기회를 보기로

하였다. 그후 청수는 몸이 닳아서 며칠에 한번씩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정답게 어떤 때는 쌀쌀하게 하여서 몸이 바싹 달게되었다.

청수는 죽을둥 살둥 모르고 덤비는데 중호는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지마는

좀더 애를 태우고 뺏긴 재산도 찾고 또 탄로가 안되도록 계획적으로

교묘하게 하려고 조급한 것을 참고 참았다.

중호는 몰래 날쌘 칼을 갈고 갈아두었다. 그리고 청수가 은금패물이니

돈이니 많이 가져오도록 하였다. 장차 몸을 허락하고 소첩으로 살림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청수는 재물을 아끼지 않고 갖다가 바치었다.

그만해도 중호는 자기집 재산을 찾고도 남았다.

대관절 어느날이나 첫날 밤을 치룬단 말요

예 좋은날을 택해서 오시게 하죠. 며칠만 기다리시오

이거야 어디 사람 피가 마를 노릇이로군

그래서 결국 날자를 정하고 말았다.

그동안 이집은 팔고 중요한 물건은 국희의 집으로 옮기고

모든것을 비밀로 하라고 하였다.

그날밤이 되었다.

국희는 어디갔소?

집에 보냈어요. 오늘밤은 우리 둘이서 싫것 맘놓고 지냅시다요

- 잘 생각했어. 과년한 처녀가 바람나면 안 될테니까

중호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단둘이서 주안상을 차려놓고 마시고

먹었다.

오늘은 전에없이 예쁜데

화장을 농후하게 한 설죽매는 요염하게 예뻤다.

그런데 얼굴에 바른분이 푸르게 뵈니 웬일요?

사실 중호의 얼굴에는 살기가 등등해서 푸른 빛이 났다.

암만해도 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야, 생각은 나지 않지만.....

 

세상엔 비슷한 얼굴도 많겠죠

- 거문고나 한번 타오

-

설죽매는 거문고를 놓고 섬섬옥수로 타기 시작하였다. 애틋한

봉황곡(鳳凰曲), 비곡인 제류곡(堤柳曲), 원한이 사무친 황죽곡(黃竹曲)

등을 타고 맨 나중에 충천곡(衝天曲)을 타는데 이것은 장엄하고도 무서운

것이었다. 맨나중에 설죽매는 힘껏 줄을 타다가 하나를 홱 끊어

버리었다.

- 왜 그러우

너무 힘껏 타다가 그랬어요

청수는 웬일인지 가슴이 뜨끔하고 어떤 불길한 예감과 공포와 불안이

치밀었다.

- 그만 잡시다

-

그럼 옷을 벗읍시다

금침을 깔고 청수는 옷을 벗고 설죽매도 겉옷을 벗고 속옷만 입었다.

품속에는 갈고 갈았던 칼이 들어있다.

그들은 나란히 누웠다. 촛불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흔들하고

있다. 밤은 깊고 고요하다.

 

5.

청수는 설죽매를 끼어안고 입을 맞추고 야단이다.

좋아서 어찌할줄을 몰랐다.

설죽매는 가만히 떠밀면서

한가지 부끄러운 소청이 있읍니다. 다른게 아니라 저희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업원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첫날밤에 남자가 여자위에 올라 와서

상관하면 반드시 그 사내가 복상시(腹上屍=배위에서 죽는것)가 됩니다.

그래서 첫날 밤만은 여자가 남자 배위로 올라가서 관계하는 전례의 풍습이

있읍니다. 오늘도 그렇게 해주세요

하고 말했다.

- 이상한 미신도 다 있군, 정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청수는 이 아리따운 여인과 속히 육체의 관계를 하고 싶은 욕심뿐이라

그런것 저런것 분별한 새가 없었다.

설죽매는 청수에게 올라가서 그 배를 타고 앉자마자 난데없이 뻔쩍이는

칼을 대며

네 이놈아! 나를 몰라보겠니?

하고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중호는 인제 호랑이가 개를 삼키려고 타고

앉아서 으르렁 대는 것같은 쾌감을 느끼었다.

! 이게 무슨짓야, 아니 장난인가?

청수는 놀래면서 반신반의 하였다.

네가 **고을 원으로 왔을 때 미랑이라는 처녀를 강간해서 죽였지---

그 아버지 임원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다가 죽였지--- 이놈 나는 그 미랑의

사내 동생이요, 임원의 아들이다. 너를 만나서 오늘 이런 원수를

갚으려고 여복을 하고 공부를 해서 기생이 되었다. 이놈 알겠니, 너는

내손에 죽어야한다!

! ! 네가 바로!

청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렇다- 너를 죽여 오장육부를 씹어도 시원치 않다!

