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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김씨 김정경 선생 묘소 답사 / 알리는 말씀

by 연송 김환수 2015. 11. 5.

안산김씨 김정경 선생 묘소 답사 / 알리는 말씀

 

11월 문화유적지 답사 함께 떠나요~! | 알리는 말씀

나무와 새 / 2015.11.02. 10:47

http://cafe.daum.net/ansanhis/BttZ/537

 

이번 답사는 안산읍성(객사) 주변에 65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직접 심으신 안산김씨
김정경 선생 묘소(하남시)을 비롯해서
포은 정몽주, 번암 채제공, 반계 유형원, 정암 조광조, 심곡서원 등 역사유적지를 찾아서 용인 지역으로 역사 탐방합니다.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 안촌마을 :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 묘소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 안촌마을 위정각 : 양력 45일 춘계향사를 지낸다.

충북 괴산군 장연면 위정사 : 매년 음력 7.15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 불천위 제사를 지낸다.

 

김정경 (金定卿) : 1345(충목왕 1)1419(세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산(安山). 시호는 위정, 아버지는 진주목사 성경(星慶)이다.
 
일찍이 고려 때에 벼슬하였으나, 새 왕조 창업에 찬성하고 이성계(李成桂)를 지지하였다. 조선 개국 후 삼군절도사를 거쳐 이조전서(판서)를 지냈는데, 인사관리를 잘하였다.
 
1396(태조 5)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가 되어 전라도와 충청도 각지의 성을 수축하고 군비를 점검하는 한편 병선(兵船)의 허실을 조사하였다.
 
1400년 방간(芳幹)의 난이 일어나자 한성부윤(현서울시장)으로서 방원(芳遠)에 협력하여 이를 진압,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졌다.
 
그뒤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었는데, 병을 핑계로 명나라의 사행을 회피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04(태종 4)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 1408년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를 역임하고, 1410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용맹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품계(品階)는 숭정대부(崇政大夫) 종일품(從一品) 이며, 시호는 위정(威靖)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國朝人物考. 崔完基


 
위정사는 숙종 8(1667)에 세운 이 사당은 앞면3·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715일과 102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음력 715일 위정사 기제 (국불천위 제사)
   음력 1029일은 하남시 감북동 위정각 양력 45일 향사로 변경
 
공은 부인을 세 번 맞이하였으니, 판서 신익지, 신양군 노영, 남평군 왕화의 딸이다. 51녀를 낳았다.
 
별장 지는 신씨 소출이요, 상호군 관, 별장 척은 노씨 소출이요,
 
판중추 평호공 개와 안성위 한과 서령 안철산 처는 왕씨 소출이다.
 
위 정 사
위정공 김정경(연성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종목 : 문화재자료 제12(충북)
수량 : 1
지정일 : 1994.01.07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장연면 광진리 291
소유자 : 안산김씨종중
관리자 : 김재천
연락처 : 충청북도 괴산군 문화체육과 043-830-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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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대부(崇政大夫)
조선시대 종일품(從一品) 동서반(東西班)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종일품의 하계(下階)로서 숭록대부(崇祿大夫)보다 아래 자리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1466) 이후로 문무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 1865)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儀賓: 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숭록대부(崇祿大夫)
조선시대 종일품(從一品) 동서반(東西班)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종일품의 상계(上階)로서 숭정대부(崇政大夫)보다 상위 자리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1466) 이후로 문무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 1865)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儀賓: 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공안부 (恭安府)
 
1400년(정종 2) 11월 정종이 태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은퇴하자, 태종이 그를 위하여 설치한 특별관부이다.
 
이는 1400년 6월 상왕이었던 태조를 위하여 세운 승녕부(承寧府)의 예에 따른 것으로, 판사·윤(尹)·소윤·판관·승(丞)·주부 각 1인씩을 속관으로 두었고, 판사에는 김수(金需)가 임명되었다.
 
또, 정종의 비를 위해서는 인녕부(仁寧府)라는 별도의 관부를 설치하고 내관·궁녀들을 요속으로 정하였다. 공안부는 정종의 비서실과 같은 것으로 공사생활에 관계된 모든 업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상왕의 재정관리를 위하여 보화고(保和庫)라 하는 특별창고를 설치하였는데 1403년(태종 3) 공안부에 통합되었고, 상왕의 호위·전령·비서·주거관리·물자공급·노비 등을 관리하였다. 이러한 상왕관부는 은퇴한 왕의 예우와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배려에서 마련된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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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부는 상왕(上王) 정종(定宗)을 위해 설치된 정종(定宗) 전용의 비서실 개념으로 태조 이성계 비서실인 승녕부(承寧府) 다음으로 막강함.


공안부윤(恭安府尹, 정2품).
태종이 형이자 상왕인 정종에 대한 예의에 각별하였는데 공안부 윤은 상왕 비서실의 실무 총책임자로 태종의 신뢰를 받는 신하로써 그 임무가 막중하다.
 
공안부는 이조(吏曹) 소속으로 형식적인 최고 직급인 영공안부사(領恭安府事, 정1품으로 종친중에서 임명),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정1품), 윤(尹, 정2품), 소윤(少尹, 정4품), 판관(判官, 정5품), 승(丞), 주부(注簿, 종6품) 기타 내관, 궁녀 등으로 구성됨.
 

 

안산지역사연구소(지역사연구모임)

http://cafe.daum.net/ansan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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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문화유적지 답사 함께 떠나요...

 

오늘이 벌써 11월의 첫 월요일 입니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시고 늘 가정에 행복과 기쁨이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이미 예고 해드린 바와 같이, 우리 안산지역사연구모임 11월 답사는 천년역사를 지닌 경기도의 구석구석을 답사하여

 

역사와 문화의 견문을 넓히고, 자랑스런 경기도민과 안산시민 의로서 정주의식을 갖도록 야심차게 준비 했습니다.

 

이번 답사는 안산읍성(객사) 주변에 65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직접 심으신 안산김씨 김정경 선생 묘소(하남시)을 비롯해서

 

포은 정몽주, 번암 채제공, 반계 유형원, 정암 조광조, 심곡서원 등 역사유적지를 찾아서 용인 지역으로 역사 탐방합니다.

