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헝가리 5온스 성모마리아 기념 은메달
은함량 : 99.9% 중량 : 155.5g
1919년 세워진 헝가리 공화국은 소련이 해체되는 1991년 까지 소련의 지배하에서 북조선과는 1948년 수교하였고 한국과는 공산국가여서 1989년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헝가리 통화는 Forint(포린트, 약칭 Ft)를 사용하는데 액면이 없으므로 메달입니다. 뒷면의 UNCIA 는 헝가리어로 온스라는 뜻이므로 1986년 5온스 999 은메달로 정립합니다.
궁금한 사항은 공산주의 국가 시절인 1986년에 성모마리아 관련 대형 은메달을 만든 계기와 발행량입니다.
헝가리와 한국과의 관계
헝가리는 유럽 중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공화제 국가.
헝가리는 북조선과는 1948년 수교하였으나, 공산국가였으므로 한국과는 정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결국 1989년 남한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다.
중앙유럽의 공산국가 중 남한과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는 헝가리이다.
1989년 수교 직후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가 중앙유럽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헝가리를 방문하였으며, 이후 대한민국과 헝가리는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
정식 명칭은 헝가리인민공화국(Hungarian People’s Republic)에서 1989년 10월 헌법개정으로 헝가리공화국(The Republic of Hungary)으로 바뀌었으며, 수도는 부다페스트(Budapest)이다. 면적 9만 3031㎢, 인구 1,021만 명(1998년 현재)이다. 도시지역에 총인구의 약 45%가 분포되어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마쟈르족(96.6%)이며, 언어는 민족고유의 헝가리어(마쟈르어)를 사용하고, 국민의 67.5%가 가톨릭을 믿는다. 기후는 다습한 대륙성기후로서 봄·가을이 짧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
마쟈르족은 9세기 말 러시아로부터 이주해 왔으며 1001년 최초로 독립왕국을 창건한 뒤 13세기부터 몽고·터키·오스트리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186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간 화해협정이 성립, 헝가리는 내정상 독립을 회복하였지만 오스트리아 황제를 헝가리 왕으로 섬기는 2중 군주국(Dual Monarchy)으로 바뀌었으며, 이러한 형태는 1918년 11월 함부르크 왕조의 해체 시까지 지속되었다.
제1차세계대전 종전과 공산지도자 쿤(Kuhn Bela)의 주도하에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4개월만에 붕괴되고, 1920년 3월 왕정복귀 후 헝가리는 국토의 71%, 인구의 60%를 인접국에 양도하게 되어 유럽의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소련 주둔군의 지원으로 공산당이 1949년 5월 정권을 장악하고 스탈린식 강압정책을 채택하여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
스탈린(Stalin,I.V.)이 죽은 뒤 온건한 나지(Nagy,I.) 수상이 등장하여 자유화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1956년 대규모의 반소인민봉기가 발생하자, 소련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 나지는 축출되고 카다르(K0x8044d0x8044r,J.)의 새 정부가 들어섰다.
카다르는 1967년 소련과의 우호조약을 20년간 갱신하는 등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 낙후된 경제개발에 주력하여 1968년부터 여러 차례 경제개혁을 실시하였다.
카다르의 신경제제도는 경제정책의 지방분권화, 시장원리에 의한 가격체제, 노동자의 동기 부여, 서구와의 무역확대를 도모함으로써 동구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철저하고 광범위한 자유화정책과 민생중시정책이라 평가되었고, 실제로 경제체제의 진정한 전환을 가져온 유일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헌법은 1972·1983·1989년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그 동안 소련의 공산당을 그대로 답습한 헝가리 사회주의노동자당(1989년 10월 헝가리사회당으로 개칭)은 유일 합법정당으로서 실질적으로 국가와 정부를 통제해왔으나 1989년의 헌법개정을 통하여 다당제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이 헌법개정안은 국가원수를 기존의 대통령위원회라는 집단기구 대신 대통령 개인으로 바꾸고 의회에서 간선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1989년 10월 23일 ‘헝가리 인민공화국’으로 국호를 개칭하였다. 주요 정당으로는 헝가리 사회당(구공산당), 자유민주연합, 헝가리 민주포럼, 청년 민주연합, 독립 소지주당, 헝가리 정의생활당 등이 있다.
헝가리 외교정책의 기조는 해체된 바르샤바조약기구(WTO)·공산권경제상호원조회의(CMEA) 등 기존 동맹권으로부터 탈피, 전통 서유럽에로의 복귀를 국가의 최대 목표로 설정하고, 범유럽 집단안보 및 협력체제에 참여하며, 중유럽협력구상(CEI)·중유럽자유무역협정(CEFTA) 등을 통해 주변 국가들과 정치·경제·군사적 유대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이다.
다만 인접한 루마니아와는 그 나라에 거주하는 마쟈르족(200만 명)의 지위문제를 놓고 불편한 관계에 있다. 또한 헝가리는 1990년이래 경제정책의 핵심과제인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청산을 통한 시장경제체제로의 정착과 대외무역의 자유화를 정책기조로 각종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 중이다.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세계부흥개발은행(IBRD)·세계무역기구(WTO)·국제경제협력기구(OECD) 등 경제 관련기구에 가입하여 있다. 경제는 농업 위주였으나, 제2차세계대전 후 공업화에 주력, 공업생산이 주도하게 되었다.
특히 광업·알루미늄공업·자동차·전자기기 등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1987년 공업생산은 국민총생산의 41%를 차지하였다.
무역은 수출 191억 달러, 수입 212억 달러(1997)이며, 국내총생산은 46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4,542달러(1997)이다. 화폐단위는 포린트(Forint)이다. 주요 자원으로는 석탄·천연가스·보오크사이트 등이 매장되어 있다.
헝가리는 1948년 11월 11일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 교류증진을 통하여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한국과는 신장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관계증진을 모색하여 호혜적 원칙 아래 1988년 8월 26일 한·헝가리 상주대표부 설치 협정을 체결, 같은 해 10월 25일 주헝가리 한국상주대표부(부다페스트 소재)를, 12월 7일 주한 헝가리상주대표부(서울 소재)를 각각 설치하였다.
1989년 2월 1일 정식으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 같은 날 상주대표부를 대사관으로 승격시켰다. 헝가리는 동유럽 공산국가 중에서 한국과 정식 국교관계를 수립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1989년 11월 우리 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노태우 전대통령이 헝가리를 방문하여 항공협정과 관광협정을 체결하였다.
한·헝가리간에는 투자보장 협정(1988.5.), 무역 및 경제협력 협정(1989.2.), 문화협정(1989.2.), 외교관·관용여권 사증면제 협정(1989.2.), 이중과세방지 협정(1989.3.), 과학기술협력 협정(1989.3.), 항공협정(1989.11.), 사증면제 협정(1991.3.) 등이 체결되어 있다.
한국은 무역 및 경제협력 협정체결(1989년 2월) 이후 1996년 12월 현재 헝가리 12개 업체가 약 1억 1,7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교역 규모도 1997년 현재 수출 1억 7,600만 달러, 수입 5,400만 달러에 달하고 있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274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전자·의류·기계류·섬유 제품 등이고, 수입품은 철강 및 금속제품·농산물 유기 화학 등이다. 1996년 12월 현재 교민은 298명(상주 주재원, 유학생 포함)이다.
≪참고문헌≫ 東亞年鑑(東亞日報社, 1990)
≪참고문헌≫ 各國便覽(외교통상부, 1998)
≪참고문헌≫ Statesman’s Year-Book(1987∼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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