사 사 살려다구, 그럼 네 청이면 뭐나 다 들어주고 우리집 재산을 다

주마

듣기싫다! 나는 다른것보다 네 피를 보고싶다!

저 저 정말이냐?

하면서 갑자기 설죽매를 뿌리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설죽매가

뒤로 둥그러지자 이번엔 청수가 그의 배를 타고 올라앉아서 손에 쥔 칼을

빼앗으려고 하며

! 네놈한테 내가 죽을줄 알고!

하면서 호통을 친다. 칼만 빼앗기면 도리어 중호가 죽을 판이었다. 그는

다시 힘을 내어 청수를 박차버리고 일어섰다. 청수는 일어섰다.

용호상박이라더니 두 사람은 마주서서 으르렁대고 노려 보는데

이놈아 네가 죽인 누이와 아버지의 혼령이 지금 나를 도우신다! 너는

내 칼을 받아라!

하고 칼로 찌르려는 무서운 기세다. 청수는 술도 취했거니와 너무도

뜻밖의 일에 부딛혀 흥분이 되고 또 양심의 가책도 있어서 공포에 떨면서

그 칼을 피하려고 비슬 비슬 하였다.

이놈 네가 나를 죽이려다가는 네가 죽을테니 그 칼을 놓고

이야기하자.....

청수가 위협하는듯 애원하는듯 부르짖었다.

뭣이 이놈아! 그래도 네죄를 생각지않고 살려고 하느냐? 나는 너를

죽이고 그 피를 마셔서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살기찬 눈으로 쏘아보는 설죽매의 얼굴은 무슨 귀신같이 무섭게 보였다.

여인의 머리와 옷은 흩으러지고 이를 가는 입이 무슨 요귀나 마녀같이

독하게 보였다. 청수는 소름이 끼쳐 전신을 떨었다. 그 설죽매가 바로

자기가 강간하다가 죽은 미랑의 그 무서운 얼굴과 똑 같았다.

그는 문을 박차고 나갔으나 대문이 잠기어 마당으로 후원으로

도망하는데 설죽매는 유유히 그를 쫓아다니며 칼을 겨누었다. 호랑이게게

쫓기는 개나 뱀에게 쫓기는 개고리나 고양이에게 노림을 받는 쥐와

같았다. 청수는 숨이 차서

야 야! 사람 살려라, 나를 살려다구!

하고 소리쳤으나 이집은 이웃에 들리지 않는 안윽한 집이었다.

오냐 죽어서 저승에 가서 우리 누이와 아버지를 만나보아라! 거기가서

한번 더 혼이 나야한다

중호는 비호처럼 달려 들어서 칼로 그 배를 찔렀다.

아이쿠!

중호는 다시 그 배를 타고 앉아서

이놈아! 이 원수놈아!

하고 칼로 그 목을 찌르고 그 가슴을 찌르고 난도질을 하였다.

청수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눈은 뒤집어졌다.

조금후에 아주 죽고 말았다.

-

하고 중호는 일어나면서 죽은 원수를 볼때 어깨의 무거운 짐이 벗어지는

것같고 시원하였다. 그리고 누이와 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누나! 원수를 갚았읍니다!

하고 울면서 소리쳤다.

닭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었다. 중호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소매를

걷고는 청수의 시체를 끌어서 미리 뒤 울안에 깊이 파두었던 땅속에 넣고

그 옷이니 신이니 갓이니 전부 함께 파묻어 버리었다. 누가 보던지

이속에 송장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도록 감쪽같이 하였다.

중호는 이제 할일을 다하였다는 듯 설거지를 하였다. 피묻은 데를 씻고

아무 표적이 없도록 해 놓았다.

그리고는 간수해 두었던 남복을 갈아 입고 머리도 총각머리를 땋아서

검은 갑사댕기를 드리었다. 설죽매라는 여자가 금방 중호라는 남자로

변해 버리었다.

새벽이 되어 동이 트자 이집에서 나갔다. 중호는 국희의 집으로 갔다.

국희는 뛰어나오면서

아니 왜 남복을 하셨어요?

하고 눈이 둥그레진다.

지금까지 국희를 속여 왔지만 나는 남자요 나중에 가서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할테니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말고 우리 살던 집에도 가지 말우,

그리고 내가 올때까지 시집가지 마시오. 어쩌면 나하구 백년가약을

맺을지 모르니...

중호의 말에 국희는 반가운듯 부끄러운듯 붉어지는 얼굴을 푹 숙이었다.

그날로 중호는 고향으로 와서 집을 팔고 땅을 팔고 모든 것을 정리해서

어머니와 함께 한양으로 이사하였다. 그리고 집과 터를 장만하고 국희와

혼인해서 행복스럽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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