 

그동안 참석 못하셨던 회원님들 단풍이 곱게 물든 이좋은 가을날 함께 떠납시다~!

특히, 이번 답사는 자녀(학생)분들과 함께 오시면 좋은 현장 학습이 될 것입니다.

 

◇ 일 시 : 11월21일(토요일) 08:00 ~17:30

◇ 장 소 : 하남, 용인지역의 역사 유적지

◇ 집결장소 : 안산시청 (08:00 출발) ※무지개관광버스 탑승

◇ 답사코스 : 안산시청 출발 → 하남시 안산김씨 김정경 묘소 답사 →

                          용인시 정몽주 묘소 답사 → 반계 유형원 묘소 답사    →

                          번암 채제공 묘소 답사 → 심곡서원 답사 → 정암 조광조 묘소 답사 →

                          안산시청 도착.

◇ 모집인원 : 선착순 35명

◇ 모집대상 : 안산시민 누구나

◇ 신청방법 : 댓글 또는 전화나 문자

◇ 초청해설 : 우리마로(정진각), 안산지기(신대광)

◇ 회 비 : 10,000원(중식 제공),

◇ 문 의 : 010-5286-1150 (나무와 새, 이채호)

◇ 당부말씀 :

  1) 답사에 필요한 준비물 (보험, 물, 간식, 카메라, 필기도구 등 )은 개인부담입니다.

       꼭 챙겨 오시길 바랍니다.

 

   2) 원할한 운영을 위해 참가하실 회원님들은 누구든지 전화나 문자. 또는 댓글을

        적어주셔야 합니다.

        아무런 연락 없이 오시면 당황 스럽습니다.

 

◇ 기 타 : 1) 점심 시간이 다소 늦을수 있음

 

2) 답사 코스와 답사 시간이 변경 될 수 있음

 

3) 날씨가 추울수도 있으니 옷 따숩게 입고오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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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무와 새 15.11.02. 19:47 김진금 샘, 조금희 샘, 접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답사날 뵙겠습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2. 18:51 최연화 샘, 김현숙 샘 접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2. 19:01 김상곤 샘, 접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고

 

매니아 15.11.02. 19:10 저도 참석 합니다 ~ 토욜이 아니고 일욜인거지요? 21일 토요일 인거 같네요 ~ 토요일이면 희망이도 참석합니다 토탈 2명이요 신고

 

나무와 새 15.11.02. 21:23 앗~! 제가 실수를 했군요. 답사날이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 맞습니다. 정정해 놓았습니다. 일찍 발견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쁘고 착한 희망이 학생이랑 함께 참석하신다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답사날 뵙겠습니다. 신고

 

효태진사랑 15.11.02. 20:07 진선하 신청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2. 21:26 효태진사랑(진선하) 샘 접수 되었습니다. 참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고

 

키사노쿠무사 15.11.03. 16:04 홍상의, 박정란 2명 신청합니다. ^^ 신고

 

나무와 새 15.11.03. 18:07 홍상의 샘 환영합니다. 역시 요번에도 금실좋은 부부애를 과시 하시는군요. 참 보기가 좋습니다. 사모님도 뵐수있어 기분이 두배로 좋습니다. 그날, 선생님 학교 역사동아리 학생들도 함께 참석 했으면 좋겠습니다~. 신고

 

쩡-희정- 15.11.03. 17:49 김희정. 초등생1명 신청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3. 18:14 네~, 반갑습니다. 2명접수 되었습니다. 학생 이름을 알려주셔야 명찰을 만들수 있으니 알려주세요? 문자나 전화로 알려주셔도 좋습니다~. 신고

 

쩡-희정- 15.11.03. 18:11 나무와 새 네 ..안준호 입니다.. 신고

 

하늬소 15.11.04. 11:26 심곡서원에는 꼭가봐야 하는데 아쉽네요.저희 조상님이 물려주신 유품중에 심곡서원의 향나무로 만든 붓통이 전해 오는데

조광조 선생이 심엇던 향나무라고 하네요.그날 행사가 겹쳐서 가지못해 너무 아쉽습니다.안전에 유의하셔서 잘 다녀 오세요. 신고

 

나무와 새 15.11.04. 14:25 아~ 그런 사연이 있으시군요~. 참석 할수 없다니 아쉽네요. 함께 했으면 좋을텐데... 다음 기회에 함께하십시다. 감사합니다. 신고

 

lora 15.11.04. 13:35 최성임 권현순 신청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4. 14:26 네~, 감사합니다. 2명 접수 되었습니다. 아참~! 최성님 샘은 그날 오카리나와 하모니카 준비 해오셔서 멋진 연주 들려주셔야 하는데 해주실거죠?~ 그날 작은 음악회 한번 해봅시다. 기대 하겠습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4. 14:18 명순희, 박금선, 이경미, 이금순 샘, 4명 접수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고

 

대천사(정연호) 15.11.04. 15:08 수고많으세요.

접수 신청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4. 18:56 네~, 지난 답사 예고시에 접수를 해주셨기에 당연히 가실줄 알고있었습니다. 늘 적극적인 참여에 감사드립니다. 답사날 뵙겠습니다. 신고

 

나무와 새 07:56 현재 22명이 접수 되었습니다. 앞으로 13명만 더 접수 받겠습니다. 우리 회원님들은 오는 10일까지 접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1일 부터는 안산시청 홈페이지에다 공지를 해서 부족한 인원을 충원 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신고

 

이촌배나물 15.11.04. 19:57 훌륭하신 우리들의 조상님들을 뵙게 되어 기쁘군요 음택풍수에도 공부가 되겠네요 같이할수있는 영광을 바랍니다 신고

 

나무와 새 00:29 이촌배나물 선생님 잘계시지요?. 선생님을 환영합니다. 알림글 하단에 제 핸드폰 번호 적어있으니 전화 한번 주세요. 선생님께 안부전화를 드릴려고 해도 연락처를 모르니까 답답해서요?... 답사날 뵙겠습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4. 21:24 대미맘(예전 닉: ouklim3 샘 11월답사 예고란에 신청을 해주셨는데 이쪽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럼 답사날 뵙겠습니다. 신고

 

권나연 15.11.05. 00:36 역사 유적지를 편히 다녀 올 수 있슴에 감사드리며 권명옥 최수희 신청합니다. 신

 

나무와 새  15.11.05. 07:40 권명옥, 최수희 샘 접수 되었습니다. 늘 적극적인 참여에 감사합니다. 그럼 답사날 뵙겠습니다. 신고

 

수국의찻집 15.11.05. 07:11 개인적으로 가기 힘든 곳을 가게 되니 고맙습니다 ^^ 전송학 신청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5. 07:40 주말이라서 바쁘실텐데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착하고 든든한 아드님이랑 같이 오실줄 알았는데 요번에는 혼자서 오시는군요~. 답사날 뵙겠습니다.

 

프리티우먼 02:22 new

전서영, 김현길(1), 김현빈(1) 3명 신청가능한지요? 꼭 역사 유적지 가고 싶습니다.^^

 

나무와 새 08:46 네~! 환영합니다. 3명 접수되었습니다. 자녀사랑!, 엄마사랑!, 훈훈한 가족사랑을 느낄수있어 정이 더 갑니다. 함께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좋은 현장 학습이 될것입니다. 그럼 답사날 뵙겠습니다.

나나69 14:08 new 남양숙 신청 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20:08 new 남양숙 샘 오랫만입니다. 접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와 새 15.11.09. 13:52

김민주 샘 접수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9. 17:58

김영미 샘 접수 되었습니다. 근무 일정 조정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09. 23:12 현재(9)접수자 현황: 김진금, 조금희. 김상곤, 매니아(박예영),유희망, 진선하, 홍상의, 박정란,김희정, 안준호, 최성임, 권현순, 명순희, 박금선, 이경미, 이금순, 대천사(정연호), 이촌배나물, 대비맘, 권명옥, 최수희, 수국의찻집(전송학), 전서영, 김현길(1), 김현빈(1), 남양숙,김민주, 김영미, 우리마로, 안산지기, 나무와 새(31) 신고

 

나무와 새 15.11.10. 15:07 new

윤태숙, 신동근 샘 접수 되었습니다. 최성임 샘께서 좋은곳 추천해 주셨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네요. 답사날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고

 

나무와 새 15.11.10. 15:00 new

접수를 마감합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최종 참가자 명단(존칭생략) : 김진금, 조금희. 김상곤, 매니아(박예영),유희망, 진선하, 홍상의, 박정란,김희정, 안준호, 최성임, 권현순, 명순희, 박금선, 이경미, 이금순, 대천사(정연호), 이촌배나물, 대비맘, 권명옥, 최수희, 수국의찻집(전송학), 전서영, 김현길(1), 김현빈(1), 남양숙,김민주, 김영미, 윤태숙, 신동근, 우리마로, 안산지기, 나무와 새(33) 원일중 역사동아리 학생 별도. , 신고

 

나무와 새 18:36 new

회비를 선입금 하지 않는 방법으로 운영하다보니 간혹 몇사람은 신청만 해놓고 참여 하지 않는 회원님들이 계시기에 예비 대기자 접수를 받습니다.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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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ansanhis/BttZ/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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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관련 사전정보 제공

 

연성군 김정경 (蓮城君 金定卿)

 

조선왕조 건국 초기 때 원종공신과 선무공신으로,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신라(新羅) 경순대왕(敬順大王)의 4왕자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아드님인 시조 김긍필(金兢弼)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김 위(金渭)이고, 조부는 김원상(金元祥)이며,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김성경(金星慶)이고, 어머니는 한국부인(韓國夫人) 평양조씨(平壤趙氏)이다.

 

배위(配位)는 화혜택주 왕씨(和惠宅主王氏)이다. 조선 태조를 도와 개국하는 데 협력하여, 개국공신 다음가는 포상 직위인 원종공신으로 책봉되어, 연성군(蓮城君)에 책봉되었다.

 

1400년 (정종 2년) 경진(庚辰), 한성부윤에 있을 때 제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진압하고, 좌명공신에 책봉되었다.

 

1410년 (태종 10년) 경인(庚寅), 명나라 황제 탄생일 때 성절사로 파견 다녀오기도 하였다. 

 

관직을 그만두고, 지금의 경기도 안산에서 '망해정'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가 1418년 (세종 원년) 무갑(戊甲), 향년 75세로 별세하였다고 한다.

 

묘소는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에 모셔졌다.

시호는 위정(威靖)이다.

 

 

 

 

 

 

 

 

 

연성군 김정경 원종공신 묘소

 

위정공은 부인을 세 번 맞이하였으니, 판서 신익지,  신양군 노영, 남평군 왕화의 딸이다. 5남 1녀를 낳았다. (부인 : 평산신씨, 교하노씨, 개성왕씨)

평산신씨와 교하노씨는 부장하였으며, 개성왕씨는 그 아래에 임좌로 장사 지냈다.

 

*** 부장(附葬) = 합장(合葬) ***

여러 사람의 시체를 한 무덤에 묻음. 또는 그런 장사. 흔히 남편과 아내를 한 무덤에 묻는 경우를 이른다. [비슷한 말] 부장2(附葬)ㆍ부폄ㆍ합부ㆍ합폄.

 

 

 

 

 

 

 

 

장명등

 

상석

 

오른쪽 문인석

 

왼쪽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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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국조인물고 김정경 묘표(墓表)

http://blog.daum.net/yescheers/8598398

 

국역 국조인물고 김정경 [金定卿]

 

원본글 출처 : 김정경의 묘표(墓表)

저자 :  이의현(李宜顯)당시 대제학, 이후 영의정(領議政)

본관 : 안산(安山)

이명 시호 : 위정(威靖)

원전서지 : 국조인물고 권36 음사(蔭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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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국조인물고" 묘표(墓表)는 우리 문중에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철종 14년(1863년 4월)에 하남시 감북동 위정각에 세운 연성군 할아버지의 신도비에 쓰여진 비문에 대한 이전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연성군 신도비 보다 137년이 앞서는 1726년(崇禎紀元後 再丙午 3月)에 작성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물론 이 묘표(墓表)는 우리 족보에도 실려 있는 내용이긴 합니다.

 

또한 기록내용으로 보면 위정공이 돌아가신 지 이미 3백여 년이나 되어 묘비에 새긴 글자가 닳아서 없어졌으므로, 지금 김필(金珌)의 6대손 정랑(正郞) 김정오(金定五)와 동종(同宗)의 여러 사람들이 다시 비석을 세울 것을 도모하여 나 이의현(李宜顯)에게 묘비의 글을 가지고 와서 그 뒤에다 추기(追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는 내용으로 보면 1726년 이전부터 묘표(墓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병오(丙午)1666(顯宗7 丙午)이며, 숭정기원후 재병오(崇禎紀元後 再丙午) 1726(英祖2, 丙午)이 됩니다.
 
숭정(崇禎)은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 장렬제(莊烈帝) 때의 연호로 서기로는 1628년에서 1644년까지 입니다.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라는 말이 들어가면 숭정연간(서기 1628년에서 1644)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고서나 고문서에 ""숭정기원후삼갑자(崇禎紀元後三甲子)""라는 문구가 있을 때를 예를 들면, "숭정기원후삼갑자(崇禎紀元後三甲子)"란 숭정3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숭정(崇禎)의 연호를 쓴 때부터 계산하여 갑자년이 3번째로 돌아온 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에서 자주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은 고종 30(1896)을 건양(建陽) 1년으로 하면서부터 입니다. 1897(고종 31)에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연호도 광무(光武)로 고쳐 사용하였습니다.

 

 

이 묘표를 쓰신 분은 영의정을 지내신 문간공 이의현(1669-1745)선생이며, 묘표에 추기를 부탁하신 분은 안산김씨 김필(金珌)의 6대손 형조정랑(正郞) 김정오(金定五, 1660-1735)선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의 생존연대를 보면 1726년에 작성된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족보에 기록되지 못한 외손들의 기록입니다.외손들의 족보기록에서 우리 선조들에 발자취를 일부라도 찾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공은 휘(諱)가 정경(定卿)이고,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문하 시중(門下侍中) 김위(金渭), 판삼사사(判三司事) 김원상(金元祥), 진주 목사(晉州牧使) 김성경(金星慶)이 바로 그 증조, 조부, 아버지이며, 어머니는 평양 조씨(平壤趙氏)로 밀직 부사(密直副使) 조천기(趙千)의 딸인데, 지정(至正, 원 순제(元順帝)의 연호) 을유년(乙酉年, 1345년 충목왕 원년)에 공을 낳았다.

 

공은 우리 태조(太祖), 정종(定宗), 태종(太宗), 세종(世宗)을 섬겼는데, 삼군 절제사(三軍節制使), 이조 전서(吏曹典書)를 지내면서 군정(軍政)에 참여했고 전선(銓選)을 관장하여 모두 명성과 공적이 있었으며, 두 번이나 중국 조정에 사신으로 가서 수고로움이 갖추 지극했고, 박포(朴苞)의 난을 만나 힘을 합쳐서 난리를 평정하여 좌명 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되고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져 품계는 숭정 대부(崇政大夫)에 이르렀다.

 

영락(永樂, 명 성조(明成祖)의 연호) 기해년(己亥年, 1419년 세종 원년)에 병이 들어 누웠을 적에 임금은 의관(醫官)을 줄곧 보내 진찰케 하여 약물(藥物)을 내렸고 내시(內侍)를 보내 문안케 하였으며, 공이 일찍이 노루 간을 먹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사냥을 특별히 명하여 하사하였었는데, 이해 10월 15일에 졸(卒)하였다.

 

부음이 알려지자 임금은 몹시 애통해 하여 조정의 업무를 멈추고 제사를 올리게 하였으며, ‘위정(威靖)’이란 시호를 내렸다.

 

애도하고 영화롭게 한 은전(恩典)을 전례보다 더하여 예를 갖추어 광주(廣州) 현주리(玄州里)에 장사지내었다.

 

공의 성품은 충성스럽고 미더웠으며 절약하고 검소하였다. 평소에 육도 삼략(六韜三略)을 자부하여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를 즐겨 보았고 언제나 남용(南容, 공자의 제자)의 백규(白圭)에 관한 말2)을 외었으며, 나라를 위하는 정성은 늙을수록 더욱 돈독하였다.

 

공은 모두 세 번 장가를 들었는데, 판서(判書) 신익(申翼), 신양군(新陽君) 노영(盧英), 남평군(南平君) 왕화(王和)의 딸로 5남 1녀를 낳았다.

 

별장(別將) 김지(金沚)는 신씨(申氏)가 낳았고, 호군(護軍) 김관(金灌), 별장(別將) 김척(金滌)은 노씨(盧氏)가 낳았으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평호공(平胡公) 김개(金漑), 안성위(安城尉) 김한(金澣), 서령(署令) 안철산(安鐵山)의 아내는 왕씨(王氏)가 낳았다.

 

후손은 많아서 다 등재할 수 없고 그 가운데 기록할 만한 자는 평호공의 아들 교감(校勘) 김맹강(金孟鋼)이 비로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갔으며, 손자 김곤(金琨), 김위(金瑋), 김필(金珌)과 6대손 김취의(金就義), 7대손 김항(金沆)이 잇달아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김필(金珌)은 가장 이름이 알려졌으며 사적(事蹟)은 기묘록(己卯錄, 중종 14년(1519) 기묘 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된 명현(名賢)을 기록한 책)에 나온다.

 

6대손 김취려(金就礪)는 학문으로 일컬어졌고, 8대손 김석명(金錫命)은 무예로 알려졌다.

 

외손으로 드러난 자는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이로(李輅), 영의정(領議政) 이시백(李時白), 판서(判書) 이시방(李時昉),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조창원(趙昌遠), 판서(判書) 조계원(趙啓遠), 의춘군(宜春君) 남이흥(南以興), 판서(判書) 최내길(崔來吉), 영의정(領議政) 최명길(崔鳴吉), 우의정(右議政) 조태채(趙泰采), 판서(判書) 박장원(朴長遠), 영의정(領議政) 이유(李濡), 판서(判書) 이사명(李師命), 좌의정(左議政) 이이명(李頤命)이다.

 

공이 죽은 지 이미 3백여 년이나 되어 묘비에 새긴 글자가 닳아서 없어졌으므로, 지금 김필(金珌)의 6대손 정랑(正郞) 김정오(金定五)와 동종(同宗)의 여러 사람들이 다시 비석을 세울 것을 도모하여 나 이의현(李宜顯)에게 묘비의 글을 가지고 와서 그 뒤에다 추기(追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대체로 나 이의현의 8대조 상상공(上庠公, 이종형)은 실로 교감공(校勘公, 김맹강)의 사위가 되시는데, 예전 선고(先考) 의정공(議政公, 이세백(李世白)이 나온 뿌리를 미루어 족보를 만들 적에 언제나 공의 행적이 가려져 아직 드러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였음을 나는 기억한다.

 

선고의 뜻을 생각하면 도리에 사양할 수 없는 바가 있어 삼가 가승(家乘)에 근거하여 대강 개략(槪略)을 위와 같이 기술한다.

 

 

복원된 안산객사 (안산행궁)

 

 

안산시 수암동 수암봉 등산로 입구 관아터, 안산객사, 연성군 집터

 

 

안산관아 부근 발굴작업중인 연성군 김정경의 집터 (2013년 9월)

 

 

연성군 김정경이 심은 수령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집터 앞)

 

 

옛 관아터 객사 앞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고목

 

 

옛 안산읍성 건물터에 복원한 안산객사

 

1797년(정조 21) 8월 16일 화성에 모신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莊祖), 즉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을 행행(行幸)하면서 어가가 하룻밤 안산행궁에 묵었다. 이때의 행궁이란 따로 축조한 건물이 아니라 안산군의 동헌을 지칭하는 것이다.

 

 

 

안산행궁에 머물던 정조는

소반 같은 땅 모양 일만 봉우리 연꽃과 같고/ 물고기라도 전당강과 비교치 말라/ 천하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안산이라 했는데/ 해마다 벼까지 잘 여물어 풍년이라네

 

地勢盤如萬朶蓮 尋常魚蟹不論錢 生居最說安山好 況復穰穰大有年

지세반여만타련 심상어해부논전 생거최열안산호 황부양양대유년

라는 어제시(御製詩)를 내려 군민들을 효유하였다.

 

안산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모시는 관아 건물이다.

궐패는 조선시대 대궐에 위패(位牌)와 같이 모셔 두었던 ''()자를 새긴 나무패이다. 지방 고을에서는 서울의 국왕을 상징하는 ''(殿)자를 새긴 나무패가 있어 이를 전패(殿牌)라고 하였으며, 일명 궐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안산객사 양쪽 익랑에 온돌방과 대청마루를 두고 이곳을 방문한 관리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로 사용되었다.

안산객사는 정조가 사도세자 능을 방문하면서 잠시 머물렀기때문에 안산행궁이라고도 부른다.

 

 

안산읍성내 관아 건물터와 안산객사 모습

 

 

연성군이 세운 망

해정 정자가 있던 서쪽 성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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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군 처 화혜택주 왕씨 묘소

 

 

신 종
(神宗)
-양양공
(襄陽公)
왕서(王恕)
-시안공
(始安公)
왕인(王絪)
-서원후
(西原侯)
왕영(王瑛)
-익양후
(益陽侯)
왕분(王玢)
- 순화후
(淳化侯)
왕유(王瑈)
-정원군
(定原君)
왕균(王鈞)
- 공양왕
(恭讓王)







-학성후
(鶴城侯)
왕향(王珦)
-남평군
(南平君)
왕화(王和)
-女 :
金定卿





-보성군
(寶城君)
왕희(王熙)
-경창대군
(慶昌大君)
왕유(王瑜)
-순성군
(順城君)
왕정(王珽)
 

 

 

 

 

 

 

 

 

연성군 처 화혜택주 왕씨 묘소 비석

 

연성군 처 화혜택주 왕씨 묘소 신비석

상석   향로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명등

 

오른쪽 문인석

 

왼쪽 문인석

 

연성군 처 화혜택주 묘소 후경

 

출처 : 신라김씨 집안 선영  http://blog.daum.net/shilla57/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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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추가등재 합니다. 

 

위정공 안산군(연성군) 김정경 묘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 57)

 

현천의 무덤을 완성하고 나서 평산신씨와 교하노씨는 부장하였으며, 개성왕씨는 그 아래에 임좌로 장사 지냈다.

 

 

  

안산군(연성군) 부인 개성왕씨 화혜택주 묘

 

 * 옹주 및 택주 설명

 

조선시대 외명부(外命婦) 봉작(封爵)의 하나. 왕자군(王子君)과 종1품 종친의 처(妻)에게 이런 호칭을 붙였다. 군부인은 중국 당나라 때의 외명부제도에서 문무관 3품 이상의 모(母)와 처를 칭하던 데서 비롯되었다.

 

고려 공양왕 때에는 대군과 군의 처를 구별하지 않고 옹주라 하였으나, 조선 초기에 와서 대군의 처를 옹주, 군의 처를 택주(宅主)라 하여 서로를 구별하였다.

 

세종 때에는 종실 종1품의 적처(嫡妻)와 공신 정1품·종1품의 적처를 모군부인(某郡夫人)이라 칭하고 군부인의 앞에 읍호를 붙이도록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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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김씨 김긍필의 14세(13대손) 암, 을신,맹감,지,맹린,맹전,맹추,맹균,

맹일,맹강,맹유,맹철,맹혁,

다음과 같이 1520년 전후로 분파되었습니다.  (윗어른 자제분의 과거급제 시기가 1510년대임, 근거 안김족보 1776년, 1989년)

 

        o 상호군파    휘 암    (의주,용천)   

           ** 휘(諱) :왕이나 제후 등이 생전에 쓰던 이름

        o 사직공파    휘 을신   (강진)         

        o 학생공파    휘 맹감   (강진,황주)  

        o 대제학공파 휘 지      (합천)         

        o 부정공파    휘 맹린   (포천1동)      

 

 

        o 사재정공파 휘 맹전   (안산)         

        o 첨정공파    휘 맹추   (한산)         

        o 참봉공파    휘 맹균   (황해)         

        o 직장공파    휘 맹일   (포천)          

        o 교감공파    휘 맹강   (천안)         

        o 첨중추공파 휘 맹유      ?             

 

        o 판서공파    휘 맹철   (괴산)          

 

        o 참판공파    휘 맹혁   (포천, 청산) 

 

       o 첨지중추부사공파   휘 맹현 (장단) 

            * 장단파 근거 : 안산김씨세보 세계표 사직공파(강진파) 1-2   1978년판 추정

 

연성군은 부인을 세번 맞이하였으니, 판서 신익지, 신양군 노영, 남평군 왕화의 딸이다. 5남 1녀를 낳았다.

 

별장 지는 신씨 소출이요, 상호군 관, 별장 척은 노씨 소출이요,

판중추 평호공 개와 안성위 한과 서령 안철산 처는 왕씨 소출이다.

 

소생 5남 1녀 {사위 안철산}  

 

지 (별장) 沚 (別將) 관 (상호군) 寬 (上護軍) 척 (별장) 滌 (別將) 개 (좌참찬) 漑 (左參贊) 한 (대호군) 澣 (大護軍)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의주파
 


강진파
 


합천파
 


포천, 안산,


 
 
 천안파
 
 


괴산파

    *** 滌(척) : 씻을 척, 물 이름 조 ***

11세
(10대손)
12세
(11대손)
13세
(12대손)
14(13대손) 분 파 내 용 (집성촌)
성경 정경
別將

(상호군)
 의주파 의주파, 용천파
 
진주목사
삼사우사
의정부사
자헌대부
 
좌명공신
연성군
(안산군) 이조전서
숭정대부
위정공

上護軍
을신
(사직)
 강진파 강진파
맹감
(학생)
 강진파 황해도 황주파

別將

(대제학)
 합천파 괴산파,합천파,산청파,만경파

左參贊
맹린
(부정)
 포천,
 안산,
 천안파
포천파, 양주파
맹전
(사재정)
   〃 안산파
맹추
(첨정)
   〃 한산파
맹균
(참봉)
   〃 황해도파
맹일
(직장)
   〃 포천파
맹강
(교감)
   〃 옥천파(청산파), 천안파
맹유
(첨중추)
   〃   ?

大護軍
맹철
(판서)
 괴산파  괴산파
맹혁
(참판)
 포천,
 청산파
 포천파, 청산파
주경
(판서)
이용
(별장)

判決事
맹현
(첨지중추부사)
 장단파  장단파

 

분파의 정식 명칭은 14세 되시는 선조님의 벼슬로 족보에서 구분하고 있습니다. 

예) "상호군파", 다만 편의상 집성촌을 기준으로 "의주파" 로 호칭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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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좌명공신 교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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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권,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월 15일(을해) 2번째기사

이저·이거이 등에게 좌명 공신의 훈호를 내리는 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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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명(佐命)한 공(功)을 기록하여 4등(等)으로 하고, 하교(下敎)하였다.

 

“지난날에 역신(逆臣) 박포(朴苞)가 해할 마음을 품고, 몰래 회안(懷安) 부자(父子)를 끼고 우리 골육을 해하기를 꾀하여, 마침내 군사를 들어 대궐로 향함에 이르러, 흉역(凶逆)을 자행하여 종사(宗社)의 안위(安危)가 순간(瞬間)에 있었는데, 상당후(上黨侯) 이저(李佇)·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이거이(李居易)·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李茂)·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조영무(趙英茂)·좌군 총제(左軍摠制) 이숙번(李叔蕃)·중군 총제(中軍摠制) 민무구(閔無咎)·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신극례(辛克禮)·여성군(驪城君) 민무질(閔無疾) 등 아홉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의(義)에 따르고 사기(事機)에 응하여 계책을 정해서, 화란(禍亂)을 평정하고 종사(宗社)를 편안히 하여, 충성을 다해 좌명(佐命)하였으니, 1등(等)으로 칭하(稱下)하고, 부(父)·모(母)·처(妻)는 3등(等)을 뛰어 봉증(封贈)하고, 직계 아들은 3등을 뛰어 음직(蔭職)을 주고, 직계 아들이 없으면, 조카와 사위를 2등을 뛰어 밭 1백 50결(結), 노비 13구(口), 백은(白銀) 50냥(兩), 표리(表裏)19) 1단(段), 구마(廐馬) 1필, 구사(丘史) 7명, 진배파령(眞拜把領) 10명을 주고, 처음 입사(入仕)하는 것을 허락한다.

 

예문 춘추관 학사(藝文春秋館學士) 이내(李來)는 의(義)를 따르고 사(私)를 잊어, 변(變)을 듣고서 제일 먼저 고(告)하여 충성을 다해 좌명(佐命)하였고, 의안공(義安公) 이화(李和)와 완산후(完山侯) 천우(天祐)는 변을 듣고 급히 달려 와서 화란(禍亂)을 구제하고 익대 좌명(翊戴佐命)하였으니, 2등으로 칭하하고, 부·모·처는 2등을 뛰어 봉증하고, 직계 아들은 2등을 뛰어 음직을 주고, 직계 아들이 없으면, 조카와 사위를 등수(等數)를 뛰어 밭 1백 결, 노비 10구, 백은 25냥, 표리 1단, 구마 1필, 구사 5명, 진배파령 8명을 주고, 처음 입사하는 것을 허락한다.

 

창녕백(昌寧伯) 성석린(成石璘)·완천군(完川君) 숙(淑)·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 이지란(李之蘭)·개성 유후(開城留後) 황거정(黃居正)·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 윤저(尹柢)·김영렬(金英烈)·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윤곤(尹坤)·형조 전서(刑曹典書) 박은(朴訔)·도승지 박석명(朴錫命)·상장군(上將軍) 마천목(馬天牧)·판전중시사(判殿中寺事) 조희민(趙希閔)·봉상경(奉常卿) 유기(柳沂) 등 12인은 정성과 힘을 다해서 여러 번 충성을 바치어 익대 좌명하였으니, 3등으로 칭하하고, 부·모·처는 1등을 뛰어 봉증하고, 직계 아들은 1 등을 뛰어 음직을 주고, 직계 아들이 없는 자는 조카와 사위를 음직을 주고, 밭 80결, 노비 8구, 2품 이상은 백은 25냥, 3품 이하는 은대(銀帶) 1요(腰), 표리 1단, 구마 1필, 구사 3명, 진배파령 6명을 주고 처음 입사하는 것을 허락한다.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조박(趙璞)·삼사 좌사(三司左使) 조온(趙溫)·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권근(權近)·삼사 우사(三司右使) 이직(李稷)·참지 삼군부사(參知三軍府事) 유양(柳亮)·중군 총제(中軍摠制) 조경(趙卿)·좌군 총제(左軍摠制) 김승주(金承霔)·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서익(徐益)·전 동지총제(同知摠制) 홍서(洪恕)·병조 전서(兵曹典書) 윤자당(尹子當)·좌승지 이원(李原)·우승지 이승상(李升商)·한성 윤(漢城尹) 김정경(金鼎卿)·우부승지 서유(徐愈), 상장군(上將軍) 이종무(李從茂)·이응(李膺)·심귀령(沈龜齡), 대장군(大將軍) 연사종(延嗣宗)·한규(韓珪)·김우(金宇)·문빈(文彬), 전 중군 장군(中軍將軍) 윤목(尹穆) 등 22인은 정성을 바쳐 협찬(協贊)하고, 오래 조호(調護)를 부지런히 하여 익대 좌명하였고, 군자 소감(軍資少監) 송거신(宋居信)은 위태로움을 당해 환(患)을 구제하여 익대 좌명하였으니, 4등으로 칭하하고, 부·모·처를 봉증하고, 직계 아들은 음직을 주고, 밭 60결, 노비 6명, 2품 이상은 백은 25냥, 3품 이하는 은대 1요, 표리 1단, 구마 1필, 구사 1명, 진배파령 4명을 주고, 처음 입사하는 것을 허락하며, 아울러 모두 각(閣)을 세워 형상을 그리고, 비(碑)를 세워 공을 기록하며 적장(嫡長)이 대대로 승습(承襲)하여 녹(祿)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자손은 정안(政案)에 기록하기를 좌명(佐命) 몇 등 공신 아무개의 후손이라 하여, 비록 죄를 범하는 것이 있더라도 영세(永世)토록 용서하라.”

 

임금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한산(漢山) 서쪽에서 사냥하다가 성난 표범을 만나 말에서 떨어졌었다. 거신(居信)이 말을 달려 지나가니, 표범이 이를 쫓아갔으므로, 임금이 위태한 지경을 모면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좌명(佐命)의 열(列)에 참예시켰다. 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이거이(李居易) 등이 전(箋)을 올려 좌명 공신에게 상사(賞賜)한 물건을 사양하였다.

“신 등이 일찍이 무인년 정사(定社) 때에 주상 전하의 추장(推奬)하신 은혜를 입어 지나치게 상사(賞賜)를 받았사온데, 이제 또 전하께서 특별히 좌명 공신을 칭하하시어 의정부로 하여금 상사를 준비하게 하시었으니, 신 등은 감히 중첩(重疊)하여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책 193면

【분류】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 *농업-전제(田制) / *변란(變亂) / *신분(身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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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9]표리(表裏) : 안팎 옷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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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5 위정사 향사 사진

 

 

 

 

 

 

 

 

 

 

 

 

이 비는 1863(철종 14) 경기도 하남에 건립된 김정경신도비(金定卿神道碑)로 신석우(申錫愚)가 비문을 지었고, 홍현주(洪顯周)가 글씨를 쓰고, 아울러 전액을 하였다.김정경(金定卿 : 1345~1419)의 본관은 안산으로,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진주목사 성경(星慶)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군부사총랑을 역임하였으며, 이성계를 지지하여 조선이 건국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개국한 이후 사문절도사, 이조전서, 판예빈시사 등을 역임하였고, 1400(정종 2) 방간의 난 당시 방원(태종)을 도와 진압하여, 좌명공신 4등에 봉해졌다. 1410(태종 10)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용맹하였고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시호는 위정(委靖)이다.현재 탁본은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탁본한 연대는 1980년대로 추정된다.

 

有明朝鮮佐命功臣吏曹典書蓮城君謚威靖金公神道碑銘

推忠奮義翊戴同德佐命功臣崇政大夫行吏曹典書蓮城君謚威靖金公

神道碑銘并序

資憲大夫禮曹判書弘文館提學 經筵日講官 申錫愚 撰

綏祿大夫永明尉兼五衛都摠府都摠管 洪顯周 書并篆

有若堂而高四尺于廣之治西玄川負亥原寔惟蓮城君金公定卿攸藏氏貫安

山系出高麗左僕射肯弼若侍中渭判三司元祥牧使星慶爲曾祖祖稱母趙氏

密直副使平壤千禩女生于元至正乙酉任爲延康殿直判護軍宗簿副令軍簿

摠郞中正大夫及事我 太祖策原從功 太宗時佐戡朴苞亂策佐命勳秩視

崇政封爵田民有券書嘗節制義興軍典吏曹再銜 命赴 朝咸著勞績寢疾

世宗遣太醫而診內侍而訊畋而賜獐肝以病中欲嘗也公感泣 恩造恨無以

卒萬一報是年七月十五日竟以赴 聞壽七十五即 永樂己亥輟 朝致侑

贈謚威靖禮備哀榮公甞喜南容三復語好讀黃石素書凢立 朝處事得力爲

多嗚呼 聖祖龍興天開一治炳幾達權如山川出雲盖多其人學問於陽村訏

謨於厖邨質儉於夏亭皆乘運名世之材若公素負韜略戡平禍亂可以幷駕諸

公爲 國初英豪豈不偉哉宜其順天迓休毓繁厥祉凡三娶判書申翼之新陽

君盧瑛南平君王和女生五男一女別將沚申出護軍灌別將滌盧出判中樞平

胡公漑安城尉澣署令安鐵山妻王出平胡之子校勘孟鋼始以科甲進孫琨瑋

珌珌顯己卯彙征時六代孫就義七代孫沆繼登文科六代孫府使就礪七代孫

參奉聲大 贈持平聲玉八代孫參奉始聲皆以學行稱錫命錫保以武顯九代

孫知中樞相斗縣監定五傡罹辛丑士禍牧使相鼎十代孫防禦使養一竝參奮

武勳養心文大諫外裔多達官顯人玄川之竁旣成申氏盧氏祔王氏葬其下壬

坐十四代孫樂朋以陶谷李公所撰表來請神道之刻愚辭不獲謹纂次爲文而

系之以銘 猗嗟蓮城赫閥宏器佐命翊運筮革六二旂常旣揭金帛蕃賜

允㫌相報聿殫殄瘁秉銓銜 命績懋厥試圭無言玷石有書秘公服膺斯勳措

于事勳烈山峙福履川至文武忠孝衍錫其類我銘牲繫永表玄隧

崇禎紀元後四癸亥 四月 日立

 

김정경신도비

유명조선 좌명공신 이조전서 연성군 시위정 김공 신도비명

추충분의 익대동덕 좌명공신 숭정대부 행 이조전서 연성군 시위정 김공 신도비명병서

자헌대부 예조판서 홍문관제학 경연일강관 신석우가 글을 짓고,

수록대부 영명위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홍현주가 글씨와 함께 전액을 쓰다.

 

당과 같은 모습에 높이가 4척이며 광주 고을 서쪽의 현천에 해방을 등진 언덕은 곧 연성군 김공 정경의 묘소이다. 본관은 안산이고, 선계는 고려좌복야 긍필에서부터 나왔다. 시중 위와 판삼사 원상과 목사 성경이 공의 증조와 조부,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평양조씨로 밀직부사 천사의 딸이다. 원나라 지정 을유년(충목왕 1, 1345)에 태어나 벼슬하여 연강전직 · 판호군종부부령 · 군부총랑 · 중정대무가 되었고, 우리 태조를 섬겨 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태종때에는 박포의 반란을 평정하여 좌명공신에 책봉되어 품계가 숭정에 올랐으며, 작위를 봉하고 전호와 민호를 하사한 권서가 있다. 일찍이 의흥친군위 절제사를 지냈으며 이조를 관장하였다. 두 번이나 명을 받들고 명나라 조정에 사신으로 가서 공적이 모두 현저하였다. 병들어 눕자 세종께서 대의를 보내어 진료하게 하고, 내시를 보내어 문병하셨으며, 사냥하여 노루 간을 하사 하셨으니, 이는 병중에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공은 성은에 감읍하여 끝내 만에 하나도 갚을 수 없음을 한스럽게 여겼다. 715일에 마침내 부음이 들렸으니 향년 75세이며, 해는 영락 기해년(세종 1, 1419)이다. 조정의 정사를 거두고 제물과 제문을 모내어 조상하고, 위정이란 시호를 추증하여 신하의 죽음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공은 일찍이 남용이 세 번 반복했다는 옥의 흠은 갈 수 있지만 말의 흠은 갈 수 없다는 말을 좋아하였고, 황석소서를 즐겨 읽어 무릇 벼슬하여 일을 처리 할 때에 여기에서 힘을 얻은 것이 많았다. 오호라! 성조가 용흥하여 하늘이 한번 다스림을 열어주시어, 기미에 밝고 권형에 통달한 분들이 마치 산천에 구름이 일듯하여 그 사람이 많았다. 학문은 양촌이요, 나라를 위한 계책은 방촌이며, 질박하고 검소함은 하정이니, 모두 운을 타서 세상에 이름난 인재들이다. 공으로 말하자면 평소에 육도삼략을 지고 화란을 평정하여 제공들과 명예를 나란히 하여 국초에 영호가 될 수 있었으니,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그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아름다움을 맞이하고 그 복지를 육성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하도다.

공은 부인을 세 번 맞이하였으니, 판서 신익지 · 신양군 노영 · 남평군 왕화의 딸이다. 51녀를 낳았다. 별장 지는 신씨 소출이요, 호군 관 · 별장 척은 노씨 소출이요, 판중추 평호공 개와 안성위 한과 서령 안철산 처는 왕씨 소출이다. 평호공의 아들 교감 맹강이 비로소 과거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출하였고, 손자는 곤 · · 비인데, 비는 기묘년 휘정 때에 저명했다. 6대손 취의와 7대손 항은 계속하여 문과에 올랐으며, 6대손 부사 취려와 7대손 참봉 성대 · 증지평 성옥과 8대손 참봉 시성은 모두 학행으로써 일컬어졌으며, 석명 · 석고는 무로써 드러났다. 9대손 지충추 상두와 현감 정오는 함께 신축사화에 걸렸으며, 목사 상정과 10대손 방어사 양일은 함께 분무훈에 올랐고, 양심은 문과 대간이다. 외손도 높은 벼슬과 현달한 사람들이 많았다. 현천의 무덤을 완성하고 나서 신씨와 노씨는 부장하였으며, 왕씨는 그 아래에 임좌로 장사 지냈다. 14대손 악붕이 도곡 이공께서 찬한 묘표를 가지고 와서 신도비를 청하니, 나는 사양 할 수 없어서 차례를 모아 비문을 짓고 이어서 명하노라.

 

! 연성이여! 혁혁한 문벌에 큰 그릇이로다.

좌명으로 군운을 붙잡았으니 혁괘 육이를 점침이로다.

표창한 기를 이미 올렸고 황금과 비단도 많이 내리셨도다.

포상하신 성은을 갚으려하여 마침내 몸이 병들도록 충성을 다하였도다.

전조의 일을 맡아 왕명을 받드니 시용에 공적이 많았도다.

옥의 흠은 갈 수 있지만 말의 흠은 갈 수 없다는 것과 황석공의 소서에는 비법이 있도다.

공은 이것을 가슴에 간직하여 행동하고 일을 처리하였도다.

큰 공훈은 산처럼 솟아있고 복록은 냇물처럼 흐르도다.

문무충효는 번성하여 대대로 자손이 이어 가도다.

나는 비석에 명하여 영원히 전해지도록 표하노라.

 

숭정기원후 네 번째 계해년(철종 14, 1863) 4월 일에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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